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9-11 03:09:38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

유럽의 주요 관현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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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es Symphonie-Orchester Berlin[1]
영어: Berlin German Symphony Orchestra
프랑스어: Orchestre symphonique allemand de Berlin
한국어: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2]

파일:베를린도이치심포니.jpg

1. 개요2. 연혁3. 역대 상임 지휘자4. 특징

1. 개요

홈페이지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 관현악단.

2. 연혁

2차대전 종전 후 연합군에 의해 4분할된 베를린 구역 중 미군 담당 구획에 RIAS(Rundfunk im amerikanischen Sektor. 영어로는 Radio in American Sector)라는 이름의 방송국이 생겼다. 1946년 11월에는 이 방송국의 음악부장이었던 엘자 실러의 제안으로 'RIAS 교향악단(RIAS-Symphonie-Orchester)' 이 창단되었고, 2년 뒤인 1948년에 헝가리 출신 지휘자인 페렌츠 프리차이가 초대 상임 지휘자로 들어왔다.

프리차이는 버르토크코다이 등 자국의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그 동안 나치 시기에 연주가 금지되었던 현대음악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의 부활 공연과 방송 녹음에 주력했고, 실력있는 신진 연주자들의 영입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활동 초기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1953년에 미군 당국이 이 악단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해단 위기에 몰리기도 했는데, 악단 측에서는 RIAS와 방송 출연 계약은 유지하되 재정과 관리 문제에서 완전히 독립한다고 방침을 세웠다. 이에 따라 1956년에 악단 명칭에서 RIAS를 빼버리고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Radio-Symphonie-Orchester Berlin)' 이라고 두 번째로 개명했다. 동시에 베를린의 영국군 점령 지구에 있던 방송국을 재편해 만든 자유 베를린 방송(Sender Freies Berlin. 약칭 SFB)과도 출연 계약을 맺었다.

1959년에는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던 프리차이가 다시 복귀해 제2대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지만, 2년 뒤 지병인 백혈병의 악화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 뒤 스위스에서 요양하다가 1963년 세상을 뜨고 말았다. 후임으로는 미국 출신의 로린 마젤이 지명되었고, 마젤은 1975년까지 재임했다. 하지만 RIAS에서 독립한 뒤에는 지속적으로 예산 문제의 압박을 받아왔고, 결국 1977년에 베를린 시와 과거 운영 주체였던 RIAS, SFB 3자가 공동으로 악단 운영에 참가한다고 발표했다.

마젤 사임 후 약 7년 가량 공석이었던 상임 지휘자 직책은 1982년에 이탈리아 출신의 리카르도 샤이가 취임하면서 이어지게 되었다. 샤이는 1988년에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뒤 해당 직책에 전념하기 위해 이듬해 사임할 때까지 재임했으며, 후임으로는 러시아 출신의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미국 출신의 일본인 혼혈 지휘자인 켄트 나가노, 독일의 잉고 메츠마허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

1990년에 독일이 통일되면서 옛 동베를린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비슷한 명칭의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Rundfunk-Sinfonieorchester Berlin)과 혼동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결국 1993년에 악단 이름을 현재의 것으로 최종 개칭했다. 1년 뒤에는 베를린 지역의 방송국 관련 음악 단체를 합자 관리하는 '방송 관현악단과 합창단 주식회사(Rundfunk-Orchester und -Chöre GmbH. 약칭 ROC)' 의 일원이 되었다.

메츠마허는 계약상 2011년까지 재임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악단 운영진들과 행정 사안에 대한 격한 논쟁을 벌인 끝에 2010년 8월 사임했다. 악단 측에서는 러시아 출신의 신예 지휘자인 투간 소히에프를 2012/13년에 4년 계약으로 영입했다.

2019년 일본투어 종료 후 10월 13일, 14일 이틀간 내한공연이 예정되었지만 하기비스의 여파로 비행기가 뜨지않아 공연이 취소 되었다.

3. 역대 상임 지휘자

  • 페렌츠 프리차이 (Ferenc Fricsay, 재임 기간 1948-1954, 1959-1963)
  • 로린 마젤 (Lorin Maazel, 재임 기간 1964-1975)
  • 리카르도 샤이 (Riccardo Chailly, 재임 기간 1982-1989)
  •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Vladimir Ashkenazy, 재임 기간 1989-1999)
  • 켄트 나가노 (Kent Nagano, 재임 기간 2000-2006)
  • 잉고 메츠마허 (Ingo Metzmacher, 재임 기간 2007-2010)
  • 투간 소히에프 (Tugan Sokhiev, 재임 기간 2012-2016)
  • 로빈 티치아티 (Robin Ticciati, 재임 기간 2017-현재)

4. 특징

창단 때부터 베를린 내의 방송국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물론 2010년 현재도 마찬가지다. 다만 방송국들이 저마다 재정난을 호소하며 악단과 관계를 끊네마네 하는 통에 운영은 물론이고 지휘자나 단원들의 예술적 문제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는데, 이는 사실 다른 독일이나 유럽의 방송국 소속 악단들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통일 이전에는 RIAS와 SFB, 통일 후에는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국(Rundfunk Berlin-Brandenburg. 약칭 RBB로, SFB의 후신)과 공영방송인 도이칠란트라디오(Deutschlandradio) 같은 방송국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천조국에서 터진 금융위기크리 때문에 이 악단도 꽤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고, 메츠마허가 조기 퇴진한 것도 악단 측이 재정난 타개를 위해 예산 감축이나 단원의 정리 해고 조치를 단행한다고 발표한 것에 꼭지가 돌아 그랬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애초에 ROC의 최대 지분 보유자가 도이칠란트라디오와 독일 연방정부인 만큼, 이 쪽에서 예산 감축한다고 하면 데꿀멍할 수밖에 없는게 문제다.

그래도 방송국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공연 실황의 대부분이 녹화/녹음되고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미 프리차이 시절부터 제작된 수많은 녹음 테이프들이 도이칠란트라디오 자료실에 소장되어 있으며, 초기 도이체 그라모폰을 통해 나온 많은 음반들도 대부분 RIAS나 SFB와 공동으로 제작하거나 방송 녹음을 끌어와 만들었다.

물론 방송 녹음 외에도 상업적으로 돈이 되는 스튜디오 녹음도 많이 하고 있으며, 마젤과 샤이, 아슈케나지 재임기에는 영국 음반사인 데카와 여러 주목할 만한 음반들을 만든 바 있다. 나가노 시절에는 EMI의 서브 레이블인 버진 클래식스에서 주로 취입이 이루어졌고, 메츠마허는 EMI 독일 지사를 중심으로 녹음을 했다.

독일의 여타 방송 교향악단들처럼 이 악단도 현대음악 연주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데, 1990년대 중반에는 나치 시대 유대인이나 기타 열등 인종/공산주의자로 몰려 탄압받고 망명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작곡가들을 재조명하는 '퇴폐음악(Entartete Musik)'[3]들의 음반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목받기도 했다.

합창 작품 연주 때는 같은 ROC 소속 합창단들인 베를린 방송 합창단(Rundfunkchor Berlin)이나 RIAS 실내 합창단(RIAS-Kammerchor) 같은 단체들이 정기적으로 협연하고 있다. 재능있는 청소년 연주자들을 위해 초대 상임 지휘자인 프리차이의 이름을 딴 '페렌츠 프리차이 장학금(Ferenc-Fricsay-Stipendium)' 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며, 단원들이 조직한 실내악 단체들의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주요 공연장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로 베를린 필하모니를 사용하고 있으며, 옛 동베를린 지역에 위치한 콘체르트하우스(구 샤우슈필하우스)에서도 공연하고 있다.


[1] 독일어[2] 혹은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3] 나치가 인종 이념에 따라 분류할 때 쓴 단어로, 여기서는 그 의미를 반어적으로 해석해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