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미라
1. 개요
타림 미라, 소하공주[1] |
2. 상세
1934년 여름 스웨덴의 고고학자 폴케 베리만(Folke Bergman)[3]이 뤄창 현 라부파 지구(罗布泊地区) 공작하(孔雀河) 남쪽 60km 지점, 누란 고성 유적지 서쪽 175km 지점의 소하 묘지에서 배를 거꾸로 뒤집은 모양의 관에서 발견했다. 발견 뒤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주변 지역을 발굴하면서 유명해졌다.2010년 중국 지린대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소하공주와 그녀의 주변에서 발견된 다른 미라들은 켈트계와 스칸디나비아계 혈통이라고 추정하였는데 켈트족, 라틴계 민족들과 동계로 추정되는 토하라인이었으리라고 여겨졌다. 소하공주 본인은 여기에 유라시안임이 그동안의의 통설이었다.# 특히 털모자나 치즈 등을 통해 이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의 후손이 아닌가 추정해왔다.
그러나 2021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대학 정충원 교수 연구팀과 중국 지린대학,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소하리 묘역에서 발굴된 5구의 미라의 유전자 연구를 통해 이들 일족이 역사 시대에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오래 된 토착민의 후손임을 밝혀냈다. 무려 빙하기(플라이스토세) 말 이주하여 정착한 고대 인류인 고대 북유라시아인[4] 계통 민족의 후손이라는 것. 즉 이들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아니라 북방 타이가 지대의 수렵인류 후손이라는 것이다.(기사)
실제 지위가 공주였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별명이 소하공주인 셈이다. 다만 아래 발굴 과정에서 보듯 관 위에 갓 잡아서 피가 뚝뚝 흐르는 소 털가죽을 덮었고, 꽤나 정성 들여 미라로 만든 것을 보면 상당히 부유했던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이 당시 장례 풍습이 신분에 관계 없이 저 정도는 해 준 건지, 아니면 이 미라의 주인이 지체 높은 집안 여성이어서는 알 수 없으나 대개 "산업 혁명 이전 시기 문명 사회는 물산이 빠듯했기 마련이라 이 정도면 공주가 아니었을까?"하고 후대 사람들이 추측해 보는 것.
위의 그림은 그녀의 생전 모습을 추측해 재구성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는 그림이다. 중국 웹상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실제 해부학적 근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인지 불분명하며 발굴 당시의 모습[5]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서는 미라가 더 심한 곱슬 머리인데 비하면 곱슬기가 줄어 있다.
이 그림은 소하공주가 아닌 누란의 미녀 미라의 복원 그림에 가깝다. 그런데 얼굴, 머리카락은 소하공주를 더 닮았다. 즉 위의 상상도와 털모자를 썼다는 설명을 포함해서 나무위키 안에서도 혼동되고 있다. 간단히 구분하면 풍성한 긴 곱슬머리에 턱끈 있는 깃털 달린 푹신해 보이는 밝은 모피 모자를 쓴 쪽이 누란의 미녀, 직모 앞가르마에 후드 모자 비슷한 스카프 같은 것을 쓰고 머리카락이 덜 보이는 쪽이 소하공주다. 두 미라는 발굴 장소가 173km나 떨어져 있고 발견 시기도 47년이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현재 사막화 된) 신장 지구라는 공통점, 중국 영토이지만 코카소이드 비슷한 모습인 점[6], 기원전의 잘 보존된 상태의 여성 미라였다는 것 때문에 혼동되고 있다.
또 다른 소하리 묘지 유적에서 발견된 미라들의 발굴 과정이 신 실크로드 다큐멘터리를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이 영상에서는 60대 여성과 20~40대 여성으로 보이는 두 구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젊은 여성 미라도 소하공주 못지않은 미인이다.(28:00) 미라 옆에 놓여져 있던 직물 바구니에는 밀의 씨앗이 들어 있었다.
소하 묘지 근처에는 말라 비틀어진 강바닥[7]과 회양나무가 말라 죽은 흔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으며, 소하 묘지도 회양나무 기둥으로 만든 것이다. 거기에서 대량의 낙엽층이 발견되었고 위 영상의 미라들도 소가죽으로 관을 감싼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 지역에 물이 풍부했고 농경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다. 실제로 소하 유적에서는 기둥에 매어진 쇠뿔도 발견되었다.
또한 소하 묘지 발굴 과정에서 이들 낙엽층은 최상층부터 맨 아래쪽까지 약 1.5m에 걸쳐 층층이 쌓인 채 발견되었다. 소하 묘지가 단시간에 건립된 게 아니라 묘지를 조성해 놓고 수십 년 내지 수백 년 동안 아주 오래도록 사용되었다는 증거로 보인다. 실제로 20대 여성 미라는 실크로드 번영기인 기원전 후(한나라 시대)보다도 2천년이나 더 아래쪽, 즉 도합 4천년 전 지층에서 발굴된 것이다.
3. 여담
여담으로 이 소하공주나 누란의 미녀가 중국 웹에서 특히 알려진 이유가 있는데, 미라가 준수하게 생긴지라 대중의 관심을 끌기 좋은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중국 당국의 신장 위구르 정책과도 엮여 있다. 중국 고고학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서역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띄워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엄연히 이 유적의 발굴은 고고학적으로 신장 사회과학원 발굴팀이 거둔 큰 성과다.[8]그리고 과거 중국국민당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선주민들이 한족이며 고대 타림 분지에서 사용된 토하라어가 중국어의 방언이라고 줄곧 주장했지만[9]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연구진들이 그런 주장을 논파하여 그대로 데꿀멍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애초에 국민당 정부 당시 이런 주장을 내놓은 것도 위구르족[10]의 분리독립 운동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무리수이기는 했다.
4. 관련 문서
- 누란의 미녀
근처 태양묘에서 발견된 누란의 미녀 미라와 종종 혼동되기도 한다. 당장 맨 위의 사진부터가 파일명이 'loulan beauty'라고 되어 있고, 누란의 미녀 항목에 있던 것이었으니(...) 실제 누란의 미녀 미이라는 검게 변색된 데다가 눈 부분이 거의 부패되어 보는 사람에 따라선 상당히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미라는 소하공주와 달리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인도유럽어족계 유목민인 토하라인 출신이 맞다.
[1] 사진 원본의 명칭은 영어로 누란의 미녀로 되어 있으며, 본 문서 아래에 연결된 영상에 등장한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이 사진이 소하공주의 미라가 맞는지, 함께 발견된 미라인지 확실하지 않다. 후술하듯 인터넷 곳곳에서 누란의 미녀와 소하공주가 혼동되고 있다.[2] 소피아 로렌의 생년이 1934년이라 그런듯하다.[3] 스웨덴어에서 Berg는 '베리'로 발음한다.[4] 코카소이드와 시베리아 원주민, 동아시아인 및 아메리카 원주민의 공통조상이다.[5] 깃털이 꽂힌 흰 털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으로 발굴되었다.[6] 실제로 고대 북유라시아인은 코카소이드의 조상인 만큼 비슷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 같은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후예인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순혈에 가까운 아마조니아 원주민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백인계 혼혈인으로 오인될 만큼 백인들과도 외양이 꽤 비슷한 편이다.[7] 쿤룬 산맥에서 흘러내려오는 담수에는 미량의 염분기가 있는데, 증발 과정에서 염분만이 남아서 바닥이 딱딱하고 하얗게 된다.[8] 의외로 중국 고고학계에서는 어용 학자들은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편이라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대체로 주류 학계의 입장을 따른다.[9] 상술했듯 타림 분지의 선주민은 토하라인도 아니고 한족도 아닌 제3의 민족이다.[10] 토하라인의 직계 후손들인데, 9세기경에 토하라인들이 튀르크계 유목민들에게 동화되어 생겨난 민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