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7:31:12

배영수/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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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야구 시절2. 삼성 라이온즈 시절3. 한화 이글스 시절
3.1. 2015 시즌3.2. 2016 시즌
3.2.1. 왜 이렇게 되었는가?
3.3. 2017 시즌3.4. 2018 시즌
4. 두산 베어스 시절5. 수상 경력
5.1. KBO5.2. 국가대표5.3. 기타
6. 연도별 성적

1. 아마야구 시절

파일:배영수어릴적2.jpg

1981년 5월 4일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매우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 초등학교 6학년때 부모님이 이혼을 했으며 모친이 먼저 자녀들을 버리고 떠났고, 부친마저 집을 떠나면서 부모에게 버려진 누나와 배영수는 병약한 할머니께서 홀로 키워주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재래시장에서 노점장사를 하며 어렵게 남매를 책임졌으며, 형편이 불우한 상황에서 누나와 할머니는 야구 선수가 꿈인 어린 배영수를 위해 헌신을 다해 뒷바라지를 해줬다. 이에 배영수도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위했던 할머니와 누나를 호강시켜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야구에 전념했다고 한다. [1]
파일:배영수어릴적.jpg

처음에 지원했던건 유격수였고 대구칠성초등학교 시절부터 경복중학교까지 유격수를 했었으나, 경북고등학교 시절 배트를 살 수 없을만큼 너무도 어려웠던 가정형편에 감독이 "어깨가 강하니 투수로 전향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배영수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투수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늦게 시작한터에 여러모로 부족한게 많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겨울 147km/h를 기록하게 되었고 이는 삼성 스카우터들에게 처음 눈도장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경북고등학교는 야구 명문으로 학부형들의 입김이 강한 곳이었고, 그 시대까진 촌지가 당연하게 인식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배영수는 다른 학생의 학부형들에게 찍히게 되어, 다른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감독에게 두들겨 맞는둥 힘겨운 생활을 지냈다고 한다.[2]

늦은 투수 전향과 학부형들의 입김에 대회에서는 활약하지 못했으며, 더군다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엔 어깨부상까지 당하며 제일 중요한 시기 내내 재활훈련에 매달려야만 했다. 다만, 한양대학교 야구부와 삼성 라이온즈는 배영수의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했었다. 당시 청룡기 최우수선수상과 청소년대표팀을 휩쓸며 메이저리그에서 관심을 보였던 전국구 지명도를 가진 대구상고의 천재투수 장준관이 있었고, 모두가 삼성의 1차 지명을 장준관으로 예측한건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승엽을 지명하며 삼성의 전설을 써내려갔던 최무영 스카우터는 재활에만 전념하면 배영수의 체형이 선발투수로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고 판단했으며, 따로 불러내어 면담을 가졌을때 배영수의 집념은 여타 고등학교 선수가 가질 마음가짐이 아니라고 판단했고[3] 1차 지명은 장준관이 아닌 배영수쪽으로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배영수는 한양대 진학도 고려하고 있었으나, 고등학교 선배인 이승엽이 배영수에게 직접 찾아와 "여러 소리 말고 삼성으로 와라"라며 다그쳤고 이승엽의 조언을 따라 배영수도 삼성쪽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4]

2.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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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영수.jpg
<colbgcolor=#074ca1> 삼성 라이온즈 No.25
<colcolor=#fff> 배영수
裵英洙 / Bae Young-Soo

3. 한화 이글스 시절

파일:external/t1.daumcdn.net/20170421215240023atep.jpg
한화 이글스 No.33
배영수(裵英洙 / Young-soo Bae)

3.1. 2015 시즌

파일:CTzK1O9.gif
시즌 요약하는 한 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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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범과 함께 (심지어 대구 원정을 피하고도) 훌륭한 먹튀로 거듭난 시즌.

송은범은 시즌 막판에 불펜 전환이라도 해서 얼마 정도 밥값은 해줬는데 이 분은 불펜 전환을 해도 먹튀 확정이 되었다.

3.2. 2016 시즌

2015시즌 후에 팔꿈치 뼛조각 수술을 받았다. 예정되는 복귀 시점은 5월이였으나, 재활이 지지부진하면서 결국 2016년 시즌을 말아먹을 것으로 전망되며 먹튀가 확정되었다. 관련 기사

재활이후 5월 20일 경희대와의 3군 경기에 등판했는데, 당일 경기에서 2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속구 최고구속이 131km/h, 평균구속이 129km/h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

6월 14일 소프트뱅크 3군과 한화 2군간 교류전에서 3⅔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관련기사. 이날도 역시 속구 구속이 130km/h도 안 나왔다.

6월 21일 KIA 2군과 경기에서 4이닝 7피안타 5실점(2자책)했다. 일단 1회 선두타자부터 2루타를 뻥뻥 맞은데다가 1루수의 수비 실책이후 희생플라이, 2루 땅볼로 2아웃을 잡고 연속 장타를 맞으며 1회부터 3실점. 강판된 후 구원으로 올라온 안영명이 4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깔끔하게 막은 것과 대비가 될 지경.

1일 저녁 급작스럽게 1군으로 콜업되었다. 속구 구속이 140km/h를 넘어섰다는 소식을 들은 김성근 감독이 송은범, 안영명이 빠진 투수진에 합류시킨 것으로 보이는데, 슬럼프를 이겨낼 경우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고문이라도 기대할만 했으나 한번도 등판하지 못하고 1군에 등록된지 4일만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올해 배영수의 문제는 잃은 구속 문제와 더불어 앞으로 제구력 위주의 피칭을 해야 하는데 유희관과 다르게 제구와 구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피홈런이 많은 것은 물론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각각 3할대, 4할대 후반인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투수 본인의 자신감을 잃었다. 은퇴 드립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군 최종성적은 7경기(5경기 선발, 2경기 구원등판), 2패(선발 1패, 구원 1패), 승률0.000, 28.2이닝, 39피안타(1피홈런), 6볼넷, 2사구, 13탈삼진, 23실점, 17자책, 피안타율 0.331, QS 1회, WHIP 1.640

이번에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참여했는데, 성적이 좋지 않으면 사실상 내년에 기회는 없다고 보면 될 듯하다.[6]

고무적인 것은 교육리그에서 구속이 144km까지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유임이 점쳐지는 기사가 나오는 중이라 그냥 드러누우라는 반응도 많다.

11월 12일에 미야자키 교육리그에서 인터뷰한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에 따르면 계형철 코치가 1:1 개인지도를 하고 있으며, 불펜피칭을 1,800개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시즌 후 등번호를 33번으로 변경했다.

3.2.1. 왜 이렇게 되었는가?

사실 금지어와 전혀 연관 깊지 않고, 삼성 시절부터 쌓인 것이 터진 예견된 결과에 가깝다. 본래 2013년 다승왕 시절도 whip는 1.5정도로 사실 한화 시절과 큰 차이도 없는데, 팀이 삼성이다 보니 타선과 수비의 도움으로 승리가 잘 쌓인 것. 그래서 ERA 4.71로 다승왕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고. 14년도 비슷하게 계속 하락세를 꾸준히 탔고, 그러다 보니 그간의 공헌과 클래식스탯을 내세운 배영수와 명백히 좋지는 않은 세부스탯을 냉정하게 본 삼성 프런트간 시야의 차이 때문에 금액차이가 났고 그래서 한화로 오게 된 것이다.

한화에서도 WHIP자체는 삼성 말년과 거의 다를 게 없는데, 팀이 한화이다 보니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깐 수비 덕택에 실제 투구퀄리티에 비해 낮던 ERA가 현실감을 띄게 된 것.

불펜으로 돌린 것 가지고 혹사라 하는데, 이유없이 불펜으로 나온 것은 2015시즌은 처음 1경기와 이후 선발로 조기강판된 후 이틀 후에 불펜으로 1이닝을 던진 정도였다. 이후로는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지켜줬는데, 선발 방어율 6점대였다. 특히 7월은 4경기 중 한번도 5이닝을 넘기지 못했을 정도로 부진했는데, 5이닝도 못 넘기는 6점대 투수를 불펜으로 강등시키지 않는 감독이 세상에 어딨나? 왜 상식적인 로스터 운용도 세이콘이 하면 혹사가 되는 것인가? 5이닝도 못 먹는 6점대를 꼬박꼬박 로테이션 지켜줘가면서 귀족등판을 시키면 양아들 소리 듣는 게 상식이고, 오히려 감독이 원해서 영입한 FA선수이기에 더 기회를 많이 주고 관리를 해 줬다. 김성근 성격에 저 스탯으로 3개월씩이나 선발기회를 받은 게 용한 것. 다른 선수라면 몰라도 최소한 배영수에 관해서는 정상적인 운용을 했다.

이후 팔꿈치가 고장난 것은 06년 한국시리즈 이후 토미존을 받고 어느덧 8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는데, 그간 이닝도 꾸준히 먹어서 100이닝을 못 넘긴 적이 8년간 한 해뿐이고, 한화에 오기 전 3년간 150, 160, 130이닝 정도로 꾸준히 풀타임 선발을 돌았다. 저만큼 오랫동안 많이 던지면 관리를 아무리 잘 해줘도 뼛조각 수술 제거 한번쯤이야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통 1차 토미존 수술 후 다시 수술을 받기까지 평균 사용기간이 4.97년인데 수술 후 무려 8년을 썼으니 팔꿈치 뼛조각이 아니라 아예 토미존서저리를 한번 더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거기다 투구폼도 수술 이후로는 박수치며 팔꿈치를 한번 더 비트는 식으로 변해버렸고. 거기에 배영수는 이미 30대 중반이 되어있었고, 사실 20대 때도 재활을 서두르기도 했으나 구속을 10km나 잃을 정도면 애초에 회복력 자체가 좋은 타입은 아니었는데, 30대가 되니 회복력이 예전같지 않기에 1시즌을 통째로 재활에 쏟아부어야 했던 것.

여튼 삼성 시절부터 쌓인 것이 터진 것이자 올게 온 것에 가깝지, 배영수의 경우는 김성근의 혹사가 주 원인은 아니다.

3.3.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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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18 시즌

16시즌을 통째로 날린 탓에 FA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5천만원 깎인 연 5억에 새로 계약을 체결했다. 본인은 더 많은 금액 삭감을 예상해 오히려 감사하단 발언을 하기도 했다.

스프링캠프에서 20대 후배들을 한식당에 데려가 원하는만큼 밥을 샀다고 해서 간만에 칭찬을 들었다.

그런데 감독에 의하면 시즌 초 10일에 한 번씩 던지게 할 것이라고 한다. 시즌 초 한 번 선발등판 후 2군으로 내려 휴식을 주면서 젊은 투수들을 시험해볼 심산인 듯. 올해 31번 선발로 등판한다면 송진우의 통산 최다 선발 등판 기록을 넘어 1군 통산 378번의 선발 등판이 가능하겠지만, 감독이 공언한 대로 기용된다면 내년을 바라봐야 할 듯 하다.

3월 16일 KT wiz전에 선발등판하여 4이닝 2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였다. 1회는 무사히 넘겼지만, 2회 연속 볼넷 후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고 연속 폭투로 1실점하였다. 3회에도 2루타 허용 후 폭투로 1사 3루가 되었고, 유격수 앞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와 1실점 하였다. 4회는 삼자범퇴 처리하고 송은범에게 마운드를 넘겨주었다. 아쉬운 실점 과정 탓에 감독이 송은범과 함께 실망스러웠다는 평을 남겼다.

3월 28일 NC 다이노스전에 선발등판하여 1회 박석민에 2타점 적시타를 맞는 등 흔들렸으나 그 이후로 깔끔한 피칭을 선보이며 6이닝을 소화해 6이닝 2실점으로 QS를 기록하고 서균과 교체되었다. 다만 타선이 투수 교체 후 터진 탓에 승리 투수가 되진 못했다.

4월 3일 선발 등판. 결국 팀 자체가 올해도 선발에서 파산 직전의 카드빚 돌려막기 수준이라는 현실을 감독이 깨닫고 있는 건지 전에 한 말을 뒤집고 활약이 좋은 배영수에게 5일 등판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3.1이닝 8자책으로 완전히 망해서 패전투수가 되었어야 하나 이미 타선은 3회까지 김원중장시환을 탈탈 털어버려 11점을 뽑아놓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고 이후 타선이 추가로 6득점을 하며 무려 17득점을 지원해주었다.

4월 14일, 열흘의 기간을 사이에 두고 선발로 등판, 5⅔이닝 동안 3피안타 4사사구 4K 1실점을 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1, 2회 때 두 번 연속으로 만루를 만드는 등 볼넷과 안타를 남발하며 59구 가까이 던져 5이닝은 커녕 3이닝을 채울 수 있는가 의문인 상황이었지만, 거짓말처럼 3회부터 달라진 피칭으로 나머지 3⅔이닝을 48구만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올 시즌 한화 토종 선발 첫 승을 거두었다. 이날 하필이면 직전 시즌 벤치클리어링의 기억이 있고 통산 124승[7]을 노리던 윤성환이 선발이었던지라 친정팀에 더 쓴 패배를 안겼다.

4월 20일 5일을 쉬고 넥센전 선발로 등판했으나 4이닝 5자책으로 멸망했다.

4월 27일 1주일만에 선발 등판했는데 4회까지는 1실점으로 틀어막았으나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은 뒤 보크 그리고 나종덕에게 2연속 위협구를 던졌고, 2번째 공이 헬멧에 맞았고, 처음에는 퇴장 선언을 안했으나 조원우 감독의 항의 끝에 퇴장당했다. 롯데와의 경기때 부정투구 논란이 있었던만큼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듯 하다. 8회초 김태균의 동점 적시타가 터져 패전은 일단 면했다.[8]

5월 3일 5이닝 1실점으로 나름 잘 던졌으나 이태양의 방화로 ND. 여담으로 이날 박용택에 삼진을 뽑아내며 1400K를 기록했다. 현역 최다 기록했다.

5월 11일 NC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QS+를 기록했다. 추가로 역대 5번째 2100이닝을 달성했다. 이 역시 현역 최다. 그러나 9회말에야 김태균의 동점 투런포가 터져 ND.

5월 18일 LG전에서는 수비 지원을 못받고 4.1이닝 2실점 7K를 기록했다. 만루 장작을 쌓고 내려갔지만 용케 이태양이 급한 불을 꺼 실점이 추가되진 않았고, 6회 병살타로 동점이 되어 ND.

다만 ERA는 5.40으로 높은 편에 비해 FIP는 4.06으로 수비의 도움이나 운이 대체적으로 없었다. 결국 운빨이라는 것도 지속적일 수 없기 때문에 성적이 오를 여지는 있다.

5월 24일 두산전에서는 6.1이닝 6실점으로 대량실점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손가락 물집이 터져 피가 났는데도 7회 1사까지 던진 거라고 한다.

5월 30일 NC전에서는 초구에 선두타자 박민우에 홈런을 맞는등 5이닝 3피홈런 4실점으로 부진했으나[9] 타선이 2회에만 8점을 뽑아준 덕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통산 137승으로 현역 최다승 기록을 스스로 갱신했다. 선동열의 대기록까지 -7가 남았다.

6월 5일 LG전에서는 5이닝 7실점 13피안타로 무너지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경기 후반 3점을 내며 분전한 타자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팬들은 2군행보다 은퇴를 종용할 정도로 투구 내용이 매우 부진하였다. 결국 다음날(6/6) 1군에서 말소됐다.

그리고 그대로 시즌 종료, sWAR -0.03을 기록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데 FIP를 보면 오히려 평균을 살짝 상회하는 정도는 된다. 아무래도 대체 선수 정도의 역할은 해 줄 수 있었는데 운이 안 따라준 시즌이었다.

구단에서 은퇴를 제안했으나 현역 연장 의지를 밝히면서 한화를 떠나게 되었다. [단독]배영수 한화와 결별, 현역 연장 택했다...박정진도 떠난다

4.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돡영수.jpg
두산 베어스 No.25
배영수 (裵英洙/Bae Young-soo)
이적 후 인사

2018년 11월 30일 연봉 1억에 두산 베어스와 계약했다.# 처음 등번호는 9번이었다가 양의지NC 다이노스이적으로 공석이 된 25번을 달게되었다.[10] 구단 관계자의 따르면 최다승 투수인 배영수가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봤다. 풍부한 경험, 다양한 구종 등 장점이 많아 선발과 불펜에서 모두 쓰임새가 크다고 판단해서 영입했다고 한다.

팬들은 갑작스러운 영입에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투수조 및 선수진을 책임지는 최고참 역할로 들여온 건 알겠는데, 그런 점만 빼면 상당히 예상 밖의 소식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정재훈, 김성배, 김승회야 애초에 두산 출신이었지만[11] 삼성 프랜차이즈 출신이 두산에 온 것은 처음이고, 배영수 본인 또한 한화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재활에 써버린 만큼, 전례도 없고 그 효과도 장담하기 어려운 영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8년 한국시리즈의 허무하고 충격적인 패배 때문에 팬들이 팀 개편에 호의적이라 나쁜 소리는 덜 나오는 편이며, 금액도 싼 만큼 도박을 걸어볼만 하다는 분위기였다.[12]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김강률과 일본에서 개인운동을 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4.1. 2019 시즌

파일:두산배영수.jpg
한국시리즈 4차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환호하는 모습[13]

시즌 초에는 추격조로써 제 몫을 해냈고 경기 1~3점차 접전상황에서도 나올만큼 잘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중반이 되고 SK전에서의 베테랑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먼 베이스 커버를 안가는 기본적인 실수와 끝내기 보크 같은 어이없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정규시즌에 배영수가 없었다면 두산베어스의 2019년, 기적같은 끝내기 우승을 기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시즌 후반기 NC 다이노스와의 연장승부에서 마지막투수로 나와 1과 2/3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팀을 무승부로 이끌며 기적의 시작을 알린 것은 덤이다.

2019년 한국시리즈 4차전 연장전 10회말 원아웃 예고되지 않은 투수교체 상황에서도 웃으며 등판해 2019시즌 보여줬던 공 중 가장 좋은 공을 보여주며[14] 홈런왕 박병호를 삼진, 타점왕 제리 샌즈를 투수 땅볼로 잡아내며 2019년 한국시리즈 피날레를 장식했다. 불안하던 정규시즌에서의 모습과 달리 키움을 대표하는 중심타선을 깔끔하게 잡아내는 모습은 2000년대를 호령했던 배영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주었다.[15] 그야말로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경기 출장 신기록(25),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 투구이닝 2위(73.1)의 베테랑다운 모습. 이로써 배영수는 만 38세 5개월 22일에 세이브를 챙겨, 임창용의 KS 역대 최고령 세이브 기록(38세 5개월 3일)을 넘어 이 부문 신기록을 세웠다.

사흘 후인 10월 29일 39살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우여곡절이나 아쉬움도 있었지만, 결국 좋은 모습으로, 아니 투수로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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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수상 경력

5.1. KBO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배영수의 KBO 수상 경력
2002 한국시리즈 우승
2004 KBO MVP /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 다승 1위 / 승률 1위 / 골든포토상 / 동군 올스타(감독추천)
2005 한국시리즈 우승 / 탈삼진 1위 / 동군 올스타(감독추천)
2006 한국시리즈 우승
2008 동군 올스타(감독추천)
2011 한국시리즈 우승
2012 한국시리즈 우승
2013 한국시리즈 우승 / 다승 1위
2014 한국시리즈 우승
2017 나눔 올스타(감독추천)
2019 한국시리즈 우승 / 골든포토상

5.2.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배영수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2006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3위

5.3. 기타

배영수의 기타 수상 경력
2004 제일화재 프로야구대상 대상
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
프로야구 스포츠조선 올해의 상 올해의 선수상
2013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재기상
프로야구 스포츠토토 올해의 상 올해의 투수상
2019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특별상

6. 연도별 성적

  • 푸른 글씨는 KBO 최다,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입상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배영수의 역대 KBO 기록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00 삼성 25 0 2 0 0 45⅓ 6.75 59 9 0.000 24 32 1.77 70.2 0.22
2001 35 13 8 0 0 169⅔ 3.77 169 11 0.619 97 96 1.52 127.6 3.91
2002 22 6 7 0 0 81⅓ 5.53 94 13 0.462 48 63 1.68 78.0 0.44
2003 30 13
(3위)
5 0 0 163⅔ 4.51 174 11 0.722
(5위)
84 99 1.53 96.8 3.38
2004 35 17
(1위)
2 0 0 189⅔
(3위)
2.61
(3위)
163 6 0.895
(1위)
85 144
(4위)
1.25
(5위)
166.3 6.54
(2위)
2005 31 11 11 2 1 173
(4위)
2.86
(2위)
148 10 0.500 59 147
(1위)
1.13
(2위)
148.8 5.97
(2위)
2006 32 8 9 0 4 157⅓ 2.92 142 13 0.471 48 133 1.14 124.1 4.16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27 9 8 0 0 114⅔ 4.55 127 15 0.529 41 71 1.44 91.2 1.58
2009 23 1 12 0 0 75⅔ 7.26 106 18 0.077 29 40 1.69 67.3 -0.33
2010 31 6 8 1 0 119⅔ 4.74 136 11 0.429 45 64 1.45 97.3 2.01
2011 25 6 8 0 1 103 5.42 127 5 0.429 33 47 1.50 77.0 1.32
2012 26 12
(5위)
8 0 0 160 3.21 159 7 0.600 42 89 1.24 119.1 3.66
2013 27 14
(1위)
4 0 0 151 4.71 193 9 0.778
(2위)
52 101 1.53 91.0 2.66
2014 25 8 6 0 0 133⅔ 5.45 171 14 0.571 44 111 1.57 97.0 2.80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5 한화 32 4 11 0 1 101 7.04 124 21 0.267 53 56 1.61 70.8 -1.55
2016 1군 기록 없음
2017 25 7 8 0 0 128 5.06 155 17 0.467 42 86 1.44 99.3 1.13
2018 11 2 3 0 0 55⅔ 6.63 69 6 0.400 21 47 1.51 79.9 -0.03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승률 4사구 탈삼진 WHIP ERA+ sWAR
2019 두산 37 1 2 0 0 45⅓ 4.57 50 4 0.333 14 10 1.35 89.9 0.21
KBO 통산
(18시즌)
499 138 122 3 7 2167⅔ 4.46 2366 200 0.531 860 1436 1.43 101.6 38.07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3년 1완투 0완봉
2004년 4완투
(1위)
2완봉
(1위)
2005년 2완투
(3위)
1완봉
(2위)
2012년 2완투
(5위)
0완봉
2014년 1완투 0완봉
2017년 1완투 0완봉
KBO 리그 통산 11완투 3완봉


[1] 굉장히 슬픈 이야기가 있는데, 훗날 배영수가 삼성의 에이스로 우뚝선 2004년 당시 할머니께서 굉장히 위독하셨다고 한다. 이후 다음 시즌인 2005년에 할머니께서 노환으로 병상에 경북대학교 병원에 입원하고 계셨고, 배영수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모자에 "할머니 생각" 이라는 문구를 적은 상태로 개막전 경기에 나가 KBO 최초 무사사구 완봉승을 장식했다. 경기가 끝난 직후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배영수가 도착한 직후 할머니는 하늘의 별이 되어 그의 곁을 떠났다, 경기 전날 할머니는 배영수에게 "내일 꼭 잘 던져야 한다"며 당부했었고 배영수는 약속을 지켰으나, 그 말이 곧 할머니의 유언이 된 셈이다.[2] 다만 이는 감독이 따로 배영수에게 언질을 먼저 주어 보여주기 식의 쇼였다고 하며, 형편이 어려운 배영수를 위해 점퍼도 빌려주고, 장학금도 타게 해줬다고 한다.[3] 야구를 하는 이유는 야구선수로 성공해야만 할머니와 누나에게 보답할 수 있다던 배영수의 의지가 너무나도 강렬해 보였다고 후술했다.[4] 참고로 이승엽은 장준관과 배영수 사이를 고민하던 삼성 구단에 배영수를 적극적으로 추천했었다. 이승엽이 한창 야구계의 스타로 떠올랐을때 모교인 경북고등학교에 자주 찾아가 후배들 훈련을 도와줬는데, 이때 배영수에게 큰 인상을 갖게 되었고, 형편이 어려웠던 배영수를 여러모로 지원해줬었다고 하며 배영수도 어려울적 도와줬던 이승엽을 지금도 고마워하며 잘 따르고 있다.[5] 참고로 저 식빵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진 후 본인은 삼진이라 생각하고 덕 아웃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주심이 삼진을 잡아주지 않아 구운 것이다.[6] 애초에 이 나이에 교육리그에 간다는 것 자체가 박정진처럼 마지막 기회로 찾는 경우 말고는 없다.[7] 배영수의 삼성 시절 승수와 타이 기록[8] 5년 뒤 배영수는 롯데 투수코치가 되고 나종덕은 나균안으로의 개명 후 투수로 전향했는데 똑같은 매치업에서 선발등판해 8이닝 무실점의 인생투로 시즌 4승째를 따내며 이 헤드샷은 재조명되었다.[9] 배영수가 1경기에서 3피홈런을 기록한 것은 4년여만으로 한화 오고난 2015시즌부터 처음 있는 일이다.[10] 여담으로 25번은 배영수가 삼성에서 데뷔한 후 무려 15시즌간 달았던 그의 상징과도 같은 번호이다. 한화 시절에는 다른 선수가 25번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번호를 사용했었던 것. 참고로 그가 영입 초기에 단 9번은 두산 외인 용병 타자 잔혹사를 완벽하게 없앤 외인 지명타자가 달게 되었다.[11] 투수에서 벗어나면 홍성흔도 있는 만큼 전략적으로는 두팬들에게 낯설 게 전혀 없다.[12] 두산은 2017년 2차드래프트에서 최대성을 3억, 김도현을 2억을 주고 영입했다. 아무리 선수생활 말년의 노장이라지만 그 배영수가 1억이라니 당연히 싸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13] 이 장면으로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골든 포토상을 수상했다.[14] 초구부터 강하게 바깥쪽으로 직구가 파고 들어갔다. 140km/h 까지 구속이 찍힌 것을 보면 배영수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전력투구였다.[15] 15년뒤 완성된 10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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