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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버르츠(ᠪᠣᠷᠴᠠ, Борц)는 몽골의 전통음식이자 건조 식량인 육포이다. 저장과 운송이 매우 편리한 보존식품으로 해외에서는 특히 전투식량으로서 몽골 제국군의 기동성에 큰 도움을 준 식량으로 유명하기도 하다.2. 특징
고기를 말리는 광경. 순수한 살코기만 사용하기 때문에 소 한 마리라고 해도 양이 많지 않다.
먹을 수 있는 풀이 완전히 사라지는 겨울이 되면 소를 잡아서 소고기의 살코기 부분만을 준비한 다음에 두께 2~3cm, 폭 5~7cm 정도로 길게 잘라서 준비한다. 그리고 이것을 줄에 매달은 다음에 게르 천장 등에서 바싹 말린다. 이렇게 해 두면 몽골 지역의 건조하고 차가운 기후[1]에 의해 자연적인 동결건조가 일어나는데 한 겨울 동안 말려서 고기가 갈색에 나무냄새가 날 정도가 되면 완성.
나무껍질 아닌가 싶을 정도인 말린 고기의 위용.[2] 보다시피 지방질이 거의 없는 살코기 부분만 사용한다.
워낙 건조한 기후이다보니 고기를 말리면 부피가 크게 주는데 이때의 건조율이 극한으로 수분을 줄인 우주 식량보다도 높다고 한다. 이렇게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무게는 1/3이 되고 부피는 그 이하로 줄어든다. 이렇게 완성된 것을 망치나 돌멩이로 두들겨서 가루 비슷해 보일 정도로 부드럽게 만든 뒤에 다시 작은 손절구 같은 데 넣고 다시 두들겨 압축해서 마대자루에 넣어 보관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버르츠 한 자루는 10명의 병사가 약 보름동안 먹을 식량이 된다. 인터넷에서는 위장이나 방광 주머니에 넣어 보관한다는 이야기가 퍼져있는데, 이는 마대자루를 구하기 힘들 때 이야기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평범한 가죽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식문화의 현대화에 의해 버르츠의 공산품화가 이루어진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먹을 때는 뜨거운 물이나 차를 준비한 다음, 버르츠를 주머니에서 약간 꺼내서 뜨거운 물에 넣고 불려 국을 만든다. 보통 엄지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면 한 그릇 정도의 국이 나오고 이것으로 한 끼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다. 좀 더 여유가 있으면 소금 등을 가미했고, 맹물 대신 차나 젖에다 타서 먹었다. 또한 보존기간이 길다는 점을 이용해서 만두 속재료로 쓰거나 볶음밥의 부재료로 쓰이곤 했다.
3. 상세
소고기는 수분을 함유한 상태에서 1g당 2.2kcal 정도의 열량을 내지만, 버르츠로 만들어 수분을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는 1g당 대략 4kcal의 열량을 낸다. 영양 성분은 제쳐두고, 500g의 버르츠를 섭취하면 2000kcal로 아이락 등의 음료를 곁들일경우 그럭저럭 하루치 열량이 나온다. 부피로 환산하면 대략 300ml정도. 그야말로 전투식량으로는 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뜻한 물이나 말젖에 불려먹는 방법은 현대 미군의 LRP나 러시아군의 IRP-BS와 같은 동결건조식 전투식량의 취식법과 동일하다.소 한 마리가 통째로 방광으로 만든 주머니 하나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과장이지만, 이런 소문이 생긴 이유는 소에서 가죽, 내장, 뼈, 힘줄, 지방질 등을 뺀 순수한 살코기는 애초에 그렇게 양이 많지 않고 또 살코기 중에서도 지방 비율이 높은 부분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의 몽골 지역의 소는 덩치가 현대의 품종개량된 비육우에 비해 훨씬 작았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체중이 2-300kg밖에 안 되는 소가 꽤 흔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노인세대 중에는 한우가 7-800kg 이상 무게가 나갈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제법 된다. 또 버르츠 자체가 지방질이 없는 순수한 살코기 부분만 가지고 만들기 때문에 도축되는 소의 크기에 따라서는 소 한 마리 분의 살코기가 방광으로 만든 주머니 하나에 들어간다는 얘기가 딱히 불가능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같은 종이라면 내장의 크기는 덩치에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소를 잡은 후 방광이나 위장을 주머니로 사용할 때는 깨끗이 씻고 말려서 사용했다. 다만 평원이 많은 몽골의 환경특성 때문에 물이 부족했고,[3] 전통적으로 고기를 먹을 때 피를 빼지 않고 그냥 먹어왔기 때문에 오래 묵히면 냄새가 나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도축 과정에서 창자로 순대를 만들더라도 물을 전혀 안 쓰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고기를 씻으면 맛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도 옛부터 몽골에선 땅에 피를 흘리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4]로 생각한다. 그래서 도축 후 피를 빼지 않은 채 그냥 써서 만든 몽골 요리는 누린내가 작렬해서 외지인이 먹기가 어렵다.[5]
4. 영양
저것만 있으면 식량문제 다 해결된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몽골인들은 저것 말고도 데려온 소, 양, 심지어 군마를 도축해 얻은 말고기와 말에서 뽑아낸 피랑 그 동물들의 젖을 급하면 먹는다거나 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동성을 살린 식량 보급을 해왔다. 사실 살코기만으로 만들어졌으니 단백질 비중이 너무 높아진다. 거기다 토끼고기 항목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단백질을 소화, 흡수하는데에도 꽤 많은 열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방이 없는 살코기를 다른 음식 없이 먹을 경우 영양 밸런스가 깨져서 역으로 기아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아무튼 며칠 이상 이것만 먹는다고 가정하면 날 때부터 가축에 모든 식량을 의존해온 유목민들이 아니면, 아니 유목민조차 영양 성분의 문제로 인해 얼마 못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는 식품이라 말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버르츠는 말 그대로 전식으로, 진을 칠 때에는 다른 문화권 군대들처럼 제대로 된 조리기구와 여러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해먹었다. 버르츠와 함께 전식으로 많이 가지고 다닌 것은 고형치즈와 비슷한 아롤이란 유제품이다.이 문제는 농경민족과는 다른 유목민족 특유의 생활형태를 기준으로 이해하면 간단하다. 생산의 기반인 농경지가 곧 마을(주거지)의 일부인 농경민이라면 집에서 밥먹고 일하러 나가거나 정 바쁘면 집에서 논밭으로 음식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좁은 면적에 가축이 밀집하면 순식간에 목초가 거덜나버리는 목축의 특성상 목축민의 생활반경은 농경민보다 훨씬 넓어질 수 밖에 없다. 알퐁스 도데의 별 같은 작품에서도 양치기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 위에서 양을 치며 마을 사람들이 1주일에 한번씩 가져다주는 식량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프랑스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마을을 중심으로 한 농업국가이고 목축에 종사하는 사람은 소수이기에 마을에서 목동에게 직접 보급을 해 줄수 있는 것이지...인구의 대다수가 목축민인 유목민족이라면 그런거 없이 자기 먹을것은 직접 해결해야 한다. 더구나 고정된 거점인 마을에 생활기반이 충실히 구축되는 농경민과는 달리, 유목민의 경우 정착지 자체가 목초지를 따라 계속 이동하게 된다.
결국 이동중, 특히 가축떼를 이끌고 목초지에서 풀을 먹이거나 (전근대까지 약탈과 분쟁이 일상적이었던 유목민족의 특성상) 영역 주변을 정찰하는 것과 같이 소집단 단위로 행동해야 하는 경우 취사도구를 바리바리 싸짊어지고 다니면서 끼니 때마다 가축 잡아 손질하고 화덕을 만들어 솥을 걸고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하는 것은 도저히 무리인 것이다. 또한 씨족 단위의 이동이라 해도 한 자리에 머무르는 동안이면 모를까, 이동하는 도중에 제대로 된 도구와 식재료를 이용해 수고를 들여 음식을 만드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당장 대표적인 몽골 요리로 유명한 허르헉이나 그 전통적 원형인 버덕 등을 보더라도 고기를 잡고 불만 피우면 상대적으로 간단한 기구만 사용해서 만들 수 있는 요리인 것. 이런 전통적인 몽골인의 식생할에서는 흔히 양 한마리를 잡으면 사내 두셋이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고, 그렇게 한번 잘 먹어 놓으면 열흘~2주 정도는 육포를 씹거나 말젖을 짜서(또는 보관에 용이한 아이락) 마시는 정도로 버틴다고 알려져 있다. 즉 소집단이 부족에 합류한 상태나 부족이 한 자리에 머물러있는 상태처럼 좀 여유로운 상황이면 제대로 만든 음식을 충분히 먹어두고, 이동중일 때는 휴대와 보존이 용이한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농경사회에서는 육포와 같은 휴대성 높은 보존식량의 수요가 전쟁터의 군인이나 여행자, 장거리 항해중인 선원 등 특수한 집단에 한정되지만 유목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필요한 생필품의 일종이기에 초원 특유의 춥고 건조한 겨울을 이용해 어차피 혹독한 겨울 내내 모두 먹여살리기는 어려운 가축들을 미리 도축하여 충분히 만들어 둔다는 것. 결론적으로, 유목민인 몽골인의 식생활에서 보르챠와 같은 휴대 간편한 장기보장식품의 비중이 농경민보다 훨씬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 먹고 산 것은 당연히 아니고,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는 제대로 된 조리를 거친 음식을 잘 챙겨먹었다는 것이다. 곡식을 젖에 넣고 끓인 타락죽[6]과, 우리들이 현재 외식으로 즐겨먹는 샤브샤브가 몽골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5. 맛
버르츠를 육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인 육포와는 좀 다른 음식이다. 육포를 만들 때는 각종 조미료나 향신료, 훈연액 등의 부가재료가 들어가지만, 버르츠는 기본적으로 소금조차 넣지 않고 살코기만 바싹 말리는, 북어와 비슷한 식자재다. 건조하고 추운 몽골의 기후 특성상 소금 없이 말려도 고기가 상하지 않으며 그전에 몽골은 소금이 귀해 대량으로 만들게 되는 버르츠에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현대에 판매되는 버르츠는 맛을 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가 더 들어가기도 한다지만, 어쨌든 버르츠의 원본은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말린 고기였고, 피를 절대 버리지 않는 유목민 특유의 조리법이 더해져 살코기와 피가 같이 건조되며 독특한 냄새를 만들게 된다.몽골 사람들은 이런 버르츠를 곱게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뜨거운 물이나 차에 타서 마신다. 그냥도 먹을 수는 있지만, 고기로 만든 미숫가루 같은 느낌이라 그냥 가루만 먹기에는 힘들며 외국인이 그렇게 먹으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맛은 제품에 따라 염분과 양념이 함께 들어간 것도 있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있는데 둘 다 독특한 냄새가 난다. 고기도 양고기로 만든 것, 소고기로 만든 것, 야크로 만든 것, 말고기로 만든 것 등 예닐곱 종류가 있으며 보통 양고기로 만든 것이 가장 대중적이다. 각 제품마다의 독특한 향을 제외하면 맛은 거의 없다(無味). 앞서도 말했지만, 고기로 만든 미숫가루라고 생각하면 되며 우리도 미숫가루를 그냥 먹으면 맛이 없기에 꿀이나 우유, 설탕 등을 타서 먹듯이 몽골인도 이런 버르츠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맛있게 만들어 먹는다. 그 방법은 차일 수도 있고, 국일 수도 있으며, 바쁜 사람은 그런 것 없이 찬물과 함께 꿀꺽 마시고 가는 것이다.
5.1. 끔찍한 맛이라는 편견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버르츠가 대단히 맛없고 고약한 음식으로 인식되지만 이는 상당 부분 과장되었다. 버르츠는 호불호가 심각하게 갈리는 발효식품이 아니고, 그저 고기를 바짝 말린 고깃가루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토록 끔찍한 음식이 될 수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몽골에서 버르츠를 먹어보면 슴슴한 고깃가루, 고기로 된 미숫가루의 느낌이지 인터넷 자료에 자주 등장하는 끔찍한 악취와 맛은 없다.또한 몽골의 관점에서는 버르츠는 완성된 하나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음식재료에 더 가깝기에 이를 가지고 다른 재료와 함께 국을 끓여먹거나 찻잎과 함께 차를 내려 마시는 것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버르츠만을 먹고 맛이 이상하다고 하는 것은 한국으로 치면 미숫가루나 단백질 보충제를 물 없이 가루로 털어먹고 맛이 없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혹은 동결건조식 전투식량을 물에 불려먹지 않고 가루로 그냥 먹다가 배탈이 나는 것과도 비슷하다. 즉, 버르츠는 요리 재료에 가까우므로 조리자가 어떻게 응용하기 따라 먹을만한 요리로 만드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전래되어 온 것이다. 일본의 후리가케도 그저 말린 해물을 가루로 빻고 소금을 친 것으로 밥이나 찻물에 타서 먹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연상하기 쉽다.
몽골에서의 버르츠는 전통음식으로 오늘날까지도 몽골인들이 만들고 먹는다. 또한 한국에서도 전통음식인 김치가 공산품화되어 나오듯이 버르츠도 식문화의 현대화에 의한 공산품화가 이루어져 오늘날에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서 판다. 정말로 그들 입맛에도 끔찍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면 현대까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량 생산하고 소비할 이유가 없다. 다만 오늘날에는 현대식 육포처럼 소금과 향신료를 치는 일이 많아졌다.
한국인들 중에도 몽골 여행 갔다온 사람이 버르츠를 사오는 경우가 있어서 먹어본 경우도 있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인 입맛에는 현대의 버르츠도 좀 느끼하고 비리고, 냄새가 심하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다만, 못먹을 정도는 아니며 외국의 전통음식이니 딱히 뭐라 할 문제는 아니다.
몽골 사람들 입맛에는 일종의 삶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라 대항해시대의 건빵이나 염장고기보다 안 좋은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항해시대 선원들이 먹던 건빵이나 염장고기는 식량 보급 없이 싣고간 식량만으로 장기간의 항해를 버텨야 하는 선원들이 먹던 것이기에 '평소에(육지에서) 먹던 것보다 열악한 식재료'였던 것인 데 비해 전통적인 유목민의 생활상에서 버르츠는 '평소에도, 특히 겨울에는 자주 먹던 일상적인 식재료'의 하나인 것이다. 짬밥보다 집밥이 먹을만 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굳이 세세히 따지고 들자면 "전근대 유목민들은 대체로 농경 정주민보다 가난했기에 그 식생활 수준도 열악하지 않았느냐", 즉 "몽골 사람 및 유목민들에게는 '익숙해져서' 먹을만한 것으로 여겨졌더라도 비슷한 시기 타 지역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을수도 있지 않으냐"거나, 이에 대한 반론으로 "원래 타 문화권의 식재료는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맛없거나 이상하게 여겨질수 있지만, 그 때문에 식재료의 우열을 나눌수는 없다. 문화상대주의는 김치에 싸서 먹어버렸냐?"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고, 이런 여러 문화권의 기준을 한데 모아놓고 비교하고 싶다면 향신료는 커녕 소금과 같은 기초적인 조미료도 구하기 힘들었던 것이 전근대 유목문화권의 궁핍함이라면, 반대로 정주문화권에서는 값비싼 식재료였던 고기가 오히려 유목문화권에서는 가장 흔한 식재료였던 것도 감안해야 하지 않으냐는 등 여러가지 요소들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하간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유목민 사회상에서 버르츠는 한국 전통 식문화로 치면 배추나 무 쯤 되는 일상적인 식재료의 하나였다는 것. 그러니까 익숙해서라도 먹을만한 것이지 먼 바다로 떠날 때 다른 먹을게 없어서 할 수 없이 먹었던 식재료만큼 먹기 힘든 것은 아니었음이 당연하다. 1990년대에 몽골에서 만들어진 칭기즈 칸 영화를 보면 칭기즈 칸의 어머니 후엘룬이 대칸인 아들에게 네가 좋아하던 거라면서 양고기로 만든 버르츠를 건네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장면 역시 버르츠가 몽골 사람들조차 먹기 힘들어하는(또는 싫어하는) 궁하고 천한 음식이 아니라 몽골 최고의 영웅이자 통치자가 된 아들에게 어머니가 주는 애정을 상징하는 익숙한 식재료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현재는 육류가 검역에 걸려서 안 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몽골인들이 유학이나 해외로 일하러 갈 때 버르츠를 몇 개씩 가지고 가거나 또 해외로 소포로 보내주기도 했다고 할 정도다. 100% 전통방식으로 만든 버르츠면 몰라도 현대식이라면 아주 못먹을 물건은 아니다. 버르츠의 역겨운 냄새는 방광에 보관했거나 향신료가 없어서 고기의 누린내를 잡지 못했기 때문인데[7], 현대식 버르츠는 이러한 요소를 해결했으니 먹을 만 하다.
6. 여담
근대 시절에 버르츠가 전투식량으로 유럽의 군대에 보급된 적이 잠깐 있었는데, 병사들이 버르츠는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네들끼리 돈을 갹출해서 다른 곳에서 음식을 조달했다. 진짜로 군인들이 거부한 전투식량이 된 것이다.[8] 그래서 조금이라도 비용을 절감해보려던 지휘관들은 허탕만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무렵에는 몽골군이 전식으로 버르츠를 즐겨 사용하던 시대보다 조리와 저장 기술이 발달해서 버르츠보다도 맛과 질이 뛰어난 식사를 일선 부대에 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9] 가령 독일같은 경우에는 만들어진 식사를 전달하는 급식마차를 도입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자체적으로 조리가 가능하도록 개량했다. 근대의 서양 군대가 버르츠 대신에 전식으로 선택한 것은 페미컨. 그 이후에는 잘 알려진 통조림과 병조림이 있었다.햄버그 스테이크의 원형도 몽골인들이 안장과 허벅지 사이에 고기를 끼워놓은 것이 모티브라는 말이 있으나 별로 신빙성은 없다. 서양에서는 카우보이들이 상품성 없는 고기를 잘게 저며서 구워 먹으면서 생겨났다는 설도 존재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
이우혁의 소설 치우천왕기에서 굶어죽을 뻔한 주인공들을 살려주는 비상식량으로 등장한다. 다만 여기서는 물에 풀자마자 신선한 고기죽이 된다는
웹툰 호랑이형님에서도 2부 6화에서 등장. 가우리의 아버지가 서쪽 땅(몽골이 유력) 전쟁터에서 가져왔고 이를 마을 어르신께 들었던 가우리가 가져다가 다친 빠르와 추이에게 먹인다.[11] 여기서는 어느 정도 고증을 했는지 냄새가 심하다는 언급이 있다.
비슷한 보존식으로 북미 원주민들이 만든 페미컨이 있다. 다만 그냥 고기를 말린 버르츠에 비해 여러가지 재료들을 지방과 섞어 만드는 페미컨은 열량이나 영양균형을 맞추기 쉽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서도 '에너지바'와 같은 방식으로 개량되며 보존식품, 비상식량, 전투식량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드는 페미컨은 식감이 텁텁하며 오래 두면 굳기 때문에 그냥 먹기보다는 버르츠처럼 스튜의 재료로 쓰는 것이 더 보편적이었다.
7. 관련 문서
[1] 시베리아와 함께, 한국의 겨울과 봄 날씨에도 영향을 끼치는 대륙 고기압의 진원지이니 당연하다.[2] 사실 전통 제법으로 만든 육포의 경우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철저히 말려 기술적 한계까지 수분을 제거하기 때문에 생김새 뿐 아니라 씹는 감촉도 꼭 나무껍질을 씹는 것 같고, 입 안에서 아무리 씹어도 이거 삼키다가 식도가 다치는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식감이 거치며, 사람이 먹을만하게 요리하려면 삶거나 쪄서 수분을 보충해줘야된다. 다만 현대에 흔히 유통되는 육포들은 어차피 보존료+냉장보존+포장 등으로 보존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맛과 식감을 위해 어느 정도 수분을 남겨두어 약간의 부드러움이 유지되는 것. 이 점에서 보면 현대의 육포는 전근대 기준으로 보면 보존식품으로써의 육포라기보다는 맛을 응축시키고 독특한 풍미를 내기 위한 반건조식품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별로 유통되지 않지만 전통 제법으로 완전히 말린 육포를 해외에서라도 구해서 먹어보면 향신료를 충분히 써서 냄새나 맛은 괜찮은데 식감은 너무 거칠고 딱딱해서 씹고 삼키기 거북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물론 저런 육포도 당연히 전근대의 육포보다는 훨씬 현대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전근대에는 후추나 육두구 등의 향신료는 커녕 소금도 그리 흔하지만은 않은 물자였다.[3] 원나라 초기만 해도 목욕과 빨래를 허락없이 하는건 사형이었다.[4] 단순한 미신뿐이 아니라 피를 흘리면 늑대를 비롯한 맹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합당한 안전 수칙이라고도 볼 수 있다.[5] 손님 접대 요리라면 소금을 왕창 넣기 때문에 짜서 더 먹기 힘들어진다. 바다가 없는 몽골은 소금 역시 귀한 것이라서, 접대 요리나 고급 요리엔 대접 한답시고 소금을 듬뿍 넣는다.[6]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의 주식 중 하나인 카샤도 타락죽과 비슷하다.[7] 또한, 옛 몽골이 물이 귀했기 때문에 고기에서 피를 빼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다. 몽골에서는 피를 보지 않고 죽이는 처형법을 상대를 존중하는 것으로 여겼을 정도였다. 몽골인들은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먹어왔지만 타지인은 그렇지 않았으니 피를 빼지 않은 고기로 만든 버르츠가 입맛에 맞지 않을 만하다.[8] 현대에도 동결건조식 전투식량은 일반적인 전투식량 혹은 제대로 된 병영식보다 맛이 좋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9] 중세 이후 유럽은 워낙 전쟁이 잦아서 전투식량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나 동양의 주요한 군량인 쌀과 달리 유럽인들의 주식인 밀은 빻아서 빵으로 구워먹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품이 훨씬 많이 드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빵을 보조하기 위한 다양한 저장요리를 활용해야만 했다. 콘비프나 베이컨 등등도 이런 배경에서 전식으로 중요하게 활용됐다.[10] 치우천왕기 이전 작가의 전작품인 퇴마록이나 왜란종결자등에서도 잘못된 묘사나 과도한 자의적인 해석이 들어간 경우가 많다. 물론 퇴마록을 집필할 당시는 90년대이니까 현지 조사가 완벽했겠냐마는.[11] 원래 염소 한마리 먹이려다 무케가 다 먹어서 다시 마을로 가서 가져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