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1:36:15

부평

1. 개요

인천광역시부산광역시에 공통으로 있는 지명. 하지만 인지도는 인천 부평이 넘사벽이며, 공교롭게도 둘 다 부평시장이 있다.[1]

2. 수도권의 전통적 지명

지금의 인천광역시 서구[2], 부평구[3], 계양구경기도 부천시[4]서울특별시 구로구 서부[5], 강서구 오곡동, 오쇠동 일대를 일컫던 지명. 조선시대에는 부평도호부에 속했고 23부제 실시로 부평군(郡)이 되었으며, 읍치(중심지)는 쭉 지금의 계산동 일대에 있었다.[6]

인천(원인천)이 미추홀(매소홀)로 불린 삼국시대에, 부평은 주부토로 불렸다. '주부토(主夫吐)'는 고대 한국어 '줄보뚝'의 한자 음차로, 긴 을 뜻한다. 이에 신라 경덕왕 때 전국의 고유어 지명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장제(長堤)'로 개칭되었다. '주부토', '장제'는 현재 계양구, 부평구 일대의 도로명 등에 남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부평구/역사, 1914년에서 1940년 사이는 부천시/역사 문서 참조.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내지는 부평역 인근을 가리키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계양구, 부평구, 부천시, 강서구, 양천구, 영등포구 일대에 펼쳐진 평야를 '부평평야'라고 부른다.

2.1. 역사

부평 지역 행정구역 변천사
주부토군 (主夫土郡)
장제군 (長堤郡, 757)
수주 (樹州, 940)
안남도호부 (安南都護府, 1150)
계양도호부 (桂陽都護府, 1215)
길주목 (吉州牧, 1308)
부평부 (富平府, 1310)
부평도호부 (1413)[7]
인천부 부평군 (1895)
부평군 (1896)
부천군 (1914)[8]
부천군 서곶면 부천군 부내면 부천군 계양면 부천군 오정면 부천군 계남면
1940 ↓ 1931 ↓
인천부 부천군 소사면
1949 ↓ 1941 ↓
인천시 부평출장소 부천군 소사읍
1968 ↓ 1963 ↓
인천시 북구 부천군 오정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편입 부천군 소사읍
1973 ↓ 1973 ↓
김포군 계양면[참고] 김포군 오정면 부천시
(1988 : 남구, 중구 일부 ~1993 : 소사구, 원미구 ~2016)
1975 ↓
부천시 편입
(1988 : 중구 일부 ~ 1993 : 오정구 ~2016)
1981 ↓
인천직할시 북구[참고] 서울특별시 구로구 분리 (1980) 서울특별시 강서구 분리 (1977)
1988 ↓ 1989 ↓
인천직할시 서구 인천직할시 북구
1995 ↓
인천광역시 서구 인천광역시 부평구[참고] 인천광역시 계양구[참고]

2.2. 인천광역시의 자치구 부평구

2.2.1. 부평동(부평구)

2.3. 수도권 전철 1호선,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부평역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부평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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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여담

  •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후반 조선총독부는 현재 부평 일대인 부천군 부내면의 경성부 편입 여부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인천부로 편입시켰다. 그때 부평과 부천을 경성부 관할구역으로 놓았다면 지금의 부평은 인천의 일부가 아닌 서울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많다.
  • 옛 북구 지역인 부평구와 계양구는 2010년까지 무려 90만명의 인구가 거주할 정도로 인천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서구 청라국제도시 & 검단신도시 등 인천시내 대형 신도시의 연쇄 개발이 진행되면서 부평구와 계양구에서 인천 내 신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잦았다. 여기에 부평보다 서울이 더 가깝고 교통이 발달한 부천시, 김포시, 고양시, 시흥시, 파주시, 안산시, 광명시는 물론 서울특별시 강서구양천구 등으로까지 인구 유출이 심화되면서 옛 북구 지역의 인구 합계는 78만명 수준까지 줄었다. 다만 부평구의 인구밀도는 여전히 인천 자치구 중 2위이다.

3.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부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행정동이며, 이 곳에 부평깡통시장, 부평골목야시장 등 중구의 나름 번화가 지역이다. 여담으로 인천의 부평과 한자까지 완전히 똑같다.

면적 0.21㎢, 인구 5270명(2008)이다. 용두산(49m) 서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광복동, 남쪽은 남포동, 북쪽은 보수동, 서쪽은 서구와 접해 있다.

부평동은 부민동(富民洞)과 같은 어원에서 동명이 유래한다. 보수천 하구 일대는 갈대밭과 풀밭으로 되어 있어서 예부터 새뛰 또는 샛띠라고 하였다. 새뛰는 초량(草梁)이라는 뜻인데, 해정리(海汀里;현재의 동구 초량동)까지를 새뛰라고 불렀다. 현재의 부평동, 부민동에서 초량동까지를 모두 초량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부평동의 '부'는 부산의 옛지명인 부산(富山)의 '부'자와 같은 의미이며, '평'은 '터'라는 뜻으로 새뛰의 '뛰'에서 유래한다.

조선 시대에는 동래군 사하면(沙下面) 부평리(富平里)였으며, 1896년에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에 부평정(富平町)이라고 하였고, 1947년에 부평동으로 개칭하였다. 행정동인 부평동은 법정동인 부평동1~4가로 이루어져 있다.
[1] 흥미롭게도 부산의 부평시장의 별칭은 깡통시장이다. 그리고 인천의 부평시장에는 깡시장이라고 부르는 구역이 있다.[2] 검단 지역 제외.[3] 십정동 제외.[4] 계수동, 옥길동 제외.[5] 안양천 서쪽 지역.[6] 옛 부평도호부 청사가 계산동에 있는데 이 청사 부지에 있는 학교의 명칭도 부평초등학교다. 부평초등학교가 구한말인 1899년에 세워진 것을 고려한다면 부평의 중심이 계산동에서 현재의 부평역 인근인 부평동으로 옮겨간 것은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일이다.[7] 1438 ~ 1446년, 1505 ~ 1506년 1698 ~ 1708년, 3차례 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다.[8] 부천군을 신설하면서 부평군 자체는 폐지되었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부평군의 후신은 아니다. 후신'격'으로 볼 수 있다..[참고]인천 북구-인천 편입 전 계양면과 現 인천광역시 부평구-계양구 간의 경계선은 다소 차이가 있다.(舊 인천직할시 북구 관할이던 계산동, 작전동, 서운동, 효성동이 現 인천광역시 계양구 소속으로 편입됨.)[참고] [참고]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