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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스콧 Bon Scott | |||
<colbgcolor=#000><colcolor=#dcdcdc> 본명 | 로널드 벨포드 스콧 Ronald Belford Scott | ||
출생 | 1946년 7월 9일 | ||
영국 스코틀랜드 앵거스 포퍼 | |||
사망 | 1980년 2월 19일 (향년 33세) | ||
영국 런던 이스트 덜위치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 ||
소속 | AC/DC (1974 - 198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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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형제 샌디 스콧, 그레임 스콧, 데렉 스콧 자매 발레리 스콧 | ||
배우자 | 아이린 손튼 (1972 – 1978) | ||
학력 | 존 커틴 미술학교 (중퇴) | ||
신체 | 173cm | ||
혈통 | 스코틀랜드계 호주인 | ||
종교 | 가톨릭 | ||
활동 기간 | 1964년 – 1980년 | ||
사용 악기 | 보컬 | ||
장르 | 록, 로큰롤, 하드 록, 블루스 록 | ||
레이블 | EMI, 에픽, 애틀랜틱, 앨버트, 컬럼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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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레일리아의 음악가.브라이언 존슨 이전 AC/DC의 보컬리스트로 유명하다. 끈적거리는 블루지한 보컬이 특징이며, AC/DC의 골수 팬들이 브라이언 존슨보다 더 좋아하는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Highway to Hell 시절까지 AC/DC의 프론트맨으로서 호주와 미국 등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으나, 음주로 인해 요절하였다.
2. 생애
본 스콧은 영 형제와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본 스콧의 가족은 그가 6살이던 1952년에 호주 멜버린으로 이주하여 국적도 호주로 바꾸었다.[1] ‘본’ 이라는 별명은 멜버린에서 살 당시 같은 반에 동명이인이 있었기에 붙여진 별명이다.본 스콧의 가족은 1956년 멜버린에서 다시 프레멘틀로 이주한다. 그는 15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여러가지 작은 범법 행위들을 저질러서 감옥도 갔다오는 등 이른바 ‘비행청소년’이었다. 이것 때문에 본 스콧은 호주 군대에서 사회 부적응을 이유로 떨어졌다.
1964년 음악 활동을 처음 시작한 그는 여러 밴드들에 몸담으면서 음악적인 역량을 키워나갔다. 당시 그는 ‘더 스펙터스’라는 밴드에서 드러머와 리드 보컬을 동시에 맡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영 형제를 만나 AC/DC를 결성하고, 밴드는 천천히 인기가 올라 그는 호주에서 유명한 록스타가 된다. 그러나 그는 런던에서 과음 후 숙면하다가 토사물에 목이 막혀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2]
3. 음악 스타일
Highway to Hell 라이브 |
브라이언 존슨의 음역대가 워낙 높아 대중들에게 잘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본 스콧의 음역대 또한 매우 높은 편이다. AC/DC 활동 당시 그는 3옥타브 초반까지 안정적인 보컬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보컬 기술이 발달된 현재는 3옥타브를 넘나드는 보컬이 많지만, 본 스콧이 활동하던 1970년대 중후반에 3옥타브를 손쉽게 넘나들 수 있는 보컬은 로버트 플랜트, 이안 길런, 로저 달트리 같은 일부 하드 록, 메탈 보컬들밖에 없었다.[4][5] 이러한 상황에서 라이브 기복도 별로 없이 안정적인 보컬을 보여주었으니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다.
본 스콧은 리틀 리처드의 어마어마한 팬이었기에 리틀 리처드로부터 전체적인 창법과 보컬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또한 전술했듯이 음색이 워낙 개성적이고 독특하기에 브라이언 존슨과 마찬가지로 커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도 특징이다.[6]
하드 록 보컬답게 성량도 상당히 큰 편이다. 당장 위의 라이브 영상만 봐도 보컬이 밴드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4. 여담
- 1972년에 아이린 손튼이라는 여자와 결혼했지만 1974년부터 별거, 1978년 이혼하였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친구처럼 지냈다고. 이혼과 관련해서 황당한 이야기가 있는데, 아이린이 본에게 "나를 위한 가사를 써주지 않을래?" 라고 하자 본은 'She's Got Balls' 를 작사했고, 이후 그녀는 본을 떠났다.
- Highway to Hell 발매 후 갑작스럽게 사망했기에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라는 도시전설에서 자주 인용된다.
- 후임인 브라이언 존슨이 다른 밴드에 재적하고 있을 때 본 스콧이 그의 공연을 보고 영 형제에게 “브라이언 존슨 그 친구 리틀 리처드 스타일로 아주 끝내주게 부르던데?!”라고 칭찬했었다. 칭찬에 인색했던 스콧이기에 영 형제는 이를 기억하고 있었고, 본 스콧 사후 존슨을 밴드에 영입하게 된다.
- 전술한 일화들과 웃긴 표정으로 찍은 사진들이 많이 남아있기에 해외에서는 밈이 많다. 전술한 일화를 엽사에다 박아넣거나, 레몬을 짜고 있는 사진에는 로버트 플랜트의 레몬을 짜고 있다고 하는 등의 밈들이 많다.
[1] 정확히 말하면 국적은 여전히 영국이었다. 당시 호주는 완전한 독립국이 아니라 호주 자치령이었기 때문이다.[2] 지미 헨드릭스, 존 본햄과 같은 사인이다.[3] 보통 골수 팬들은 본 스콧을 근본 보컬이라며 찬양하고, 브라이언 존슨을 밴드를 되살린 보컬이라며 찬양한다. 즉 두 보컬을 모두 칭송한다는 말.[4] 이들만큼 넓은 음역대로 유명한 프레디 머큐리도 3옥타브 초반대를 잠깐 찍는 것 말고는 안정적으로 구사하기는 힘들었기에 라이브에서는 보통 2옥타브 후반대로 음을 내려서 불렀다.[5] 또한 당시 하드 록 밴드들 중 소위 말하는 ‘초고음’을 구사하는 록밴드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더 후 등으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하드 록 밴드이지만 초고음은 딱히 없는 레너드 스키너드와 롤링 스톤스의 곡들을 들어보면 알 것이다.[6] 그렇기에 후임인 브라이언 존슨이나 객원 보컬로 섭외됐던 액슬 로즈 또한 본 스콧 재적 시기의 곡들을 부를 때 자신만의 스타일로 불렀다. 애초에 두 보컬리스트 또한 스타일이 매우 독특한 보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