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ミスターハイテンション / Mr.HIGH TENSION> [ruby(井上, ruby=いのうえ)] [ruby(亘, ruby=わたる)] / Wataru Inoue |
NJPW 홍보선전부 & 흥행사업부 직원 | |
<colcolor=#f8d010><colbgcolor=#000> 본명 | <colbgcolor=#ffffff,#2d2f34> 이노우에 와타루 [ruby(井上, ruby=いのうえ)] [ruby(亘, ruby=わたる)] |
생년월일 | 1973년 8월 27일 ([age(1973-08-27)]세) |
신장 | 180cm |
체중 | 104kg |
출생지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도쿄도 코토구 |
학력 | 도쿄전기대학 (전기통신공학과 / 학사) |
유형 | 브롤러 + 테크니션 |
시그니쳐 무브 | 엘보, 역수평 찹[1] 수차떨구기([ruby(水車落, ruby=すいしゃ お)]とし)[2] 변형 만자굳히기([ruby(卍固, ruby=まんがた)]め) 와이번[3] 스태거링 블로우 오라시온 플레임 트라이앵글 랜서 |
피니쉬 무브 | 트라이앵글 랜서[4] 스태거링 블로우[5] 오라시온 플레임[6] 카운트다운 이그니션[7] 파이널 랜서[8] 스피어 오브 저스티스[9] |
별명 | 헝그리 울프 (ハングリーウルフ) 청의의 창 ([ruby(青義, ruby=せい ぎ)]の[ruby(槍, ruby=やり)]) 미스터 하이텐션 (ミスターハイテンション) |
테마곡 | ONLY BEAT (1999 - 2007.3) Countdown Ignition (2007.3 - 2014.4) |
데뷔 | 1999년 10월 10일 (26세)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신일본 FIANL DOME1999 전야제 vs 시바타 카츠요리[10] |
은퇴 | (마지막 경기) 2013년 3월 3일 (39세)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신일본 창단기념일 vs 고토 히로오키 & 칼 앤더슨 & 타마 통가 & 타구치 류스케 (w/나가타 유지 & 슈퍼 스트롱 머신 & 캡틴 뉴 재팬) (은퇴식) 2014년 4월 2일 (40세, 커리어 14년) 도쿄도 분쿄구 코라쿠엔 홀 신일본 Road to INVASION ATTACK 2014 ~이노우에 와타루 은퇴기념대회~ |
SNS | |
주요 커리어 |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 1회 IWGP 태그팀 챔피언 1회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우승 (2008년) G1 태그 리그 우승 (2010년) |
1. 개요
일본의 전 프로레슬러, 현 신일본 프로레슬링 홍보선전부 & 흥행사업부 직원.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헤비급 부족으로 인한 주니어헤비급 선수 헤비급 월장 계획의 대표적인 희생자로, 은퇴 이후 신일본의 직원으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2. 커리어
2.1. 데뷔 전
도쿄도 코토구의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집의 아들로 태어난 이노우에 와타루는, 어린 시절부터 심한 아토피 피부염과 천식에 시달려와서 육상, 수영, 야구 등을 하며 운동으로 체질을 극복해 나가려고 했으나 증상이 너무 심한 것도 있어[11] 전부 흥미는 빨리 잃은 편이였고, '앞으로는 테크놀로지의 시대다'라는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 이과 명문대인 도쿄전기대학에 입학하여 전기통신공학과에 입학했으나 전공에도 크게 흥미를 못 느꼈다.그러던 대학교 3학년 때, 초대 타이거 마스크를 위주로 프로레슬링을 좋아하던 이노우에는 딱히 프로레슬러가 되겠다는 목표도 없이 그저 몸을 잔병에 지지 않게 단련하고 싶다는 생각에 하마구치 짐에 견학을 갔다가 병은 마음부터 시작된다는 애니멀 하마구치의 말에 감명을 받아 하마구치 짐에 들어가 훈련을 받기 시작했고,[12] 건강이 제일이라는 부모님의 묵인 하에 졸업이 다가와도 취직 활동을 접어두고 역에 석간지를 돌리거나 장례식 보조 등 온갖 알바를 하면서 하마구치 짐에 계속 다녔고 천만다행으로 병이 많이 개선되었다.
그러다가 프로레슬러가 될 생각은 없었으나 자신의 단련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어, 업계 탑이자 투혼삼총사가 이끌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응모하여 1996년 12월에 처음 신일본 입문 테스트를 응시했으나 불합격했고, 오히려 투지가 불타오른 이노우에는 1년 뒤 1997년 12월에 입문 테스트에 재응시하여 시바타 카츠요리와 함께 합격 통지를 받고 1998년부터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해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게 되었다.
2.2. 주니어 시절
이노우에 와타루는 초슈 리키, 후지나미 타츠미, 사사키 켄스케 등 대선배들의 심부름꾼을 맡아가면서 연습생 생활 1년 반만인 1999년에 데뷔해 슈퍼 주니어 배틀 로얄에 참가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탈락되고, 10월 10일 코라쿠엔 홀에서 열린 FIANL DOME1999 전야제에서 동기 시바타 카츠요리를 상대로 치킨윙 암 락으로 승리를 거두며 싱글 데뷔전을 치렀다.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선수들을 상대로 싱글경기 위주로 출전하다가 2000년에 영 라이온컵 리그에 출전하지만 마카베 신야, 시바타 카츠요리, 스즈키 켄조, 타나하시 히로시에게 각각 패하며 탈락된다. 싱글 경기만 갖다가 태그팀 경기에도 출전하며 꾸준히 뛰고 다녔고, 2001년에는 시바타 카츠요리와 같이 쟈도&게도를 상대로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 매치를 벌였지만 패하면서 쳄피언 등극에 실패했으며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BOSJ) 8에 동기 시바타와 첫 참가하여 A조에 배속되지만 영 라이온이 그렇듯 전패 승점 0점으로 광탈했다.
2002년, 프로레슬링 NOAH와 신일본의 주니어 대항전 때 이노우에도 등장하면서 2월 17일에 수신 선더 라이거와 같이 카네마루 요시노부 & 키쿠치 츠요시를 상대했으나 패했다. 이 때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라이거와 나눴던 대화가 이노우에의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노우에가 "야유가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계속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자, 라이거는 "와타루, 그러면 안된다. 프로레슬링은 주변의 소리, 목소리를 확실히 듣지 않으면 안 돼."라고 말 해주었다.[13] 5월에 BOSJ 9에 참가하여 이번에도 광탈했으나 게도에게 승리하여 승점 2점을 챙겼다.
2002년 11월 눈 근육 마비로 반년이나 장기 결장을 끊고 동기 시바타와 타나하시보다 뒤쳐지게 된 이노우에는 해외 무사수행을 떠나 멕시코의 CMLL에도 출연하는 등 경험을 쌓은 후 2004년에 귀국하여 NOAH에 또 출연해 엘 사무라이와 같이 마루KEN(마루후지 나오미치 & KENTA)를 상대로 GHC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 매치를 벌였지만 패하면서 챔피언 등극에 실패한다. 5월에는 또다시 BOSJ 11에 참가하여 A조에 배속되었으며, 비록 타구치 류스케와 함께 승점 4점으로 꼴지였으나 카네모토 코지에게 승리를 거두며 카네모토[14]의 결승행을 원천봉쇄해버렸다.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오사카 프로레슬링에도 출연하며 타단체에서도 경기를 갖다가 2005년 3월 4일, 신일본에서 카네모토 코지와 같이 쟈도&게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새로운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한다. 2회 방어에 성공했지만 5월 14일, BOSJ 12 직전에 미노루 & 고토 히로오키에게 패하며 챔피언 자리를 잃고, B조로 배속된 BOSJ 12에서도 3승으로 기세를 올리던 도중 부상으로 남은 2경기(vs 안자와 아키야, 타케무라 카츠시)를 기권해야 했다.
한동안 챔피언십 전선에서 멀어지디가 2006년에 다시 카네모토 코지와 같이 타구치 류스케 & 엘 사무라이를 상대로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 매치를 갖지만 패하면서 챔피언 등극에 실패한다. 5월 27일부터 열린 BOSJ 13에 절치부심하여 참가한 이노우에는 GENTARO를 제외한 전 선수에게 승리하며, 5승 1패 승점 10점 조 1위로 준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나 준결승에서 18분 42초만에 미노루의 미노루 스페셜에 항복하며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2007년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도 등장해 신춘 배틀 로얄에 참가했지만 탈락되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선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컨텐더에 오르면서 미노루와 경기를 갖지만 패하면서 챔피언 등극에 실패한다. BOSJ 14에 A조로 참가하여 수신 선더 라이거를 제외한 5명에게 모두 승리하고[15] 5승 1패로 또다시 조 1위로 준결승전에 진출했으며, 작년에 자신을 떨어트린 미노루를 꺾고 결승전에서 밀라노 콜렉션 A.T.와 맞붙지만 19분 37초만에 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한다.
이윽고 카네모토 코지와 같이 7월 6일 TAKA 미치노쿠 & 딕 토고를 상대로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태그팀 챔피언십 매치를 벌였지만 패하면서 실의에 빠진 이노우에는 갑자기 소식을 끊고 사라졌고, 10월 카네모토의 코멘트로 멕시코에 가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1월에 귀국한 이노우에는 12월 8일, 타구치 류스케를 상대로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매치에서 불과 7분여만에 탭아웃으로 승리를 거둬 새로운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하며 데뷔 8년만에 주니어의 정점에 등극했다.
IWGP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으로 군림하며 크리스토퍼 다니엘스, 타구치 류스케를 상대로 방어전을 성공시킨 이노우에는 2008년 5월에 BOSJ 15에 참가했고, 수신, 미노루, 타카이와 타츠히토, 유지로에게 승리를 거뒀으나 타구치 류스케에게 직접 패배하여 승자승에 밀려 조 2위로 준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준결승전에서 타이거 마스크 4세에게 불과 9분만에 핀을 따내며 결승에 진출한 이노우에는 6월 15일 코라쿠엔 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카네모토 코지를 만나 27분의 대혈전 끝에 변형 트라이앵글 랜서로 기브업을 따내며 8번만에 결국 첫 BOSJ 우승을 달성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이노우에는 작년 5월에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렸으며, 동시에 헤비급 전향을 선언하며 보유 중이던 IWGP 주니어 헤비급 벨트도 반납하게 되었고, 한 달 후인 7월 16일 공식적으로 IWGP 주니어 헤비급 벨트를 반납했다.
2.3. 헤비급 전향과 청의군 시절
헤비급 전향 직후인 8월, G1 클라이맥스 18에 참가한 이노우에는 비록 2승 4패로 헤비급의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체감했으나 나카니시 마나부와 자이언트 버나드라는 슈퍼 헤비급 두 명을 잡으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7회 G1 태그 리그에 카네모토 코지와 같이 여기서는 별 성과가 없었다.12월부터는 G.B.H 소속의 이시이 토모히로와도 여러차례 격돌하게 되면서 이듬해인 2009년 5월 폴스 카운트 애니웨어 매치로도 맞붙게 되었으며, 장외에 쌓인 의자에 오라시온 플레임을 작렬하며 이시이에게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그 뒤로는 부진이 이어져 G1 클라이맥스 19 출전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던 9월, 나가타 유지와 태그로 경기를 치렀다 야노 토루에게 패배한 후, 백스테이지에서 나가타의 투혼 빈타를 얻어맞으면서도 나가타와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슈퍼 스트롱 머신, 히라사와 미츠히데와 함께 청의군(青義軍)[16]을 결성했다.
그러나 이 때부터 이노우에의 몸은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했는데, 10월에 지방 흥행에서 목을 처음으로 부상당했고, 병원에서 경추 염좌를 진단받은 후 얼마 후 복귀했으나 이 때부터 목과의 싸움이 이어지게 되었다.[17]
청의군 유닛에서 활동하며 힐 군단으로 날뛰던 CHAOS, NO LIMIT(나이토 테츠야 & 타카하시 유지로)에게 2010년 4월에 나가타와 함께 선전포고를 했고, 5월 3일 레슬링 돈타쿠 2010에서 IWGP 태그팀 챔피언십 벨트를 걸고 CHAOS의 배드 인텐션즈(칼 앤더슨 & 자이언트 버나드), NO LIMIT(타카하시 유지로 & 나이토 테츠야)를 상대로 트리플 쓰렛 태그팀 매치를 치러 앤더슨에게 스피어 오브 저스티스를 작렬하며 새로운 IWGP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러나 NO LIMIT가 재도전을 선언하여 6월 19일 도미니언에서 똑같이 트리플 쓰렛 리매치로 벌어진 방어전에서, 칼 앤더슨에게 핀을 따이며 배드 인텐션즈에게 다시 챔피언 자리를 잃는다. 이후 9회 G1 태그 리그에 또다시 나가타 유지와 같이 A조로 참가해 조 1위로 준결승전에 진출했고, 배드 인텐션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다음 결승전에서 유지로에게 스피어 오브 저스티스로 직접 폴을 따내며 NO LIMIT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8월에는 G1 클라이맥스 20에 B조로 참가하며 2년만에 G1에 복귀했으나 별 성과는 못 거두었다.
2011년 8월 26일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동일본 대진재 부흥 지원 챠리티 프로레스 ALL TOGETHER 흥행에서[18] 나가타 유지 & 텐잔 히로요시 & 니시무라 오사무와 팀을 이뤄 아케보노 & 하마 료타 & 모리시마 타케시 & 요시에 유타카를 상대로 패했다.
이윽고 B조로 출전한 G1 클라이맥스 21에서는 스트롱맨과 칼 앤더슨에게 승리를 거뒀으나 일본인 레슬러들에게 전부 패배하며 대회 7일차에 일찌감치 결승행이 좌절되었으며, 스즈키 미노루에게 패배 후 스즈키가 이노우에를 영 라이온 취급하면서 스즈키 미노루와 항쟁을 진행했으나 9월 19일 싱글 매치에서 다시 스즈키의 곳치식 파일 드라이버를 얻어맞고 패배하고 말았다. 10월 말에 청의군과 협력 관계인 텐잔과 함께 제 10회 G1 태그 리그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했다.
2012년 1월 4일, 레슬킹덤 VI에서 나가타 유지와 태그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후나키 마사카츠 & 코우노 마사유키와 대전했으나 후나키의 왼발 하이킥을 카운터로 맞고 핀을 내줘야 했다.
이걸 계기로 오랜만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경기를 가지며 나가타 유지와 같이 코우노 마사유키 & 타나카 미노루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NOAH에도 오랜만에 등장해 마루후지 나오미치 & 모하메드 요네를 상대로 경기를 갖지만 패하고, 신일본 프로레슬링 &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합동흥행에서는 나가타 유지 & KUSHIDA와 같이 후나키 마사카츠 & 코우노 마사유키 & 타나카 미노루를 상대로 패하고 대만에서 열린 합동흥행에서는 나가타 유지 & 카네모토 코지와 같이 무토 케이지 & 스와마 & 콘도 슈지를 상대로 패하고, 코지마 사토시 & 텐잔 히로요시와 같이 무토 케이지 & 카즈 하야시 & 후나키 마사카츠를 상대로 패한다.
이러한 부진 끝에 또다시 G1 클라이맥스 출전이 좌절되었으며, 9월 7일 G1 최종일에 난입한 사쿠라바 카즈시와 신일본을 떠난 전 동기 시바타 카츠요리와 대전이 결정되어 타카하시 히로무를 파트너로 태그팀 매치를 치렀으나 영 라이온인 타카하시로 시바타와 사쿠라바를 이기는 것은 무리여서 3분만에 패배했다. 10월 8일 료고쿠 국기관에서는 마카베 토우기와 함께 다시 사쿠라바 & 시바타와 대결했으나 본인이 직접 시바타의 PK를 맞고 패했고, 11월 11일 오사카에서는 사쿠라바의 39락을 당하며 패배의 쓴맛을 또 다시 봐야 했다.
2.4. 무념의 은퇴
이렇게 활동을 이어가던 이노우에였으나, 2013년 3월 3일 코라쿠엔 홀에서 열린 신일본 창단기념일 흥행에서 나가타 유지 & 슈퍼 스트롱 머신 & 캡틴 뉴 재팬과 같이 타마 통가 & 칼 앤더슨 & 타구치 류스케 & 고토 히로오키를 상대로 패하는데, 경기가 끝난 후 경추 추간판 탈출증 및 오른쪽 변형성 어깨 관절염[19]이 악화되며 장기 결장에 들어가게 되고 만다.본래 가을에 복귀할 것을 노리고 재활 훈련을 하지만, 프레임이 크게 타고난 게 아니었던 몸을 무리해서 헤비급으로 끌어올린 후 부상을 끌어안아가며 전력으로 상대와 싸운 이노우에였기에 이노우에의 몸에 쌓인 데미지들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간 상태였다.
몸이 심각하게 고장나 더이상 프로레슬링 트레이닝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을 깨달은 이노우에는 결국 9월에 아내에게 먼저 은퇴를 결심했음을 알렸고, 이듬해인 2014년 2월 2일, 이노우에 와타루는 팬들 앞에 서서 4월 2일자로 은퇴하며, 경기를 치를 수 없는 몸상태가 되어 은퇴식만 치러진다는 말을 전하며 공식 은퇴 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4월 2일, 이노우에가 가장 좋아하던 코라쿠엔 홀 가득찬 1824명의 만원 관객과 함께 Road to INVASION ATTACK 2014~이노우에 와타루 은퇴 기념 대회~가 열렸고, 제 4경기 청의군 vs 스즈키군의 6인 태그 매치에서 세컨드로 나와 장외에서 스즈키 미노루를 상대하며 청의군의 승리에 공헌하며 마지막 역할을 마쳤다.
모든 경기가 끝난 후 이노우에 와타루의 은퇴 세레모니가 열렸고, 제자의 은퇴식에 참석한 애니멀 하마구치의 "기합이다!" 10연발과 함께 이노우에 와타루는 링을 떠났다.
2.5. 은퇴 이후
이노우에가 신일본 사무소에 은퇴 결심을 알리러 갔을 때 이노우에의 성실성을 인정한 신일본에서 이노우에에게 홍보선전부 사원으로 입사를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인 이노우에는 곧바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사원으로 재입사했다.명문 이과대학 출신임에도 프로레슬러가 된 이후에는 컴퓨터를 다뤄본 적도 없었으나 이노우에는 특유의 성실성으로 회사에 무사히 녹아들었고, 프로레슬링 관전 대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홍보선전부 & 흥행사업부 소속 직원으로서 회사와 선수 사이의 중간 다리 역할을 맡는 등 십수년간 활약하며 자신이 활약했던 신일본을 뒤에서 떠받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
3. 여담
- 입장 시 오른팔을 전력으로 위로 치켜드는 것이 이노우에의 상징이다.
- 어렸을 적 심한 아토피 피부염과 천식으로 고통받아 항상 얼굴이 붉은 빛이었으며, 심할 때는 화농까지 올라와 얼굴 절반 이상을 거즈로 덮어야 했다고 하며, 대학 시절 애니멀 하마구치 짐에 들어가 몸을 단련하면서 상태가 개선되어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 2008년 6월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15 우승 직후, 이전 해인 2007년 5월에 동갑의 여성과 결혼했음을 밝혔다.
- 울트라맨 가이아 34화에서 프로레슬러 역할로 출연한 적이 있다.
- 굉장히 착실한 성격의 소유자. 성격 까칠하기로는 두 말 할 것도 없는 초슈 리키와 똥군기의 제왕으로 꼽히는 사사키 켄스케의 심부름꾼으로 있었는데, 초슈에게 혼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 한 때 한 군기 하던 수신 선더 라이거의 군기잡이를 종식시킨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소싯적에 경기를 조진 타나하시 히로시를 정말로 두들겨 팬 바가 있는 라이거의 온갖 심한 갈굼에도 힘든 내색 하나도 없이 묵묵히 할 일을 해나가는 이노우에를 보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라이거가 군기잡이를 그만뒀다고 한다.
- 은퇴 이후 신일본 사원 시절 아이들을 위한 레슬링 교실 athletic camp LION을 기획하여 탄생시켰으며, 보디 스포츠 유아원에 운영 주체는 넘어갔지만 2025년에도 유지되고 있다.
- 은퇴 이후 10년이 넘었지만 군살이 거의 없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으며, 서드 제너레이션 클럽에 간혹 일일 코치로도 등장한다.
4. 둘러보기
<colbgcolor=black><colcolor=#000000> | |||||
나가타 유지 | |||||
{{{#!folding 【 전 멤버 】 | 아케보노 | 캡틴 뉴 재팬 | 킹 파레 | ||
슈퍼 스트롱 머신 | 이노우에 와타루 |
역대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우승자 | ||||
2007 | → | 2008 | → | 2009 |
밀라노 콜렉션 A.T. | → | 이노우에 와타루 | → | 카네모토 코지 |
역대 월드 태그 리그 우승자 | ||||
2009 | → | 2010 | → | 2011 |
배드 인텐션즈 (자이언트 버나드 & 칼 앤더슨) | → | 청의군 (나가타 유지 & 이노우에 와타루) | → | 스즈키군 (랜스 아처 & 스즈키 미노루) |
[1] 기본기지만 칠 때마다 상당한 파열음을 자랑하는 좋은 역수평 찹의 소유자였다. 코너에서 머신건식으로도 자주 쳤다.[2] 주로 카운터기로 사용한다.[3] 틸트 어 휠 것버스터.[4] 닐링 스텝 오버 헤드홀드 암바. 이노우에의 상징기. 과거 본인이 심부름꾼을 맡았던 선배 사사키 켄스케의 스트랭글 홀드γ에 영향을 받아 만든 기술로, 상대의 왼팔을 잡고 목에 왼다리를 건 후 전방으로 굴러 시전해서 목에 걸었던 왼다리로 상대의 오른팔을 막고 양 다리 사이에 상대 왼팔을 끼워 위로 올려서 꺾는다. 일반 암바 자세에서 들어가거나 간혹 롤링 크레이들로 상대를 돌리거나 다리를 잡고 핀폴로 들어가기도 하며, 이름은 기술을 걸었을 때 자신의 왼다리와 상대의 머리가 삼각형을 이루며, 상대의 팔을 잡고 늘어진 모습이 마치 창을 찌르는 모습을 연상케 해서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월드 원더 링 스타덤의 코나미가 이노우에에게 직접 전수받아 피니셔로 쓰고 있으며, 2023년 7월 DDT 프로레슬링의 흥행에 방문했을 때 같은 애니멀 하마구치 짐 출신의 후배 코로쿠 유우야가 사용하는 것을 알고선 좀더 자세히 전수해 주고 공인해주었다.[5] Staggering blow. 잭나이프 피셔맨 버스터. 상대의 다리를 4자로 클러치한 후 사용하는 피셔맨 버스터로, 2002년 눈 근육 마비 수술로 인한 장기결장 당시 생각해낸 피니셔. 나중에는 시그니쳐 무브화 되었다. 영어로 Staggering은 '매우 놀랍고 충격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6] 잭나이프 팔콘 애로우. 상대 다리를 4자로 클러치한 후 사용하는 팔콘 애로우로 CIMA의 퍼펙트 드라이버와 동형기. 스태거링 블로우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사용하여 2008년 1월 4일 도쿄 돔에서 열린 신일본 레슬킹덤 II에서 크리스토퍼 다니엘스를 상대로 처음 공개하여 승리했으며, 이름은 주간 프로레스가 이 경기에 '행복 배달인(幸せ配達人)'이라고 코멘트한 것을 보고 학창 시절 읽었던 미야모토 테루의 책 우준(優駿)에서 나온 명마 오라시온(스페인어로 '기도')을 떠올려 오라시온과, 자신의 등장곡 Countdown Ignition에서 '착화'된 불꽃을 완성시킨다는 의미로 '플레임'을 붙여 1월 14일에 공표했다. 역시 이후에는 시그니쳐 무브화되었다.[7] 파이어맨즈 캐리 인투 브레인버스터. 가장 사용빈도가 적은 피니셔였다.[8] 인디언 데스락 + 닐링 스텝 오버 헤드홀드 암바. 트라이앵글 랜서는 상대의 다리를 그냥 놔두기 때문에 상대가 다리로 도망가서 로프 브레이크로 트라이앵글 랜서를 벗어나자 2009년 경에 만든 기술로, 자신의 오른 다리로 인디언 데스락을 걸어 상대의 다리까지 봉인하고, 왼다리를 상대 머리 뒤에 건 후 팔을 뒤로 꺾는다. 트라이앵글 랜서의 업그레이드 기술이다.[9] 스피어. 오른 어깨로 상대를 전력으로 들이받으며 들이받을 때 몸을 회전시켜 임팩트를 더한다. 헤비급 전향 이후 2010년경부터 피니셔화되었으며, 청의군 가입 이후 '저스티스'를 붙여 명칭이 스피어 오브 저스티스가 되었다. 체격적으로 이점이 부족한 이노우에가 헤비급을 쓰러트릴 설득력을 얻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전력으로 들이받았으며, 이노우에의 은퇴 원인인 오른쪽 변형성 어깨 관절염이 심화되는 원인이 되었다.[10] 시바타도 이 날이 데뷔전이었다. 또한 같은 날에 타나하시 히로시도 데뷔전을 치렀다.[11] 심할 때는 얼굴에 화농까지 올라와서 얼굴의 절반 이상을 거즈로 덮어야 했다고 한다.[12] 아침부터 낮까지는 대학 생활, 밤에는 대학 보조원 생활을 하고 그게 끝나면 하마구치 짐으로 가서 몇십분이라도 트레이닝을 하는 빡센 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13] 이 때 둘은 상대 단체에 야유를 불러일으키는 외적의 신분으로 와 있었는데, 즉 외적의 신분으로 와 있으면 특히나 주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상대 단체 팬들에게 야유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일류 프로레슬러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 것이다.[14] 선두 3명 승점 9점, 카네모토 7점.[15] 프린스 데빗의 이탈로 부전승 1승 포함.[16] 일본어로 정의(正義)를 '세이기'라고 읽는데, 나가타의 상징색인 '청'도 음독은 '세이'로 동일한 것을 이용한 동음이의어 활용 군단명이다.[17] 이때 병원에서 이노우에가 의사에게 "블럭 주사 맞으면 시합 계속 할수 있나요...?"라고 묻자 의사가 "당신 도대체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거야!"라고 말하며 격노했다고 한다.[18] 동일본 대지진 기금 기부목적으로 도쿄 스포츠의 주최 아래 최초로 신일본 & 전일본 & NOAH 메이저 3사가 모인 최초의 흥행이었다.[19] 헤비급으로 전향하며 헤비급을 이기기 위해 몸을 안 아끼고 오른 어깨를 불살라 전력으로 들이박던 스피어도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