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21:44:47

숀 마이클스

<colbgcolor=#000> WWE 인재 개발 크리에이티브 부문 수석 부사장
숀 마이클스
Shawn Michaels
파일:HBKSM.jpg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colbgcolor=#ffffff,#2d2f34> Michael Shawn Hickenbottom[1]
(마이클 숀 히켄바텀)
별칭 The Heartbreak Kid[2]
Mr. WrestleMania
Sexy Boy
The Showstopper
The Icon
The Main Event
The Best of the Best
The Headliner
The One and The Only
출생 1965년 7월 22일 ([age(1965-07-22)]세)
미국 애리조나 주 챈들러
거주지 텍사스[3] 샌안토니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4] 104kg[5]
피니쉬 무브 스윗 친 뮤직[6]
스쿠프 파워슬램[7]
피스트 드롭[8]
티어드롭 수플렉스[9]
시그니처 무브 문설트
다이빙 엘보 드롭
피겨 포 레그락
유형 하이 플라이어 + 테크니션 + 올라운더
테마곡 Sexy Boy("Sensational" Sherri ver.)[10]
(1992~1993)
Sexy Boy(Shawn Micheals ver.)[11]
(1993~현재)

Break It Down(DX)
(1997~1998, 2006~2007, 2009~2010)
종교 개신교
주요 커리어 A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센트럴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1회
AWA 남부 태그팀 챔피언 2회
TASW 텍사스 태그팀 챔피언 2회
TASW 6인 태그팀 챔피언 1회
WWF 챔피언 3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3회
WWF/E 월드 태그팀 챔피언 5회[12]
WWE 태그팀 챔피언 1회[13]
WWF 유로피언 챔피언 1회
WWF 로얄럼블 2회 우승 (1995, 1996)[14]
TWA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소개2. 경력3. 경기력4. 평가5. VS 브렛 하트6. 여담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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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션

1. 소개

파일:RAW_1036_Photo_049.jpg
"The showstopper! The icon! The main event!"
"The Heartbreak Kid does not rest in peace. He can stay up ALL NIIIGHT!"[15]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現 WWE 인재 개발 크리에이티브 부문 수석 부사장.[16]

1984년에 프로레슬러로 데뷔해 1990년대 중반 브렛 하트와 함께 WWE에서 체구가 작은 테크니션 계열 메인 이벤터의 길을 닦은 인물로 꼽히며[17] 또한 WWE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로 꼽히는 애티튜드 시대를 열어젖힌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1998년에 등 부상으로 잠시 은퇴했으나 2002년에 다시 복귀해 2010년 레슬매니아 26에서 언더테이커와의 경기를 끝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하며 WWE 역사에 수많은 명경기들과 명장면들을 만들어내며 많은 매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레전드 프로레슬러다.

현역 은퇴 이후 WWE 방송에 꾸준히 출연하다가 2016년 WWE 퍼포먼스 센터의 트레이너로 합류해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이후 절친 트리플 H와 함께 NXT를 지휘하는 역할로 활동을 해오다 트리플 H가 잠시 심장 문제로 일선에서 물러났을때 NXT를 맡았었고 이후 트리플 H-스테파니 맥마흔 부부가 WWE의 실권을 거머쥔 이후론 WWE의 인재 개발 크리에이티브 수석 부사장 직책을 맡으며 NXT의 총책임자 및 WWE의 후진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경기력에 기복이 없고 흥행이 보장되어 있어서 그런지 WWE가 새로운 방식의 경기를 선보일 때에 자주 꺼내드는 카드이기도 하다. 그는 WWE의 첫 래더 매치의 주인공이었고[18], 헬 인 어 셀, 엘리미네이션 챔버 매치의 처음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2.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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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기력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인 링 퍼포머는 단연 숀이다. 내가 본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타고났다.
릭 플레어 - 인터뷰 중
링에서 벨이 울리는 순간, 그 어떤 선수도 숀만큼 '경기'란 것을 잘 해내는걸 난 여태 본 적이 없다.
스티브 오스틴 - 인터뷰 중
내 개인적인 WWF/WWE 역사상 최고의 선수 TOP 5를 뽑으라고? 그럼 난 우선 숀 마이클스부터 뽑겠어.
브렛 하트 - 개인 라이브 방송 중
숀과 만든 경기들은 '내 커리어 역사상 최고의 경기들'이라고 나 스스로 자부한다. 그는 링에서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아.
언더테이커 - 팟캐스트에서의 발언
나한테는 숀 마이클스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레슬러야. 난 그 사람처럼 경기해낼 수 있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크리스 제리코 - 개인 인터뷰

현역 시절 내내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인 링 퍼포머(In-Ring Performer) 중 한 명으로 뽑혀왔으며 대중들과 프로레슬링 팬덤은 물론, 프로레슬링 내부 관계자들과 선후배 레슬러들에게는 더더욱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고의 재능과 경기력을 두루 가진 올라운더 테크니션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전설적인 선수이다.

숀 마이클스의 프로레슬러로서의 경기력과 재능을 업계 역사상 단연 최고라고 공석에서 극찬한 동료 레슬러들만 하더라도 릭 플레어, 스티브 오스틴, 언더테이커, 트리플 H, 커트 앵글, 크리스 제리코, 부커 T, 심지어 사적으로 한때 극악한 관계였으면서 동 시대의 또 다른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테크니션 레슬러로서 정점이라 불리우는 브렛 하트까지 존재한다.##

브렛 하트는 화해 이전까지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피해자로서 가진 원한과 분노때문에 20년 가까이 숀 마이클스를 완전히 등졌었지만 그와 별개로 프로레슬러로서의 숀 마이클스의 경기력과 능력치에 대해선 '프로레슬러로서 완벽한 인물 중 한 명'이라며 항상 고평가해왔다. 브렛 하트가 완전하게 마음을 열고 숀과의 화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도 농담이 아니라 레슬매니아 25에서 숀과 언더테이커가 벌인 역사적인 명경기를 우연찮게 보고 브렛 하트 본인이 레슬러로서 너무나 깊은 감명을 받아 연락을 취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19] 레슬링 경기에 있어서 깐깐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브렛 하트가 "정말 오랜만에 보게된 프로레슬링 경기의 정석이자 여지껏 본 최고의 경기 중 하나"였다며 아주 큰 호평을 할 정도.

참고로 위에 언급된 레슬러들이 다들 한 시대를 풍미해본 프로레슬링계의 아이콘 내지 크든 작든 메인이벤터급들을 거친 거물들이면서 경기력이나 경기운영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들이란게 주목할 부분이다. 그 외에도 역사상 최고의 경기력과 퍼포먼스를 보여준 프로레슬러들에 대해 회고하면 존 시나, 랜디 오튼, CM 펑크, AJ 스타일스, 세스 롤린스같은 수많은 걸출한 후배들에게도 숀은 첫 번째로 꼽히는 경우도 상당하고 항상 세 손가락, 정말 못해도 다섯 손가락 이내에 뽑힌다.

여담으로 스티브 오스틴은 커트 앵글이 게스트로 나온 본인의 팟캐스트 회차에서 역사에 남을 명경기로 자주 언급되는 숀 마이클스 vs 커트 앵글의 레슬매니아 21 매치를 같이 리뷰하면서 수차례 숀이 카메라와 관객들을 향해 셀링하고 어필하는 부분들을 초 단위로 짚어가며 숀과 경기를 뛴 당사자였던 커트 앵글과 함께 다시 한번 숀의 경기력에 경악하고 감탄했다.

하이 플라이어라는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부터 탑 로프를 비롯한 높은 곳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몸놀림, 재능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잽싸고 재치있는 경기운영 방식과 여러 기술들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거기에 온갖 다양한 접수와 탁월한 리액션과 표현력 등 보는 사람을 경기에 쉽게 몰입시키고 흥분시키는 재주가 있었으며, 숀 본인이 WWE 기준으로 그다지 큰 덩치가 아니다보니[20] 오히려 관객들이 골리앗을 끝내 이기는 다윗의 심정처럼 공감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었다. 여기에 숀의 미칠듯한 쇼맨쉽과 마이크웍을 겸비한 카리스마도 한 몫했다.[21]

특히 부상 복귀 이후로는 정말 갖은 고초 끝에 끝내 경기를 뒤집어내는 언더독 유형의 경기 운영으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이것은 본인의 프로레슬러로선 작은 체구와 번개같은 일발역전기 스윗 친 뮤직, 그리고 보는 이들을 최고로 몰입시키는게 가능한 숀의 타고난 연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2000년대 숀의 경기를 보면 링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실감나는데, 고질적인 등 부상에 경기 도중의 고통까지 겹쳐졌기 때문이다. 숀 마이클스는 오랫동안 등 부상으로 고통 받았는데, 링 위에서도 고통을 참기 힘들어 심하게 찡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젊은 시절때보다도 더 큰 고통을 감수해내며 레슬링을 한 셈인데, 그런 의미에서 진정 철인이라 부를만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또한, 숀은 경기에서 상성을 잘 타지 않는다. 상대 선수가 어떤 체급이든, 어떤 경기 스타일의 선수이든, 베테랑이든 신인이든 간에 상관없이 그 누구와 붙어도 재미있는 경기, 명경기들을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이다. 프로레슬러들은 자기만의 경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그 실력도 선수들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에 자신과 맞지 않는 상대와 붙게 될 경우에는 평소 보여주던 실력보다 떨어지는 경기를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숀은 그런걸 따지지 않고 어느 상대와 붙더라도 그 상대에 자기 스타일을 잘 조화시켜 좋은 경기를 만들어 내며, 어느 상대와 붙더라도 그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몰입감을 선사하고 설득력을 줄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특정 기믹의 선수들에게는 유독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바로 80년대의 단조로운 기술패턴+힘을 쓰는 올드스쿨&파워하우스 유형의 선수와 대립할때는 경기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자신은 접수나 기술구사는 잘해도 상대와의 합이 안맞아 사고가 많이 났다.

사이코 시드와의 대립은 서로간의 사이도 원만했고, 괜찮은 대립이었으나 시드의 기술구사 실수로 1차 은퇴의 계기가 되었으며, 헐크 호건과의 대립은 서로간의 잡과 스토리텔링의 견해 차이로 사실상 사보타주에 가깝게 오버액션을 하면서 경기를 던졌고, 존 시나와의 레슬매니아 23 메인이벤트도 존 시나의 형편없는 경기력[22]으로 인해 별점은 높아도 팬들에게 좋은 소리는 못들었다. 데이브 바티스타와도 나름 에볼루션과 릭 플레어 은퇴 이후 대립으로 PPV에서 붙었지만, 좋은 평가는 못들었다.

여러모로 골든 에라와 그 시대를 회귀하는 원패턴 파워하우스 유형의 선수들과는 이상할 정도로 구설수가 많았다.

피니시 무브스윗 친 뮤직(Sweet Chin Music)이며[23] 보통 상대방을 다운시킨 뒤 시전한다. 다운된 상대가 몸을 일으키는 동안 링 바닥을 발로 차서 리듬을 타다가 점점 빠르게 발을 차며, 상대방이 몸을 일으켜 이쪽을 돌아보면 턱에 하이앵글 옆차기를 먹이는 것. 기술 자체는 단순하지만 킥이지만 준비동작이 임팩트가 있으며, 예측할 수 없이 기습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을 가져 인기가 많은 피니셔. 킥을 시전할 때 '짝!' 하고 나는 작렬음은 사실 자신의 허벅지를 치며 내는 소리.[24] 태그팀 락커스 시절부터 사용해왔지만 이때는 일반 기술로 타점이 안면이 아닌 가슴쪽이었다.[25]

그 외에 해머링, 찹, 크로스라인 등의 기본적인 기술들부터 시작해서 자주 사용하는 기술로는 탑 로프에서 시전되는 다이빙 엘보 드롭, 인버티드 아토믹 드롭, 티어드랍 수플렉스[26], 파일 드라이버, 락커 드랍, 러닝 엘보우, DDT, 루 테즈 프레스, 크로스 바디, 플라잉 포암, 바디 슬램 등이 있다. 또, 등부상으로 인해 1차 은퇴를 하기 전에 신체 능력이 전성기였을 시절에는 프랑켄 슈타이너, 헤드시저스 휩, 드롭킥, 엔지그리, 수어사이드 다이브 등의 날렵함과 유연함등이 필요한 기술들도 사용했다.

이 외에도 브렛 하트와 대립하던 시절엔 샤프슈터도 자주 썼고, 크리스 벤와 사후엔 크리플러 크로스 페이스도 간간히 사용하는가 하면 레슬매니아 같은 큰 무대에선 문설트[27]도 쓰는 편이었다. 그리고 이를 응용한 스프링보드 문설트도 가끔씩 사용했다. 여러모로 탄탄한 기본기와 응용력, 공중기, 서브미션까지 적재적소에 맞는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는 폭도 아주 넓은 편이었다.

또한 경기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는 쇼맨쉽 제스쳐 계열로는 로프 밖으로 떨어지는 척 하면서 로프를 잡고 다시 자기 몸을 끌어올려놓는 스킨 더 캣[28]과 크게 당하거나 지쳐서 완전히 쓰러진 상황에서 극적으로 훅 일어나는 핸드 스프링 등의 기술은 숀의 경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이기도 하다.

거기에 브렛 하트가 말하기를 굉장히 안전하게 경기를 한다고 한다.[29] 세스 롤린스와 비교하면서 숀과는 경기하면서 위험하다고 느낀적이 없었다고.

4. 평가

보통 WWE를 대표하는 4대 아이콘으로 헐크 호건, 스티브 오스틴, 더 락, 존 시나가 거론되지만 숀 역시 브렛 하트와 함께 뉴 제너레이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였다. 다만 앞의 4명과의 차이점이라면 저 4명은 자신들이 이끌었던 시대를 크게 흥행시키는데 성공했고, WWE가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최고의 위치를 유지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이다.[30] 하지만 숀과 브렛의 경우에는 비록 자신들이 대표이긴 했지만 뉴 제너레이션 시대 자체가 WWE 역사상 최고의 암흑기였기 때문에 저 4명에 비하면 아이콘으로선 좀 떨어지는 평가를 받는 편이다. 하지만 알아둬야할 것은 저 둘이 있었기에 그러한 암흑기를 어떻게든 버텨냈다는 점이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만으로 온갖 푸시와 좋은 각본, 승리를 독차지하고 챔피언 욕심이 가득했던 철 없고 인성이 밑바닥 수준이였던 1990년대와는 달리, 1차 은퇴를 했다가 종교와 아내의 힘으로 개과천선하고 나서 2002년에 다시 복귀한 뒤에는 욕심을 버린채, 후배들을 위해 잡을 해주고 메인 챔피언 자리도 2002년에 약 한 달간 올라있을 때를 제외하면 2010년에 은퇴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는 등[31]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수 없이 많은 명경기와 인상적인 활약들을 보여주면서 사람들로부터 리스펙트 받고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서 지지를 받게 됐다.[32] 종교와 가족의 힘으로 개과천선한 점이나 자타불문하고 1차 은퇴 이전 시절보다 복귀 이후의 평가가 더 높은 걸 보면 비슷한 인생역정을 보여준 조지 포먼과도 공통점이 보일 정도.

경기력면에서는 WWE 역사상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 선수 중 한 명이였다. 숀의 경기력은 1990년대와 복귀 이후인 2000년대를 나눠서 봐야한다. 1990년대의 숀은 타고난 연기력과 뛰어난 경기운영능력, 여기에 다양하고 화려한 기술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면서도 경기템포의 완급조절까지 유연하게 해낼 줄 아는 그야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완벽한 경기력의 정점을 보여줬었다.[33]

복귀 이후의 2000년대에서 보여 준 경기력은 이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아무래도 은퇴를 했을만큼 등부상이 심했던 데다가 4년간 레슬러로서 활동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나이도 먹었기 때문에 신체적인 기량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1990년대의 숀과 2000년대의 숀을 비교해보면 경기 템포의 빠르기라던가 사용하는 기술의 가짓수, 힘 등등 여러가지 면에서 1990년대의 숀이 신체능력면에서는 보다 뛰어난 것을 느낄 수 있다.[34] 하지만 그런 신체적인 기량의 하락을 숀은 타고난 경기운영능력과 이전보다 더 성숙해진 연기력과 템포 조절로 메꾸면서 복귀 이후에도 여전히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줬다.[35]

참고로 숀은 엔터테이너적인 면도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다. 앞서도 말했듯이 타고난 연기력과 쇼맨쉽 덕분에 업계에서도 손꼽는 마이크 웍과 기믹수행력을 보여줬고 등장할 때의 화려함과 대중들을 상대로 셀링하는 능력도 엄청났다. 위에 언급된 것처럼 1990년대 중반에는 선역 챔피언으로서 업계의 간판을 차지해봤고 복귀 이후에는 내내 언더독 성향의 선역을 도맡을 정도로 선역 소화력이 뛰어남과 동시에 락커스 해체 이후의 섹시한 악동 기믹이나 DX 시절 악역을 맡았을 때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정말로 개X끼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천하의 개X놈같은 모습도 태연하게 보여줬다.[36] 또한 스티브 오스틴, 언더테이커, 크리스 제리코, 트리플 H같은 레전드들이 숀을 '레슬링 역사상 가장 뛰어난 In-ring performer'였다고 언급을 했던걸 생각하면 숀은 레슬러와 엔터테이너로서 양 쪽 모두 뛰어난 천재적인 재능을 갖췄던 선수였다고 볼 수 있다.

5. VS 브렛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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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담

  • WWE에서 숀 마이클스와 함께 일했던 스타일리스트의 말에 의하면 핸섬한 외모와 옷걸이에 비해 옷은 참 못 입는 편이라고 한다. 2002년에 처음 복귀한 이래 입은 경기복들도 대부분이 1990년대에 입었던 옷들을 그대로 입은 것. 은퇴한 이후 2013년에 들어선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혀 몰라볼 정도. 어느 정도냐 하면 제자인 대니얼 브라이언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 2013년 하반기에 들어선 트리플 H대니얼 브라이언에 관련된 스토리 라인에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는데, 얼마 전까지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던 수염을 깔끔하게 밀어버린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파일:external/hbknet.files.wordpress.com/mra-hunting-shawn-michaels-2013-003-carbon-express-01.jpg
    은퇴 후에는 사냥 장비 쪽 일을 했었으며 2017년부턴 WWE 퍼포먼스 센터의 트레이너로 재직중이다.[37] 최근들어 중요한 자리나 NXT의 대외 행사의 참여, 테이크오버에서 헌터 옆 자리에서 고릴라 포지션에서의 모니터링 장면 포착 등으로 볼때 WWE의 핵심인사로 자리잡아가고 있는중. 헌터가 각본총괄 수장 자리에 앉으면서 숀의 입지 역시 상승 중이며, 리걸이 떠났을때 맡은 NXT에서 공식 프로듀서 자리와 WWE 인사책임 부사장으로 직함도 나날히 높아지고 있다.
파일:산왕숀마.jpg
* 샌안토니오 출신답게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열렬한 서포터. 등 부상 이후 쉴때는 거의 맨날 농구보러 다녔다고 한다. 그의 모스트는 스퍼스의 레전드 팀 던컨. 던컨 역시 숀이 가장 좋아하는 레슬러라고. [38]
  • 사실 대니얼 브라이언WWE의 대세가 되는데 큰 도움을 줬다는 소문이 있다. 2010년 당시 넥서스 멤버였던 대니얼 브라이언이 링 아나운서 저스틴 로버츠의 목을 조르는 세그먼트가 PG 등급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데뷔하자마자 방출당하는 불운을 겪었는데 이에 숀이 어느 인터뷰에서 브라이언이 WWE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WWE가 가장 싫어하는 단체에 출연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지만, 어쨌든 WWE는 브라이언을 WWE에 복직시켰다.
  • 브렛 하트와는 앙숙겸 라이벌이었지만 그들이 대두되기 시작한 무렵에는 의외로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 당시엔 메인 이벤터는 오직 헐크 호건이나 얼티밋 워리어같은 근육질 선수들만이 설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만연했는데, 브렛이나 숀이나 둘 다 이런 편견을 타파하려고 고생했기 때문이다.
    짐 로스 진행을 맡았던 브렛과 숀의 대담을 보면 브렛이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이 된 것이 희망을 줬느냐는 짐의 질문에 숀은 인터콘티넨탈로는 안 된다. 브렛이 WWE 챔피언 정도는 돼야 우리가 인정받는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브렛은 이 대담에서 호건이나 워리어는 근육만 많고 로프 흔드는 것밖에 못하는 지루한 인물들이라고 깠다. 한 마디로 같은 배를 탄 입장이었다가 나중에 사이가 갈라진 것.
    아예 2015년 11월의 인터뷰에서 브렛은 헐크 호건 등의 덩치들이 빠져나간 뒤엔 당시엔 자신과 숀만이 회사를 지탱하고 있었다고 얘기했다. 1992년 둘이 처음 붙었을 땐 숀이 싱글 경험이 적을 때라 브렛에게 캐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선후배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39]

  • 그의 조카이자 제자이기도 했던 마이클 셰인도 프로레슬러이며 TNA에서 몇 차례나 X 디비전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으며 삼촌의 피니쉬 기술인 스윗 친 뮤직을 '스윗 셰인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피니쉬로 사용했다.
  • 종교의 긍정적인 역할을 잘 보여주는 인물로, 종교로 인해 사람이 완전히 좋은 방향으로 바뀐 케이스를 꼽을 때 조지 포먼과 함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된다. 90년대의 숀 마이클스는 실제로 사고뭉치에 망나니 같은 언행을 선보이고 다녀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인물로 꼽힐 만큼 평이 안 좋았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개신교에 귀의 하면서[40] 그동안 자신의 처신에 대해 뉘우치고 개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번은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 실직하고 집을 잃을 위기에 쳐하자 본인이 그 집을 대신 사줬다고 한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 때문에 숀에게 가장 원한이 깊었던 브렛 하트가 결국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기도 했으며 그 누구에게도 잡을 하지 않겠다고 우기던 1990년대의 숀과는 달리 후배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챔피언 각본을 거부하는 등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어 더욱 좋은 평가를 받았다.[41]
    인성의 발전 뿐 아니라 경기력도 변함없이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괜히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것이 아니다. 숀의 데뷔부터 첫 번째 은퇴 시절과 복귀 후 두 번째 은퇴 때의 별점들을 비교해서 어느 시절이 더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나 비교한 사람이 있었는데 데뷔 직후부터 첫 은퇴까지가 불과 0.05점 높아서, 어느 시절이든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래도 두 번째 시절이 더 대단한 건 당시의 숀은 등 부상 등으로 몸이 전 같지 않았는데도 같은 수준의 기량을 보여주었다는 것. 거기다가 WWE에서 선정한 꼭 봐야 되는 명경기 리스트를 보면 복귀 이후 시절 경기가 상위권에 더 많다.
  • 1990년대 망나니로 살었던 시절에도 딱 한 가지 준수했던 철칙이 있었으니 인종차별은 절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42] 클리크 멤버들 자체가 하나둘씩 인종차별 혐의가 있어 트리플 H케빈 내쉬가 히스패닉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43]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시아계 선수나 흑인선수들에게도 의외로 친분을 유지하는 숀이 특이한 케이스다. 우스갯소리로 마약, 성추문, 권력갑질, 폭행등의 전과는 다 있어도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만큼은 정말 금기라는 것을 알려준다는 케이스.
  • 상술했듯이 젊었을 적에는 엄청난 망나니이자 사생활도 최악이고 동료들에게 온갖 괴담이 난무할 정도로 평판이 나쁜 레슬러였지만 팬 서비스 만큼은 매우 좋았다. 엔트런스에서 등장할 때도 팬들과 마주하면 하이 파이브같은 것도 해주었고 어린 팬들과는 화기애애한 모습도 보여주면서 팬 서비스는 나무랄 곳이 없었다.
  • 사실 2001년도 쯤에 빈스에게 "브렛이 보고 싶다"며 그와 다시 만나고 싶어하는 등 몬트리올 사건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줬었기에 2010년도에 브렛과 화해한 것은 숀에게도 큰 안도감을 주었다. 브렛이 말하기를 자신과 화해하고 난 뒤에는 숀도 큰 짐을 덜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어서 자신도 편해졌다고 할 정도.
  • 2010년 브렛 하트와 공식적으로 화해하기 전까진, 숀은 브렛의 모국인 캐나다에만 오면 선역으로 왔든 악역으로 왔든 "넌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그로다"라는 취급을 받으며 집중 야유의 대상이 됐다. 위에서 적은 종교 덕분에 개심하게 된 이후에도 캐나다에서 만큼은 첫 번째 은퇴 시점까지 보여줬던 악역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1, #2 #3
  • 작은 덩치로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 때문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고 자서전에 회고했다. 문제는 이 부담감 때문에 백스테이지에서 온갖 사고를 쳤다는 것. 스트레스 받는 것은 이해해 줄 만 하나 그 행동이 문제였다. 레슬매니아 14 직전의 세그먼트를 보면 프로모하다가 날아온 배터리에 맞았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링을 떠나는 행각을 보였으며 당시 그와 대립하던 스티브 오스틴이 "나에게 챔피언 자리 주고 도와준 건 좋은데 이룰 거 다 이룬 양반이 너무 이기적이다"라고 꼬집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망나니적인 행동이 본성보단 스트레스로 인해 성격이 꼬인 덕분이었기 때문인지 종교로 그런 부분이 해소되고 나선 평판이 좋아졌다.
    그레고리 헴즈는 2008년경 숀 마이클스가 크리스 제리코에게 욕을 한 바가지 날린 것 때문에 숀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으나, 정작 제리코는 그 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숀이 욕할 만 했던 일인데, 그레고리가 왜 그 일을 들추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자서전에서도 이 일에 대해서 써져있는데 WWE 섬머슬램(2008) 경 제리코가 숀의 부인인 레베카를 때리는 시늉만 하라는 각본을 받았는데 실수로 진짜 때려버렸다.
    해당 세그먼트가 끝난 후 제리코는 숀과 아내에게 사과했고 레베카는 '뭐, 솜주먹이네요 ㅎㅎ'라며 농담까지 하면서 좋게 넘어갔으나 숀은 가족을 각본에 끌어들인 것에 대해 자책을 했다고 한다. 아마 이 자책감이 안좋은 방향으로 변질돼서 화가 나 욕을 한 것으로 보인다.
  • 랍 밴 댐 같은 경우에는 로얄럼블에서 복귀했을 때, 숀에게 "꾸준히 나오는 사람만 봐야지, 어디 갔다가 컴백하는 사람은 보고 싶지 않다."라는 식의 말을 들었는데 2007년 WWE 명예의 전당에서 쉬크를 헌액하고 난 이후로는 "넌 참 말도 잘 하고 매력있음"이라고 하는 걸 보고 위선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숀이 달라졌다고 하는 건 아닌 모양이지만, 일단 링 위에서 보인 행보만 봐도 전보다 훨씬 나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하였듯 1990년대 당시 멘탈이 안 좋을 때의 숀은 그 누구에게도 잡을 해주지 않겠다고 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복귀 후의 숀은 레슬매니아에서 커트 앵글앵클 락에 탭아웃을 한다거나 후배들에게 패배하고, 챔피언이 되는 각본을 거부하는 등 이미 TV에서 보여준 것 만으로도 인성의 발전을 보였으니 그리 깔 건덕지가 없었다.
    레슬러로서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브록 레스너WWE로부터 빵빵한 푸쉬를 일관성 있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WWE의 그 악명 높은 빡빡한 스케줄에 부담을 느껴 결국 스스로 제 발로 걸어 나간 것을 생각해 보자.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WWE를 책임지며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성실한 인물이란 것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WCW가 급부상하며 헐크 호건, 얼티밋 워리어, 마초맨 등 간판 스타들이 대거 WCW로 이적하고 WWE가 2위 단체로 전락하며 큰 위기를 보였을 때에도 숀은 WWE를 책임지며 당시 DX라는 악역으로 경기력은 물론 쇼맨십 등 최고의 퍼포먼스로 WWE가 다시 1위를 탈환하는데 일등 공신인 셈이었으니 팩트만 놓고 봐도 원래 성실한 인물이었다.[44]
  • WWE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레슬러 후나키와 의외로 친한 사이라고 한다. 원래 후나키는 숀 마이클스를 우상으로 삼고 있었고, 쇼가 끝난 무대 뒤에서는 개인적으로 숀과 친분을 쌓았다. 후나키는 후에 NXT를 통해 WWE에 데뷔한 이타미 히데오에게 트위터로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꼭 챙겨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아예 후나키는 자신의 우상과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서 일부러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숀 마이클스의 고향인 텍사스에 레슬링 도장을 차려 운영 중에 있을 정도다. 후나키는 숀의 은퇴 이후 칼같이 방출을 당했고, 현재는 WWE의 일본해설을 맡고있다.
  • 파일:external/orig12.deviantart.net/shawn_michaels_playgirl_16_by_trinforthewin-d5f5z6l.jpg 파일:external/static3.thesportsterimages.com/Shawn-Michaels-bedsheets-photobucket.jpg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7db380ba80d1a67cb1a5b3ff4456282.jpg
    인기가 한창 높았던 시기에 플레이걸에 이런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이 사진은 숀의 은퇴 이후 잊혀지는가 싶더니 DX와 Rated RKO와의 세그먼트에서 다시 공개되었는데, 숀은 이때 일을 철 없던 시절의 치기로 생각하고 있는 듯. 사진이 공개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45]
    후에 RAW 1000회 특집에서 DX 1,2 멤버들이 다시 뭉칠 때 저 사진이 다시 언급되었다. 이때도 숀은 멍청한 짓이었다고 자조하면서도 "그래도 돈은 짭짤하게 받았지. ㅎㅎ" 라고 해 큰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WWE가 암흑기 시절 버틸 수 있던 원동력 중 하나가 저것이기도 했다. 숀은 저걸로 실제로 어마어마한 여성 팬들을 끌어모았고 거칠고 땀내 나던 프로레슬링 판에 꽃미남 레슬러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원조격 인물이다. 말하자면 프로레슬링계의 데이비드 베컴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플레이걸에서 촬영했던 사진 중, 자신의 윙드이글 벨트를 고간에 두르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사진이 위에 올라온 사진들과 더불어 유명한데,(링크) 패러디가 자주되는 꽤 '전통있는' 포즈가 되었다. 가장 최근에 따라한 사람은 NXT 노스-아메리카 챔피언 로데릭 스트롱.
  • 스티브 오스틴과의 경기 도중에 몸이 불편한 아이를 도와주기 위하여 기믹을 깬 적이 있다. 아이는 아마도 숀의 팬인 것 같은데, 오스틴이 숀을 정말로 괴롭히는 줄 알고 숀을 도와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숀은 아이를 부모에게 안전하게 에스코트를 한 뒤 다시 돌아와 경기를 치렀다.
  • 나이가 들면서 정수리와 M자형 탈모가 좀 심하게 진행되었는데 중간 앞머리를 길러서 묶거나, 모자 또는 두건을 쓰는 방식으로 가리고 다녔다. 한 번은 WWE의 공식 사진에 비어 버린 앞머리가 드러나자 WWE 측에서 합성 사진으로 숀의 정수리를 수정한 일도 있었으며 자신의 탈모에 대해 질문한 팬을 트위터에서 비난했다가 사과한 적도 있다. ##
  • 2017년 초에 개봉한 WWE 스튜디오기독교 영화인 '개빈 스톤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Gavin Stone, 국내 제목은 '교회오빠 개빈'.)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정식 연기에도 도전한 적이 있다. 아역 스타였지만 방탕한 생활로 망가진 배우인 개빈 스톤[46]이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에서 봉사를 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인데 숀이 맡은 배역인 더그는 그런 개빈에게 깨달음을 주는 정비사역. 이후에도 여러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최근엔 미즈의 '마린 6'에 베키 린치와 함께 출연했다. 2018년엔 DC와 마블 히어로 무비의 패러디 영화인 어벤져스 오브 저스티스란 작품에도 출연했다. 숀이 맡은 배역은 요다의 패러디 캐릭터인 요가 선생.
  • 파일:external/blogs-images.forbes.com/CvPHXO0UAAEpePm.jpg-large.jpg
    2016년 10월에 숀 마이클스 vs AJ 스타일스라는 드림 매치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위 사진은 AJ 스타일스가 본인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으로 AJ는 '이 사진, 흥미롭지 않아?(interesting photo..... is it not?)'라는 멘트를 덧붙였다. 이는 내년 WWE 로얄럼블(2017)이 펼쳐지는 곳이 숀의 고향인 샌 안토니오 텍사스인데다가 최대 7만 명의 관객까지 수용이 가능한 알라모 돔[47]에서 열리기 때문에 WWE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흥행을 위해 열을 올릴 것이고, 그렇기에 숀을 어떤 방식으로든 출연시키지 않겠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에 이 드림 매치의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더군다나 2017년 로얄 럼블이 개최 30주년이기 때문에 WWE 입장에서는 더더욱 흥행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실제로 WWE가 숀에게 접촉을 했다는 식의 루머가 이미 나온 상황이다. 다만 숀 본인은 은퇴식 때 이미 자신은 더 이상 경기를 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48] 이후에도 WWE가 몇 번씩 숀에게 경기를 뛰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숀은 손사래를 치며 소신을 지키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 이 경기가 성사될 확률은 매우 낮다. 게다가 숀은 이미 은퇴한 지 6년을 넘어서 7년이 다 되어가는데다가 나이도 쉰이 넘었기 때문에 숀의 몸 상태가 이 경기의 성사 여부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어서 경기가 펼쳐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경기력과 수 없이 많은 명경기를 보여줬던 숀과 경이로운 자라고 불릴만큼 뛰어나고 화려한 기술들과 경기들을 보여주는 AJ 스타일스가 경기를 하게 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프로레슬링 팬들은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AJ 스타일스는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자신의 드림 매치 상대로 숀을 뽑기도 했다. 번역 과연 이 경기가 정말로 펼쳐질 지는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봐야 될 듯 싶었으나 숀이 은퇴번복을 크라운 주얼에 맞춰서 했고 경기가 끝난 뒤 다시 은퇴상태를 못박아버려서 가능성은 희박하다.
  • 이적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선수이기도 하다. 2차 선수 활동을 시작했던 2002년도 부터 2010년까지 단 한 번도 타 브랜드로 이적하지 않고 계속 RAW 소속 선수로서 활동했다. 가끔씩 스맥다운이나 ECW에서 일회성 출현을 한 적은 있긴 하지만, 타 브랜드 소속이 된 적은 한번도 없다.[49]
  • 2017년 1월 경 숀 마이클스가 한 라디오 방송에 출현해 스맥다운으로 한번도 이적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밝혔는데, 자신은 확실히 WWE가 스맥다운으로 한번 이적해줬으면 한다는 의견을 들었지만 당시 스맥다운은 녹화 방송이였고 매주 화요일에 녹화를 진행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가족들과 매주 화요일 약속을 깰 수 없는 중요한 사생활이 있었다며 스맥다운 이적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도 스맥다운에 이적을 한번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살짝 아쉽게 생각하기도 한다고 한다.
  • 자칭하는 별명 중 '미스터 레슬매니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슬매니아 전적은 17전 6승 11패에 불과해 2017년 친구 트리플 H가 해당 기록을 갱신하기 전까지 레슬매니아 최다패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 2017년 8월 20일 WWE 섬머슬램(2017)에서 쉬는 시간 중간에 KFC 광고가 나왔다. 광고가 끝나고 나서 테마음악과 함께 숀 마이클스가 등장했다. 원래는 릭 플레어가 할 예정이었는데 릭 플레어가 건강상에 위기가 닥쳐서 대신했다고 한다.
  • 현역 시절에 비해서 신장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과거 사진과 비교하면 육안으로도 구별될 정도. 사이코 시드와의 경기 중 시드의 파워밤이 너무 세게 들어가는 바람에 척추에 큰 부상을 당했고 이걸로 인해서 커리어 말기까지 고통에 시달린 원인이 되기도 했다. 덕분에 수술을 여러 차례 거쳐서 키가 꽤 줄어들었다. 헐크 호건과 비슷한 케이스인데, 이 부상의 원인을 제공한 사이코 시드는 지금도 숀 마이클스의 팬들에게 까이고 있지만 고의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는게 숀과 시드는 아주 친한 사이다.
  • 2010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지만, 매년 꾸준히 WWE에 출연하는 레전드들 중 한 명이다. 2011, 2012년에는 트리플 H언더테이커의 대립을 위해 출연했고, 2013년에는 디 어소리티 VS 대니얼 브라이언의 각본을 위해 출연 [50] 2014년 이후로도 계속 일회성 출연으로라도 WWE에 출연했고 2018년에는 WWE RAW 25주년 특집을 위해 출연했다. 2019년 들어서는 트리플 H와 함께 NXT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주 모습을 보인다.

파일:숏컷마이클스.jpg
파일:대머리DX.png
  • 2018 명예의 전당을 앞두고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긴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WWE 슈퍼 쇼 다운(2018)에 앞서 출연했던 RAW에 완전히 머리를 밀어버린 채 등장하여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실 영화촬영[51]때문에 밀어버린거라고는 하지만 하필 그때 같이 나온 트리플 H도 빡빡이였던지라 금발미남이었던 두 남자가 세월이 흘러 빡빡이 태그팀이 된 상황을 보며 안타까움이 앞선 사람들이 많았다.[52]
  • 자신과는 동명의 미국 포르노 배우가 있는데 이쪽은 영어식 이름이 Sean Michaels라서 다른 이름이다. 물론 부를 때는 같은 숀 마이클스라서 동명은 맞다.
  • 2022년 7월 빈스 맥맨이 성추문 및 횡령 의혹으로 은퇴를 하게 되면서 WWE 내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숀은 브루스 프리차드와 공동으로 NXT 2.0의 각본을 담당하게 되었다.
    • 숀은 프로듀서도 안하고 편하게 남은 삶을 즐기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빈스와 트리플H의 간곡한 부탁으로 NXT 트레이너부터 시작을 했는데, 참으로 막막하기 그지없던 NXT2.0 로스터를 보기 괜찮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대업을 달성했다. 이에 대한 보상인지 벌써 크리에이티브 부사장까지 올라버렸다.
  • 절친 폴 마이클 레베스크(Paul Michael LéVesque)에게[53] 트리플 H(Triple H)라는 링네임을 만들어 준 장본인이라고 한다. 원래 폴은 헌터 허스트 헴즐리(Hunter Hearst Helmsley)라는 링네임으로 데뷔했는데 너무 길어서 발음하기 귀찮다며 숀이 머릿글자 3개를 따서 '트리플 H'라 부르고 다녔고, 이걸 폴이 마음에 들어해 적극적으로 쓰면서 굳어진 케이스라고.[54]

7. 둘러보기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2003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WE_HOF_logo.png
2011년, 2019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55]
파일: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jpg
2017년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i186.photobucket.com/DX-Logo.png
숀 마이클스 트리플 H 차이나
릭 루드 마이크 타이슨 X-PAC
빌리 건 로드 독 케인
토리 스테파니 맥마흔 혼스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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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이언트 nWo 스팅 식스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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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버바 로저스 스캇 노턴 쵸노 마사히로 랜디 새비지
텐잔 그레이트 무타 코난 커트 헤닉
릭 루드 루이 스피콜리 더스티 로즈 브라이언 애덤스
스캇 스타이너 디시플 닉 페트릭 브렛 하트
스티비 레이 호러스 호건 배리 윈드햄 마크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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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윌슨 릭 스타이너 제프 제럿 론 해리스
돈 해리스 미다자 샤키라 타이레네 벅
에이프릴 헌터 파멜라 폴쇽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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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노 마사히로 사이토 히로 텐잔 히로요시 nWo 스팅
스캇 노턴 버프 백웰 무토 케이지 마이클 월스트리트
스캇 홀 케빈 내시 식스 빅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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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당시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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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쇼 부커 T 숀 마이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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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다이스케 스즈키 타카노리 마네 타카시 이노우에 준
야마모토 마사히로 야마사키 타케시 마에다 유키나가 나카야마 마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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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코지 다이타 쿠사나기 츠요시 산타마리아 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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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로얄럼블 경기 우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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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빈스 맥마흔더 락}}}}}}}}}{{{#!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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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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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1996.3.31
레슬매니아 12
WWF 챔피언십
브렛 하트 vs 숀 마이클스
1998.3.29
레슬매니아 14
WWF 챔피언십
숀 마이클스 vs 스티브 오스틴
2004.3.14
레슬매니아 20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트리플 H vs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벤와[57]
2007.4.1
레슬매니아 23
WWE 챔피언십
존 시나 vs 숀 마이클스
2010.3.28
레슬매니아 26
연승 vs 경력 매치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파일:PWI 로고.png PWI 500인 선정 올해의 레슬러
디젤
(1995)
숀 마이클스
(1996)
딘 말렌코
(1997)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선역
스팅
(1994)
숀 마이클스
(1995, 1996)
스팅
(1997)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 감동을 준 레슬러
리키 스팀보트
(2009)
숀 마이클스
(2010)
로지타
(2011)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대립
커트 앵글 vs 사모아 조
(2007)
크리스 제리코 vs 숀 마이클스
(2008)
랜디 오턴 vs 트리플 H
(2009)
파일:PWI 로고.png PWI 선정 올해의 경기 [★][59]
1993년
5월 17일
WWF
RAW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마티 자네티 vs 숀 마이클스(C)
1994년
3월 20일
WWF
레슬매니아 X
통합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래더 매치
레이저 라몬(C) vs 숀 마이클스
1995년
4월 2일
WWF
레슬매니아 XI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디젤(C) vs 숀 마이클스
1996년
3월 31일
WWF
레슬매니아 XII
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60분 아이언맨 매치
브렛 하트(C) vs 숀 마이클스
2004년
3월 14일
WWE
레슬매니아 XX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트리플 스렛 매치
트리플 H(C) vs 크리스 벤와 vs 숀 마이클스
2005년
4월 3일
WWE
레슬매니아 21
싱글 매치
커트 앵글 vs 숀 마이클스
2006년
4월 2일
WWE
레슬매니아 22
노 홀즈 바드 매치
빈스 맥마흔 vs 숀 마이클스
2007년
4월 23일
WWE
RAW
싱글 매치
존 시나 vs 숀 마이클스
2008년
3월 30일
WWE
레슬매니아 XXIV
커리어 매치
릭 플레어 vs 숀 마이클스
2009년
4월 5일
WWE
레슬매니아 XXV
싱글 매치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2010년
3월 28일
WWE
레슬매니아 XXVI
연승 vs 경력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태그팀
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1988)
더 락커스
(1989)
스타이너 브라더스
(1990)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
크리스 벤와
(1997)
숀 마이클스
(1998)
크리스 제리코
(1999)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가장 카리스마 있는 선수
오니타 아츠시
(1994)
숀 마이클스
(1995, 1996)
스티브 오스틴
(1997)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최고의 선역
페로 아과요
(1995)
숀 마이클스
(1996)
폐지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대립
커트 앵글 vs 브록 레스너
(2003)
숀 마이클스 vs 트리플 H vs 크리스 벤와
(2004)
바티스타 vs 트리플 H
(2005)
바티스타 vs 언더테이커
(2007)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제리코
(2008)
제프 하디 vs CM 펑크
(2009)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61][62][63]
1994년
3월 20일
WWF
레슬매니아 X
통합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래더 매치
_레이저 라몬_(C) vs 숀 마이클스
*****
2008년
10월 5일
WWE
노 머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래더 매치
_크리스 제리코_(C) vs 숀 마이클스
****½
2009년
4월 5일
WWE
레슬매니아 XXV
싱글 매치
_언더테이커_ vs 숀 마이클스
****¾
2010년
3월 28일
WWE
레슬매니아 XXVI
연승 vs 경력
_언더테이커_ vs 숀 마이클스
****¾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5성 경기 [★]
1994년
3월 20일
WWF
레슬매니아 X
통합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래더 매치
레이저 라몬(C) vs 숀 마이클스
1997년
10월 5일
WWF
인 유어 하우스 18: 배드 블러드
WWF 챔피언십 #1 도전자 결정전 헬 인 어 셀 매치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파일:슬래미어워드 로고.jpg
WWE 슬래미 어워드 올해의 경기
2008년 1위 3월 30일
레슬매니아 24
커리어 매치
릭 플레어 vs 숀 마이클스
2009년 1위 4월 5일
레슬매니아 25
싱글 매치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2010년 1위 3월 28일
레슬매니아 XXVI
연승 vs 경력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WWE 슬래미 어워드 올해의 더블 크로스
2013년 1위 10월 27일
헬 인 어 셀
숀 마이클스대니얼 브라이언에게 스윗 친 뮤직을 선사하다.


[1] 자서전에 의하면 어렸을 적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2] 줄여서 HBK라고 표기 및 발음하며, 현역 시절엔 이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 들어간 전용 의상을 입고 경기를 많이 뛰었다.[3] 재밌게도 애티튜드 시절을 함께 한 스티브 오스틴언더테이커도 텍사스 주 출신이다. 오스틴은 빅토리아, 언더테이커는 휴스턴 출신.[4] 등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여러 번 받아 현재는 키가 약 178~179cm 정도로 줄었다.[5] 현재는 86kg의 체중임을 본인 트위터에서 인증했다.[6] 1993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는 숀 마이클스의 가장 유명한 피니시.[7] 데뷔 당시(1985~1987)까지의 피니시.[8] 록커스 활동 당시의 피니시.[9] 싱글 활동 초반부(1991~1993) 사용하던 피니시.[10] 커트 앵글이 숀 마이클스와 대립 도중 셰리가 불러준 가사 개사 버전도 있다. 일명 Sexy Kurt[11] 원래 이 곡의 노래는 솔로 독립때의 매니저인 센세이셔널 셰리가 불렀던 것이지만, 셰리와 갈라서고 난 후에 숀 마이클스가 직접 다시 불러 제작하였다. 참고로 맨 앞의 꺅꺅대는 소리의 주인공은 지미 하트.[12] 이 중 1회는 통합 태그팀 챔피언 때의 기록이다.[13] 통합 태그팀 챔피언 때의 기록이다.[14] 2년 연속 우승이다.[15] HBK는 열중열 숀 마이클스를 지칭하며, 이 때문에 나무위키에서는 붉은 글씨 처리된 HBK로 검색해도 본 문서로 들어온다.[16] 숀 마이클스 이전에 트리플 H가 맡고 있었던 직책으로 트리플 H가 CCO로 승진하면서 트리플 H 뒤를 이어 맡게 되었다.[17] 크리스 벤와는 '숀을 보며 나 정도 체구도 메인 이벤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으며, 실제로 자기랑 비슷한 나이, 비슷한 체구인데도 메인 이벤터를 찍어본 숀을 무척 존경했다고 하며 2011년, 숀 마이클스의 WWE 명예의 전당 헌액 때 트리플 H는 "숀이 날아가지 않도록 차고 문을 닫아둬야 했다."고 농담을 했었는데 실제로 숀과 브렛이 초창기 친해진건 덩치 큰 레슬러들에게 맞서는 동병상련 때문이었다.[18] 현재 WWE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첫 래더 매치는 레슬매니아 10에서 열린 레이저 라몬과의 래더 매치이며, 해당 매치 이전에 비공식적으로도 숀과 브렛 하트가 래더 매치를 가진 적이 있기에 이러나 저러나 숀이 WWE 최초의 래더 매치 주인공인건 변하지 않는다.[19] 물론 그 직전에 브렛 하트가 다시 WWE로 복귀하면서 연락처도 교환하고 슬슬 화해 무드를 가지려 했으나 여전히 어색한 기류가 흘렀는데 해당 경기를 시청한 브렛 하트가 한 명의 레슬러로서 감동을 받으며 완전하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현재는 명절때마다 서로 안부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로 나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20] 오죽하면 트리플 H가 문을 차서 열면 숀이 바람에 날아간다고 농담을 할 정도[21] 프로레슬링 경기는 화려한 기술이 많이 나오거나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등 기술적인 측면 하나만으로 경기의 재미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술적인 측면도 필요하지만 재밌는 경기를 위해선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필요한 것인데 숀 마이클스의 등부상 전 경기를 보면 정말 기술이 오고 가지 않는 그 순간들마저도 관중들이 숀에게 야유를 하거나 환호를 보내고 이를 숀이 더 유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95년 제프 제럿과 인 유어 하우스에서 가졌던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은 숀 마이클스의 이러한 장점들이 가장 뚜렷하게 잘 드러난 경기 중 하나로 꼽히는데, 경기 내내 상대방과 관중을 동시에 휘어잡는 숀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22]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당시 존 시나는 존나세, 존오공 등의 멸칭을 받으면서 원패턴에 무적 선역 기믹으로 기본적인 다리지옥식 공격을 해도 절뚝거리는 셀링 하나도 하지않아 경기 이후 엄청난 욕을 먹었다.[23] 숀 마이클스의 조카인 맷 벤틀리 역시 '마이클 셰인'이란 링 네임으로 활동할 때 '스윗 셰인 뮤직'이라고 이름 붙인 슈퍼킥을 피니쉬 무브로 사용했다.[24] 러닝 빅 붓이라는 평범한 기술을 피니쉬로 사용하던 테스트 역시 허벅지를 치는 소리로 임팩트를 더한 적이 있다.[25] 숀이 인기가 많았던 이유중에 하나가 이 스윗 친 뮤직이기도 한데, 위에서 설명한 발로 리듬을 타다가 날리는 피니시는 생각보다 성공률이 높진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 스윗 친 뮤직은 준비동작 없이 바로 날려버릴수 있는 피니쉬라 오히려 기습적으로 사용할때 성공률이 높은 편이었다. 위에서도 설명돼있는 숀은 중후반 커리어를 대부분 언더독 기믹의 선역으로 많이 보냈는데, 숀의 이 피니시가 순간적으로 큰 임팩트와 함께 역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기분좋은 흥분감을 가지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이 간단하지만 강렬하면서도 임팩트있는 일발역전 피니시무브덕에 숀은 순간적으로 자신에게로 상황을 바꾼적이 많으며, 이덕에 관중들도 열광할수 있었던것.[26] 사실 싱글 커리어 초기에는 이 기술을 피니쉬로 썼었다. 다만 별 임팩트가 없는 기본기스런 기술이라 그런지 오래 못가고, 대신 준 피니쉬였던 슈퍼킥을 피니셔로 승격시켜 쓰기 시작했다. 기술 자체가 척 보기에도 약해보이고 피니쉬다운 강한 인상을 주기가 어렵긴 하다.[27] 숀 마이클스가 신인이던 시절엔 아직 문설트가 많이 보급화 되기 전이다 보니 구사 가능한 레슬러가 많지 않았는데 덕분에 신인 시절의 숀은 문설트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배 레슬러들에게 귀여움을 받았었다고 한다.[28] 리키 스팀보트가 처음 선보인 무브이다.[29] 사실 숀은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항상 자신을 제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한다. 상대에게 위험한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기보다는 자기가 위험한 고난도 기술을 맞거나 접수하면서 동작을 크게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스팟을 도맡으면서 경기를 재밌게 만드는 스타일이다.[30] 특히 호건, 오스틴의 공로는 시대를 바꿔버렸을 정도다.[31] 빈스는 중간 중간에 숀에게 메인 챔피언 자리에 오르는 각본을 주려고 했지만 이 때마다 숀이 거절했다. 본인이 욕심을 버린 것도 있지만 메인 챔피언에 오르게 되면 온갖 행사와 하우스 쇼 일정들을 전부 소화해야하기 때문에 이러한 빡빡한 스케줄을 피하고자 거절한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는 크리스 제리코도 비슷한 행보를 보였었지만 그는 메인 스토리에 나가길 항상 꺼려 했고 자기 안목에 드는 후배 양성을 해주다 타 단체에 가서 '프로레슬링' 자체를 키우려고 메인 역할을 맡는다. 숀과 어찌보면 참 반대인 지점.[32] 1차 은퇴 후에 2002년에 다시 복귀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웠을 거란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견이다. 그만큼 복귀한 뒤에 2010년에 은퇴하기까지의 경력이 숀에게 있어서나 팬들에게 있어서나 너무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였던 셈이다.[33] 돌프 지글러의 경기 스타일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이 젊은 시절에 너무 오버하는 접수를 했었는데 돌프를 보면 그런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으니 고쳤으면 한다'고 평가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숀 마이클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1990년대의 자신은 다소 오버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는 듯 하다. 다만 숀의 경기력을 한 마디로 평가할 때 보통 브렛 하트의 '정말 안전하게 경기하는 선수'라는 평이 많이 인용되는데, 이건 숀과 브렛이 화해하기 이전 한창 견원지간이었던 시절에 나온 평가이다. 만약 1990년대 숀이 정말로 접수할때 오버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브렛의 깐깐한 성격과 독설가 기질이 어디 안 가는만큼 당연히 심심하면 이걸 가지고 가루가 되도록 깠어야 정상인데 한창 사이 나쁘던 시절에도 그런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적어도 당시 동료들의 기준으로는 딱히 오버하지 않는 안전한 접수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다.[34] 여담이지만 겉모습도 2000년대의 숀이 1990년대보다 근육이 빠지고 슬림해진 편이기 때문에 레슬러로서 쎄보이는 외향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에겐 2000년대 숀은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35] 특히 고난을 극복하고 반격하고 저항한 끝에 마지막에(혹은 기습적으로) 터지는 스윗 친 뮤직은 정말이지 일품이다. 숀 본인의 타고난 연기력과 언더독으로서의 운영 능력이 보는 이들에게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하기 때문에 숀의 경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안겨줬다. 다만 몇몇 이들(특히 요즘의 빠른 템포와 화려한 무브들과 범프로 이루어진 경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느린 템포와 올드 스쿨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2000년대 숀의 경기 스타일이 취향에 맞지 않아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36] 물론 그 때 그 시절은 본인 스스로가 실제로도 막장이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수 많은 관중들이 보는 무대에서 리얼 개X끼같은 모습을 관중들과 시비가 붙어가면서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37] 출처는 이 곳. 훈훈한 미담은 덤이다.[38] 참고로 영상에서 숀의 오른쪽에 앉은 모자쓴 여성에 그의 아내인 레베카다.[39] 문제는 그래서 어떻게 회사를 지탱해야 하는지에 대한 둘의 생각이 너무 상극이었다는 것이다. 스테로이드 파동으로 무려 회장 빈스 맥마흔이 감옥에 갈 뻔한 것도 모자라 갔다면 감옥에서 암살당할 뻔할 정도로 상황이 매우 안 좋은 상황에서, 진지한 스토리라인과 순수한 테크닉, 그리고 일관적인 모범성을 토대로 회사 이미지를 다시 원상복구시키려고 노력한 브렛 하트의 생각과, 기왕이면 업계 전체에 새로운 흐름을 불어넣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그걸 밀고 나가 새 흐름의 원조가 되자는 숀 마이클스의 생각은 설렁 둘의 성격이 엇비슷하거나 혹은 주로 다루는 아이템이 비슷하다고 했어도 기본적으로 그 방향성이 달랐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40] 아내의 권유로 접한 것이라고 하는데 결혼 하나는 진짜 잘 한 셈. 워낙 불안정한 생활 패턴에 전국을 떠돌면서 활동하는 WWE 레슬러들 중 많은 수가 가정의 불화, 이혼 등을 겪지만 숀은 지금까지도 아내와 잘 지내고 있다. 구글에서 검색만 해도 가족들과 화목하게 찍은 사진들이 많이 나온다. 참고로 숀의 아내는 WCW 나이트로 걸 출신으로 당시 링네임은 위스퍼(Whisper), 본명은 레베카다. 잠정 은퇴를 해야 했던 등 부상 이후 집에서 재활 중이던 숀은 어느 날 친구인 케빈 내쉬와 홀을 보기 위해 WCW 나이트로를 시청하고 있었는데, 이때 무대에서 춤을 추는 레베카를 보고 반해서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이후 둘 사이에서 2000년에 아들, 2004년에 딸이 태어났다.[41] 다만 지금은 예전만큼 열심히 교회에 나가지는 않는 편인데 텍사스가 워낙 근본주의 기독교적인 곳이 많다보니 자신이 TV에서 하는 연기들을 보고 교회 사람들이 경건하지 못한 일이라며 걱정하는 모습에 부담을 느껴서라고 한다.[42] 브렛 하트와 대립시 캐나다 비하 세그먼트가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피부색 등의 조롱이 아닌 국가대항전 식의 어그로 각본이었다.[43] 트리플 H는 멕시코인 비하 단어를 쓰고 부커 T와의 대립에서 흑인이라 월드 챔피언을 못한다.라는 프로모를 하고 부커T를 이기기까지 한 각본 조정을 보였고, 케빈 내쉬는 레이 미스테리오를 비롯한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선수들에게 왜소한 바닐라 난쟁이라고 조롱한 흑역사가 있다.[44] 다만 친구들이 있는 WCW로 가고 싶다고 몇 번이나 빈스에게 보내달라고 애원한 적은 있다. 'WCW? 그거 먹는 건가요?'라는 자세로 흔들리는 모습 자체를 보여준 적 없었던 언더테이커와는 대조적이다. 한때 WCW로 가려는 의지가 분명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 빈스가 'WCW는 너 같은 선수들을 활용할 줄 모른다'고 인내심 있게 설득해서 이적의 위기를 넘겼다. 실제로 WCW에서 크리스 제리코와 브렛 하트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돌이켜 보면 빈스의 말이 맞았다. 본인의 은퇴식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며 '날 잡아준 빈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라고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다만 혹자는 숀이 그 때 정말로 WCW에 갈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데 회사가 경쟁에서 열세인 불리한 상황인 걸 아니까 뭘 하고 싶으면 '나도 내쉬하고 홀 있는 데로 갈랍니다'라고 빈스를 압박하곤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트리플 H와의 관계가 부각되어서 그렇지, 실제로 초창기 마이클스와 가장 친했던 동료는 케빈 내시였으니 이런 요구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트리플 H는 이들의 사조직인 '클릭'에 가장 늦게 합류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 위에도 나와있듯 아내를 이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도 케빈 내쉬다.[45] 하필이면 당시 같은 팀인 트리플 H가 랜디 오턴의 사진들을 공개하면서 했던 말이 게이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사진이라면서 낄낄거리는 중이었는데 거기서 숀의 사진이 떡하니 튀어나온 것. "헌터 네가 저 잡지 여자들이 많이 사갔다며?!! 당장 치워, 치우라고!!!"라고 빡쳐하는 숀이 킬링 포인트. 대립 상대이던 Rated RKO의 에지와 오턴도 똑같이 이불킥스러운 사진들이 나왔는데, 에지는 성인등급 슈퍼스타 기믹을 밀고 나가기 시작했을 때 처음 WWE 챔피언에 오르고 다음 날 리타와 링 위에서 배드씬 세그먼트를 하던 사진이었고(영상 3분 50초 경), 오턴은 샤워하고 막 나와 수건으로 그곳만 가린 사진이었다.(영상 5분 8초 경) 여담으로 오턴은 자기 사진이 공개 되자 이때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상태가 되었다.[46] 배우는 에이전트 오브 쉴드의 그랜트 워드로 유명한 브렛 달튼.[47] WWF 로얄럼블(1997)이 열린 이후로 20년 만이다.[48] 실제로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링으로 돌아오는 선수는 업계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당장 릭 플레어만 해도 WWE에서 그렇게 감동적이고 성대한 은퇴식을 치러줬는데도, TNA에서 링 복귀를 한 예가 있다.[49] 이 때문에 스맥다운 소속인 커트앵글과 브랜드를 초월해 대립을 가진적이 있다. PPV부터 시작된 대립으로 한쪽 브랜드에서 정식경기를 가질 수 없기에 난입식으로만 진행되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PPV에서 대립을 끝냈다.[50] 이 때 잠시 악역 같은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51] 알콜중독자 역할이었다.[52] 허나 트리플 H는 탈모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삭발을 한 것이고 숀은 진짜 탈모다. 트리플 H가 처음 반삭 스타일을 했던 2012년~2013년 때도 탈모끼가 없었고 그 뒤 완전 삭발 스타일을 한 뒤에도 듬성듬성 나있는 머리 라인을 보면 탈모는 아니다.[53] 트리플 H의 본명이다.[54] 정작 숀 본인은 트리플 H라고 부르기 보단 헌터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55] 2019년은 디 제너레이션 X의 멤버로서 헌액되었으며, 릭 플레어에 이은 제2호 2-Time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다.[★]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57] 왜 그런지는 항목참조[★]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59] 1992년부터 싱글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로 부상으로 인해 1차 은퇴를 했던 1998년 4월~2002년 상반기까지를 제외한 기간중 1993년~1996년 4년 연속, 2004년~2010년 7년 연속이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세웠다. 숀 마이클스가 왜 명경기 제조자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61] 참고로 올해의 경기 2위는 레슬매니아 24에서 펼쳐졌던 숀 마이클스 vs 릭 플레어의 경기로 숀은 2008년 올해의 경기 1, 2위를 모두 차지했다.[62]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경기 10위권안에 랭크된 경기들까지 포함시키면 커리어 전부를 합쳐서 총계 18개의 경기가 올해의 경기 Top10에 들어갔다. 올해의 경기 Top 10안에 한 번이라도 랭크되는 것조차 한 해동안 펼쳐지는 수 없이 많은 경기들 중에서 10위 안에 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63] 코바시 켄타, 오카다 카즈치카와 더불어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경기 1위에 쓰리핏으로(3년 연속으로) 참여하는 기록을 달성한 세 명 중 한 명이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