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t op. 시리즈에 해당 곡의 악보를 모티브로 하는 음악의 정령에 대한 내용은 수수께끼 변주곡(takt op.) 문서 참고하십시오.
엘가가 직접 지휘한 녹음이다. 이 녹음은 EMI GROC으로 재발매된 적이 있다.#
GROC과 EMI MASTERS로 재발매된 에이드리언 볼트/LSO의 70년도 녹음이다 아래에 있는 유튜브 링크와 음원이 동일하다.
Enigma Variations
1. 개요
영국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의 관현악 변주곡. 원제는 '관현악을 위한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for orchestra, op.36)'이지만, 해외는 물론이고 영국에서도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마흔이 넘도록 제대로 된 히트작이 없던 듣보잡 작곡가에 머물고 있던 엘가의 위치를 제대로 격상시켜준 곡으로, 후속작들인 오라토리오 '제론티우스의 꿈'과 위풍당당 행진곡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이름있는 작곡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2. 상세
엘가는 자신의 작품에 알쏭달쏭한 이니셜이나 문학 작품으로부터 인용한 인용문 등을 써넣고 사람들이 그 의미가 뭔지하지만 작품 구상은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1898년 어느 날 피곤한 상태로 피아노 앞에 앉아 뭔가 단편적인 음을 연주하던 엘가에게 아내가 와서 '그 멜로디 마음에 드니까 한 번 더 쳐봐요'라고 했다. 몇 번 치고 난 뒤 엘가 자신도 흥미가 동했는지, 이내 즉흥적으로 변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변주들을 자신의 주변인에 빗댄 성격 변주로 확대했고, 이듬해에 연주 시간 35분 짜리 대형 관현악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이렇게만 봐서는 엘가가 주변 사람들을 갖고 장난스럽게 만든 여흥 음악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작품 자체만 봐도 탄탄한 구성과 밀도 높은 음악, 효과적인 관현악 편곡으로 요하네스 브람스나 막스 레거 등의 대규모 변주곡에 필적할 만한 대작이다. 이 때문에 1899년 6월 19일에 런던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초연되었을 때도 몇몇 비평가들의 '신비주의적이다'는 불평을 제외하면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엘가는 초연 후 친구인 아우구스트 예거의 조언을 받아들여 마지막 변주를 100마디 가량 대폭 확장하고 파이프오르간을 애드리브 악기로 더하는 개정 작업을 했고, 이 개정판은 같은 해 9월 13일에 우스터에서 열린 음악제인 스리 콰이어즈 페스티벌(Three Choirs Festival)에서 엘가 자신의 지휘로 재연되었다.
그리고 이 곡의 명성은 영국 뿐 아니라 해외에도 점차 퍼지게 되었는데, 1901년 2월에 율리우스 부츠의 지휘로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첫 유럽 초연 무대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1] 이어 1910년에는 구스타프 말러가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해 미국에서도 선보였고, 이후 위풍당당 행진곡 같은 소품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제외하면 엘가의 대표적인 관현악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관현악 편성은 플루트 2(2번 주자는 피콜로를 겸함)/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콘트라바순/호른 4/트럼펫 3/트롬본 3/튜바/팀파니/스네어드럼/베이스드럼/심벌즈/트라이앵글/(오르간)/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오르간은 위에 쓴 것처럼 지휘자 재량에 따라 첨삭 가능하다.
워낙 유명하다 보니 원래 편성인 관현악 외에도 엘가가 직접 편곡한 피아노 독주와 2중주판이 있고, 그 외에 다른 편곡자들이 만든 브라스 밴드와 콘서트 밴드용 취주악판으로도 연주된다. 음반도 엘가 자신이 1924년에 로열 앨버트홀 관현악단을 지휘해 SP로 취입한 오래된 어쿠스틱 녹음을 비롯해 영국 관현악단이나 지휘자들의 것을 중심으로 상당히 여러 종류를 구할 수 있으며, 한국에서도 2005년에 대구시립교향악단이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이현세의 지휘로 CD를 만든 바 있다.
3. 주제와 각 변주
처음에 주제가 나온 뒤 14개의 변주가 뒤따르는 전통적인 변주곡 형식을 취하고 있고, 하나를 빼면 각 변주마다 이니셜이나 단어가 붙어 있다. 엘가 사후 여러 음악학자들의 노력으로 대부분의 인물들은 파악되었지만,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인물도 있다.주제
바이올린이 8분음표와 4분음표 두 개 씩으로 구성된 단조(minor)의 단순한 선율들을 띄엄띄엄 연주하면서 시작되는데, 몇몇 음악학자들은 처음 네 음이 영어로 '에드워드'를 부를 때의 억양을 나타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어 관악기들이 장조(major)로 조바꿈한 부선율을 연주하고, 다시 첫 머리의 선율이 두꺼워진 관현악 연주로 반복된 뒤 곧바로 제1변주로 이어진다.
제1변주: C.A.E.
엘가의 아내였던 캐롤라인 앨리스 엘가(Caroline Alice Elgar)를 뜻한다. 오보에와 바순이 네 음으로 된 선율을 부선율로 연주하는데, 이 음은 엘가가 집에 들어올 때 '여보 나 왔어'라는 뜻으로 분 휘파람을 모사한 것이라고 한다.
제2변주: H.D.S.-P.
엘가(바이올린), 제12변주에 등장하는 첼리스트와 함께 피아노 3중주로 실내악을 연주하곤 했던 아마추어 피아니스트 휴 데이비드 스튜어트-파월(Hew David Steuart-Powell)을 뜻한다. 스튜어트-파월은 꽤 장난끼 많은 연주자였고, 일부러 빠른 패시지를 우스꽝스럽게 연주하기도 했다. 이런 장난끼가 바이올린의 16분음표 음형으로 묘사된다.
제3변주: R.B.T.
작가이자 아마추어 배우였던 리처드 박스터 타운젠드(Richard Baxter Townshend)를 뜻한다. 타운젠드는 특히 성대모사를 잘했고, 다양한 음역의 목관악기들이 이것을 흉내내고 있다.
제4변주: W.M.B.
글로스터셔 주의 하스필드에 땅을 가졌던 대지주 윌리엄 미스 베이커(William Meath Baker)를 뜻한다. 베이커는 스토크온트렌트 인근의 늪지대였던 펜튼을 농지로 개간하는 대규모 토지 정리 사업을 주도하는 등 정력적으로 일하던 사람이었고, 30초 정도로 짧은 이 변주에서도 그런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제5변주: R.P.A.
시인 매튜 아놀드의 아들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리처드 펜로즈 아놀드(Richard Penrose Arnold)를 뜻한다. 현악기 위주의 우아한 대목과 관악기가 연주하는 스타카토식 대목이 교차하며 나오는데, 후자의 경우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놀드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제6변주로 바로 이어진다.
제6변주: Ysobel
엘가의 비올라 제자였던 이사벨 피튼(Isabel Fitton)을 뜻한다. 비올라 파트가 세 음을 저마다 다른 현으로 켜면서 연주 전 손을 푸는 모습을, 그리고 이어지는 비올라 독주로 연주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제7변주: Troyte
건축가였던 아서 트로이트 그리피스(Arthur Troyte Griffith)를 뜻한다. 취미로 피아노를 종종 연주하곤 했지만, 썩 잘 치지는 못했는지 이 변주에서도 특정 음형을 버벅대듯 반복하는 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동시에 엘가와 그리피스가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자, 근처에 있던 어느 부인의 저택으로 피하는 모습도 타악기의 연주로 담고 있다.
제8변주: W.N.
앞선 변주에서 엘가와 그리피스가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저택의 여주인인 위니프레드 노버리(Winifred Norbury)를 뜻한다. 노버리 부인은 상당히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엘가도 노버리의 집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했는지 산책 때마다 자주 찾아 담소를 나누었다고 한다. 바이올린의 음을 남겨놓고 바로 제9변주로 이어진다.
제9변주: Nimrod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사냥꾼인 니므롯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엘가가 묘사한 인물의 직업이 사냥꾼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개요 란에서 엘가에게 개정을 제안한 음악 평론가이자 엘가가 자신의 작품을 자주 출판했던 노벨로 음악출판사의 편집자였던 아우구스트 예거(August Jaeger)를 뜻하는데, Jaeger(정확히는 Jäger)가 독일어로 사냥꾼을 뜻한다는 것에서 따온 말장난이다.
예거는 엘가의 작품에 호평이든 혹평이든 진솔한 비평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었고, 그 때문인지 엘가도 아내를 그린 제1변주와 함께 이 곡에서 가장 공을 들였다. 엘가 자신도 이 대목이 마음에 들었는지, 1912년에 작곡한 칸타타 '더 뮤직 메이커즈(The Music Makers)'에서 다른 자작곡들과 함께 인용하기도 했다.
느린 템포로 장중하면서도 감동적인 음악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변주곡 중에 가장 유명한 대목이기도 하고 이 부분만 앙코르로 연주하기도 한다. 타이타닉 침몰 희생자 추모 음악회에서 엘가 자신이 이 대목만 떼어 추도곡으로 지휘한 이래 영국판 현충일인 전몰자 추도일(Remembrance Day)을 비롯한 유명 인사의 장례식 등에서 추모 음악으로도 연주되는데, 그 때문인지 영국인들은 이 대목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철수 작전을 다룬 영화 덩케르크에서도 OST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도 김대진 지휘의 수원시립교향악단에 의해 비슷한 의도로 연주된 바 있다. 2011년 교향악축제 무대에서는 공연 직전 교통사고로 급서한 악단 악장 정남일을 추모하기 위해 공연 서두에 악장 자리를 비워둔 채 연주했고, 2014년 교향악축제 무대에서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앙코르로 연주했다. 2014년 교향악축제 연주 또 2022년 11월 3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에서 이태원 압사 사고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첫 곡으로 연주했다. 국립심포니 연주의 경우 박수를 치지 않고 묵념으로 대신하였다.
제10변주: Dorabella
제4변주에 묘사된 베이커의 의붓딸이자 제3변주에 묘사된 타운젠드의 올케였던 도라 페니(Dora Penny)를 뜻한다. 페니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고, 목관악기들과 바이올린이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 발성 연습을 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곡과 관련은 없지만, 엘가는 1897년에 페니에게 3자 모양으로만 구성된 암호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도라는 편지의 내용을 알 수가 없었고, 엘가도 자세한 것을 언급하지 않은 채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많은 암호학자들의 골치를 썩이고 있다(...). 참조
제11변주: G.R.S.
헤리퍼드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성가대 지휘자였던 조지 로버트슨 싱클레어(George Robertson Sinclair)를 뜻한다. 하지만 음악에서 묘사되는 것은 싱클레어가 아니라 그가 기르던 불도그인 댄(Dan)인데, 이 개는 꽤 말썽꾸러기였는지 언젠가 헤리퍼드를 가로지르는 와이 강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고 한다. 1분 가량의 이 변주에서는 개가 물로 빠지는 장면과 개헤엄, 물에서 나와서 짖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제12변주: B.G.N.
제2변주에서 묘사된 스튜어트-파월과 엘가의 실내악 동료였던 첼리스트 베이질 G. 네빈슨(Basil G. Nevinson)을 뜻하며, 제6변주와 마찬가지로 첼로 파트와 첼로 독주가 주도적으로 나오고 있다. 네빈슨은 이후 엘가의 최후 역작으로 일컬어지는 첼로 협주곡의 독주 파트 기교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제13변주: ***
엘가가 이 곡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힌트를 주지 않은 변주인데, 이 때문에 인물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멘델스존의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Meeresstille und glückliche Fahrt)'의 선율이 클라리넷을 통해 인용되고 있고, 첼로의 아르페지오 음형과 팀파니의 중간부 연주가 각각 파도와 뱃고동 소리를 흉내내고 있어서 해당 인물이 바다와 관련이 있는 인물로 추측될 뿐이다.
가장 유력한 인물은 메리 라이건 부인(Lady Mary Lygon)인데, 이 사람은 엘가가 곡을 작곡하던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여객선에 타고 있었다. 한편 지휘자 앤드류 데이비스 같은 인물들은 엘가와 약혼했다가 14개월 만에 파혼하고 1885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버린 헬렌 위버(Helen Weaver)가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영상 옆의 트랙에 적힌 이름은 EMI가 만들어놓은 것을 워너 클래식이 제공한 것인데 여기서는 메리 라이건 부인이라고 돼있다.
제14변주: E.D.U.
엘가 자신을 뜻하며, 이니셜은 아내가 남편의 이름 에드워드를 독일어 식인 에두아르트(Eduard)로 바꾸고 그 앞 세 글자만 따서 '에듀'라는 애칭으로 부르던 것에서 따왔다.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는 대목이기 때문인지 가장 대규모이며, 예거의 조언에 따른 개정을 거쳐 더 규모가 커졌다. 자기 자신에 대한 변주 외에도 아내와 예거를 상징하는 제1변주와 제9변주의 단편이 인용되고 있다.
[1] 유럽 초연 무대로 굳이 뒤셀도르프를 택한 것은 친구 예거의 고향이 그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론티우스의 꿈도 실망스러웠던 영국 초연에 이어 첫 대박을 친 것이 뒤셀도르프에서 같은 지휘자가 선보인 유럽 초연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