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7-24 05:52:36

박찬(2003)

파일:박찬 프로필.jpg
<colbgcolor=#090909> 이름 박찬
출생 2003년 9월 27일 ([age(2003-09-27)]세)
서울특별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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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6cm / 체중 92kg[1]
직업 야구 선수 (투수, 우투우타 / 은퇴)
스포츠 기자
전력 분석원
칼럼니스트
야구 감독
경력 <KBReport> 프로야구 KBO 객원기자 (2023)
<와이즈토토> 프로야구 분석위원 (2025)
<베이스볼코리아 매거진> 객원기자 (2026)
<네이버 블로그> [자율야구 칼럼] 연재 (2023~)
<드림 원더러즈>[2] 야구단 감독 (20??~/ 예정)
학력 망우초등학교 (전학)[3]
건원초등학교 (졸업)[4]
인창중학교 (전학)[5]
춘천중학교 (졸업) [6]
강원고등학교 (졸업)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산업안전학/수료)[7]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사회체육학/편입/학사)[8]
SNS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9]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야구선수 경력
2.1. 투수로서 플레이 스타일
3. 이후 행적
3.1. 기자로서3.2. 지도자로서

1. 개요

대한민국의 선수출신 야구기자.

초, 중, 고, 대학까지 12년간 선수생활을 하였으며 현역시절 포지션은 투수였다.

고교, 얼리, 대학까지 총 3번의 드래프트 참가 경험이 있고, 대학 4학년 시절 드래프트 낙방 이후 곧바로 유명 야구잡지사 '베이스볼코리아 매거진'에 객원기자로 합류하며 자연스레 선수생활을 마무리 했다.

2026년 7월 기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으며 제대 이후 야구 지도자로 활동 예정이다.

2. 야구선수 경력

초등학교 5학년 시절, 구리시립리틀 야구단에 입단하며 야구를 시작하였고, 한 차례 전국대회 우승을 경험. 이후 경기도권 명문팀 인창중학교로 진학했다. 여기서 2년 선배 소형준, 1년 후배 박명근 등과 함께 야구를 하며 성장했다.

고등학교는 당시 신생팀으로 인원수급에 어려움을 겪던 강원권역의 최약체 강원고등학교 야구부 6기로 입학한다. 훗날 강원고 1호 프로선수가 되는 임지민과 입학 동기이며, 입학 후 좋은 신체조건을 살리기 위해 곧바로 포지션을 외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했다.

고교 1학년 시즌에는 팔꿈치 수술과 재활 및 기본기 훈련 등을 이유로 공식전에서 등판하지 못했다. 고교 데뷔전이자 첫 투수로 등판한 경기는 2학년때인 2020년 9월 10일 주말리그 VS강릉고전. 9회 6:2로 팀이 뒤쳐진 1사 주자 1,2루 위기 상황에서 두 타자를 연속으로 땅볼 아웃을 유도하며 당시 전국 최강팀 강릉고를 상대로 완벽투를 펼쳤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한때 강원야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다음 시즌 강원고의 새로운 에이스 후보로 급부상했다.

이듬해 3학년 시즌. 투수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인 '등번호 1번'을 부여받으며 호기롭게 2021년을 시작하였으나 시즌 첫 경기이자 첫 선발등판이었던 주말리그 유신고전에서 패전을 기록하였다. 이후 잦은 부상과 입스를 겪으며 결과적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말았다.

졸업 이후 박충식이 감독으로 있는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야구부에 진학했다. 그러나 쟁쟁한 동기들과 선배 투수진들 속에서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고, U리그 1경기 1이닝 무실점을 기록 후 3학년 시즌을 앞두고 서한규 감독이 이끄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야구부로 팀을 옮겼다. 3학년 시즌에도 1경기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는데 얼마전까지 자신이 속해있던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를 상대로 맞이한 등판이었다. 팀은 패배했다.

4학년때도 별다른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제구력 문제를 다시 노출하며 총 6경기(선발 2경기)에 등판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이진 못했다. 다만, 시즌 후반 제구와 구위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며 대학 권역별 올스타전 2경기 2이닝 무실점 3탈삼진,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동원대전 2이닝 무실점 2탈삼진, 원광대전 1이닝 무실점 1탈삼진 등 공식전에서 연이은 무실점 호투로 결국 선수생활 막바지에 나름대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2.1. 투수로서 플레이 스타일

개인 최고구속 134km/h의 속구와 커브, 슬라이더, 투심을 던졌던 투수다. 체력이 우수하고, 타자의 허를 찌르는 커브의 브레이킹 낙폭이 꽤 좋은 편[10] 이며 우완 정통파로서 구속은 평균이하에 속하지만 스피드에 비해 RPM이 높다는 강점이 있었다. [11] 결국 체질적으로 긴 이닝을 소화하는 선발에 어울리는 스타일이었지만 고질적인 제구력 문제와 구속의 기복 [12], 어깨 부상, 입스 등으로 인해 바람대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고교 3학년 시절 드래프트를 앞두고 동기 임지민을 체크하러 온 롯데 스카우트로부터 깜짝 호평을 듣기도 했다. 당시 임지민을 포함한 3학년 투수들이 20구 정도 불펜피칭을 소화했는데 피칭이 끝난 후 이례적으로 스카우트가 불러 대화를 나눴다. "피칭하는 모습과 신체조건을 인상적으로 봤다. 당장 지명하기에는 무리지만 대학교에서 어떻게 던지는지 지켜보고 있겠다."라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스카우트의 스피드건으로 기록한 이 날의 최고구속은 128km/h 투심이었다. [13]

현역시절 롤모델은 윤성환이라고 한다. 물론 선수로서의 스타일만...승부조작범

3. 이후 행적

원래부터 일찌감치 개인 블로그에 야구 칼럼을 쓰며 제 2의 야구인생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평소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 이론을 자랑하고 있던 터라 수준 높은 분석력이 돋보이는데 그의 칼럼을 보면 현대야구의 트렌드에 입각한 선수분석, 야구계의 전반적인 시사 등을 선수출신의 풍부한 경험으로 풀어나가는 능력이 꽤 탁월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역 야구 전문기자들 중에서 유일무이한 대학야구 선수출신이라는 점이 그의 최고 장점으로 꼽힌다. [14]

이미 대학야구 선수로 활약하던 지난 2023년에 KBReport[15] 객원기자를 겸직한 것으로 보인다. 총 3편의 프로야구 기사를 작성했다.
악재 겹치는 야구 대표팀.. 금메달 가능할까?
'응답하라 1994' LG.. '신의 한 수'가 된 투수가 있다
삼성 '작은 거인'.. 간절함으로 달린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칼럼을 작성하였는데 2025년 7월 2일 이광환 감독이 사망한 날, 이광환 감독을 기리기 위해 작성한 헌정 칼럼이 네이버 스포츠 메인에 오르기도 했다. 보수론자들의 세계에서 홀로 빛났던 한 진보론자 이야기 참고로 칼럼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자율야구>라는 단어는 살아생전 이광환 감독의 자율적인 지도철학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했는데 헌정 칼럼의 내용을 보면 정해진 틀 안에서 경기를 운영하는 것보다 능동적이고, 진보적인 스타일의 지도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평소에도 이광환 감독을 존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6] 이 밖에도 LG트윈스의 염경엽 감독을 극찬하는 내용의 칼럼이 많다. 2023년 LG가 우승하기 전, 경엽볼로 욕을 먹던 염경엽의 공격적인 경기운영을 꾸준히 지지해왔으며 우승 이후에 재평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가대표 경기 위주로 칼럼을 작성했으며 주로 국제무대에서 제구력에 심각한 약점을 노출하며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리는 대표팀 투수진들을 지적한다. WBC 종료 이후에 좀처럼 소식이 들리지 않다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지역 비하 논란 사건 때 비난의 화살이 선수가 아닌 지도자, 협회 운영진들에게 먼저 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선수들의 잘못은 명확하며 그에 따른 합당한 징계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우선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는 취지의 칼럼을 작성했다. 비겁한 어른들의 '책임'은 언제나 아이들의 몫인가?

3.1. 기자로서

기자로서의 본격적인 데뷔는 사실상 베이스볼코리아에서 이루어졌다. 와이즈토토 야구 분석위원으로 활동했던 지난 2025년 10월, 베이스볼코리아 객원에디터 공개모집에 지원했고, 상당한 지원율을 뚫고 합격에 성공. 이후, 여자야구 레전드이자 같은 대학U리그 선수출신인 김라경을 취재하며 글을 작성했다. 인터뷰 내용은 2026년 3월에 나온 베이스볼코리아 23호 잡지에 실렸으며 해당 글 담당 에디터에 박찬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애초에 베이스볼코리아의 잡지 발행이 뜸하며 주로 인스타 업로드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사로 보여진다.

3.2. 지도자로서

군 입대 전, 지도자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칼럼이나 SNS를 통해서 본인만의 확고한 야구철학을 종종 밝히고는 하는데, 단순 선수시절 경험에서 나오는 고집같은게 아니라 외국이나 다양한 종목의 선수지도 방식, 철학, 최신 트렌드에 기조를 둔 생각들이다. 2025년부터는 야구학술회에 모습을 보이기도. 단편적으로는 스몰볼 스타일의 염경엽 감독을 지지했던 터라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17] 애초에 그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운영은 단순 스몰볼, 빅볼이 아닌 모든것이 융합된 유연한 사고방식이다. 본인이 쓴 칼럼에서 관련된 내용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야구는 도대체 왜 '전술'의 영역을 무시하는가

프로출신은 아니지만 진취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젊은 나이를 고려했을때 아마추어 레벨에선 충분히 이상적인 지도자로 성장할 여지가 있다. 전역 이후 드림 원더러즈[18]라는 야구단을 창단하여 다소 이른나이에 감독 뿐 아니라 구단운영에도 직접 뛰어들 예정이다.

2026년 7월28일 공군으로 입대하며 전역 예정일은 2028년 4월 27일이다.
[1] 선수(KBSA 등록)시절 기준.[2] 창단예정 팀. 개인 SNS에 군 전역 후 팀을 창단하여 초대 감독으로 직접 이끌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야구를 뒤늦게 시작한 탓에 어느 팀에도 속하지 않은 무적 신분의 중1~고1 선수들을 모집하여 기본기와 작전, 팀 전술 지도 후에 사회인, 중고교 엘리트팀과 시합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수들을 고교야구 팀에 진학시키는 것이 목적인 팀이다. 어느 협회에도 등록되지 않은 독립적인 성격과 마땅히 갈 곳 없는 선수들을 위한 팀이라는 것을 보면 과거 김라경이 창단했던 여자야구팀 JDB의 창단 배경과 상당히 유사하다.[3] 야구를 시작하기 위해 초5 2학기에 전학을 갔다.[4] 구리시립리틀 야구단을 다녔다.[5] 비록 강원고등학교 진학을 이유로 중3 2학기에 전학갔지만 KBSA에는 인창중학교 졸업으로 나온다. 그 이유는 춘천중학교 야구부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 야구인으로서 프로필은 인창중 졸업으로 표기하는게 맞다.[6] 야구부에는 속하지 않은 일반학생으로 전학왔다. 이미 시험도 다 끝마친 3학년 2학기 끝물에 전학을 와 3개월 정도 밖에 다니지 않았다고.[7] 22학번[8] 편입 연도는 24년도.[9] 야구칼럼을 쓰는 계정이다.[10] 빠르게 꺾이진 않으나 각이 큰 클래식한 슬로커브 계열이다.[11] 120km/h대의 직구로도 2000 RPM을 넘나드는 수준이었다.[12] 최고구속이 134km/h일 뿐이지, 평균구속은 120km/h 안팎이었다. 한창 안좋을땐 118~9km/h 까지 떨어지기도...[13] 본인피셜 투심이 포심보다 구속은 더 나온다고 한다. 다만, 컨트롤 잡기가 어려워 평소에는 포심 그립을 더 선호한다고.[14] 소래고 야구부 출신의 박연준기자도 존재한다. 다만, 박연준은 고교야구 출신.[15] 박동희 기자가 설립을 계획한 야구 기록제공 사이트다.[16] 다만 서로 아무런 접점은 없어 보인다. 일방적으로 그의 야구철학을 따르는 듯.[17] 사실 염경엽은 올드한 스몰볼과는 거리가 있다. LG나 넥센 등 맡아왔던 팀들이 기동력이 좋고, 본인 역시 작전코치 출신이라 스몰볼 운영에 유리한 조건이기에 그렇게 보일 뿐, 사실은 철저한 데이터 야구를 선호하는 전략가다. LG 부임 초기에 잦은 주루사로 비판 받았지만 현재는 이전보다 공격적인 주루를 줄이는 등 현실과 타협하며 수용적, 발전적인 모습도 보이고있다.[18] 앞서도 밝혔지만 아직 창단예정인 팀이다. 비선출 중1~고1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본기와 작전, 팀 전술 지도 후에 사회인리그, 중고교 엘리트팀과 시합을 거치며 고교야구 팀에 진학시키는 것이 주 목표다. 대표적인 비선출 출신인 한선태, 선성권을 보면 투수로서 충분히 좋은 공을 던지지만 PFP나 기본적인 팀플레이에 어리숙하다는 한계가 있는데 이러한 점을 잘 간파한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볼 수 있다. 급조된 팀이라도 일단 팀이 있어야 팀플레이 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