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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토스 왕국 3대 군주 Mιθριδάτης | 미트리다테스 2세 | ||
제호 | 한국어 | 미트리다테스 2세 |
그리스어 | Mιθριδάτης | |
영어 | Mithridates II | |
존호 | 바실레프스 | |
가족 |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아버지) 라오디케(아내) 라오디케 3세[1](장녀) 폰토스의 라오디케[2](차녀) 미트리다테스 3세(아들) | |
생몰 년도 | 미상 ~ 미상 | |
재위 기간 | 기원전 250년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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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폰토스 왕국의 3대 군주.2. 생애
폰토스 왕국 2대 군주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의 아들이다. 기원전 250년 아버지가 죽자 왕위에 올랐다. 갈라티아인들은 아리오바르자네스 1세와 동맹을 맺고 있었지만, 아직 성인이 아니었던 그가 왕위에 오르자 동맹을 파기하고 폰토스로 쳐들어가 그 일대를 황폐화시켰다. 다행히 헤라클레아 시민들이 식량을 보내준 덕분에 폰토스 시민들이 굶주리는 일은 없었고, 그는 곧 반격을 가하여 갈라티아인들을 몰아냈다.기원전 245년, 그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군주 셀레우코스 2세의 누이인 라오디케와 결혼했고 프리기아를 지참금으로 받았다. 셀레우코스 2세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3대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3세와의 전쟁에서 폰토스의 원조를 받기 위해 누이를 그와 결혼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원전 240년 셀레우코스 2세의 동생 안티오코스 히에락스가 소아시아의 지배권을 회수하려는 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힘을 고갈시키기 위해 갈라티아와 함께 안티오코스 히에락스를 도왔다.
미트리다테스 2세는 기원전 239년 안키라 전투에서 히에락스-갈라티아와 연합하여 셀레우코스 2세가 직접 지휘하는 20,000명의 적군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고, 셀레우코스 2세는 목숨만 간신히 건져 달아났다. 기원전 227년 로도스 섬이 지진으로 인해 막심한 피해를 입자 원조해줬으며, 기원전 222년 딸 라오디케 3세와 안티오코스 3세의 결혼을 주선했다. 그러는 한편 셀레우코스 왕조의 소아시아 영토를 관장하는 사트라프 아카이오스에게도 딸 라오디케를 시집보냈다. 기원전 220년 로도스의 협력을 받으며 시노페를 포위 공격했으나 함락에 실패했다.
언제 사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지만, 대략 기원전 210년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 아들 미트리다테스 3세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