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4 12:26:40

밀라노 콜렉션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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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밀라노콜렉션A.T.은퇴.jpg
Milano Collection A.T.
파일:milano-collection-at.png
NJPW 메인 해설자
STARDOM 스페셜 코치
<colcolor=#f8d010><colbgcolor=#000> 링네임 밀라노 콜렉션 A.T.[1]
(ミラノコレクションA.T.)
본명 [ruby(澤藤 章仁, ruby=さわふじ あきひと)][2]
사와후지 아키히토
생년월일 1976. 8. 27 ([age(1976-08-27)]세)
신장 183cm
체중 80kg
혈액형 O형
출생지
[[일본|]][[틀:국기|]][[틀:국기|]] 이와테현 모리오카시[3]
학력 이와테현모리오카제4고교 (졸업)
히로사키대학 (중퇴)[4]
유형 루차 리브레(쟈베) + 테크니션
시그니쳐 무브 메듈라 오블론가타 커터[5]
슈퍼킥, 저공 슈퍼킥[6]
스페이스 롤링 엘보[7]
탑 로프 커터
보우 앤 애로우[8]
STF[9]
엠포리오 아르마니슈
_파라다이스 락_[10]
아르마니슈 익스체인지[11]
각종 서브미션 및 쟈베[12]
{{{#!folding [이탈리안 스트레치 시리즈]
이탈리안 스트레치 No.8[13]
이탈리안 스트레치 No.14
_이탈리안 스트레치 No.32_[14] }}}
피니쉬 무브 _파라다이스 락_
A-dise 락[15]
A.T. 락[16]
IR
IR II[17]
엠포리오 아르마니슈[18]
비또리아 미라네제[19]
별명 이탈리아의 세련남
(イタリアの[ruby(伊達, ruby=だ て)][ruby(男, ruby=おとこ)])
1000개의 쟈베를 가진 남자
([ruby(1000, ruby=せん)]のジャベを[ruby(持, ruby=も)]つ[ruby(男, ruby=おとこ)])
테마곡 MILANO FEVER (2002 - 2010.2)[20]
데뷔 2000년 5월 3일 (23세)
멕시코 멕시코주 나우칼판 데 후아레스
아리나 나우칼판
T2P[21]
vs 칸다 야스시
은퇴 (마지막 경기) 2009년 9월 13일 (33세)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신일본 Circuit2009
NEW JAPAN GENERATION 2일차
vs 컴플리트 플레이어즈
(자도&게도 & 미노루)
(w/고토 히로오키 & 타이치)

(은퇴식) 2010년 2월 14일 (33세, 커리어 9년)
도쿄도 스미다구 료고쿠 국기관
신일본 Circuit2010
NEW JAPAN ISM 최종일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커리어
2.1. 초창기2.2. T2P ~ 드래곤 게이트2.3. 미국 생활과 프리랜서2.4. 신일본 프로레슬링2.5. 밀라노 극장, 종막을 맞이하다2.6. 이탈리아 혁명, 제 2장으로 나아가다
3. 여담4. 둘러보기

1. 개요

드래곤 게이트.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 주니어 헤비급 프로레슬러, 현 신일본 프로레슬링 메인 해설자 겸 월드 원더 링 스타덤 코치 겸 정체사.

시원시원하게 뻗은 팔다리와 모델같은 체형, 그리고 비주얼을 뒷받침해주는 실력으로 드래곤 게이트와 신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린 선수였으며, 은퇴 이후에는 시들지 않는 입담으로 일본 최대 단체인 신일본의 메인 해설자를 맡고 있는 해설자 겸 신일본과 모기업이 같은 월드 원더 링 스타덤의 신인 담당 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2. 커리어

2.1. 초창기

초등학생 4학년 시절 초슈 리키 vs 점보 츠루타전을 보고 프로레슬러를 목표로 하게 된 밀라노 콜렉션 A.T.는, 이와테현립 모리오카제4고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께 프로레슬러의 꿈을 반대당한데다 진학상담 때 담당 선생이 밀라노를 무시하자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공부하여 국립 대학인 히로사키대학으로 진학했다.

히로사키대학에서 삼보부에 잠시 들어갔지만 프로레슬러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못 한데다 4년을 의미없이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1년 후인 1996년에 대학을 자퇴하고[22] 도쿄로 상경하여 애니멀 하마구치 짐에 입성했다. 당연히 의절당한 집에서 생활비를 보내줄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극도로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1997년에 FMW에 입문하는데 성공했으나, 가혹한 상하관계를 못 견디고 3달 만에 FMW에서 나오고 말았다.

이 일로 프로레슬러의 꿈까지 접은 밀라노는 부모님께 도게자까지 해서 겨우 용서를 받고 고향 모리오카시로 돌아가 직장인이 되기로 했으나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다시 도쿄의 기업에 취직하며 상경을 선택했고, 화술혜주회와 타카다 노부히코의 타카다 도장을 다니면서 몸도 다시 단련했다.

하지만 역시나 밀라노의 마음 속에 프로레슬러에 대한 미련은 강렬했는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단체의 영상을 봤을 때 링 위에서 춤추는 프로레슬러[23]의 모습을 보고 링타이츠를 사는 등 미련을 접지는 못했고, 그 단체에서 자신보다 체격이 작은 선수들이 활약하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결국 그 단체가 코베시에서 도장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밀라노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다짜고짜 코베로 떠나 토류몬(闘龍門)에 6기생으로 입단하는데 성공했고,[24] 이 일로 부모님께 또다시 의절을 당해서 지극히 빈곤해진 밀라노를 단체장 울티모 드래곤과 친분이 있던 라쿠고가 산유테이가 4개월 가량 거둬먹이는 등의 고초를 겪으면서도 반년 동안 수행을 거쳐 2000년 5월 13일, 드디어 멕시코 현지에서 토류몬의 멕시코 방면 단체인 토류몬(闘龍門) 2000 프로젝트(이하 T2P)의 일원으로서 칸다 야스시를 상대로 데뷔하는 데 성공했다.

2.2. T2P ~ 드래곤 게이트

데뷔 때부터 '밀라노 콜렉션 A.T.'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밀라노는 직후 요시노 마사토, STEVIE"brother"TSUJIMOTO(="brother"YASSHI)와 함께 악역 유닛을 결성했고, 밀라노는 이후 신인급의 리그전인 제 4회 영 드래곤 배에 출전하여 12월 9일 사이토 료에게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거두었다.

파일:T2P일본상륙.jpg
2001년 11월 13일 T2P가 일본에 역상륙했을 때 다시 사이토 료와 함께 메인 이벤트를 장식한 밀라노는 사이토를 상대로 3판 2선승제 매치를 치뤄 2승을 파라다이스 락과 A.T.락으로 먼저 챙기며 승리하며 차세대의 에이스로 기대받게 되는 한편, 이후에 토류몬 JAPAN의 힐 유닛인 CRAZY-MAX의 멤버 빅 후지의 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CRAZY-MAX[25]와 항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2002년 2월 17일에는 아레나 나우칼판에서 치러진 토류몬 MEXICO 흥행에서 '실력 조사(査定) 리그전'에 참가하여 첫 경기에서 세컨드 도이에게 승리했고, 27일에는 미시마 라이무와의 경기에서 51초만에 파라다이스 락으로 번개같은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3월 3일, 디퍼 아리아케 흥행에서 개최된 T2P 흥행에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콘도 슈지를, 같은 날 열린 결승에서 YOSSINO에게 5분 35초만에 A.T. 락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 리그전의 우승 상품으로 걸려 있었던 신설된 인터내셔널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편 CRAZY-MAX와의 대항전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고, 이에 맞서기 위해 밀라노는 이날 경기 종료 이후 기존 동료들에 이어 자신과 맞붙었던 토류몬 JAPAN 본대의 콘도 슈지와 야기 타카유키까지 끌어들여 유닛 '이탈리안 커넥션(イタリアン・コネクション)'을 결성하여 밀라노가 리더를 맡는 한편, 소속 멤버들도 모두 이탈리아인이라는 컨셉으로 링네임과 출신지를 전부 바꿨다.[26] 이 때부터 잘 빠진 몸과 밀라노 특유의 투명견 미켈레와 댄서들과 함께 입장하는 화려한 입장 신을 선보이며 밀라노 콜렉션 A.T.의 캐릭터가 완성됐다. 이후엔 벨리넷타 복서가 이탈리안 커넥션의 동료로 합류하여 세를 더욱 늘렸다.

6월 6일에 T2P의 코라쿠엔 홀 대회에서 빅 후지를 상대로 첫 방어전을 치러 3전 2선승에서 1경기를 1분 45초만에 파라다이스 락으로 승리, 2경기를 11분 35초만에 A.T.락으로 승리하며 방어에 성공했다. 9월 8일 아리아케 콜로세움 대회에서는 YASSHINI[27], YOSSINO와 함께 CRAZY-MAX(CIMA & SUWA & 빅 후지)의 UWA 세계 6인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하여 15분 8초만에 A.T.락으로 CIMA의 항복을 받아내고 쾌승을 거두며 첫 태그 타이틀도 획득했다.

하지만 11월 27일, 다시 UWA 세계 6인 태그팀 벨트의 도전자로 나온 CRAZY-MAX[28]를 상대했다가 14분만에 YASSHINI가 SUWA의 FFF에 핀을 내주며 첫 방어전에 실패하고 만 데다 2002년 12월 26일에는 밀라노 본인이 CRAZY-MAX의 대장 CIMA와 인터내셔널 라이트 헤비급 벨트 2번째 방어전을 치렀다가 11분 48초만에 CIMA의 슈바인을 얻어맞고 패배하며 내줬으며,[29] 토류몬 JAPAN과의 대항전 최종전에서 CIMA에게 또다시 패배한 밀라노는 결국 2003년 1월 23일 토류몬 JAPAN 흥행에서
"저희, 사실...전원 일본인입니다. 그런고로 저희는 일본인이지만, 어디까지나 이탈리아인으로서 활동해 나가겠습니다. 여러분의 넓은 마음으로, 이탈리아인으로 봐주십시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라고 스스로 일본인임을 고백하는 일명 '1.23 일본인 선언'을 하게 된다. 그리고 4일 후인 1월 27일, T2P가 공식 해산을 맞이하자 정식으로 토류몬 JAPAN에 합류한다.[30]

3월 21일에 시작한 토류몬 JAPAN의 리그전인 'EL NUMERO UNO'[31]에 처음 참가하여 A조에 배속되었으며, 세컨드 도이, 돈 후지이, 아라이 켄이치로에게 A.T. 락으로, 호리구치 겐키에게 파라다이스 락으로 승리를 거뒀으나 매그넘TOKYO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매그넘TOKYO와 공동 1등이 되었다. 그대로 8강전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모치즈키 마사아키에게 8분 29초만에 링아웃 패로 승리를 내주며 광탈했다.
파일:2차이탈리아커넥션.jpg
왼쪽부터 밀라노, YOSSINO, 앤서니・W・모리
이때쯤 이탈리아 커넥션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탈리아 커넥션이 점점 선역화되자 돗티 슈지(=콘돗티 슈지)와 YASSHINI가 이에 반발해 밀라노를 배반하고 오오와시 토오루의 떨거지 집단(はぐれ軍団)[32]으로 들어갔으며, 이윽고 망설이던 벨리넷타 복서가 떨거지 군단으로 들어가고 페스카토레 야기[33]까지 탈퇴하면서 YOSSINO와 자신만 남게 된 것이다. 이 둘은 앤서니・W・모리를 멤버로 받아들여 다시 활동을 개시했다.

10월 5일부터 시작된 토류몬 JAPAN의 태그 리그전인 Ray de parejas에는 매그넘TOKYO와 함께 참가했으며, 4승 2패 1무로 마무리했다. 12월 16일에는 매그넘TOKYO의 ULTIMO DRAGON GYM(UDG) 챔피언 벨트에 도전했으나 25분 50초의 장기전 끝에 매그넘의 AV스타 프레스를 맞고 패배했다.

2004년 3월에 EL NUMERO UNO에 B조로 다시 참전한 밀라노였으나, 이번에는 1승 1패 3무 조 5위로 예선에서 광탈했다. 6월 27일에는 CIMA가 가지고 있던 UDG 챔피언 벨트 도전자 결정 토너먼트전에 출전했으나 같은 이탈리아 커넥션의 YOSSINO에게 7분만에 리버스 피겨 포 레그락에 당하며 패배했다.

2004년 7월 5일, 오쿠무라 타카시 사장과 울티모 드래곤이 출석한 기자회견에서 토류몬 JAPAN이 울티모 드래곤의 토류몬에서 독립하고 단체명을 드래곤 게이트'로 변경하는 것이 발표되었으며, 밀라노도 여기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타코네 vs 악관일색 (경기시작 7:32부터)
파일:초대오픈더트라이앵글.jpg
10월 3일에는 최초의 오픈 더 트라이앵글 게이트 챔피언 결정 매치에 이탈리아 커넥션의 동료 YOSSINO와 안소니・W・모리와 함께 출전했고, 승승장구를 이어온 끝에 결승에 진출했다. 11월 7일 삿포로시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커넥션을 배반한 악관일색의 콘도 슈지와 YASSHI, 그리고 스가와라 타쿠야와 맞붙어 17분 26초만에 안소니가 엘레강트 매직을 스가와라에게 작렬하며 승리, 최초의 오픈 더 트라이앵글 게이트 챔피언이 되었다. 12월 16일 국립 요요기 경기장 제 2체육관에서의 THE GATE OF LEGEND 흥행에서 다시 악관일색과 1차 방어전을 치러, 이번엔 밀라노가 15분만에 이탈리안 레볼루션(IR)을 스가와라에게 선보이며 방어에 성공했다.[34]

2005년 1월 9일 나고야 국제 회의장에서 열린 2005 PRIMAL GATE에서 요코스카 스스무 & K-ness. & 도이 나루키를 상대로 2차 방어전을 치러 YOSSINO가 도이를 어나더 스페이스로 핀을 따내며 2차 방어에 성공했고, 기세를 이어 모치즈키 마사아키의 오픈 더 드림 게이트 챔피언십 벨트 차기 도전자 결정전에 출전하여 사이토 료와 경기를 치렀으나 20분만에 사이토의 드래곤 수플렉스에 핀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엔 슈페르 시사와도 행동을 같이 했으나 2월 18일 경기를 마지막으로 부상을 당해 오픈 더 트라이앵글 게이트 챔피언을 반납할 수 밖에 없었고, 밀라노도 스승 울티모 드래곤과 방향성의 차이가 생기고 말아서 결국 4월을 마지막으로 프리 선언을 한 후 드래곤 게이트를 퇴단했다.[35]

2.3. 미국 생활과 프리랜서

밀라노는 퇴단 후 곧바로 미국 텍사스주에 있던 숀 마이클스의 레슬링 스쿨을 찾아가 연습생들과 함께 레슬링을 다시 수련했고, 2006년 4월까지 1년 3개월 동안 미국 내 인디 단체들을 돌며 지냈다.[36]

파일:콜트카바나&밀라노.jpg
2005년 9월부터는 ROH에서 사모아 조, 클라우디오 카스타뇰리와 대전했고, 12월 3일에는 콜트 카바나와 함께 토니 마말룩 & 살 리나우로가 가지고 있던 ROH 월드 태그팀 챔피언십에 도전했으나 둘의 합동 DDT에 밀라노가 핀을 내주고 말았다. 아직 미국에 있었던 2006년 2월 7일, 코라쿠엔 홀에서 열린 Dragondoor의 RETURN OF THE HEXAGON~T2P 원 나잇 스탠드~ 흥행에도 참여해서 메인 이벤트에서 하루만 벨리넷타 복서로 돌아간 타카기 슈고, IBUSHINO와 함께 드래곤 게이트에서 짤린 후 Dragondoor에 가있던 악관일색의 멤버들(콘도 & YASSHI & 스가와라)과 대결해서 IR II로 YASSHI를 잡고 승리를 하며 흥행을 마무리했다.

파일:밀라노&무토.jpg
밀라노는 4월에 미국에서 귀국했고, 4월 20일에는 국립 요요기 경기장 제 2체육관에서 열린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2006 챔피언 카니발 최종전에 참가하여 무토 케이지와 함께 Dragondoo의 후신 단체인 ElDorado 소속이 되어있던 TARU와 YASSHI를 상대했다.

7월 23일에는 처음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 주최 개그성 흥행인 레슬랜드에 참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8월 12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린 G1 클라이맥스 2006 준결승전 흥행에 등장해서 이날 복귀한 쵸노 마사히로와 함께 태그팀을 맺고 초슈 리키타나하시 히로시를 상대하기도 했으며, 10월 9일 4대 타이거 마스크와 대립이 생겨 11월 6일에는 타이거가 가지고 있던 NWA 월드 주니어 챔피언십 벨트에 도전했으나 19분만에 타이거 수플렉스를 맞고 패배했다.

11월 22일부터는 ElDorado의 태그 리그전인 TREASURE HUNTERS 태그 토너먼트에 이부시 코타와 함께 참가해서 결승까지 진출, 12월 27일 신주쿠 FACE 대회에서 콘도 슈지 & 딕 토고와 대결했으나 11분 53초만에 이부시가 콘도의 킹콩 래리어트를 견디지 못하고 핀을 내줘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4. 신일본 프로레슬링

2.5. 밀라노 극장, 종막을 맞이하다

결국 2010년 1월 18일, 신일본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밀라노 콜렉션 A.T.는 양 눈 하직근 및 하사근 마비[37]로 인한 은퇴를 선언했다.

외안근 마비는 2005년 미국 생활 중에 발병한 마비 증세에서 시작되어 꾸준히 밀라노를 괴롭혔던 증상으로, 밀라노가 발병 당시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후방 낙법을 한 다음 갑자기 머릿속이 뒤집히는 감각이 있었고, 눈을 뜨니까 하늘과 땅이 반대로 보였다'라고 말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다.

2~3일 정도 안정을 취하고 증상이 호전되어 선수 생활을 계속해왔으나 2009년 초 증세가 재발하고 말았고, 눈의 촛점이 맞지 않는 증세로 인해 8월 쯤에는 로프가 8개 정도로 보여 로프 워크가 제대로 안 될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어 경기는 고사하고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넘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 등 일상 생활에까지 지장이 갈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된 9월 13일의 컴플리트 파이터즈와 경기 후에는 "이젠 안 되겠네"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어 은퇴를 생각하게 되었고,[38] 다행히도 수술로 증상을 개선하는 것은 가능하여 수술을 진행했으나 수술을 하고 눈이 나아도 낙법을 하거나 머리에 타격을 입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은 후 은퇴를 결심하고 말았다.

밀라노는 기자회견에서 현역 시절 가장 즐거웠던 때는 1년 3개월 간의 미국 생활을 꼽고, 가장 인상에 남았던 시합으로 2007년 BOSJ 결승전의 vs 이노우에 와타루 전[39]과 2007년 G1 클라이맥스 첫 경기인 야노 토루 전을 꼽았다.

1월 30일에 눈 재수술이 예정되어 있어, 밀라노의 눈 상태 상 엑시비젼 매치 없이 은퇴식만 열리게 되었으며 은퇴식은 2월 14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리는 Circuit2010 NEW JAPAN ISM 최종일로 정해졌다.

2.6. 이탈리아 혁명, 제 2장으로 나아가다

파일:8594552416.jpg
은퇴식 [40]

3. 여담

  • 취미는 포커미국 여행. 고등학생 때는 이어폰으로 프로레슬러 테마곡을 들으면서 자기도 따라 부를 정도로 중증 프로레슬링 매니아였다.
  • 미치노쿠 프로레슬링의 가면 레슬러 겸 농업인 보소보이 라이토(房総ボーイ雷斗)와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절친으로 보소보이의 집에 설치되어있던 트램폴린으로 함께 프로레슬링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 얇지만 탄탄하면서도 92cm로 몸통보다도 긴 시원하게 쭉쭉 뻗은 다리와 프로레슬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모델같은 체형으로 여성 인기가 굉장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인기가 많았는지 두 번 고백받았는데, 두번 다 "프로레슬링이 더 좋다"라는 이유로 차는 바람에 교내에 게이라는 설까지 퍼졌다고...
  • 부모님에게 프로레슬러가 되는 것을 손에 꼽힐 정도로 심하게 반대받은 케이스로, 부모님의 반대로 대학에 진학했으나 1년만에 멋대로 중퇴했다가 부모님에게 첫 번째 의절을 당했다. 이후 FMW에서 연습생 생활을 못 버텨 고향에 돌아오기 전에 부모님께 도게자까지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토류몬에 들어갈 때 다시 의절을 당했다. 2003년 밀라노가 일명 '1.23 일본인 선언'을 한 이후 아들이 정말로 프로레슬러가 되어 있는 것에 놀란 부모님이 프로레슬링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의절이 풀렸다고 한다.
  • 잠시 대학 생활을 할 때 대학행을 원했던 것은 아니였으나 신입생 환영회는 기대하고 있었는데, 밀라노가 고른 삼보부는 남자만 6명이 있는 소규모에 여자 한 명도 없는 곳이였어서 전혀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한 이후 부모님이 이혼했고,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되면서 성을 테루이([ruby(照井, ruby=てる い)])에서 사와후지([ruby(澤藤, ruby=さわふじ)])로 변경했다.
  • 밀라노 출신의 이탈리아인 기믹을 선보이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관련 없는 순수 일본인으로[41] 선수 시절에 아예 이탈리아에 간 적조차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이탈리아인 레슬러인 프란시스코 아키라가 신일본에 등장하자, 다른 해설진들이 아키라가 마이크웤으로 말하는 이탈리아어를 번역해달라고 한다던가 신일본 최초의 이탈리아 레슬러는 자신이라는 등 농담 소재로 삼고 있다.
  • 프로레슬링을 사랑하던 라쿠고가인 6대 산유테이 엔라쿠[42]에게는 신세를 많이 졌다. 데뷔 직후 가난했을 때[43] 산유테이가 4개월 정도 밀라노를 아예 거둬먹였고, 밀라노가 드래곤 게이트를 퇴단할 때 드래곤 게이트의 창시자이자 밀라노의 스승이었던 울티모 드래곤과 사이가 멀어지자 산유테이가 사이를 중개해 주었다.
  • 데뷔 이전에 울티모 드래곤에게 '친포리오 펠라치노'와 '친포리오 샤브랴노'라는 학생 프로레슬링[44]에서나 쓸 법한 링네임을 제안받았고[45] 당연히 미친듯이 반대했다고 한다. 울티모 드래곤 왈, "얕보이지 마라!"라는 의미로 지어준 링네임이었다고... 본인의 평생의 링네임이 된 밀라노 콜렉션 A.T.는 밀라노 본인이 직접 생각한 링네임이라고 한다.
  • 현역 시절에는 밀라노 왈 '모델체형의 수컷 애견'인 투명견 미켈레와 함께 입장한다는 설정이 있어, 등장 때 빳빳한 개목줄과 함께 입장했다. 물론 팬들 입장에서는 그냥 개목줄을 들고 입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공부에도 열심인 성격으로, 프로레슬러의 꿈을 부모님에게 격렬히 반대당하자 별로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음에도 공부로 국립대인 히로사키대학을 뚫었으며, 은퇴를 결심한 후 은퇴식 이전인 2009년 12월에 시야도 부정확한 상태에서 이미 합격률 15% 언저리의 택지건물거래 주임자(한국의 공인중개사와 유사)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드래곤 게이트 시절부터 다져온 입담과 공부를 즐기는 성격이 도움이 되어 신일본을 대표하는 해설자 중 한 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 LIJ 시절의 EVIL의 굿즈를 들고 해설에 참석할 정도로 팬이었으나 EVIL의 충격적인 나이토 배신 후 턴힐에 눈물을 흘리더니... EVIL의 난폭함에 질린듯, 이제는 이빌이 싫다고 한다. 해설 스타일이 선역 중심이고 악역을 싫어하는지라 불릿 클럽이 끼인 경기에서 반칙 행위가 나올 때마다 특유의 '최악이다(最~悪だ)'라는 멘트를 자주 쓴다.
  • 밀라노가 또 좋아하는 레슬러로는 체이스 오웬스가 있다. 체이스가 활약할 때 말하는 "이것이 (체이스) 오웬스라는 남자입니다"랑, 체이스가 공격을 성공할 때마다 "오웬~스!"라는 외침은 밀라노 해설의 상징이 되었다.
  • DDT 레슬링 참전 시절 게이 컨셉 레슬러인 남색 디노와 태그를 짰다가 습격당해 밀라노 콜렉션 GAY. T.가 됐던 적이 있다.

4. 둘러보기

신일본 암흑사천왕
혼마 토모아키 밀라노 콜렉션 A.T. 이시이 토모히로 타이치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우승자
2006 2007 2008
미노루 밀라노 콜렉션 A.T. 이노우에 와타루
파일:Dg2019logo2.png 역대 레이 데 파레하스 우승자팀
2003 2004 2007,2008
떨거지 집단(はぐれ軍団)
돗티 슈지 & "brother" YASSHI
이탈리안 커넥션
밀라노 콜렉션 A.T. & 앤서니・W・모리 & 요시노 마사토
머슬 아웃로즈/WORLD-1
도이 나루키 & 요시노 마사토


[1] 데뷔 직후 이탈리안 커넥션을 결성했을 때 부터 사용하던 링네임으로 밀라노 본인이 직접 고안한 링네임이다. 뒷부분 A.T.는 본명의 영문 표기인 'Akihito Terui'에서 앞자만 따온 것. 이후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머니의 성을 따르며 영문 이니셜은 A.S.로 바뀌었지만 링네임을 변경하지는 않았다.[2] 구 본명은 테루이 아키히토([ruby(照井 章仁, ruby=てる い あきひと)])이었으나, 신일본으로 이적한 이후 부모님이 이혼하며 어머니의 원래 성을 따르게 되면서 성이 바뀌었다. 이탈리안 커넥션 시절에는 기믹상 이탈리아 혼혈인 아키히토 테루이노(アキヒト・テルイーノ)가 본명이라 주장했다.[3] 이탈리안 커넥션 시절에는 I(이탈리아)현 M(밀라노)시라고 주장했다.[4] 은퇴 후의 인터뷰에서 1년 다닌 후 그만두고 애니멀 하마구치 짐으로 갔다고 했으며, 2019년 트위터에서 중퇴라고 확실히 언급한 바 있다.[5] 엔즈이기리. '메듈라 오블론가타'는 연수의 학명이다. 즉 '엔즈이기리(연수베기)'를 영문화하여 고상하게 풀어쓴 것.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고 사용이 가능했다.[6] 저공식은 상대를 놉혀놓고 찼는데 특유의 양손을 붕붕 돌리는 모션을 취한 후 찼다. 타이치와 태그팀 시절엔 '슈퍼 스크랩 킥'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했다.[7] 핸드스프링 백 엘보. 무토 케이지의 기술로 유명한 기술로 밀라노는 핸드스프링 시 한 손으로 핸드스프링을 해서 오리지널리티를 더했다.[8] 루차 리브레의 고전 기술 중 하나이지만 은근히 사용자가 적은 기술이다.[9] 스텝 오버 토 홀드 + 풀 넬슨. STF식으로 다리를 엮은 후 풀 넬슨으로 상대의 어깨와 뒷목을 압박하는 STF의 응용기이다. 원래 STF는 'Step over Toe hold with Facelock'의 약자이지만 밀라노의 경우 페이스락을 안 걸기 때문에 마지막이 'Facelock'이 아닌 Fashion, 또는 Ferragamo의 약자라고 주장했다. 일반 STF도 간혹 사용했다.[10] 누워있는 상대의 팔과 다리를 얽은 다음 뒤집은 후 상대 위에 올라타서 삐져나온 한 다리 발끝을 잡아당겨 발목에도 타격을 주는 밀라노 콜렉션의 오리지널 쟈베. 초창기에는 피니셔로도 썼다. 상대를 로프에 묶어버리는 로프식으로도 자주 썼는데, 이 경우에는 레그 드랍이나 저공 드랍킥 등으로 상대를 공략했다. 이후 신일본으로 온 SANADA가 이 기술을 사용하는데 일반식 파라다이스 록에서도 상대를 잡고 서브미션으로 연결하지 않고 호응을 유도한 후 로우 드롭킥으로 푸는 로프 파라다이스 추가타 방식으로 쓰고 있다. 역시나 요시노 마사토의 해설본이 있다.[11] 스프링보드 코크스크류 센턴. 엠포리오 아르마니슈같이 부유감 있게 날아오다가 상대에게 닿기 직전에 몸을 비틀어서 센톤으로 끝마치는 게 특징이었다.[12] 암바, 일반 치킨윙 암락, 피겨 포 레그락 등 매우 다양한 서브미션들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갔다.[13] 만자굳히기 + 치킨 윙 암락. 상대의 정면으로 달려간 후 상대의 오른팔을 잡고 빙글 돌아 상대의 왼다리에 자신의 왼다리를 걸고, 목 뒤에 오른다리를 걸며 상대의 몸을 계단 타고 올라가듯 재빨리 올라가서 자신의 왼손까지 더해 상대 오른팔을 꺾는다. 요시노 마사토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시범을 보인 바가 있다.[14] 상대의 두 팔을 쭉 뻗은 상태에서 자신의 양 다리를 교차해서 엮은 후 자신은 뒤로 누워 자신의 체중으로 상대의 양 팔꿈치 관절을 뽑아당기는 밀라노의 오리지널 쟈베. 보통 양 발로 상대의 목 양쪽 경동맥까지 압박하는 버라이어티를 넣어서 사용했다. 신일본에 참전 중인 DOUKI가 이 기술을 물려받아 사용 중이다.[15] 상대의 뒤에서 상대를 양반다리로 만들고 상대 다리 사이에 상대의 양 팔을 집어넣어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한 후, 상대를 뒤에서 끌어안고 리어 네이키드 초크를 걸면서 뒤로 넘어간다. 오른 다리로는 양반다리로 만든 상대의 다리를 봉쇄한다.[16] 변형 치킨 윙 암락. 상대를 OTL 자세로 만든 후 상대의 뒷목에 자신의 왼다리를 건 후 상대의 왼팔에 치킨 윙 암락을 걸으면서 앞으로 체중을 실어 상대를 엎어 목과 팔을 동시에 압박한다. 요시노 마사토의 해설 버전이 있다.[17] 더블 해머락 인버티드 백 투 밸리 매트 슬램. 상대의 머리를 고간에 끼운 뒤 상대의 양 팔을 뒤로 고정해 파일드라이버 형태로 들었다가 바닥에 떨어뜨리는 변형 페이스버스터. 이름은 Italian Revolution II의 축약형으로, 엘 판타즈모가 C(캐내디언)R II라는 이름으로 동형의 기술을 피니셔로 사용하고 있다.[18] 스프링보드 문설트. 빠르게 상대를 덮치는 다른 사용자들과 달리, 공중에 오래 떠있는 듯한 부유감이 특징이었다.[19] 브리징 레그 훅 백드롭 홀드. 백드롭 자세에서 자신의 왼팔을 상대의 오른 다리 뒷부분에 끼고 자신의 오른팔을 상대 오른다리 뒤쪽의 왼팔과 맞잡아 클러치 형태를 만든 상태에서 뒤로 넘기는 백드롭 홀드. 원래는 백드롭 클러치 홀드 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었으나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14 준결승 전 이후 이 기술을 꺼내면 반드시 이긴다고 이탈리아어로 '밀라노인의 승리'라는 뜻인 이 기술명을 붙였다.[20] 멕시코 출신 기타리스트 카를로스 산타나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블루스 밴드 산타나의 기타 명곡 Europa (Earth's Cry Heaven's Smile)를 댄스곡으로 리믹스한 곡.[21] 토류몬 2000 프로젝트. 토류몬 JAPAN과 별개로, 멕시코를 거점으로 일본인 루차도르를 양성하던 일종의 단체 내의 단체. 2000년에 탄생하여 2003년 1월에 해산되었다.[22] 이 때 대학을 멋대로 자퇴한 일 때문에 부모님에게 의절까지 당했다고 한다.[23] 토류몬의 1대 에이스 매그넘 TOKYO로 추정된다.[24] 동기로는 후쿠마사 쥰야, 무라카미 타쿠야, 오오야나기 킨야(= 오오야나기 이등병),TARU 시트가 있으며 밀라노가 가장 성공했다.[25] 당시 멤버는 CIMA, SUWA, 빅 후지, TARU.[26] 멤버 및 주장한 출신지는 각각 밀라노 출신 밀라노 콜렉션 A.T., 피렌체 출신 YOSSINO, 제노바 출신 "brother"YASSINI(=STEVIE"brother"TSUJIMOTO, 현 "brother"YASSHI), 로마 출신 콘돗티 슈지, 나폴리 출신 페스카토레 야기(=야기 타카유키)였다.[27] "brother"YASSHINI가 링네임을 줄였다.[28] 멤버는 동일했으나 빅 후지가 링네임을 '돈 후지이'로 변경했다.[29] 이 벨트는 T2P의 해산으로 인해 1월 27일에 봉인되었다.[30] 밀라노와 의절 중이라 이 선언을 나중에 소문으로 전해 들은 밀라노의 부모님은 나름의 유명 선수가 된 밀라노 콜렉션 A.T.라는 프로레슬러의 정체가 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엄청 놀랐다고 한다. 결국 부모님은 프로레슬링을 이해하고 프로레슬러가 된 아들을 받아들였다.[31] 2004년까지 진행되었으며, A, B, C조로 나뉘어 각 조 1등과 2등, 그리고 '드래곤 스크램블'이라 불리우는 럼블 매치에서 2명을 뽑아 총 8명이 8강전에 진출하여 토너먼트를 치르는 방식이었다.[32] 나중에 악관일색의(悪冠一色,アーガンイーソー) 모태가 되었다. 멤버는 'brother'YASSHI, 콘도 슈지, 스가와라 타쿠야, 오오와시 토오루, 타카기 쇼고.[33] 야기는 얼마 후 레퍼리로 전향해서 2020년대까지 드래곤 게이트의 레퍼리로 활동하고 있다.[34] 이후 12월 31일, 악관일색 멤버들은 행실 불량을 이유로 12월 31일자로 드래곤 게이트에서 싹 다 잘리고 말았다.[35]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커넥션도 멤버가 각각 찢어지며 해산을 맞이했다. 이 때 울티모 드래곤과 사이가 틀어졌으나, 밀라노의 은인이자 울티모와 친분이 있는 라쿠고가 산유테이 라쿠타로의 중재로 나중에 봉합되었다.[36] 밀라노가 꼽은 프로레슬러 인생 중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었던 한편, 밀라노를 은퇴시킨 외안근 마비 증세가 이 때부터 시작됐다.[37] 눈 근처의 안면 근육인 외안근의 일부이다.[38] 마지막 기자 회견에서 말하길, 밀라노의 왼쪽에 앉아 있었던 스가바야시 나오키 사장이 두 명으로 나뉘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39] 이 경기에서 승리해서 대회의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40] 2010년 2월 14일[41] 오히려 멕시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42] 산유테이 본인부터가 '미스터 프로레스' 텐류 겐이치로의 동창이었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창설자이자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세계의 거인' 자이언트 바바, 그리고 밀라노의 스승이자 드래곤 게이트의 창설자인 울티모 드래곤과도 친분이 있었다.[43] 밀라노는 토류몬 입문 때 부모님에게 의절을 당해 집에서 일절 지원을 못 받았기 때문에 연습생 시절 지독하게 가난했다.[44] 학생 프로레슬링에서 사용하는 링네임은 전통적으로 개그성이거나 음담패설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천하의 타나하시 히로시도 학생 프로레슬링 시절 링네임은 '타나 더 인서트'였다.[45] 그 와중에 이름이 어째서인지 이탈리아어같아 보이는 것은 밀라노의 체형이 이탈리아의 모델 같다는 생각을 한 울티모가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어감으로 링네임을 지어주려고 한 것이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