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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선수 경력/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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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전2. 전반기3. 후반기4. 포스트시즌

1. 시즌 전

스프링캠프 출발 직전인 1월 29일에 부친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2월 3일에서야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권혁이 두산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밝혀지면서 다시 같은 팀에서 뛰게 되었다.

2. 전반기

4월 2일 잠실 KT전에 불펜으로 등판해 몸에 맞는 볼 하나를 내주기는 했지만 1이닝 무실점으로 두산 선수로서 첫 등판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4월 5일 잠실 NC전에 4이닝 5실점으로 무너진 이용찬 다음으로 5회부터 등판하여 4이닝 2실점을 기록하였다. 6회 안타에 이은 투런 홈런이 흠이었을 뿐 4이닝을 불과 39개의 투구수로 막아내면서 불펜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4월 17일 잠실 SK와의 홈경기에서 4번째 투수로 나와 8회초 한동민에게 안타, 정의윤에게 볼넷으로 1이닝 20투구수 (S:10, B:10) 1피안타 1-4사구 1삼진을 기록하였다.

4월 25일 고척 키움과의 원정 경기에서 5:2로 앞선 3회 1사 만루에서 유희관에 이어 올라왔는데 첫 타자 장영석에게 초구에 적시타를 맞더니 김규민이 친 타구를 배영수가 잡고 홈으로 던졌는데 이게 악송구가 되버렸고 거기에 아쉬워하다가 베이스커버까지 안 들어가면서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이정후에게 역전 적시타를 맞고 나중에 4회 박병호에게 투런포를 맞으며 패전의 원흉으로 전락했다. 기록은 2⅓이닝 동안 4실점(2자책 포함).

5월 18일 SK전에선 한점차 앞선 8회말 1사 3루에서 등판했으나 초구를 포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던지면서 바로 동점을 허용했다. 그래도 그 이후 3.2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내며 두산 이적 후 첫 승을 얻었다.

3. 후반기

8월 2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2:1로 리드하던 9회말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파일:1567514942.gif

9월 3일 키움전에서는 9회에 등판하여 1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이 때 2루에서 리드폭이 큰 김혜성을 향해 꼰대짓을 하는 장면이 잡히면서 까인 것은 덤.[1] 결국 김혜성은 서건창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문학 SK전 9월 14일 경기에서 6번째 투수로 나와 이형범의 난조로 인해 6대6 스코어에 9회말 1사 1, 3루 위기상황에서 등판했다. 차라리 끝내기 안타나 희생플라이를 맞았다면 타자가 잘해서 혹은 어려운 상황에서 운이 없었다라는 변명이라도 가능한데, 1루 주자에게 취한 견제모션으로 역대 6번째 끝내기 보크를 기록해서 팀의 1위 탈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심지어 공 1개도 던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크를 범하면서 [[http://naver.me/xfc53NvD|KBO "최초로 투구수 0개 상태"에서 끝내기 보크를 저질렀다.]][2][3] 더욱 가관인 것은 주심과 3명의 루심들, 즉 구장의 심판 전원이 동시에 보크 판정을 내렸다는 점.[4]
[navertv(9857668)]
당시 영상(24초부터)
이에 대해 심판진들은 견제구 던졌어도 보크라고 이날 주심을 맡은 박종철 심판위원은 "투수가 견제를 하는 동작 중에 1루수가 베이스를 향해 견제구를 받으러 이동을 한다면 괜찮다. 그러나 이날은 배영수가 1루수 쪽으로 견제구를 던지려던 순간에는 전진수비를 한 오재일이 베이스를 향해 들어갈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배영수가 실제로 1루수 오재일에게 공을 던졌더라도 보크가 선언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5] 보크 영상

9월 15일 LG전에서 7회 연속 안타를 맞고 강판된 권혁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했으나 이형종에 3루타를 맞아 주자들을 싹 다 분식했다. 이어서 김현수[6]와 페게로에게도 연속 적시타를 맞으며 본인도 2실점했다. 결국 단 한 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강동연과 교체돼 마운드를 떠났다. [7]

이쯤 되면 잘 나가는 팀 분위기 망치는 투수판 오재원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8] "계급장으로는 1군 올라올 수 없다."라는 말의 전형인 셈. [9]

아무튼 이러한 막장 행각에 김태형도 학을 뗏는지 한동안 등판시키지 않다가 9월 24일 NC전 투수가 안 남아서 어쩔수 없이 11회에 등판시켰고, 1사 1, 2루를 막아낸 뒤 12회는 장타성 타구를 두개나 허용했으나 정수빈, 김인태의 호수비에 묻어갔다. 다만 배영수가 이 경기에서 실점했을 경우 두산은 정규시즌 우승을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원정 경기, 즉 끝내기 패배가 가능했던 상황이라 결과적으로 선전했다.

다음 날인 9월 25일 롯데전에도 9회 구원 등판해서 1피안타를 허용했지만 무실점으로 1이닝을 틀어막았다.

10월 1일 정규시즌 우승 기념 인사에서 "보크를 해서 죄송했습니다"라고 사과하였고, 팬들은 "괜찮아"로 화답하였다.

4. 포스트시즌



사전 인터뷰에서 패전처리가 무슨 한국시리즈냐며 셀프디스를 시전했고 팀이 3차전까지 모두 이긴 뒤 4차전도 10회 초에 2점을 추가하며 실제로 등판할 일 없을 듯 싶었는데[10] 김태형 감독과 심판진의 콜미스로 인해 이용찬이 강판당하며 갑작스럽게 마무리 투수로 오르게 되었다.[11] 이 등판과 동시에 두산은 시리즈 내 투수 전원 등판을 달성하였으며, 박병호를 4구 헛스윙 삼진으로,[12] 제리 샌즈를 초구 투수 땅볼로 처리하며[13] 팀 우승의 순간을 장식하는 영예를 차지했다.[14] 9월의 보크를 비롯해 지난 1년 동안의 아쉬운 순간들도 말끔히 떨칠 수 있게 되었다. 만 38세 5개월 22일로 한국시리즈 최고령 세이브까지 기록한 것은 덤.[15] 배영수 개인으로써는 두번째로 한국시리즈 연장 10회 등판[16]이자 25번째 한국시리즈 등판이었다. 이후 현역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본인의 현역 마지막 등판이자 한국시리즈 최다 등판 기록이 쓰이게 되었다.
파일:두산배영수.jpg
한국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환호하는 모습

2019년 한국시리즈 최종기록은 마지막 4차전의 10회말에서 나온 ⅔이닝 1세이브 1탈삼진 무실점.

2019년 10월 29일 플레잉코치를 고민한다고 했으나 이후엔 그냥 은퇴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아니기에 따로 은퇴식/은퇴경기는 없었으나, 프로야구 선수 최고의 영예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면 자신의 손으로 8번째 우승반지를 완성하고 떠나는 배영수야말로 가장 멋진 은퇴를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야구팬들이 예상했듯이 짧은 시간이나마 궂은 일에 헌신하고 투수조의 분위기를 잡아준 배영수에게 멋진 마무리를 선물해주기 위한, 김태형 감독의 철저히 의도된 실수였음이 밝혀졌다.

당시에는 심판진과 이용찬의 사기를 위해서인지 실수였다는 식으로 에둘러 넘어갔지만 시간이 지난후 이영미 기자와의 대담에서는 걸어나가면서부터 김원형 투수코치에게 "지금 넘어가면 바꿔야 되는거 맞지?" 라고 되물으면서 나갔고 심판진에 잡히기 위해 라인에서 일부러 폴짝뛴것까지도 계산된 연출이었음을 밝혔다.

김태형 감독의 별명과 잔실수가 없는 운용을 고려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1] 4점차에다가 점수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리드 폭을 크게 잡지 말라는 뜻일 것이라고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다.[2]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세트 포지션 상태에서 발을 뒤로 빼지 않은 채로 1루에 견제하려 했는데 던지지 않아 위장견제가 되어 보크가 된 것이다.[3] 세계 최초는 아닌데 2005년 7월 15일 워싱턴 내셔널스 VS 밀워키 브루어스의 경기에서 연장 10회 마이크 스탠튼이 보크를 저지르면서 진 적이 있다고 한다. # 그러나 정규이닝에 끝난 경기 한정으로는 세계 최초다.[4] 게다가 SK 측에서도 1루 주루코치 조동화, 3루 주자 김강민, 3루 주루코치 정수성이 함께 보크를,거기에 SK덕아웃측에서도 동시에 보크를 지적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3분 15초부터. 오재일의 싸늘한 표정은 덤이었다. 더불어 잘 보면 관중도 보크를 지적하고 있었다.[5] 투수가 주자 견제도중 루방향이 아닌 야수에게 송구 한 경우 보크라고 명시되어 있다. 보크를 면하는 상황이었다면 송구 실책으로 패했을 거고, 야수에게 던지면 앞 규칙에 걸린다. 결국은 투구판에서 발을 뺀 이후 뭘 해도 졌을 상황이라는 것.[6]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될 뻔했지만 약전드가 공을 잡으려다가 중견수 쪽으로 튕겨내는 바람에 주자는 홈으로, 타자는 2루로 가버렸다.[7] 근데 사실 배영수는 한용덕과의 베테랑 불화로 인해 팀을 나온 것은 아니었다. 팀에선 코치 직을 제의했으나 본인이 현역 연장을 원하여 팀과 계약을 잘 마무리하고 좋은 기억으로 헤어진 선수였다. 하지만 그저 한화를 까고 보려는 그 집단에서 배영수까지 싸잡아서 베테랑 홀대의 예시라고 해버리니 이러한 인식이 박힌 것이다.[8] 현재 1군 붙박이 중 WAR 마이너스 찍는건 오재원과 배영수, 권혁 셋 밖에 없다. 당일, 네이버스포츠 기준 오재원은 -0.54, 배영수는 -0.32, 권혁은 -0.17. 권혁은 전 소속팀에서의 혹사로 인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기도 하고 오재원, 배영수가 저지르는 상식 밖의 실수는 하지 않았기에 그럭저럭 묻혀가는 편. 게다가 스탯티즈 기준으로 하면 권혁은 0.12의 WAR. 무조건 음수라 보기도 어렵고 이현승, 장원준의 부재와 함덕주의 부진으로 좌완이 씨가 마른 팀 사정 탓에 이적 후 3연투로 무리한 적도 있어서 어느 정도는 변호받을만 하다.[9] 사실 심수창도 2019년에는 전반기에만 잠깐 나오고 이후로는 쭉 2군에서 보내다 임시 선발전 이후 은퇴했다.[10] 다만 이용찬은 누적 투구수가 많아진 상태라(1차전 20개, 3차전 30개, 그리고 10회말 시작 시점에서 29개) 남은 이닝을 다 채우기 어려웠다. 그리고 배영수 이외의 두산의 남은 투수는 우타자 상대로 불리한 권혁, 그리고 다음 날 경기가 있을 경우 선발 투수로 예정된 린드블럼이라 이용찬이 불안하다 싶을 때 가장 먼저 나올 상황이긴 했다. 원정 경기 10회말에 린드블럼이 나오는건 애초에 말이 안되었고, 10회말 시점 첫 타자가 이정후긴 했지만 바로 뒤의 두명이 우타자인 박병호와 샌즈라 이정후 한명 상대한다고 권혁부터 등판시키는 것도 무리수였던 상황, 실제로도 이용찬이 아슬아슬하게 이정후를 아웃시켰다.[11]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코치진이 한 이닝 2번 마운드에 오르는 어이없는 실수로 유희관이 예정에 없던 투수교체를 당하는 바람에 2승을 선취하고도 준우승에 머물렀던 일이 있었다. 이를 기억하던 두산팬들은 잠시나마 아찔했다.[12] 이때 배영수의 최고 구속은 140km/h. 38살의 나이로 혼신의 역투를 보여주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13] 초구 139km/h. 배영수 본인 최선의 힘을 다한 것 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14] 배영수는 삼성 시절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했지만, 당시에는 선발이기도 했고, 여느 팀이 그렇듯 당시 삼성은 늘 마무리 오승환이 우승의 순간을 확정지었다.[15] 종전 기록은 임창용이 보유한 만 38세 5개월 3일이었다.[16] 첫번째는 2004년 한국시리즈의 전설의 10이닝 노히트노런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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