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14 23:56:02

소니 리스턴

파일:sonny-liston-top.jpg
소니 리스턴
Sonny Liston
<colbgcolor=#000000><colcolor=#aa9872,#8c7a55> 본명 찰스 L. 리스턴
Charles L. Liston
출생 1930년
미국 아칸소주 샌드슬로
사망 1970년 12월 30일 (향년 40~41세)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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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전적
54전 50승(39KO) 4패(3KO)
신장/리치 185cm / 213cm
체격 헤비급
스탠스 오소독스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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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권투 선수.

2. 전적

3. 커리어

1932년[1] 에 아칸소주 샌드슬로에서25명의 자녀중 24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하며 살았고[2] 10대때 어머니와 야반도주해 소년가장이 되었고 생계를 위해 절도, 강도를 저지르다가 감옥에 수감되었다.[3]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동안 복싱을 접했고 가석방 후 복싱에 데뷔했다. 데뷔전에서 상대를 펀치한방으로 쓰러뜨리자 주변 갱단 조직들이 소니에게 스폰을 제안했고 이후의 경기들은 갱단의 입김을 받아 경기를 치렀다.

거기에 본인의 링 밖에서의 경찰관 폭행 사건으로 인해 더더욱 비호감이미지를 얻었고 플로이드 패터슨과 타이틀전이 예정되어있었지만 코치인 커스 다마토가 갱단과 연관된 선수와 시합할수없다며 거부의사를 나타냈다. 하지만 패터슨의 재정문제로 1962년 타이틀전을 치렀으며 1라운드 KO승을 거두며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후 패터슨과 2차전을 펼쳤고 또다시 1라운드 KO승을 거두며 방어전에 성공했다.

64년 2월에 열린 캐시어스 클레이[4]과 2차 방어전을 치렀다. 하지만 클레이의 심리전에 말려 펀치를 제대로 뻗지 못했고 6라운드 종료후 기권패했다. 이에 대해 마피아의 개입이다. 클레이가 가입한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개입이다라는 루머가 많이 퍼졌다.

알리[5]와 2차전을 치르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탈장과 말콤 엑스의 죽음으로 인해 1965년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알리의 빠른 펀치에 1라운드 KO패당했다. 이 역시 조작논란에 휩싸였고 리스턴은 무슬림이 무서워서 KO된것이다고 해명했다.

알리와의 경기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4경기를 치렀고 67년 미국으로 복귀해 14연승을 거두나 타이틀 도전권은 받지 못했다.

1970년 6월 척 웨프너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치렀고 1971년 1월 5일자택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발견당시 5일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사인은 심장이상으로 인한 사고사로 판단했고 그 근거로 팔뚝에 있는 주삿바늘과 약물 검출을 증거로 판단했다. 하지만 생전 주삿바늘을 무서워한 인물이라 주삿바늘을 놓은 것은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4. 파이팅 스타일

190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하드펀처로 상대했던 대부분의 선수들이 양손의 펀치가 너무 강했다고 이야기했다. 파워 잽 하나로 상대에게 큰 대미지를 입힐수 있었다. 주무기인 양 훅으로 상대를 박살냈다. 한방에 가려져 있지만 기본기도 상당히 좋은 편이였다.

5. 여담

조지 포먼이 리스턴의 스파링 파트너였었다.

묘비명은 이름, 연도 밑에 The Man이라고 간단히 표기했다.

[1] 5월 8일이라 공식적으로 알려졌었으나 본인도 언제태어났는지 잘 몰라 월일은 밝혀지지 않았다.[2] 얼굴에 나온 칼자국 흉터도 이때 생겼다.[3] 바깥보다 밥 세끼 꼬박 나오는 수감생활이 행복했다고 술회했다.[4] 무하마드 알리의 개명전 이름. 당시엔 개명전 이름으로 경기를 치렀다.[5] 이 시기를 기점으로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