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20:31:14

사이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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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카슈(雑賀衆) 스즈키 가문의 야타가라스 문장

1. 개요2. 역사3. 사이카 마고이치4. 기타

1. 개요

일본 전국시대 키이(현재 와카야마현) 지역에 기지를 두고 활동한 용병혹은 닌자 집단.

키이의 사이카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퍼져있던 여러 호족들이 연합하여 결성하였다. 알려진 주요 지도자 가문들로는 스즈키 가문, 츠치바시 가문이 있으며, 알려진 인물 중 스즈키 가문은 사이카 마고이치를 대대로 쓴 인물들이 있고, 츠치바시 가문은 츠치바시 모리시게가 있다.

2. 역사

사이카슈의 결성은 15세기 오닌의 난 즈음이라고 추정된다. 오닌의 난 이후 긴키 지역 각지를 전전하며 용병 집단으로서 세력을 키웠고, 기노 강 하류를 장악, 해운 무역에도 종사하였다. 독자 수군력도 보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

서양의 철포타네가시마에 전래된 이후 사이카슈는 빠르게 철포를 입수하여[2], 수 천 정의 철포를 소유해서, 사수들을 양성하고 효과적인 철포 전술을 고안했다.

1562년 하타케야마 타카마사가 미요시 나가요시와 전쟁을 벌일 때 사이카슈는 키이 슈고인 하타케야마군 소속으로 참전, 쿄코지 전투에 참전하였다.

1570년 오다 노부나가미요시 삼인중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자 사이카슈는 용병으로서 양측에 가담하여 싸웠다. 이후 혼간지 켄뇨잇코잇키를 일으켜 전투에 가담하자, 같은 일향종 신도들이던 사이카슈는 혼간지를 도와 오다군에 맞섰다. 이때 사이카슈를 이끌던 사람이 스즈키 시게히데로 그는 뛰어난 철포 전술로 이시야마 전투 동안 오다군을 물먹게 했다. 결국 오다는 사이카슈가 혼간지를 도울 수 없게 하기 위해 사이카슈의 본거지를 친다.(1차 기슈 정벌) 새로 맞는 지형과 시게히데의 전술로 인해 오다군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결국 사이카슈에게 항복을 받아냈고, 사이카슈를 복종시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를 수습한 사이카슈는 다시 혼간지를 지원한다.

이시야마 혼간지가 노부나가에게 사실상 굴복하여 이시야마 전투가 종결된 뒤에도 사이카슈는 계속 오다와 맞섰다. 그러나 사이카슈 내부에서 갈등이 생겨났다. 츠치바시 가문의 수장이던 츠치바시 와카타유[3]는 노부나가와 계속 항쟁할 것을 주장하였던 반면 스즈키 시게히데는 이제는 오다와 화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의 대립은 시게히데에게 와카타유가 모살당하며 끝이 났다. 그러나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죽자, 츠치바시 가문은 시게히데를 공격했고, 결국 시게히데는 자신의 세력을 끌고 히데요시에게 복속하였다. 그 뒤 츠치바시 가문이 주도권을 잡은 사이카슈는 히데요시에 적대하는 태도를 보였고, 이후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 도쿠가와군으로 참전했다.[4] 결국 히데요시는 사이카슈 공격을 감행했고(2차 기슈 정벌), 여기서 사이카슈가 패배하여 해산하게 된다.

남아있던 사이카슈 소속원들은 귀농하거나 전문 철포병으로 다이묘들의 아래로 들어가 철포 제조법이나 사격을 가르쳤다. 스즈키 가는 시게히데 이후 스즈키 시게토모가 계승[5], 임진왜란에 철포대장으로 참전하였고, 세키가하라 즈음엔 서군에 가담하여 토리이 모토타다를 살해하는 등 활약했다. 서군 붕괴 후에는 낭인으로 있다가 다테 마사무네의 밑을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격교관이 되었다가, 고쿠다카 3000석을 받고 도쿠가와 고산케중 하나인 미토번의 가로(家老)가 되었다. 이후 가독은 아들 스즈키 시게츠구가 이었으나, 시게츠구가 아들이 없어 미토번 초대 번주 도쿠가와 요리후사의 11남인 스즈키 시게요시가 데릴사위로 들어가 가문을 잇게 된다. 그러나 시게요시 역시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여 가문을 잇게 했으나 작은 소동이 생겨 고쿠다카가 600석으로 깍이고, 가문의 격도 중신(重臣)으로 떨어지나 다행히 가문은 메이지 유신까지 이어지게 된다.

3. 사이카 마고이치

4. 기타

코에이 게임에서도 독자 세력으로 나온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스즈키 가문으로 등장하며, 시게히데를 포함한 철포 계열이 좋은 무장들이 많이 존재한다. 독자 기술 원당을 띄우면 안 맞으면서 때리는 것도 가능. 키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실제 키이 슈고였던 하타케야마 가문을 무력하게 만드는 장본인들이기도.

태합입지전 5에서는 독자세력으로 나오지 않고 혼간지의 가신격으로 나온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철포특기가 뛰어난 게 특징.

전국무쌍 시리즈에서는 리더 사이카 마고이치가 등장. 기슈 정벌이 등장하는 편들도 있다.

전국 바사라 시리즈에서는 전국 바사라 3부터 리더 사이카 마고이치가 이끄는 세력으로 등장. 전국무쌍의 마고이치와는 다른 느낌...정도가 아니라 여자다(...).

김충선(사야가)이 사이카슈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사이카슈 중에서 철포의 달인으로 꼽힌 사람 중에 코스즈메, 호타루 등이 있는데, 성별은 불명이지만 이 이름이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 여성 무장으로 모에화되는 일이 많다. 노부나가의 야망과 백만인의 전국무쌍에서도 여성 무장으로 등장.

노부나가를 죽인 남자 일륜의 데마르카시온에서는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 사이카슈 지휘관[6]이 등장한다. 오사카 화공 작전에서 오사카에 불을 지르며 "성지를 빼앗은 히데요시 놈의 거점인 오사카를 불태워라!"라고 말하는데, 히데요시가 있는 오사카에 사이카슈 대원들이 신봉하는 본원종의 본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 이후 히데요시는 1586년 10만 대군을 보내 키슈 남벌을 행했고, 이 과정에서 사이카슈는 괴멸한다. 살아남은 대원들은 친 히데요시 파 다이묘들 막하에 철포병으로 들어갔는데, 실상은 형벌부대로서 임진왜란 당시 본대가 꺼리는 학살이나 약탈 등 더러운 임무에 동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김충선을 비롯한 일부 사이카슈 대원들은 의미없는 학살에 지쳐버려 지휘관을 쏴 죽이고 조선으로 투항한다.


[1] 이런 이유로 사이카슈를 단순한 군사 집단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상업을 통해 성장한 상인 집단이라고 봐야된다는 것이다.[2] 바로 근처에 있던 네고로슈(根来衆)의 승병 츠다 산초(津田算長)가 철포를 밀수하였기 때문에 사이카슈는 철포 도입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네고로슈도 승병 겸 용병으로 이름을 날렸던 집단이다.[3] 이름은 모리시게(守重)라고 하지만, 당대의 문서에서는 타네츠구라는 이름이 많이 나온다.[4] 이때 시게히데는 하시바군에 철포대 지휘관으로 참전해 있었다.[5] 시게모토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지만 사다유의 아들, 즉 시게히데의 동생이라는 설도 있다.[6] 눈만 드러낸 가면과 투구를 쓰고 있으며, 하오리에는 '나무아미타불'이 쓰여 있다. 다만 가면의 모양새를 보면 스즈키 가문 소속은 아닌, 이름없는 지휘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