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16:35:54

미야자키 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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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톱 크래프트에서 제작했으나 미야자키가 저작권을 가지기로 하고 제작한 작품이고 미야자키가 지브리에 저작권 관리를 위탁해 스튜디오 홈페이지 작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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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고로 | Gorō Miyazaki
파일:external/storage.mantan-web.jp/001_size4.jpg
출생 1967년 1월 21일([age(1967-01-21)]세)
일본 도쿄도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 고등학교 (졸업)
신슈대학 농학부 (산림공학과 / 학사)
직업 건설 컨설턴트,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활동 2006년 ~


[clearfix]

1. 개요

일본애니메이션 감독애니메이션 프로듀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로[1] 1967년 1월 21일생.

본래 직업은 공원이나 녹지를 설계하는 건설 컨설턴트였으며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2019년부터 아이치현에 건설 중인 지브리 파크 제작에도 참여했다. #

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에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쥬대학 삼림공학과에 입학해서 집을 떠날 때까지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릴 때 괴수 카드가 유행했는데, 그게 사고 싶다고 말하자, 내가 만들어 줄께 라고 집에 있던 종이를 잘라서 괴수를 그려서 줬다고 한다. "가끔 집에 있어서 가끔 서비스해 주는 아저씨"이라고 타인처럼 여겼다고 한다.

사춘기 때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아버지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면서 자랐다. 한 때는 애니메이터를 꿈꾸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애니메이션 같은 야쿠자같은 일을 하면 안된다. 나와 같은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려서[2] 그 꿈은 포기했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인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기획 견학에 자주 따라간 적이 있어서 오시이 마모루와도 안면이 있었다. 고로는 이 시절 아버지의 작품보다는 오시이 감독의 작품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도 오시이와는 친분이 깊다.

2020년 경부터 아버지의 후광에서 벗어나고 싶은지 미야자키 성을 떼고 'GORO' 명의로 활동하기도 한다.

2. 행적

1998년에 지브리 미술관의 종합 디자인을 맡았고, 스즈키 토시오가 지브리 미술관에서 일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에 2001년에 완성된 지브리 미술관의 관장으로 일했다. 토시오의 말에 의하면, 지브리 미술관의 건축을 고로가 맡게 된 이유도 지브리 미술관의 구상과 디자인을 하야오가 직접 했는데, 워낙 까다롭고 완고한 하야오의 성격 때문에 다른 건축업자들은 학을 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꼬리를 말고 도망쳤는데, 고로만은 "뉘예~ 뉘예~" 하면서 아버지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고 훌륭하게 지브리 미술관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라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이 때의 긍정적인 인상이 계기가 되어 후일 토시오는 게드전기의 감독직을 고로에게 맡기는 실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하야오는 크게 반대하게 엄청 화를 냈다고 한다. 고로의 감독으로서 경력이 형편없어 결국 하야오는 고로에게 야마시타 아키히코를 스승으로 붙여주게 되고 이 작품은 고로가 이상하게 만드는 걸 야마시타 마사히코가 수정하는 방향으로 제작된다. 흥행에서는 성공했지만 작품의 평가는 좋지 못한 애니메이션이 되었다.[3]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전작 게드전기에 비해 훨씬 발전했다는 평을 듣지만 역시 감독직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여전히 아버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정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인 듯. 어린 시절, 하야오가 항상 바쁜 탓에 집에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잡지 아니메쥬와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아버지와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한다. 티비 방송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씨를 존경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면서도 아버지로서는 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토시오가 말하는 비화 중의 하나로, 지브리 미술관 건설 당시 하야오는 자신이 초안을 잡은 미술관이라 이래저래 참견을 하고 사사건건 고로와 충돌했는데, 어느 날은 서로 팩스로 문서를 주고받으면서 싸우다가 하야오가 '내 말대로 하라'는 식으로 팩스를 보내니, 고로가 "オレはあんたに育てられたおぼえはない!"[4]라고 팩스로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하야오는 길길이 화를 냈고, 옆에서 지켜보던 토시오는 그 장면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고로가 프로듀서를 담당했으며 스즈키는 2023년 인터뷰에서 "고로는 감독보다 프로듀서의 재능이 뛰어날지도 모른다. 지브리의 경영은 닛폰 테레비에 넘길 것이지만 프로듀서는 고로에게 넘기고 싶다."라고 발언하였다. 만약 고로 본인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후계자가 아닌 스즈키 토시오의 후계자가 되는 셈이 된다.

2.1. 게드전기

2005년, 스즈키 토시오는 지브리의 신작 예정작인 게드전기의 선전용 포스터를 한 장 그려보라고 고로에게 부탁한다.[5] 이때부터 토시오는 고로에게 게드 전기의 감독을 맡길 음모를 꾸몄다. 그리고 이 포스터는 영상화 허가를 구하기 위해 토시오와 하야오가 원작자인 어슐러 르 귄과 찾아가 만났을 때, 하야오는 자신이 그린 이미지 보드를 꺼내들면서 원작자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과 고로가 그린 그림을 비교하며, 자신이 훨씬 원작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이 그림이 맞죠?"라고 원작자에게 물어봤다. 옆에 있던 토시오는 진심으로 하야오를 주먹으로 때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심정을 고백했다.

* 원작자 르 귄과의 만남 비화
제작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허락을 얻기 위해 미국에 있는 르 귄의 자택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고로가 감독을 맡게 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허락을 얻기 위해서는 미야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영화화의 허락을 얻는 건 프로듀서의 일이잖나?”라고 말하는 미야를 설득해 같이 가기로 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있는 르 귄의 집은 마치 성곽 같은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 안에 있었다. 르 귄과 아들인 테오의 환영 속에서 인사를 마치자마자 미야는 『게드전기』(한국에서는 어스시 연대기로 통한다.)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책을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습니다. 다른 영화를 만들다가 곤경에 처했을 때, 몇 번이나 다시 읽곤 했지요. 제가 만든 작품 모두 『게드전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 사람은 이 세상에 저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미 64세로, 이 작품을 만들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제 아들과 저희 스태프들이 이 작품을 꼭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게드전기』의 새로운 매력을 끌어낸다면 그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물론 대본은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대본을 읽어보고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즉시 그만두게 하겠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은 다음에 르 귄은 이렇게 대답했다.
“두 가지 질문이 있어요. 영화로 만들 때는 제3권이 중심이 된다고 들었어요. 제3권에 등장하는 건 이미 중년이 된 게드예요. 당신은 지금 본인이 늙었다고 말했는데, 오히려 지금의 당신에게 어울리는 주제가 아닌가요? 또 한 가지, 아들이 만드는 대본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는데, 그건 무슨 뜻이죠? 안 되겠다고 판단하면 그만두게 하겠다는 건 또 무슨 뜻인가요? 당신은 지금 영화화 허락을 받으러 온 게 아닌가요?”

분위기는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다. 미야는 나를 쳐다보며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이라도 했나?”
“이분은 지금 미야 씨가 이 영화의 프로듀서로서 책임을 지겠냐고 묻는 겁니다.”
내가 귀엣말을 한 순간, 미야가 크게 소리쳤다.
“말도 안 돼! 한 영화에 부자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다니, 그렇게 꼴사나운 짓은 할 수 없어!”
미국인은 그런 감각을 이해할 수 없다. 마음을 조이며 지켜보고 있었더니, (르 귄의 아들) 테오가 옆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오늘 밤에 같이 식사하시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이야기는 그때 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날 저녁, 긴장된 마음으로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테오가 르 귄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잖아요?”라고 재촉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한 뒤, 미야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의 아들인 고로 씨에게 모든 걸 맡길게요.”
미야는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고로는 마침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고, 게드 전기의 계획안에 끌려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도 뒷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하야오는 수십 년 전부터 이 작품을 영상화하기를 원했지만, 원작자 어슐러 K. 르 귄이 애니메이션은 디즈니 수준의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을 몇 번이고 거부한 탓에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후일 자신의 작품의 일본어판 번역자의 소개로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감동을 받은 뒤에야 하야오에게 자신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뜻을 전하게 된다.

그러나, 하야오는 이미 어스시 연대기의 영상화에 흥미를 잃었고,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다른 작품에서 다 써 먹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새삼스레 이 소설을 만들 수가 없다며 감독직을 맡기를 거부했다. 이에 토시오가 '하야오가 거절했어도 스튜디오 지브리가 거절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다른 감독을 내세워 작품의 영상화를 추진하게 되었으며, 그 때 머리속에 떠오른 인물이 바로 미야자키 고로였다. 토시오의 말에 의하면, "미술관도 훌륭히 완성해냈으니, 영화도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고. 그리고 붉은 돼지에서 17살로 경험이 적은 피오가, 자신이 비행기 설계를 하는 것을 주저하는 붉은 돼지 포르코에게 "비행기 설계를 하는데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까? 영감(靈感)입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포르코는 영감이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하야오는 고로가 경험이 없다고 고로가 감독을 맡는 것을 맹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영화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고로가 그린 포스터 그림을 보여주며 토시오는 이 작품을 맡겨야 된다고 주장하였지만, 지금까지 특별히 애니메이션 제작에 종사한 적이 없는지라 우려를 금치 못했고 햐아오 또한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고로가 영화를 감독할 수 있을 만큼 경험을 쌓지 못했으며, 영화의 발달사 전체에 걸쳐서 등장하는 용어를 단 두 개도 말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로는 영화 감독을 맡게 되었다. 지브리의 직원들은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한 적도 없는데도 감독을 맡는 것에 단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라서 그런거라 여기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리더쉽을 발휘해서 반발하는 직원들을 잘 꾸려서 작품을 완성했다고. 스즈키 지브리는 대외적으로 해명했지만, 실제로는 어땠는지, 당시 지브리의 속사정은 알 수 없다.

게드전기는 개봉 전부터 지브리와는 밀월관계인 니혼 테레비에서, 고로를 조명하는 특집 다큐멘타리 방송도 만들고, 성우로 출연하는 쟈니스 배우를 취재한 방송도 만들고, 온갖 선전 방송을 만들어서 방송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일 해 본 적도 없는 생초짜 아마추어인 고로를 단지 아버지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연줄로 영화 감독까지 된 것인데, 방송에서는 뭔가 대단한 인물인 것처럼 포장해서 내보냈다. 그 방송에서 미야자키 고로는 마치 몇 십 년은 애니 업계에서 일을 하고 수 십 편은 감독을 한 것처럼 폼을 잡으면서 행세했다. 본인이 지금 다시 보면 이불킥.

게드전기는 일본에서 흥행은 대박이었지만(관객 6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6] 평은 심각하게 좋지 않았으며 일본을 제외 한 전세계에서의 흥행은 참혹했다.

비록 극장에서 흥행에 실패해서 적자가 나도 나우시카, 토토로, 라퓨타는 2차 시장(비디오, DVD, 관련 서적, 캐릭터 상품 등)으로 손해를 만회하고 흑자로 전환했는데, 스즈키 토시오는 게드 전기 2차 상품 전개를 할 때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인데도 이번에는 안 팔릴 거라고 주저하는 관련 회사 간부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리고 역시나 2차 상품은 잘 안 팔렸다.

원작자인 어슐러 K. 르 귄은 애니메이션 <게드전기>에 대해서 "Yes, It`s good movie. Not my book. It is your movie(좋은 영화네요. 이건 제 책이 아니라 당신의 영화지요)."라는 평을 남겼다. 인터뷰에 의하면 미야자키 고로는 당시에 이를 칭찬으로 알아들었던 모양이지만, 정작 원작자는 웹사이트에서 이 영화를 강력하게 비판하기까지 하였으며, 결국 소설과 영화를 아예 별개로 만든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로 던진 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스토리 각색이 문제가 아니라, 어스시의 마법사의 주제의식까지 망가뜨린 원작파괴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7]

한술 더 떠 하야오 감독은 시사회를 보던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단순히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후의 말을 봐선 주인공인 아렌 왕자가 아버지인 국왕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고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떠올렸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결국 흥행과 별개로, 2006년 말 게드 전기는 일본의 분슌 아유 시상식에서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영화상 2관왕의 영광을 받는 기회를 얻었다.

2.2. 코쿠리코 언덕에서

그 후 조용했다가 5년만에 신작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내놓았다. 이 애니메이션으로 35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전작인 게드전기보단 상당히 나아졌으며 게드전기 이전까진 제작 경험도 없던 신인이 만든 후속작이 수상까지 하는 것은 상당한 성과임은 명백하나, 마찬가지로 전작과 더불어 일본을 뺀 흥행은 여전히 참혹했다. 그러나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원작부터가 1960년대 일본 학생 운동을 다루는 매우 내수 성향이 강한 작품이라 해외 흥행은 그냥 포기했다고 보는게 좋다. 그래도 데뷔작인 게드전기의 처참한 평가[8]를 받았던것에 비해 코쿠리코의 언덕에서의 평론가 평가나 유저 평가도 호평을 받았다.[9]

게드전기와 달리 코쿠리코 언덕에서미야자키 하야오가 끝까지 영화를 보고 심지어 영화 중간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포착되기도 했다. 정작 영화가 끝난 다음에는 엉망이라며 대차게 까버리고 고로를 보고 "미숙한 녀석"이라는 평가를 내리긴 했지만[10]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는 이걸 보고 아버지를 울렸으니 결국 고로가 이긴 거라고 평하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제작 당시를 다룬 다큐멘터리 꿈과 광기의 왕국에서 "자신은 실수로 이 업계에 들어온거라고 생각한다" 라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내 작품을 영상으로 만들고 싶다",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싶다" 같은 명분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자신의 역량과 능력에 대한 의문과 경력이 없다는 문제 등으로 인해 어떠한 명분으로 대의를 가질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는 즐거움이란 마음은 존재하지만 그보단 "지브리를 위해서"란 생각이 더 강했다고. 그렇게 돼서 "지브리와 지브리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는게 대의명분이 되어버렸고, 영화를 만든다는거 자체가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에는 의구심이 있다고 한다.

2.3. 2D에서 3D로

2.3.1. 산적의 딸 로냐

한동안 잠잠했다가 2014년 가을 TVA 산적의 딸 로냐를 공개했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하는게 아닌 폴리곤 픽쳐스에서 제작되었다. 벼랑 위의 포뇨의 작화 감독이였던 곤도 가쓰야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는 등 지브리와 아예 관계가 없진 않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이후로 아무런 활동도 없던 고로를 보고 당시 도완고(현재 카도카와와 합병)의 대표인 가와카미 노부오가 "지브리에 있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에서 못벗어나니 무사수행이라고 생각해라" , "어차피 나와서 만들꺼 3D 기술로 만들어버려라" 라고 권유했다고 하며. 처음에는 고로는 바보같다고 생각했으나 어차피 젊은 시절부터 애니메이터로 일한 것도 아닌데 새로운 기술을 외면한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산적의 딸 로냐의 제작에선 CG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보였고 실제로 에미상의 아동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상을, 아시아 텔레비전 시상회에서 2D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후 산적의 딸 로냐 이후에는 직접적인 작품 활동에 대한 소식은 없었는데 서유기: 대성귀래(신서유기 : 몽키킹의 부활)의 텐 샤오펑 감독과 3D 애니메이션에 대한 대담을 하거나 직접 일본어 더빙 감수를 맡기도 했다.

2.3.2. 아야와 마녀

2020년 칸 영화제에서 아야와 마녀라는 신작을 공개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코로나19로 영화제는 취소되었지만 NHK에서 겨울 방영 예정이라고 하며 2020년 6월 4일 아야와 마녀가 공식으로 공개되었다. 3D 기술로 셀 효과를 표현한 산적의 딸 로냐와 달리 본격적인 3D 표현을 사용하여 기존 지브리 그림체의 느낌이 많이 희석되어 보이는게 특징. 그러나 3D 그래픽에서 평가는 좋지 못하다.

아야와 마녀 공개 이후 고로는 인터뷰에서 차후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해 얘기했는데, 자신이 신작으로 만들다면 3D로 제작할거 같다고 말했다. 다만 2D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고로가 만드는 3D 애니메이션 말고 지브리 제작의 2D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획 자체는 있는것으로 추정된다.

3. 기타

  • 위에서 언급된 것과, 여러 인터뷰들을 보면 사실상 애니메이션 업계와는 연관이 없다가 스즈키 토시오의 입김[11][12]미야자키 하야오의 장남이라는 덕에 푸쉬를 받으며 지브리의 장편을 맡을 수 있던 것이라고 한다. 이건 굉장한 특권이다.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이나 연출의 지위에 올라가려면 제작진행이나 동화 애니메이터 같은 말단부터 시작해서 근 10년을 열정페이로 일해야 하나, 그걸 아버지 이름빨로 단 한 번에 해버린 것이니 말이다. 키타쿠보 히로유키는 이 점을 대놓고 비판했으며 미야자키 고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 당연히 경험도 재능도 없었기 때문에 평가는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라는 타이틀과 "지브리와 지브리의 사람들을 위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감독직을 계속 했고, 두번째 작품인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확실히 나아진 평가지만, 역시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야마시타 아키히코, 콘도 카츠야 같은 이름난 스승을 붙여주고 있고 고로 본인도 노력파이긴 해서 일단 기본은 한다. 2010년대 한심한 신인 연출자가 늘어나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 중상급 이상은 하는 연출자이다. 다만 아들빨 푸쉬를 받은 이상 반드시 성공시켰어야 할 첫 단추인 게드전기가 너무 거하게 망해버렸고 아버지가 애니메이션계의 전설인 '미야자키 하야오'기도 하다 보니 대중에게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하도 양산형 애니가 무수히 쏟아져나오면서 상대적으로 평가가 높아지긴 했다.
  • 아버지인 미야자키 하야오이웃집 토토로를 제작하기 직전에는 지브리 애니메이션보다 오시이 마모루가 총괄하던 애니메이션 <시끌별 녀석들>을 훨씬 좋아했었다고 한다. 집에 DVD를 쌓아놓고, 2번째 극장판 '뷰티풀 드리머'는 몇 십번을 돌려보며 환상과 환영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8살 생일에는 주변 친구들과 <시끌별 녀석들>의 행사에 참여도 했던 모양이다. 또한 도라에몽의 팬으로 고로가 도라에몽을 좋아해서 하야오도 고로가 산 만화책을 전부 읽었다고 한다. 이거 말고도 아버지 때문에 덕밍아웃을 꽤 많이 당했다.

4. 작품 목록

<rowcolor=#fff> 년도 제목 감독 각본 제작
2006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2011 코쿠리코 언덕에서
2014~2015 산적의 딸 로냐
2020 아야와 마녀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 장남으로, 동생은 판화가로 일하고 있다.[2] 어머니도 토에이 동화의 애니메이터였다. 하야오가 강권해서 은퇴했는데 본인은 후회했고, 하야오도 그것에 대해서 대단히 미안해했다.[3] 다만 야마시타도 콘티 경력은 있어도 연출 경력은 별로 없는 애니메이터라, 결국 간신히 지브리 평균 퀄리티를 내놓는데 그쳤다. 심지어 문외한과 일반인조차, '다른 지브리 애니보다 애니메이팅이 떨어진다.'라는 혹평을 내놓았으니...[4] 직역하자면 "나는 당신한테 키워진 기억은 없어!", 조금 의역하자면 "당신이 나한테 뭘 해준 적이 있다고!" 정도가 되겠다.[5] 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고로에게 그림을 한 장 그려달라고 했다. 주인공인 아렌과 용이 마주하는 장면이다. 미야가 좋아하는, 큰 것과 작은 것이 나란히 있는 구도다. 그런데 평범하게 그려낸다면 미야를 설득할 수 없다. 그런 그림을 그릴 때, 미야는 대부분 바로 옆이나 정면에서 올려다보는 각도로 그린다. 그렇다면 그가 그리지 않는 각도, 즉 대각선에서 본 시선으로 그리면 어떨까? 그렇게 말했더니 고로는 알겠다고 말하더니 매우 인상적인 그림을 완성해냈다. 그림을 본 미야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결국 고로가 감독을 맡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미야상에게도 『게드전기』의 세계를 그림 한 장으로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작품의 무대인 호트타운을 그려주었다. 게드와 아렌을 비롯한 주인공들이 항구의 높은 곳에서 하늘을 나는 용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미술 설정이 되는 결정적인 그림이었다. 그 두 장을 앞에 두고 나는 확신했다. 이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출처: 스즈키 토시오의 지브리의 천재들)[6] 하지만 흥행이 좋은 것은 이전부터 제작사인 스튜디오 지브리와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란 유명세로 흥행을 한 것 뿐이지 평이 결코 좋지 않았다. 평가와는 별개로 흥행 한 영화인 셈.[7] 대표적으로, 주인공 게드의 피부색을 밝은 색으로 표현해버린 폭거를 들 수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흰색은 순수함, 순결함,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검은 색은 음흉함이나 사악함, 추함의 이미지와 연결되며(당장 한국에서도 '속이 검다' 라는 표현이라거나, '백설처럼 깨끗한' 과 같은 표현이 있음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색에 대한 선입견은 인종차별 문제등과 연관되어 많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원작자 르 귄은 어스시 시리즈 내에서 이런 색에 대한 선입견을 뒤틀어 무색인종을 난폭한 약탈자 야만족으로, 유색인종을 문화적 수준이 높은 민족으로 묘사하는 일종의 '관념의 역전'을 통해 작품의 주제의식을 드러냈던 것(이처럼 기존에 사람들이 가졌던 관념을 역전시켜서 묘사함으로써 이제까지 독자들이 당연시하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르 귄이 매우 선호하는 표현수법이다). 그런데 고로는 이런 작품의 주제의식을 무시하고 그냥 게드의 피부색을 살구색으로 칠해버렸다. 즉, 시각 매체를 통해 문자 매체인 원작의 주제의식을 보다 확고히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감독 스스로 차 버렸다는 것.[8] 메타크리틱, 로튼토마토 같은 평론 사이트에서 게드전기는 평론가와 유저 점수 모두 40점대의 평가를 받았다.[9] 메타크리틱 71점, 로튼토마토 85점으로 유저 평가도 이와 유사하다.[10] 또 마냥 까기만 한 건 아니고 "서투르지만 이런 시기에 이 영화를 개봉한 건 행운였다고 본다", "이런 시기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게 느껴졌다"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11] 스즈키는 고로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과연 어떻게 될지는 더 지켜봐야 되겠다만.[12] 다만 재능과는 별개로 고로에게 투자한 것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존속에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2D 시장에서 미래가 암울해진 지브리가 고로의 3D 애니와 하야오의 2D 애니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