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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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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국가대표 경력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다.

2. 국가대표 경력

2.1. UEFA 유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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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1년 U-17, 2002년 U19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2004년 성인 대표팀에 데뷔하여 헝가리와의 친선 경기에 A매치 첫 출전하였다.

루디 푈러 체제 말기와 위르겐 클린스만 체제로 새로 단장하는 독일 대표팀에 필립 람, 루카스 포돌스키와 함께 독일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자주 기용되었으며, 이들은 유로 2004와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어린 나이답지 않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슈바이니는 유로 2004에서 체코전 미하엘 발락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으나 독일은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고 독일의 최악의 부진 속에 2무1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충격을 맛보았다. 이후 독일의 전면적인 세대교체와 함께 람-포돌스키-슈바이니 3인방은 유망주에서 독일 대표팀의 중심으로 성장하며 조국에서 열릴 월드컵에 대한 기대를 한껏 모으게 되었다.

2.2.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는 절친 포돌스키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며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독일은 3위를 차지했다.

2.3. 2006 FIFA 월드컵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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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의 어린 나이답지 않게 유로 2004와 컨페드컵에 출전하는 등 적지않은 A매치에 출전해 (국대 한정으로) 국제대회 경험이 충분했던 슈바인슈타이거는 3,4위전까지 독일이 치른 7경기 중 6경기를 선발로 뛰었다. 조별예선 첫 경기 코스타리카 전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추가골과 경기 막판 토어스텐 프링스의 골을 어시스트했으며, 마지막 라운드 에콰도르전에서도 아웃되기 직전의 볼을 가까스로 클로제에게 넘겨주며 어시스트를 기록한데다 후반전엔 날카로운 롱패스로 역습의 시발점이 되며 포돌스키의 쐐기골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조별리그에서만 3어시스트를 기록한 슈바인슈타이거는 토너먼트에서는 큰 무대에서의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스웨덴전의 강력한 중거리슛외에는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는 1:0으로 밀리고 있는 와중에 흥분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등 다급한 플레이로 일관하며 스스로 컨트롤이 안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보로프스키와 교체되었다. 4강 이탈리아전에서는 아예 보로프스키에게 선발 자리를 넘겨주고 후반에 교체로 출장해야 했다.

그래도 마지막 포르투갈과의 3,4위전에서 자신의 인생경기를 펼치며 전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는데,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2골을 넣고 프티의 자책골까지 어시스트하며 원맨쇼를 펼쳤다. 첫 월드컵에서 2골 3도움이라는 눈에 띄는 스텟을 찍어주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당시 포지션은 왼쪽 윙어였다. 준수한 개인기와 볼터치를 보여줬기에 테크니션이 부족했던 독일 대표팀에서 많은 출장기회를 부여받으며 제법 창의성을 불어넣은데다 강력한 중거리슛팅까지 장착했지만, 윙어치곤 부족한 드리블 돌파 및 빠르지 않은 스피드에 지나치게 중앙 지향적인 성향, 중거리슛 난사등이 단점으로 지적받았다.

2.4. UEFA 유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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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08에서도 맹활약했는데, 처음엔 프리츠에게 밀린 서브로 출전하지만[1] 첫경기 폴란드전에서도 상대 수비에 대한 집요한 견제끝에 루카스 포돌스키의 추가골을 만들어내며 주전자리를 다시 차지한다. 하지만 크로아티아전 퇴장으로 인해 조별리그 경기 마지막 경기를 결장하게 되고, 이 경기는 미하엘 발락의 대포알같은 프리킥골로 간신히 1:0으로 승리하며 독일은 크로아티아에 밀린 조 2위로 간신히 8강에 진출한다.

8강 상대는 2006 월드컵에서 만났던 포르투갈. 이 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4강행을 이끈다. 왼쪽 측면에서 2대1 패스를 주고받으며 올라온 포돌스키가 중앙으로 빠른 땅볼 크로스를 연결했고, 슈바이니는 오른쪽윙에서부터 중앙으로 돌아들어가며 번개같은 쇄도로 선제골에 성공한다. 이후 두 번의 정확한 프리킥으로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발락의 헤딩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4강 터키전에서도 이른시간에 선제골을 실점했으나 단 4분만에 포돌스키의 크로스를 날카로운 침투로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스페인과의 결승전은 주도권을 장악당한 상황에서도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며 홀로 고분군투했으나 팀은 결국 1:0으로 패한다. [2]

2.5.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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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할이 뮌헨 감독이 되면서 떠오른 슈바인슈타이거의 중미로써의 대활약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이어졌다.

1라운드 호주와의 경기에서부터 미하엘 발락의 공백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중원 장악능력을 보여주며 호주와 가나를 격파했다. 중간에 세르비아에게 클로제의 퇴장과 포돌스키의 PK실축 등 악재가 겹치며 1-0으로 패했으나 다행히 독일은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한다.

잉글랜드와의 16강전에서는 전반부터 제라드-램파드-베리의 중원을 압도하며 멀찌감찌 앞서갔고, 환상적인 역습으로 뮐러의 3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4-1 대승을 이끌고 8강에 진출했다.

당대 최강 리오넬 메시가 뛰고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이 이끄는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에서는 전반 3분부터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어시스트를 기록한데 이어 후반에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3]급의 드리블 돌파를 보여주며 프리드리히의 골까지 만들어낸다. 수비에서도 메시를 꽁꽁 묶고 2어시를 올리는 등 슈바이니의 맹활약 힘입어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4-0으로 관광보낸다. 이 경기에서 슈바이니는 MoM에 선정되었다.

스페인과의 4강전에서는 분전 끝에 푸욜에게 헤딩골을 내주며 패배했지만, 주장완장을 차고 나온 우루과이와의 3,4위전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토마스 뮐러의 선제골을 만들어내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이번에도 월드컵 3위를 기록했다. 대회 통산 4도움으로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다수의 언론과 피파로부터 대회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또한 슈바이니는 2009-10 시즌 맹활약하며 팀의 더블과 챔스 준우승, 그리고 독일의 월드컵 3위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2010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는 기쁨을 맛봤다.

2.6. UEFA 유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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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 유로 2012도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어 매 경기 선발출장 했으며 대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볼터치를 한 선수로 기록 되었지만 활약은 신통치않았다. 부상 이후 떨어진 폼을 완전히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나마 포르투갈전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동선을 간파해 안정적인 포백보호를 통한 클린싯 승리를 이끌었고, 네덜란드전에서는 전반전 마리오 고메스의 두 골을 모두 어시스트하며 슈바인슈타이거를 자유롭게 냅두면 어떤 참변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안타깝게도 그 외 경기에서는 그리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진 못하고 딱 '평타'만 쳤다. 덴마크와 그리스를 차례로 격파하고 올라가는 동안 꾸준히 선발출장 했지만 인상적인 활약은 아니었다.

독일은 결국 이탈리아전의 졸전끝에 2-1로 패하며 4강에서 탈락한다. 안드레아 피를로와의 중원싸움에서 완패한 것도 원인이지만 마리오 발로텔리의 이른 시간에 터진 두 방에 결국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이며 패하고 말았다.

2.7.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 노이어 · 2 그로스크로이츠 · 3 긴터 · 4 회베데스 · 5 후멜스 · 6 케디라 · 7 슈바인슈타이거 · 8 외질
9 쉬얼레 · 10 포돌스키 · 11 클로제 · 12 칠러 · 13 뮐러 · 14 드락슬러 · 15 두름 · 16
17 메르테사커 · 18 크로스 · 19 괴체 · 20 보아텡 · 21 무스타피 · 22 바이덴펠러 · 23 크라머
파일:독일 국기.svg 요아힘 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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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독일팬들도 바이에른 팬들도 조마조마했다. 카메룬과의 평가전에서 결장했고, 최종 평가전 아르메니아전에서도 후반 20분정도만 나와서 뛰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얼마 안돼서 베네딕트 회베데스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1차전 직전 훈련중에 부상당해 62km나 떨어진 병원으로 헬기로 긴급 이송되었다는 기사가 일파만파 퍼져 독일과 바이에른 팬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었으나 다행히 큰 부상때문이 아니고 재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CT촬영하러 갔던 거였다. 그래도 컨디션이 온전하지는 않아 포르투갈과의 1차전에서는 교체멤버에는 포함되었으나 출장하지는 못했다. 독일은 이 경기를 토마스 뮐러의 헤트트릭과 페페의 퇴장에 힘입어 4:0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또한 애꿎은 포르투갈은 대체 무슨 죄인지 이 경기의 대승으로 약 한 달 전에 있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4강 경기에서의 대패를 국대에서나마 어느 정도 코엔트랑, 페페, 호날두에게 분풀이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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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은 보아텡 의 대결로 관심이 모아졌던 가나전[4]. 예상 외로 가나의 엄청난 선전에 독일이 말리는 양상이었고, 슈바인슈타이거는 2대1로 밀리던 후반 21분 사미 케디라와 교체되어 들어가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확실히 토니 크로스의 다소 정직한 패스보다는 경험이 많은 슈바인스타이거의 경기 조율이 더 클래스가 있었고, 후반 막판에 메수트 외질에게 꿀패스도 찔러줬지만 가나 수비가 혼신의 힘을 다해 클로제에게 마지막 공이 흘러가는걸 막아내서 결승골로 이어지진 못했다. 경기는 2-2 무승부로 끝났지만 슈바이니의 폼은 제법 괜찮았다는 평. 많은 독일의 레전드들도 토니 크로스만을 중심으로 하는 답답한 중원 경기운영을 비판하며 슈바이니의 선발을 촉구했다.[5][6]

3차전 미국전에서도 중원에서 홀딩으로 분전하며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잘 수행해줬다. 다만 부상여파로 폼이 완벽하지 않았는데 미국 선수들이 워낙 거친태클을 많이 걸어서 땅바닥에 여러번 뒹굴며 갖은 고생을 다했다(..) 여튼 토마스 뮐러의 결승골로 1대0으로 승리하며 조 1위로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16강 알제리전과 8강 프랑스전도 연이어 선발출장했으며, 사미 케디라와 함께 부상으로 골골거렸지만 적어도 평타는 쳐주며 독일의 4대회 연속 4강행을 이끌었다. 특히 프랑스전에서 후멜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다 쏠려서 가려졌지만 안정적인 포백보호는 인상적이었다. 4강 상대는 개최국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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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에서도 워낙 독일의 화력이 불이 붙어 돋보이진 않았지만 수비적인 역할의 중심추를 담당하며 브라질의 역공을 철저히 봉쇄했고, 12.6km를 뛰며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활동량을 기록해 독일의 7-1 대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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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슈바인슈타이거는 간지폭풍 그 자체. 거의 독일의 영혼 그 자체였다.

아르헨의 소림 축구급 태클과 거친 육탄전에 상대를 수없이 쓰러뜨리고, 또 본인도 수없이 그라운드에 뒹굴었다. 다리 경련이 올라온 상태에서 비글리아와 마스체라노의 쌍둥이 태클공격을 받고 쓰러졌으나 벌떡 일어나서 뛰는 모습은 오오 감동. 결국 아게로와의 충돌로 얼굴에 출혈까지 있었는데다, 요아힘 뢰브 감독은 그로스크로이츠와 교체시키려했지만 자신이 끝까지 뛰겠다고 요청해 끝끝내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단순히 출혈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살이 찢어져 봉합이 필요했으나 본인의 의지로 당연히 마취도 안하고 사이드라인에서 급하게 꿰메고 들어왔다. 독일 관중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결국 투혼을 보여준 슈바이니는 연장 후반 마리오 괴체의 한방으로 앞서가게 되고 독일의 우승이 확정되자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껴안고 눈물을 보였다.[7]

또하나의 이 경기의 백미로는 슈바이니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대회 최고의 홀딩 미드필더를 두고 한판 승부. 결국 슈바이니는 양 팀 합쳐서 가장 높은 15.3km 라는 초인적인 활동량을 보여주며 리오넬 메시로드리고 팔라시오 등 상대 공격진들을 잘 방어해내며 숨은 공신으로 활약했다. FIFA 선정 MOM은 결승골을 터뜨린 마리오 괴체가 차지했지만 진정한 이 경기의 숨은 영웅은 슈바인슈타이거라는데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경기 후 홀로 스카이스포츠 평점 9.0을 받으며 양팀 합쳐 최고 평점을 기록, MVP로 선정되었다. 이날 124회의 볼터치로 필립 람의 131회 다음으로 많았으며, 90%의 패스 성공률과 4회의 인터셉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8]

역시 FIFA 선정 대회 베스트11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외 스카이스포츠, 데일리메일 등 다수 언론사로부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나름 호평을 받았다. 아래는 그나마 공신력 높은 스카이스포츠가 선정한 토너먼트 베스트11이니 참고할 것.[9]
파일:슈바인슈타이거 월드컵 우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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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월드컵 우승컵을 획득한 슈바인슈타이거

2.8. UEFA 유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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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에서의 첫 시즌은 부상으로 인해 다소 아쉬운 시즌을 보냈지만, 요아힘 뢰브 감독의 신뢰는 여전해서 UEFA 유로 2016 독일 국가대표 최종 23인 명단에 캡틴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개막 직전 헝가리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토니 크로스와 교체되어 드디어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팀도 2:0으로 승리했다.

2016년 6월 13일, 조별리그 1차전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 후반 41분 교체 투입되었고, 경기 종료 직전 역습 찬스에서 전방으로 침투하면서 메수트 외질이 올린 크로스를 골로 연결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추가골을 터뜨렸다.

이후 주전 미드필더인 크로스-케디라 라인에 밀려 교체 출전에 그쳤지만 8강 이탈리아전에서 경기 초반 케디라의 부상으로 조기 투입되었다. 급작스러운 투입이었지만 그래도 105분 동안 1인분은 해내며 팀에 적어도 민폐는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마리오 고메즈가 비록 잔루이지 부폰에게 막혔지만 결정적인 추가골 찬스를 만들어낸 시발점이 되는 킬패스도 넣었다.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5번 키커로 나섰고, 바로 직전 마누엘 노이어레오나르도 보누치의 슛을 멋지게 선방한 후 자신에게 경기가 끝낼 기회가 왔지만 승부차기에 약한 새가슴 모습을 보여 실축하면서 경기를 끝맺지 못했다. 바이에른 뮌헨이나 슈바인슈타이거 팬들에게는 악몽으로 남아있는 11-12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승부차기가 생각나는 소름끼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10][11] 다행히 독일은 6~9번 키커가 모두 성공시켰고 노이어가 이탈리아의 9번 키커 마테오 다르미안의 슛을 막아 독일은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4강 프랑스전에서는 사미 케디라가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며 이번 유로에서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했다. 전반전에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특히 바이에른 혹은 독일 킬러라고까지 불리던 올리비에 지루를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로 만들어버렸을 정도로 지루와 앙투안 그리즈만을 향하는 역습을 모조리 차단했다. 첫 5분 동안은 프랑스가 활발히 공세를 펼쳤지만 그 이후 독일이 주도권을 잡으며 일방적으로 두드려패며 프랑스를 압박했고, 이 기반은 엠레 찬과 슈바인슈타이거의 중원 장악 덕분이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결장한 마리오 고메즈의 공백과 토마스 뮐러의 부진으로 골을 넣지 못했고, 그러다 전반 종료 직전 프랑스의 코너킥 공격때 파트리스 에브라와의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슈바인슈타이거는 핸드볼 반칙을 범하며 PK를 내줬다. 결국 그리즈만에게 선제골을 실점하면서 독일은 조급해졌고, 후반전 수비 실수와 함께 추가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슈바인슈타이거는 독일이 0-2로 밀리고 있는 후반 78분에 레로이 자네와 교체되었고, 독일은 상황 반전에 실패하며 탈락했다.[12]

대회 종료 후 로타어 마테우스미하엘 발락이 슈바인슈타이거의 국가대표팀 은퇴를 권유했고, 결국 7월 29일 독일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절친으로 유명한 루카스 포돌스키와 함께 핀란드와의 친선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가 확정됐다. 포돌스키는 부상으로 경기엔 못 나오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마지막으로 주장으로서 경기를 마치고 마누엘 노이어에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자리를 물려줌과 동시에 지난 12년의 대표팀 커리어가 마무리하게 되었다.

9월 1일, 핀란드전에 선발 출장해 65분동안 그라운드를 누볐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클래스 있는 패스와 활동량을 보여주며 마지막 A매치 경기를 치렀다. 관객들 포함 모든 독일 관계자들이 SERVUS BASTI (잘가, 바스티!)라는 슬로건으로 슈바인슈타이거의 은퇴를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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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VUS BASTI


[1] 2007-08 시즌 프랑크 리베리의 영입 후 소속팀에서의 활약상은 아쉬웠다. 윙어 치고 기복이 심하고 스탯이 썩 좋지 못해 기량이 정체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2] 이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바르셀로나를 7:0으로 털면서도 한번도 살살하지 않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준다.[3] 왼쪽 측면에서 오타멘디, 파스토레, 이과인을 차례로 농락하며 골문앞으로 산책했다. 오오 전율[4] 참고로 형제가 타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월드컵에서 맞대결을 치른 사례는 아직까지는 보아텡 형제가 유일하다.[5] 우주최강 바이에른의 닥주전이자 최고급 중미중 하나인 크로스가 웬 경험부족? 이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겠지만 크로스는 12/13시즌 8강 유벤투스전에서 시즌 아웃을 당해 4강 FC 바르셀로나전과 결승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을 뛰지 못했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이나 유로 2012같은 큰 무대에서의 출전 기회도 매우 제한돼있었다.(특히 이탈리아전 패배의 원흉으로 애꿎은 토니가 지목되어 비난을 듣는 희생양이 되었다) 그래서 사실상 주전으로 나선 첫 메이저 대회여서 조별리그에서의 기복은 어느 정도 당위성이 있다. 다행히 토너먼트 상층부로 갈수록 활약도가 높아졌고, 8강부터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4강 브라질 전에서 토니는 2골 1도움을 기록했다.[6] 사실 토니가 대회 초반 어쩔 수 없이 퍼포먼스가 아쉬웠던 건 옆에서 보좌하는 사미 케디라는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도 못했고, 베네딕트 회베데스도 첫 메이저 대회 출전이다보니 조별리그에서는 굉장히 부진했고, 무스타피는 민폐 그 자체였으며, 마리오 괴체도 수비적인 역할은 절대 아니다보니 토니 혼자서 이것저것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았다. 이후 람이 다시 풀백으로 이동하고 케디라-슈바인스타이거의 볼란치가 갖춰진데다 회베데스가 각성하자 마음놓고 볼배급에 임할 수 있게 된 토니는 8강, 4강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이렇게 팀으로 하나가 된 독일은 끝끝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7] 파일:external/33.media.tumblr.com/tumblr_n8onezLsdI1qad9dvo4_250.gif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Bastian+Schweinsteiger+Miroslav+Klose+Germany+IFYkE2npJhFl.jpg
[8] 2위는 슈바이니못지않게 투혼의 수비력을 보여준 제롬 보아텡과 슈바이니와 중원에서 피 터지게 경쟁했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나란히 8.0점을 받았다.[9] 워낙 토너먼트에서의 선수들의 활약도가 막상막하였다보니 FIFA 공식선정 BEST11과 BBC, 스카이스포츠, 후스코어드닷컴, 데일리 메일 등 여타 대형언론들이 선정한 베스트11이 모두 다르다. 여담으로 FIFA가 8강에서 공개한 캐스트롤 인덱스에 따른 베스트11에 오른 선수들은 토니 크로스, 마누엘 노이어를 빼고 4강전에서 모두 부진을 경험하는 저주 기이한 현상을 자아냈다.[10] 사실 11-1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의 실축이 트라우마가 되어 이후 슈바인슈타이거는 특유의 킥 정확도에도 불구하고 클럽 공식전에서 단 한 번도 PK를 차지 않았다. 이날 5번 키커로 나선 것은 팀원들의 사기를 위한, 또는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나섰을 것이다.[11] 승부차기 트라우마를 떨치기 위해 유프 하인케스 감독은 2012년 프리시즌 베르더 브레멘과의 친선전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일부러 다시 세웠는데, 여기서도 넌씨눈 미엘리츠가 슈퍼세이브 해버렸다. 유로 2016 지역예선이었던 지브롤터전에서도 PK를 한 번 찬 적이 있는데 이때도 골대를 때려버렸다(...). 이쯤되면 마르틴 팔레르모가 생각날 정도의 PK 트라우마다.[12] 이 교체는 끝내 매우 악수로 작용해버렸다. 엠레 찬과 슈바인슈타이거가 차례로 나가자 오히려 폴 포그바가 살아났고, 프랑스가 더 공격을 주도할 지경이었다. 사네는 드리블이라도 두어번 보여줬지 마리오 괴체는 경기장에 투입이 됐던건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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