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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성서 히브리어 | בְּרֵאשִׁית (Bərēʾšīṯ, 브레시트; "한처음에")[1] | |
고대 그리스어 | Γένεσις (Génesis) | |
라틴어 | Liber Genesis | |
독일어 | 1. Buch Mose | Genesis | Bereschit | |
영어 | Book of Genesis | |
프랑스어 | Livre de la Genèse | |
한국 한자 | 創世紀 | |
기본 정보 | ||
전승되는 저자 | 모세 | |
기록 연대 | 예루살렘 역사서Das Jerusalemer Geschichtswerk[2][주의] (BC 7세기) → 모세오경의 완결(BC 400년경)[4][5] | |
분량 | 50장 | |
주요인물 | 아담, 하와, 노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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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창세기 1장 1, 3, 26~27절 (공동번역 성서)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창세기 1장 1, 3, 26~27절 (공동번역 성서)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6]
창세기 12장 1~2절 (공동번역 성서)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6]
창세기 12장 1~2절 (공동번역 성서)
모세오경 중 하나이자 성경의 첫 번째 책. 성경 속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전 우주의 유일신 야훼가 지구를 창조하는 과정, 야훼가 선택하고 사랑한 이스라엘 민족의 생성 과정이 담겨 있다.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야훼가 어떤 권위를 지니고 있고, 왜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를 섬겨야 하는지 설명한다. 신약처럼 역사 기록 형태가 아닌 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 찬양이 주 주제이다.
전 세계 모든 인간의 조상, 최초의 남자와 여자인 아담과 하와[7]가 등장한다. 또한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인 카인과 아벨 이야기나 노아, 므두셀라,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 등 여러 유명한 사람들이 여기서 나온다. 또한 그 유명세로 이런저런 곳에서 패러디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하와와 이브가 혼용되는데 성경에서는 가톨릭·개신교 공히 원전의 발음인 '하와'를 쓴다. '이브'는 라틴어 이름인 '에바'를 다시 영어식으로 표기한 발음.
여담으로 사람들한테 제일 많이 읽힌 성경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성경 1독을 시도할때 창세기부터 읽기 때문이다.
아폴로 8호가 네 번째로 달을 선회한 후 달 너머에서 지구의 모습을 보았을 때, 우주비행사들은 미리 준비해 둔 성경을 펼치고 창세기를 낭독하였다.
2. 제목
책 내용의 첫째 단어(incipit)이자 히브리어 제목인 베레쉬트(בְּרֵאשִׁית,[8] bəre'šît)는 한국어로 '태초에' 또는 '한처음에'를 의미하며, 이 이름으로 그리스어 제목인 게네시스(Γένεσις, Génesis, '기원') 역시 가지게 되었다. 라틴어 불가타(Genesis)는 그리스어 제목에서 그대로 가져왔다.'모세의 첫번째 책'(1. Buch Mose/First Book of Moses) 또는 '제1모세서'라는 개신교적 명칭은 모세가 오경의 저자라는 전통에서 유래했다 (이 명칭의 기록된 최초 사용자는 요세푸스다).[9]
3. 본문 생성과 그 시기 및 장소
3.1. 모세 저작권에 대한 의심에서 구문서설까지
히브리/구약성경 자체에는 모세가 창세기를 포함해 오경을 썼다는 어떠한 정보도 없다. 그러나 오경은 모세라는 역사적 인물에 의해 작성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믿어졌다.[10] 그러나 바빌로니아 탈무드에서 볼 수 있듯이,[11] 모세가 자신의 죽음을 말했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일찍이 오경의 마지막 구절들(신 34:5–12 공동)은 모세의 저작에서 제외되었다. 계몽주의 전까지 소수의 학자들이 오경의 모세저작설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당대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12]유럽에 계몽주의가 열리면서 특히 개신교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성경에 대한 비판 정신(Sola Scriptura, '오직 성경')이 일어났다. 힐데스하임의 목사 헤닝 베른하르트 비터(Henning Bernhard Witter)[13]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에서, 그리고 루이 14세의 주치의였던 장 아스트뤽(Jean Astruc)는 오경 전반에서 두 가지 신명이 번갈아가며 사용된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창 1:1–2:4a 공동에서는 엘로힘('하느님')이 사용되지만, 2:4b–3:24 공동에서는 YHWH('야훼')도 함께 사용된다. 아스트뤽은 창세기를 모세가 사용한 네 개의 연속 출전들 A(엘로힘)와 B(여호와), 그리고 열 개의 단편 출전들(C부터 M까지)을 구별했다.[14]
예나 대학교 교수였던 요한 고트프리트 아이히호른(Johann Gottfried Eichhorn)은 1780년부터 1824년까지 아스트뤽의 연구를 오경 전반에 확대시키고, 엘로힘계(Elohist, 엘로히스트)와 여호와계(Jehovist, 예호비스트; 오늘날은 야훼계(Jahwist) 또는 야휘스트라고 읽는다)로 명칭을 바꿨다.[15] 카를 다비트 일겐(Karl David Ilgen)은 창세기를 자체적으로 완결된 세 가지 출전들(두 명의 엘로히스트들과 한 명의 예호비스트)로 구별해 창조부터 땅 정복까지를 설명했다.[16] 일겐처럼 오경을 세 출전들로 나누는 이 주장을 구문서설(Ältere Urkundenhypothese) 또는 초기 문헌 가설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모세가 오경의 저자 또는 종합자라는 아이히호른까지의 주장은 일겐에 이르러 완전히 배제되었다.
4. 줄거리
4.1. 원역사 (1–11장)
태초에 야훼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여 천지를 창조한다.[17] 창조는 6일 동안 이어졌다.[18][19] 창조의 마지막인 여섯 번째 날 야훼 자신의 형상을 본떠 흙을 빚고 생명을 불어넣어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탄생시켰다. 일곱 번째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었다.[20]야훼는 아담에게 온갖 동식물의 이름을 지을 권리를 주었다. 에덴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어도 좋되 에덴 동산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담이 짝이 없어 혼자 지내는 것은 좋지 못하여 아담을 잠들게 하여 그가 잠자는 틈을 타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 최초의 여성 하와[21]를 만들었다.
어느 날 뱀이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면 눈이 밝아져 야훼와 동등해질 것이라고 야훼의 명령을 왜곡하며 유혹했다.[22] 유혹에 넘어간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이를 먹게 했다.[23] 두 사람은 자신이 발가벗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고 수치심이 생겨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자신의 당부를 어긴 것을 알게 된 야훼는 분노하며 두 사람을 책망하였다. 야훼의 물음에 아담과 하와는 각각 하와와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야훼는 하와에게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아담에게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평생 땅을 갈아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고살 수 있는 고통의 저주를 내렸다. 그리고 둘을 유혹한 뱀에게도 영원히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고 살아야 하는 저주를 내렸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추방되었다. 인간이 생명의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영생을 누릴 것을 염려한 야훼는 케루빔과 불칼을 두어 생명의 나무를 지키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서 입혀주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장남 카인과 차남 아벨을 낳았다. 카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양치기였다. 세월이 흘러 야훼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야훼는 카인이 바친 곡물은 받지 않고, 새끼 양의 고기를 바친 아벨의 제사만 받았다. 분을 참지 못한 카인은 아벨을 들로 불러내 돌로 쳐 죽였다. 야훼는 카인을 추방했다. 카인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하려 할지 모른다"고 걱정하자 야훼는 카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람은 그 일곱 배의 손해를 입게 될 거라고 약속한다.[24]
아담과 하와는 다른 자식 셋을 낳고 카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은 세상에 번창해 나가고 셋의 후손 중 한 명인 에녹이 언제까지나 야훼와 함께 했고 마지막에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세월이 흘러 야훼가 만든 인간들이 타락했다. 야훼는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했다. 야훼는 타락한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기로 한다. 므두셀라의 손자 노아만이 착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노아에게 대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릴 것임을 알리시고 방주를 만든 후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암수 한 쌍씩 배에 태우게 한다. 폭우로 인한 대홍수는 40일간 이어져 지구 위 모든 생명체를 죽게 했다. 물이 땅을 덮고 있다가 150일이 지나며 줄어들었고, 땅이 다 마르고 방주에서 내리기까지는 1년 이상이 걸렸다.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 부부가 현재 전 인류의 조상이 된다.
어느 날 함이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고 비웃으며 형제들에게 알리는 일이 생긴다. 반면 셈과 야벳은 뒤로 걸어서 아버지의 몸을 보지 않고 이불로 덮어 드렸다. 술에서 깬 노아는 분노해서 "함의 자손인 가나안은, 형제들에게 속한 가장 낮은 종이 될 것"이라고 저주한다.[25]
노아 이후 인류는 다시 번성하였다. 인류는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시날 땅의 평야에 모여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온 땅에 흩어지지 말자'는 취지 아래 성을 짓고,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기로 결정한다.[26] 바벨탑을 쌓는 모습을 보고 야훼는 분노하였다. 이때는 지구 위 모든 민족이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던 시대였는데, 야훼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도록 민족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브라함은 셈의 9세손이다.
4.2. 아브라함과 사라 (12–25장 18절)
지금의 시리아 땅[27]에 살던 아브라함, 당시 이름 '아브람'은 가족과 함께 하란 땅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브람은 75세 나이에도 자녀가 없었다. 어느 날 야훼가 아브람에게 나타났다. 아브람은 야훼로부터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는 계시를 받았고 아브람에게 복을 주고 큰 민족을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아브람은 나머지 가족은 하란에 남겨둔 채, 자기 조카 롯과 사래[28]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간다. 세겜에서 야훼로부터 이 땅을 주겠다는 계시를 듣고 야훼를 향해 제단을 쌓는다. 그리고 여기저기 장소를 옮기는데[29] 남쪽인 네게브 지역까지 내려갔지만 이때 그 지역에 기근이 들어 농사와 목축 모두 어려운 상태였다.다시 이집트 땅으로 가는데, 이때 자기 아내 사라이의 미모를 보고 혹시 목숨이 위태로워질까 봐 "사람들에게 내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말해주시오"라고 한다. 위장이랄 것도 없이 진짜 아브람의 이복누이다.[30] 이런 위장이 한 번이 아니고, 가나안 땅에서 또다시 그 지방 왕에게 자기 아내를 나 몰라라 갖다 바친다. 사라이가 이집트로 가니 과연 이집트인들은 그녀의 미모에 놀랐다. 신하의 말을 듣고 사라이를 궁전으로 부른 파라오도 보고 반하고 사라이를 아내로 삼는 대신 막대한 재물을 아브람에게 준다. 결국 이 사태는 야훼가 파라오를 데꿀멍하게 만들어 해결된다. 아브람은 사라이는 돌려받았으면서 파라오에게 재물을 돌려줬다는 기록은 없다! 파라오는 아브람 일가를 이집트에서 쫓아낸다.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람과 롯은 땅에 비해 가축이 많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다. 아브람은 떨어져 사는 것이 좋겠다며 롯에게 먼저 땅을 고르라고 배려해 줬다. 롯은 요단 평원을 선택하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남는다.
야훼가 다시 나타나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
롯은 이후 요르단 땅을 전전하다 소돔 가까운 곳으로 옮긴다. 소돔과 고모라는 너무나 악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중에 야훼는 유황불을 내려 이곳을 멸망시켰다. 이때 아브람이 야훼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이 50명, 30명, 20명, 10명이라도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몇 번이나 청했지만[31], 결국 의인이 그만큼 되지 않아 멸망했다.[32]
그전 어느 날 롯의 집에 인간으로 변장한 천사들이 방문했는데, 소돔 성의 온 남자들이 몰려와서 "오늘 너희 집에 온 남자 손님들을 욕보이겠으니 내놓으라"고 한다.[33] 그러자 롯은 손님 말고 "내게 남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은 딸 둘이 있으니, 내 딸로 대신하라"고 한다.[34] 하지만 사람들은 무시했고[35] 보다 못한 천사들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해 위기를 넘겼다. 막장 소돔 땅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사람이었던 롯의 일가는 천사의 도움 덕분에 멸망 직전에 도망쳤다. 롯의 아내는 도망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했다.
롯은 산으로 들어가 딸들과 함께 동굴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연세가 많고, 자신들은 결혼할 남자가 없어 일가의 후손을 잇지 못할까 염려한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술을 드려 취하게 한 후 차례로 관계를 가졌다. 이 둘의 자녀가 모압과 암몬 민족의 시조이며, 그리고 이 둘은 훗날 이스라엘 민족의 철천지 원수가 되어 버린다. 롯 본인은 술에 취한 상태였기에 평생 이 일을 몰랐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는 야훼의 약속을 받고도 10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어고 자신들은 더 늙어가자 다마스쿠스 출신의 하인 엘리에셀을 자신의 양자로 삼아 상속자로 하기도 했다가, 결국 사라가 첩을 들이도록 종용해 이집트 출신의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의 장남 이스마엘을 낳는다. 이스마엘을 낳아 의기양양해진 하갈이 사라를 업신여기자 사라는 하갈을 학대했다. 하갈이 못 참고 도망치다가 천사를 만난 후 다시 사라의 집으로 돌아간다. 사라가 드디어 아들을 낳으니 이사악이다. 이사악이 태어날 때 사라는 90대, 아브라함은 100살이었다.[36] 이스마엘과 이사악 사이에 후계 문제 갈등이 생긴다. 이스마엘이 어린 이복 동생 이사악을 괴롭히고 하갈과 함께 이사악의 탄생 연회에서 이사악을 모욕하자 분노한 사라가 두 모자를 내쫒는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꿀 때는 이사악이 태어나기 1년 전, 즉 아브람이 99살 때이다. 사라이도 이때 이름을 사라로 바꾼다. 이때 야훼가 모든 남성이 성기 끝의 표피를 잘라야 한다고 명령한다. 아브라함도 이스마엘도, 밑에 있는 남자 하인들도 외국인 포함 전부. 태어난 남자아이는 출생 이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는데 유대교에서는 지금도 이를 지키고 있다.
이사악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 야훼는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이사악을 산으로 데려가 죽여서 자신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이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간다. 야훼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 이사악을 죽이는 것을 중지한 후 숫양 한마리를 보내 이사악을 대신해 제물로 바치게 하셨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크게 번성하고 복을 받게 되리라고 축복해 준다.[37]
세월이 흘러 이사악이 새로운 족장이 되고 친척 집안에서 데려온 리브가와 결혼한다. 나중에 아브라함은 헤브론 근처 막벨라 동굴에 먼저 죽은 아내 사라와 함께 묻힌다.[38][39]
4.3. 야곱 (25장 19절–36장)
이사악은 아들 에사오와 야곱을 낳았는데, 이들은 배 속에서부터 사이가 안 좋아서 하도 싸워대니 리브가가 배가 아파서 못 견뎠다.[40] 나올 때 야곱이 에사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장남 에사오는 짐승남으로 야외를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걸 좋아했고 야곱은 비교적 초식남 기질을 보였다. 아버지 이사악은 에사오가 잡아 오는 고기 때문에 에사오를 더 좋아했으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더 좋아했다.[41]에사오는 맏아들이 갖는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야곱에게 죽 한 그릇의 대가로 장자권을 팔았다.[42] 세월이 흘러 이사악이 죽기 전에 장자 상속을 하려고 에사오에게 사냥 가서 고기를 잡아오라고 시켰는데, 리브가가 이를 눈치채고 야곱에게 염소 떼에게 가서 염소 새끼 2마리를 잡아서 오라고 시켰다.[43] 그리고 야곱은 어머니가 만든 그 염소 요리를 가지고 얍삽하게 에사오처럼 털 있는 것처럼 변장하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 상속권을 받아낸다.[44] 열심히 사냥하고 와보니 동생 야곱이 아버지 상대로 사기 친 걸 안 에사오는 아버지에게 울부짖으며 "아 상속권 다시 돌려주세요!!"라고 사정하지만 아버지 이사악은 한 번 뱉은 말을 되돌릴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에사오가 계속 우기자[45] 화가 난 이사악은 에사오를 저주한다. 저주의 종류는 세 가지인데 1.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2. 전쟁이 생계 수단이 될 것이다, 3. 네 후손은 동생 후손에게 지배 당하다가 반란으로 독립을 쟁취할 것이다.
열 받은 에사오는 야곱을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했다.[46] 아들이 끔살당할 걸 걱정한 어머니 리브가는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야곱을 보낸다.[47] 외갓집에서 외사촌 누이인 라헬을 보고 반한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그녀와의 결혼을 전제로 한 노예 계약서를 작성하고 7년간 미친 듯이 그 집에서 일해준다.[48] 드디어 대망의 결혼식 날, 첫날밤을 보내고 신부의 얼굴을 보니 라헬이 아니라 언니 레아였다. 야곱은 라반에게 이런 일이 어딨냐며 울부짖지만 라반은 원래 동생 먼저 결혼시키는 법은 없다며 라헬을 얻으려면 7년을 더 일하라고 말한다.[49]
야곱은 결국 여자 때문에 도합 14년을 노예로 외삼촌 집에서 일한다. 게다가 아내들은 자기 여종들까지 첩으로 두게 하니[50][51] 결국 자식은 10명 넘게 낳았어도 제대로 된 재산이 없고, 임금을 10번이나 삥땅치며 허송세월했다는 생각에 야곱은 분노가 치민다.
야곱은 자신의 장기인 사기 치는 기술로 외삼촌 라반을 꼬드겨 막대한 재산을 얻어낸 뒤[52] 20년째 되는 날 야반도주한다. 덩달아 라헬은 아버지인 라반의 보물 1호인 수호신상들을 가지고 도망쳐 버린다. 당시 드라빔이라고 하는 수호신상은 재산 상속권을 나타냈다고 하는데 이는 라헬이 아버지 재산을 먹튀한 셈이다. 라반이 수호신상을 찾으려고 야곱을 질기게 쫓아왔지만[53] 결국 돌무더기를 두고 계약하여 좋게 해결했다.
야곱은 중간에 야훼가 보낸 천사와의 씨름에서 이겨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때 천사가 씨름에서 이길 수가 없어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찼고 야곱은 발을 절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야곱은 형 에사오가 복수할까 봐 덜덜 떨었지만 에사오는 20년 만에 만난 야곱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이렇게 형과 사이좋게 화해하고 가나안에서 삶을 영유한다.
야곱의 아들은 각각 레아의 사이에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이싸갈, 스불론, 몸종 실바와의 사이에서 갓와 아셀, 라헬과의 사이에서 요셉과 베냐민, 몸종 빌하와의 사이에서 단과 납달리, 이렇게 12명이다. 특히 요셉과 베냐민은 맨 마지막에 태어난 자식들이고, 라헬은 베냐민을 낳은 직후 사망한다.
그 와중에 막장 집안의 면모를 드러내는 사건이 터진다. 평소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아들 요셉을 편애하던 야곱의 태도에[54] 다른 아들들은 분노해 있었다. 어느 날 요셉이 부모님과 형들이 자기한테 큰절을 하는 꿈을 꿨다고 이야기하자[55] 손을 좀 봐줘야겠다고 의견이 모인다. 마침 요셉이 형들을 부르게 위해 멀리 나왔을 때 죽이려 했는데, 맏아들 르우벤이 차마 형제를 죽일 수 없다고 반대해서 옷을 벗기고 메마른 우물에 처넣었다.[56] 르우벤은 요셉을 나중에 꺼내줄 생각이었으나 다른 형제들이 마침 지나가던 이집트 노예 상인에게 넷째 유다의 제안으로 몸값 은화 20냥에 팔아버리고[57], 아버지에게는 사자가 잡아먹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아버지 야곱은 진짜로 요셉이 죽은 줄 알고 멘붕에 빠졌다.[58]
게다가 그 이전에는 딸내미 '디나'는 '세겜'이라는 이방인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아들들이 이를 복수한다며 세겜에게 디나의 남편이 되려면 할례를 해야 한다고 꼬드긴 뒤, 사흘 뒤 아직 어기적거릴 때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가족을 살해하기도 했다. 야곱이 보복이 두렵다며 두 아들에게 면박을 주었지만 "그럼 우리 누이가 창녀가 되어도 좋다는 말씀?"이냐며 반문한다. 한편 유다라는 아들은 며느리인 다말과 관계를 가져 아들까지 낳고, 장자 르우벤은 새어머니 빌하와 관계를 가져 장자권을 잃어버린다.[59] 세겜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야곱 가족은 신변을 보장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고 세겜에서 벧엘로 이동하게 됐다.[60]
창세기 38장에는 오나니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어원은 유다의 차남 '오난'이다. 유다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첫째 '엘'와 결혼한 '다말'은 갑자기 남편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과부가 된다. 둘째 '오난'은 형사취수혼 제도에 따라 다말과 결혼하지만 질외사정으로 야훼의 분노를 사 죽임을 당한다.[61] 이제 셋째 '셀라'가 다말과 결혼해야 하지만, 아들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유다는 셋째가 아직 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간만 끌고 있었고, 이 때문에 결국 며느리 다말이 신전 창녀로 위장하고 유다와 관계를 가져버린 것. 이때 유다도 아내가 죽어 홀아비 상태였다. 다말이 임신을 하고 있음을 안 유다는 열 받아서 다말을 불태워 죽일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관계를 맺은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자[62] 살려주는 대신 다시 가까이하지 않았다. 다말은 각각 베레스와 세라라는 쌍둥이를 낳았다.[63]
4.4. 요셉 역사 (37–50장)
다시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서약을 시켰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반드시 찾아오실 것이다. 너희는 그 때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그리로 올라가거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자 사람들이 그를 썩지 않게 만들어 관에 넣어 이집트에 모셨다.
창세기 50장 25~26절 (공동번역 성서)
창세기 50장 25~26절 (공동번역 성서)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은 아버지의 극심한 편애로 인해[64] 형들에게 질투를 사고 있었다.[65] 그러던 어느 날, 결국 형들은 분노에 못 이겨[66] 심부름 온 요셉을 땅구덩이에 가두다가 노예 상인에게 은 20냥을 받고[67][68] 요셉을 판다.[69]
결국 요셉은 경호대장[70] 보디발(포디파르)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 처음에는 노예 신분이었지만 능력을 인정받고 수석 비서로 탈바꿈된다. 그러다가 보디발의 아내를 강간하려 했다는 누명[71]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교도관의 신임을 받아 실질적인 교도관 임무를 맡았다.
그러던 중 파라오의 두 시종장[72]이 요셉의 감옥에 갇히게 되고 얼마 안 가 각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이에 요셉은 해몽[73][74]을 해 줬는데, 그의 해몽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약 2년 후, 파라오는 해괴망측한 두 개의 꿈을 꾸고[75]을 국내에 용하다는 사람을 다 초빙하여 해몽을 의뢰했다. 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된 해몽을 하지 못했다. 그때 술 담당이 요셉을 추천했고, 요셉은 몇 년 만에 사면됨과 동시에 파라오의 꿈 해몽을 해 주었다. 해몽의 내용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이 곧 닥칠 것이므로[76] 국가 재정 관리를 세심하게 할 관리가 필요한다는 것.
파라오는 그 관리로 요셉을 등용했고, 요셉은 30세에 국무총리 즉 2인자에 등극했다.[77] 요셉의 해몽대로 7년 풍년이 왔고, 그는 착실히 재정 관리에 힘 썼다. 그 후 7년 흉년이 오자 이집트는 주변국들에게 소문이 자자하게 났고, 이미 곡식 저장을 충분히 해 두었기에 돈을 받고 곡식을 팔았다.
야곱 가족도 곡식이 다 떨어지자, 베냐민을 제외한 10명의 자녀들을 이집트로 보냈다. 요셉은 형들을 단박에 알아봤지만, 형들은 전혀 몰랐다.[78]
이후 내용이 조금 복잡하기는 하지만[79], 요약하자면 요셉은 어떻게든 베냐민까지 같이 오라고 시켰고[80] 그 뒤 본인이 요셉임을 밝혔다.[81] 그 후 야곱 가족 전부가 다 이집트로 이민 왔고 행복하게 살았다. 요셉의 사망을 끝으로 창세기는 마무리된다.[82]
5. 설명
기본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적인 해석에 따르면, 창세기 및 모세오경 전체의 저자는 모세다.[83] 다만 현대의 성서주석학에서는 창세기가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여러 원전 텍스트들이 조금씩 섞여 편집되었다고 보며, 내용이나 표현, 문체 등이 서로 상이한 여러 부분들로 나누어지는데 최소 2계통으로 신명기계(D), 사제계(P) 등으로 나뉜다고 본다.[84]가장 단적인 예는 창세기 2장인데, 천지창조가 6일 만에 끝나고 7일째에 쉬는 창세기 1장의 내용이 계속 이어지다가 2장 4절에서 갑자기 전혀 다른 천지 창조의 내용이 재등장하며, 여기서 갑자기 야훼에 대한 호칭도 바뀐다. 창세기 1장 ~ 2장 3절에서는 야훼를 אֱלֹהִים(엘로힘)이라고 칭하는데, 2장 4절부터는[85] יְהוָה 로 칭한다. 이는 한국어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엘로힘과 테트라그람마톤을 개신교 개역개정판에서는 '하나님' 및 '여호와'로, 가톨릭 성경에서는 '하느님' 및 '주'로, 공동번역성서에서는 각각 '하느님' 및 '야훼'로 구분했다.
신학계에서 이에 관해 설명한 대표적인 해석은 문서 가설이 있다.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의 본 저자는 모세 본인이 아니라 그보다 후대의 편집자들에 의한 것이란 내용으로,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으로부터 제기된 고전적 문헌 가설에 의하면 모세오경이 J, E, D, P 4가지의 문서에 기초했다고 본다. 이 이니셜은 각각 Jahwist(야훼계), Elohist(엘로힘계), Deuteronomist(신명기계), Priestly(사제계)의 첫 글자를 따왔고, 연대순에 의거하였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내용은 가장 후대(B.C 5세기)에 쓰여진 P문서에 의한 내용이고, 2장의 내용은 J문서에 의한 내용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이러한 4출전 모델도 고전적인 모델이 되어버렸고[86], 따라서 고전이라는 의미에서는 알아둘 필요가 충분하지만, "1970년대부터 확고부동한 것처럼 보이던 이 가설이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87] "그 고전적 형태는 이제 동조자가 거의 없"다.[88] 비록 고전적 모델이 전적으로 완전히 거부된 것은 아니고 D와 P의 존재는 그 후로도 연구자들의 폭넓은 (그러나 개별적 강조점들은 상이한) 동의를 얻고 있지만, J와 E는 "극히 의문시되거나 단호히 부인되고 있다."[89] 다수의 출전이라는 관점을 전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개론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면 JEDP라는 4출전 모델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냥 "다양한 출전이 있구나" 쯤으로 생각해도 충분할 것이다.
이러한 문헌 가설에 의존하지 않고 1장과 2장을 설명하는 견해로는 '모세가 오랜 기간에 걸쳐 창세기를 작성했기 때문에, 표현과 문체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나, 1장과 2장에 쓰인 '식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지칭하는 대상도 다를 것이라고 주장하는 해석 등이 있다. 또한 창세기 1장과 2장이 다른 것이 클로즈업 기법을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봐도 의문점은 있다. 아담과 하와가 나오는 2장의 창세 설명에서는 초목이 땅에 자라기 전, 즉 야훼가 천지를 만든 후부터 비를 내리기 전 사이 수수께끼의 시점에, 진흙으로 형상을 빚고 숨을 불어넣어 아담을 만들었다고 돼 있다.
가장 먼저 갈리는 건 흙이 무엇을 상징하냐는 것이다. 흙이 그냥 흙인지 아니면 원자를 상징하는 것인지 아니면 흙과 같던 존재인 유인원을 상징하는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입장이 갈린다.
그런데 1장에서는 낮과 밤 → 하늘 → 땅과 바다, 식물 → 해와 달 → 물고기와 새 → 집짐승, 길짐승과 사람의 순으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에덴동산 내에서 동물을 만든 것이야 에덴 밖의 상황을 따로 생각하면 되겠지만, 식물의 경우는 1장에서 식물을 인간보다 먼저 만들었다고 했는데 2장에선 명백하게 땅에 아직 초목이 없었다고 하니[90] 이게 무슨 의미인지 그냥 읽어서는 도통 알 수가 없다.
더 나아가서 저자 자체는 모세 본인이지만 그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구전들 혹은 기록들을 모세가 종합해서 편찬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구성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결국 어느 쪽도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 논란에 관해서는 조심스럽다.
한편 소수의 창조과학론자나 이원론자는 세계가 2번 창조되었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근거는 2절의 '땅에는 아직 아무 나무도 없었고, 풀도 돋아나지 않았다.'에 두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가 한번 창조된 후, 루시퍼가 배반해서 전쟁이 일어난 여파로 재창조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 주장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정경에 포함되지 않는 에녹서의 내용을 일정 부분 배경으로 할 뿐, 성경 어디에도 2번째 창조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루시퍼의 배반 운운은 전적으로 근본주의자들과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자들의 추측에 불과하며, 성경에는 루시퍼라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사야 14장 12절에 샛별[91]이란 이름으로 간접적으로는 언급되지만 이 구절로도 근거는 한참 부족하다.[92]
게다가 루시퍼의 배반으로 첫 세계가 파괴되고 야훼가 다시 한번 세계를 창조한 것이라면, 루시퍼는 세계를 파괴할 정도로 그 능력이 야훼와 맞먹는다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리스도교 신앙으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일 수밖에 없다.[93]
혹은 "1장에서 창조한 세계의 인간들이 1장과 2장의 사이에 시간적 격차가 있어 2장에서 타락한 인간들(흙)[94] 가운데서 아담을 선택하여 창조주 야훼를 알게 하는 영(숨결)을 불어넣었다." 라고 하여 아담이 첫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진짜로 인류의 첫 번째가 아니라 '최초의 신앙인'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때 아담은 분명히 첫 번째 인간이고 위의 논리대로 해석하자면 인류는 아담의 원죄로 타락한 것이 아닌 다른 이유로 타락한 인류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되므로 신약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약간 다르게 1장의 아담은 200만 년 전의 인류를 의미하고 2장의 아담은 진짜 8000년 정도 전의 하느님의 뜻을 부여받은 이스라엘의 아담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이 부분에서는 인류에 있어 아담이 새로운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범죄하여 연대적 책임을 지게 되었다는 해석을 한다. 아담의 원죄 역시 상징적 영적 타락을 의미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이 가능했는데 사실 아담을 인류의 공통 조상으로 생각한다면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 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안 된다고 본다.
가장 급진적인 주장으로는 2장의 아담은 그냥 실존 인물이 아닌 그저 창조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주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문장에 불과하다고 본다.
5.1. 1장 해석
흔히들 창세기에서 '無로부터의 창조'가 나온다고 인식하지만, 성서주석학적으로 이는 부정된다. 가령 창조 이전의 땅이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 주석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The Hebr. is tohu and bohu. It is not creation out of nothingness, a formula which first occurs in 2 M 7:28, but a sense of bringing order out of chaos, or shape and form to that which had none. Not to have shape or form amounts to non-existence.
(번역: 히브리어로 tohu와 bohu. 이는 2마카 7,28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카오스로부터 질서를 가져온다는 관념이거나, 혹은 비어있는 것을 모양 짓고 꼴 짓는다는 관념이다. 모양과 꼴이 없는 것은 비실존이다.)
- The Revised New Jerusalem Bible 창세기 1장 2절 주석
(번역: 히브리어로 tohu와 bohu. 이는 2마카 7,28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무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 카오스로부터 질서를 가져온다는 관념이거나, 혹은 비어있는 것을 모양 짓고 꼴 짓는다는 관념이다. 모양과 꼴이 없는 것은 비실존이다.)
- The Revised New Jerusalem Bible 창세기 1장 2절 주석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설화들은 창조가 질서로 소개된 것과 일치한다. 하느님의 개별적인 창조 행위에서는 피조물의 물질적 기원보다는 나누고 구분하고 배분하고 배열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 창조는 일차적으로 질서를 세운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빛과 어둠이 구분된 것이다. 따라서 질서가 세워지지 않고 구분되지 않은 것을 정돈하는 일이 창조가 이야기하는 핵심인 것이다. 구약 성경은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해서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초기 유다이즘의 시기(2마카 7,28)에 와서 비로소 하느님께서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이런 사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구약성경의 관점으로는 무엇보다도 질서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기 이사야서에 벌써 등장하는 "새로운 창조"도 무엇보다 이미 현존하고 있는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클라우스 베르거, 《예수. 1》 447쪽
-클라우스 베르거, 《예수. 1》 447쪽
간단히 말해서, '無로 부터의 창조'는, 마카베오기 하권에서 명시되지만, 히브리 성경과 신약에는 적혀있지 않다.
2마카 7,28은 순교자와 부활 신학의 틀을 바탕으로 성경에서 처음으로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호세 모랄레스, 《창조론》 62쪽
-호세 모랄레스, 《창조론》 62쪽
흔히 하나님의 창조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고 고백된다. 그렇지만 구약 성경에는[a] 이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을 언급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서로는 주전 2세기 후반에 쓰여진 마카베오 하서를 들 수 있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에 나타난 우주와 세상 창조에 대한 이해〉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에 나타난 우주와 세상 창조에 대한 이해〉
The Bible[a] does not affirm creatio ex nihilo. Instead biblical authors consistently say that God creates out of something. When exploring options for how Christians might best think about God as creator, it’s difficult to overemphasize this biblical point: According to Scripture, God creates from something.
Biblical writers offer various descriptions of the “something” out of which God creates. In Genesis, the Spirit works with tohu wabohu (formless void), or what is often translated “primordial chaos” or “shapeless mass” (1:2). God creatively transforms chaos and shapelessness into something new: the heavens and the earth (1:1). God creates out of something, even if the “something” is initially vague, disordered, or messy.
Genesis also speaks of the tehom, the “face of the deep,” over which God hovers when creating (1:2). The “deep” is a something, not literally nothing. Many biblical scholars believe tehom signifies the presence of primeval waters as God creates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New Testament’s most explicit theory of initial creation, 2 Peter 3:5, supports this view: “Long ago by God’s word the heavens came into being and the earth was formed out of water and by water.” Water, of course, is something not nothing. … In sum, we search Scripture in vain for passages supporting creatio ex nihilo. Biblical writers say that God initially (and continually) creates from something.
-Thomas Jay Oord, 《God Always Creates Out of Creation in Love,》 in Theologies of Creation, pp. 109-110
Biblical writers offer various descriptions of the “something” out of which God creates. In Genesis, the Spirit works with tohu wabohu (formless void), or what is often translated “primordial chaos” or “shapeless mass” (1:2). God creatively transforms chaos and shapelessness into something new: the heavens and the earth (1:1). God creates out of something, even if the “something” is initially vague, disordered, or messy.
Genesis also speaks of the tehom, the “face of the deep,” over which God hovers when creating (1:2). The “deep” is a something, not literally nothing. Many biblical scholars believe tehom signifies the presence of primeval waters as God creates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New Testament’s most explicit theory of initial creation, 2 Peter 3:5, supports this view: “Long ago by God’s word the heavens came into being and the earth was formed out of water and by water.” Water, of course, is something not nothing. … In sum, we search Scripture in vain for passages supporting creatio ex nihilo. Biblical writers say that God initially (and continually) creates from something.
-Thomas Jay Oord, 《God Always Creates Out of Creation in Love,》 in Theologies of Creation, pp. 109-110
A large number of Bible scholars reject the idea that Genesis describes creatio ex nihilo. Terrence Fretheim says, for instance, “God’s creating in Genesis 1…includes ordering that which already exists…. God works creatively with already existing reality to bring about newness.” ...... The New Testament also does not support creatio ex nihilo. We’ve already seen that the most explicit initial creation passage – 2 Peter 3:5 – says God brings the earth into existence by means of water. ... In sum, we search Scripture[a] in vain for passages supporting creatio ex nihilo. Biblical writers say God initially (and continually) creates from something.
-Thomas Jay Oord
-Thomas Jay Oord
5.2. 논쟁
성경 맨 앞에 있는 만큼 수많은 사람이 읽었고, 그만큼 대중적인 논쟁도 엄청나다.[98] 이에 비견할 책은 요한묵시록 정도.근현대 과학이 밝혀낸 여러 과학적 사실과 창세기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갖가지 논쟁이 많다. 성서 해석학이나 성서 형성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창세기 1장은 일종의 신앙 고백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자들은 창세기 1장을 '역사이자 명백한 사실'로 보지만, '야훼가 우주를 주관하시는 위대한 존재'라는 고백의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백이 형성된 계기는 바빌론 유수 이후 바빌로니아의 마르두크 신앙으로 야훼 신앙이 흔들리는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긴 세월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를 비롯한 고대근동의 신화들에 익숙했다.[99] 또한 창세기 1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야훼가 명령하자 천지 만물이 생겼다'고 했을 뿐 그것의 구체적인 생성 원리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애당초 창세기 1장의 목적은 '세상의 기원에 대한 신앙 관점에서의 해석과 고백'의 차원이지, 과학 연구의 결과물은 아니라고 봐야 합당하다. 주님이 우주[100][101]를 자신의 피조물로 만들어내는 등, 이는 고대 근동 신화의 안티테제로서 작용하는 면이 매우 강하다. 이와 같은 입장은 특히 진화론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그래서 성서고고학과 같이 성경을 역사, 과학의 관점에서 보는 전문 학계에서도 이 창세기, 특히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이전의 내용에 대해선 신화, 신학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다만 이 역시 반론이 있을 수 있는데 당시 고대 사람들은 우주가 만들어진 원리에 대해 과학적 탐구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자연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고대인들은 신화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설명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근동 사람들뿐 아니라 이집트, 인도, 중국, 아메리카 대륙 등 여러 지역의 고대인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대 유일신교을 믿은 이스라엘인들은 실제로 그렇게 창세기에 나온대로 자연과 우주는 창조되었다고 믿었고 그러한 자신들의 믿음과 신앙을 창세기라는 하나의 편으로 모세가 작성했다는 것이다. 야훼가 우주 탄생의 구체적 원리를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고대인들은 야훼는 우주를 주관하시는 존재라는 신앙 고백 수준으로만 생각하며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고대 근동인들의 신앙 고백의 차원일 것이다. 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의 유일신교 천지 창조 신화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창세기 1장 26~27절은 야훼가 사람을 창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여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장 7절부터 어떻게 창조했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이것은 관점에 따라서는 천지 창조보다도 더 중요한 구절이다.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하는 구절이기 때문.
창세기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창조과학에서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궁창 위의 물이 지구를 보호해 주고 그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현시대를 사는 우리보다 훨씬 길게 살았다고 본다.[102] 그러나 현대의 성서학자들은 그냥 이때 제대로 된 달력이 자리 잡지 못해 날짜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대 인류는 그레고리력을 역법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그레고리력 이전에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하였고 율리우스력 이전에는 로마력을 사용했을 정도로 역법은 생각보다 자주 변해왔다. 또한 기원전 이전을 다루는 창세기의 역사적 서술 시기를 감안할 때 지금처럼 천문학이나 심지어 상대성이론으로 모든 시간적인 오차를 보정하는 현대 사회에 비하여 문명의 수준이 매우 낮았을 것은 당연하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900살' 이라는 시간 단위가 현대와 동일한 그레고리력일 가능성은 전무하고, 과연 어느 기준으로 한 1년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밝혀진바도 없으며 당장에 아담이 창조된 년도는 기원전 몇년인가에 대해서도 추정만할뿐 그 누구도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 할 수 없다.[103] 이렇듯 창세기의 비과학적이고 신화적인 내용도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여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날짜를 세는 게 너무 당연한 행위지만, 과거에 1년을 세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발달된 수학을 바탕으로 한 천문학자들의 노력이 있고 나서야 가능해진 것이었다. 결국 이집트 정도까지 가야 제대로 된 역법이 등장하는데, 이집트 시대 이후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최고령이 모세(120세) 정도로 여전히 과거 기준으로 너무 많고 뻥이 첨가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800세마냥 비현실적인 나이를 가져다 두진 않는다. 그리고 전통적인 유대인의 달력은 1년이 평년 기준으로 355일 정도로 태양력보다 10일 정도 짧은 달력을 쓴다. 수천 년 누적된 오차와 복잡한 역법 계산으로 아무래도 예전에는 윤년이 틀렸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출애굽기의 광야 생활이 사실이라면 제대로 된 달력 계산을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 외로 심한 오차가 발생할 수 있으니, 그 숫자 그대로를 대입해서 다른 의미 부여 같은 건 하지 말자. 유일하게 나이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바로 므두셀라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노아의 홍수가 났기 때문. 아니면 홍수 때문에 사망했거나.[104] 40년이 그냥 비유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성경을 보면 40 혹은 40의 배수가 많이 등장한다. 그 당시 사람들의 비유적으로 많은 수를 표현할 때에 40 혹은 그 배수로 표현했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천 년 만 년', '백 년' 같은 표현이 성경에는 40년으로 표기되었다는 설이다.
5.3. 창세기 6장
자세한 내용은 창세기 6장 문서 참고하십시오.5.4. 원전
성조(聖祖)들의 삶을 다루는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의 내용은 처음부터 한꺼번에 전해지지 않았다.우선 아브라함에 관한 전승들은 헤브론에서 유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곳이 아브라함이 정착한 장소이며 그와 그의 아내인 사라가 묻힌 곳이기 때문이다. 모세오경 이외의 작품 속에서 아브라함의 이름이 처음으로 명기되는 곳은 에제키엘서인데, 에제키엘서에서 아브라함에 관한 별도의 설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이 잘 알려진 인물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이는 아브라함에 대한 전승들이 에제키엘이 활동하던 기원전 6세기보다 더 오래된 것들임을 가리키고, 유다 왕국 시대에 성소 헤브론을 중심으로 이미 존재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야곱에 관한 전승들은 북이스라엘 왕국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아브라함 전승들보다 더 오래된 것들로 보인다. 기원전 8세기에 쓰여진 호세아서에는 야곱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의 구체적인 행동과 일화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105]
야곱의 행동이 설명해 주는 이스라엘의 기원은 왕국이 아니라, 중심 세력 없이 부족과 씨족으로 이루어진 사회 조직이다. 이렇게 야곱의 이야기는 왕정 시대 이전[106]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야곱의 역사에 관한 첫 일화는, 그의 장인 라반이 속해 있던 아람 종족과 구별되는 별개의 동일 종족을 무대에 등장시킨다. 따라서 야곱의 역사는, 물론 입증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본디 스스로를 ‘야곱의 아들들’이라 불렀던 한 씨족의 전설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훗날 야곱과 이스라엘을 동일시하면서 전 이스라엘의 기원 설화로 발전해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요셉에 관한 전승들은, 흔히 솔로몬 시대에 젊은 신하들을 가르치기 위해 요셉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 저술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시편 105편을 예외하고는 창세기 이외의 성경 어디에서도 요셉의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이야기가 비교적 후기에 저술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에 힘을 실어 준다. 이집트식 이름들에 대한 연구와 파라오 시대 이집트의 관습과 제도들에 대한 암시가 이를 재확인시켜 준다. 따라서 요셉에 관한 소설은 페르시아 시대 이집트에 살던 유대인 공동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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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창 1:1, 공동번역)"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쏘아올린 달 탐사선에 이 이름을 붙였는데, 착륙에는 실패했다.[2] 고전적인 4출전 모델의 문제점을 교정한 학설인 '뮌스터 오경 모델'에서 사용하는 용어. 문학적 경계 설정에서는 벨하우젠의 JE(=예호비스트 역사서)와 범위가 비슷한 개념이지만, 문학적 전사前史를 벨하우젠과는 다르게 본다. 이 개념에 따르면 포로기 이전에 이미 땅의 언약과 성취라는 사제계의 신학적 주제와 족장전승 및 출애굽 전승의 결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본다.[주의] 이 개념은 최근 하이델베르크 학파를 중심으로. 땅의 언약과 성취가 사제계 이전으로부터 소급되는 산물이 아닌, 포로기 이후에 사제계가 족장전승과 출애굽 전승을 결합하며 발명해낸 신학적 성취라는 이론이 대두되어 힘을 얻음으로서 부정되는 추세이다. 이 경우 창세기의 시작은 기원전 6세기 포로기 중엽 사제계가 여러 전승들을 엮으면서 편집한 자료가 최초라고 볼 수 있다.[4]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등의 《구약성경 개론》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한국어판 (분도출판사 2012)1013쪽[5] 소수설로, 창세기 11장까지의 전반부인 원역사 파트의 완성 시기를 기원전 3세기까지 낮춰잡는 학설도 있다. 이는 원역사 시기의 인명이 다른 성경 부분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한 설이다. 다만 이 경우 초반부에 나타나는 사제계 문헌의 영향력을 설명할 수 없다.[6] 이 대목이 성경에서 장구하게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이다. 야훼를 진심으로 섬긴 아브라함에게 그의 민족을 번성시켜주겠다고 한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은 그토록 숱한 잘못을 저질러도 끝내 완전히는 내쳐지지 않았다. 출애굽기를 보면 분노한 야훼에게 모세가 아브라함의 이름을 들먹이며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7] 아담이 진짜 최초의 인류이냐에 대해선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카인이 다른 인류를 언급하는 점을 들어 아담이 진짜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 야훼를 믿은 최초의 인간이나 최초의 문명화된 인류라고 보는 해석이 있고(기독교계 사이비인 JMS에서도 이 설을 지지하니 주의.) 한 사람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한 '세대'를 대표하여 말하는 인물이라는 설,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창세기의 등장인물들이 (여타 다른 신화들도 그렇듯) 각 민족을 상징한다는 점을 보아 아담을 인류의 피조와 그 행적을 다룬 신화적 상징으로 보거나, 그저 야훼의 권위와 인류의 탄생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의 창조를 분명히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다.
2장의 에덴 동산과 아담과 하와와 관련된 서술을 1장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보기도 한다. 1장을 개괄적인 설명으로, 그리고 2장에서는 개괄적으로 바라본 사건을 인류(아담과 하와)를 중심으로 보는 방식이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이루어진 성서비평학적인 성과로 인해, 현대 신학계에서는 창세기 1장의 창조와 2장의 창조를 다른 전통의 창조 설화라고 보고 있다. 즉, 창세기 1:1부터 2:3까지는 P자료, 2장 4절 이후로는 J 자료의 일부로 본다. 아담 항목 참조.[8] 4QGenh에서는 א가 빠져 있다.[9] Jos. Cont. Ap. I, 38f.[10] Vgl. Phil., Vit. Mos., 84.[11] Baba Batra 14b.[12] 예. 켈수스, 포르피리우스, 히위 알-발키, 이븐 하짐, 이사크 벤 예수, 이븐 에즈라, 마르틴 루터,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 토머스 홉스, 이사크 드 라 페레레, 바뤼흐 스피노자, 리하르트 시몬.[13] H. B. Witter: Jura Israelitarum, Hildesheim 1711.[14] J. Astruc, «Conjectures sur les mémoires originaux dont il paroit que Moyse s’est servi pour composer le livre de la Genèse : avec des remarques, qui appuient ou qui.», Brüssel 1753, vgl. S. 113f.[15] J. G. Eichhorn: Einleitung ins Alte Testament, Bd. 1/2/3/4–5, Aufl. 1/2/3, Leipzig/Reutlingen/Göttingen 1780–83/87 u. 90/1803/23–24.[16] K. D. Ilgen: Die Urkunden des ersten Buchs von Moses in ihrer Urgestalt. zum bessern Verständnis und richtigern Gebrauch derselben, Halle 1798.[17] 야훼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소수설로 창세기 본문에 無로부터의 창조가 나오지 않는다는 관점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無로부터의 창조는 마카베오기 하권에 나오고, 히브리 성경 및 신약에는 나오지 않는다. 無로부터의 창조라는 후대 관점을 전제하고 창세기를 읽어도 틀린 건 아니지만, 일단 본문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18] [19]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파는 이 구절 그대로 지구가 7일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한국 개신교에서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지구 창조설에 따르면 지구는 6천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지질학, 생명공학의 연구 결과를 인정하는 종파에서는 야훼의 창조 진리를 묘사하는 비유적인 내용으로 생각한다.[20] 이 때문에 유대교는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를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21] 처음부터 하와라고 불린 것은 아니다. 탄생 당시엔 그냥 여자라고 불렸고, 나중에 에덴에서 쫓겨나기 직전에 아담이 이름을 붙여주었다.[22] 하와는 동산 안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했느냐는 뱀의 처음 질문에 야훼가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어기면 죽는다며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야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만 했을 뿐 만지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는데 하와는 야훼의 명령을 잘못 이해하는 모습으로 허점을 보이자 뱀은 다시 하와를 위의 서술과 같이 유혹했다.[23] 서양 전설에 아담이 열매를 먹다가 목에 걸린 탓에 남자에게 울대뼈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다.[24] 아담과 하와 가족 말고 '다른 사람들'이 누구를 얘기하는 것인지는 여러 의견이 있다. 카인 항목 참조.[25] 창세기의 이 구절은 옛날 백인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흑인은 조상인 함이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차별받고 있다'며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이들은 셈이 황인, 함이 흑인, 야벳이 백인의 시조라고 주장했다.[26] 바벨탑의 모티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마르두크에게 바쳐진 바빌론의 지구라트 에테멘앙키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우르의 지구라트라는 설도 있다.[27] 아브라함이 살았다는 우르(우르케시딤)는 이라크에 위치한 수메르의 우르가 아니라 시리아에 위치한 우르케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브라함' 문서 참고.[28] 사라는 아브람이 야훼에게서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다시 받을 때 같이 받은 이름이다.[29] 유목민이라 따로 고정된 집이 없이 천막을 치고 이동 생활을 했다.[30] 당시에는 이복 오누이 간에 결혼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나중에 가서 이런 관행이 금지되었다. 이는 그 당시 서아시아 지방에서 장자권과 관련되는 사항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대 시기에 지배층에서는, 친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타 집단에서 온 여성이 낳은 아이보다 우선권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친족이 살던 곳에서 먼저 찾으려고 하였으며, 이삭과 리브가가 장자 에서가 가나안 여인을 취한 것에 근심하였으며, 야곱이 외사촌들과 혼인하였다. (특히나 외사촌의 여종까지 첩으로 삼았는데, 태어난 순서에서 요셉과 베냐민은 막내들이지만, 여종들이 낳은 아들들보다 우선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위기 18장 9, 11절, 20장 17절)[31] 의인 50명은 야훼가 제안한 숫자였지만 아브람이 "그것보다 모자라면요?", "거기서 또 모자라면요?", "죄송합니다만 조금만 더 줄이면요?", "거기서 더 모자라면요?"라고 연거푸 물었고 그때마다 야훼가 "그 정도로도 안 멸한다."라고 대답하였다.[32] 왜 하필 한두 명이 아니라 열 명이었냐면, 당시 사람들의 생각엔 '한 무리'의 가장 작은 단위가 10명이었기 때문이다.[33] 이 사건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다만 근래에는 거꾸로 이 일이 동성 간의 성폭행을 의도한 것일 뿐이지 상호간의 사랑을 전제하는 동성'애'와 관련 없다고 해석하는 신학자도 적지 않다.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 신자 입장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해석이지만, 미국 성공회에서 동성애자 신부를 주교로 임명하는 등의 일이 있었는데 이런 해석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 사건의 성범죄자들은 '강간'이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할 뿐, 대상의 동성/이성 여부는 상관없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성간의 성범죄를 범죄학 용어로 '소도마이{Sodomy}'라고 명칭하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34]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롯이 딸을 물건 취급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대 근동에서 여성 인권이 낮았다 해도 가장이 집안 여성을 지키는 것은 중대한 의무였고 모욕을 당한 여성을 위해 가족이 사적으로 복수하는 것도 어느 정도 변호되었다.(창세 34장) 즉 본문이 동시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1차적인 문학적 의미로 보자면 롯은 딸을 지켜야 한다는, 고대이기에 오히려 강력한 가장의 의무와 명예가 걸린 손님 접대의 관습 사이에서 양자택일로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둘째, 이 당시에는 자식을 부모에게 소유된 소유물로 생각하였다. 창세기와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욥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욥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사탄이 욥의 자식들과 하인들을 죽이고, 재산을 모두 없애고, 욥에게 병을 내리는 것을 허락하신다. 그럼에도 욥의 믿음이 굳건하자 욥이 잃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시고 죽은 자식들도 원래 숫자만큼 다시 낳게 하신다. 현대의 인권 관점으로는 죽은 자식을 도로 되살려 주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기준에서 자식은 부모에게 소유된 재산에 가까웠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자식의 수에 주목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석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절대적인 신인 하느님이 절대적인 선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고 시대에 따라 바뀌는 인간의, 다시 말해 피조물의 정서를 따라 주어야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35] 한다는 말이 "더부살이 하는 주제에 재판장 노릇하려 드네, 네놈부터 손봐 줘야겠다!"라고 적반하장식으로 나왔다.[36] 이슬람교에서는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난 점을 들어 정통 후계자로 생각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이사악이 유대인의 선조고, 이스마엘이 아랍인의 선조라고 생각한다.[37] 이슬람교는 이브라힘(아브라함)이 바치려고 한 아들이 이사악이 아닌 이스마엘이었고, 장소가 모리아산(예루살렘)이 아니라 메카였다고 이야기한다.[38] 사실 원주인이었던 헤브론이 그냥 무상으로 주겠다고 한 것을 아브라함이 정가를 받고 구매하겠다고 관철시켜서 산 곳이다. 헤브론은 물론 정가는 불렀지만 굳이 값을 받으려 하지는 않았다.[39] 막벨라 동굴은 현재까지 남아있어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40] 이 때문에 리브가가 야훼한테 문의하자 야훼는 리브가에게 두 민족의 시조가 그녀의 배 속에 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나뉠 텐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41] 에사오가 하란에 있는 자신의 종족이 아닌 헷 사람을 아내로 2명이나 만든 것이 눈에 거슬리게 했다. 에사오는 이후 헷 출신 아내들이 부모를 거슬리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엉뚱하게 이사악의 이복형인 이스마엘의 딸과 또 결혼했다.[42] 당시 장자권은 소위 '꿀혜택'이나 같아서 부모가 가진 재산을 남은 다른 자녀들과 반분할때 배나 더 많이 받게 되어 있었다.[43] 이때 야곱은 형인 에사오와 나는 외형부터 달라서 형은 털북숭이인데 자신은 털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를 가진 마당에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냐며 반대했지만 리브가가 강권해서 결국은 받아들였다.[44] 다만 원문을 보면 이삭은 이미 자기 앞의 아들이 에사오가 아닌 야곱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 증거로 이삭이 야곱을 불러 정말 에사오인지 확인하기 위해 만지는 중에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린데 만지는 느낌은 분명 에사오가 맞는데.."라며 "정말 장남 에사오가 맞느냐?"고 재차 묻는 장면이 나온다.[45] 이 과정에서 에사오는 "그놈 이름이 야곱{거짓말장이, 뒷꿈치를 잡은 자}이란 이름 그대로잖아요. 전엔 제 장자권 뺏더니 이젠 제가 받을 축복까지 가로챘다고요!"라고 불평한다. 그러나 정작 "별것 아닌것 가지고 유별떤다"며 장자권을 아무렇지 않게 판 것은 에사오 본인이었다.[46] 다만 아버지 이삭이 생존하는 지금 당장이 아닌 아버지가 별세한 이후로 계획을 잡는다.[47] 원래 리브가는 에사오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잠시만 보낼 예정이었으나 이것은 리브가와 야곱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48] 이를 성경에서는 재밌는 표현으로 묘사했는데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정도로 여겼다'라고.[49] 야곱이 라헬에게 장가가겠다고 했을 당시 라반은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느니 너한테 주는 게 낫겠다"고 해놓고 엉뚱한 짓을 하였다. 이는 훗날 야곱과 라반의 관계가 서먹해진 이후 레아와 라헬을 통해 확인사살로 증명된다.[50] 레아는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짓는 것에 까지 야곱의 사랑을 갈구할 정도였다. 4남인 유다{찬송}을 제외하면 르우벤이나 시메온과 레위는 모두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고 원하는 의미의 이름이다.[51] 사연이 복잡한데 레아가 4남 1녀를 두게되자 투기를 한 라헬이 야곱에게 투정을 부렸다가 혼나서 고육지책으로 자신의 몸종이었던 빌하를 첩으로 준 것이었다(그 빌하의 둘째 아들 이름이 납달리인데 이름의 뜻이 '내가 언니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다(...)). 그걸 본 레아가 자기도 "질뚜없뜸!"하고 자신의 몸종인 실바를 역시 야곱에게 첩으로 보낸다(...).예나 지금이나 자녀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삼는것은 변한게 없다…[52] 장인이자 숙부인 라반의 양을 돌보면서 양이 물을 마시러 올 때, 아니면 교미할 때 상태를 구분해서 나뭇가지를 벗겨 무늬를 낸 막대를 튼실한 양들이 물을 마시러 오면 구유에 꽂고 약하고 비실한 양이 오면 아무것도 꽂지 않는 방식으로 해서 튼실한 양은 자신의 것으로 만든것.[53] 다 찾다가 결국 라헬의 처소까지 왔는데 라헬은 월경이라는 핑계로 앉은체로 아버지를 맞이했다. 사실 라헬은 수호신상을 안장 밑에 숨기고 그 위에 앉아있었는데 그래서 라반이 못찾은 것이다.[54] 요셉은 야곱이 총애하던 라헬이 낳은 2남 중 장남이었고 성격이나 모습 또한 라헬을 빼닮았을 것이기에 야곱은 요셉을 통해서 라헬을 느끼는 상황이었다.[55] 정확히는 해와 달과 별 11개가 자기에게 절했다고 말했다. 아다시피 별 11개는 자기의 형제들을 나타내는 것이니 틀린 해석은 아니다.[56] 성경 원문에서는 몰래 살려내 집으로 돌려보낼려는 계획이었다고 설명한다.[57] 르우벤은 빌하와의 근친상간으로 인해 신뢰도가 많이 깎여있던 상태였다. 더구나 요셉의 고자질 때문에 화를 당했던 형제들은 요셉을 곱게 봐줄 의향이 없었다. 결국 유다가 동생을 죽인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냐며 그냥 팔아버릴 것을 제안한 것이다.[58]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평생 아들을 위해 애통해하다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말 할 정도였다.[59] 후에 이 일 때문에 야곱이 죽기 전 아들들에게 축복하는 내용에서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60] 그리고 기근이 생겼을 때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이집트에서 식량을 구하고 나중에는 이집트로 내려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61] 이때 다말이 임신하면 오난이 아닌 엘의 아들로 대접받는데, 그러면 자기 몫의 재산이 줄어들게 되어 오난은 그게 싫었던 것이다.[62] 다말이 창녀인 척할 때, 유다와 관계를 가지기 전 특정 물품을 요구했고, 그 물품은 유다의 것이었다. 자신을 불태우라는 이야길 듣고는 "이 물건 임자로 인해 임신했어요"라고 한 것.[63] 결국 베레스를 통해 다윗 왕조의 혈통이 완성되고, 예수도 이 가문에서 출생했다.[64] 성경에는 늙어서 얻은 아들이라 애지중지 했다고 설명돼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죽은 애처였던 라헬의 모습과 비슷하여 요셉을 통해 라헬을 투영하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는데 베냐민을 낳던 중에 라헬이 죽었고 이를 슬퍼했던 야곱이 라헬을 닮은 요셉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야곱은 요셉이 없어진 사실을 안 이후, 막내인 베냐민에게 애정을 쏟는다.[65] 게다가 요셉도 자기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인 야곱에게 고자질 하는 등, 미움을 받을만한 행동을 하기는 했다.[66] 안그래도 편애를 받아 심사가 뒤틀리는 판에 식사자리에서 눈치없게시리 자기가 꾼 꿈을 얘기해 어그로를 더 끌고말았다. 문제는 같은 의미의 꿈을 두번이나 꿨다는 점인데 1.) 농사일 와중에 요셉과 형들이 곡식단을 묶었는데 형들이 묶은 곡식단이 자기가 묶은 곡식단에 절하는 꿈, 2.)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와 달과 열 한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는데 아버지인 야곱이 듣기에도 너무나 철부지 같은 소리인데다 이걸로 더 요셉을 증오하게 된 윗아들들이 동생에게 해코지를 할까 두려워서 쓸데없는 소리한다며 요셉을 야단치지만 자신의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이일을 마음에 두고있었다.[67] 처음에는 죽이려는 계획이었으나 맏형이었던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기 위해 구덩이에 던져넣는 것으로 형제들을 설득했다.[68] 후에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를 은 30냥에 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요셉을 팔자고 주도한 인물의 이름이 유다였던 것을 염두에 두면 묘하기도 하다.[69] 맏형이었던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기 위해 구덩이에 던져넣기는 했으나 일부 형제들이 불만이 컸던것과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형제들에게 동생 하나 죽인다고 좋을 것 없다며 차라리 요셉을 팔자는 쪽으로 합의를 봤다. 실제로 르우벤은 빌하와 근친상간을 했던 전과로 인해 형제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당장에 르우벤의 동생들 가운데 단과 납달리가 있는데 다 빌하의 자식들이다.[70] 현대의 국방장관과 유사한 직위이다.[71] 사실은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역강간하려 했고, 현대에서는 이를 업무상위력간음죄로 취급한다.[72] 한 명은 술 담당, 다른 한 명은 빵 담당.[73] 술 담당은 복직하지만, 빵 담당은 사형당한다.[74] 좀 더 세세하게 설명하면 술 담당은 세 줄기의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나고 그 포도를 포도주로 만들어 파라오에게 주는 꿈이고, 빵 담당은 파라오에게 줄 빵이 담긴 세 개의 바구니를 가지고 가다가 새들이 그 빵들을 다 먹어치우는 꿈이다.[75] 1.) 나일강가에서 건강하고 튼실한 7마리의 암소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사이, 강에서 마르고 보기 흉한 다른 7마리 암소들이 나온 후 그 말라서 보기 흉한 암소 7마리가 앞서 있던 그 건실한 7마리 암소를 잡아먹는 꿈, 2.) 잘자란 곡물 7개가 나온 것이 보이고 후에 바싹 말라 볼품 없는 곡물 7개가 연이어 등장하고 그 말라빠진 곡물 7개가 잘자란 곡물 7개를 삼켜버린 꿈이었다.[76] 이 7년 흉년이 어찌나 극심한지 먼저 있었던 7년의 풍년까지 잊혀지게 될 정도라는 경고를 함께 덧붙였다.[77] 여기에 요셉은 파라오 왕이 중매를 서서 당시 사제로 있던 보디베라의 딸인 아스낫과 혼인하게 된다. 그리고 슬하에 두 아들을 낳게 되는데 장남의 이름은 므낫세{잊어버림}였고 차남이자 막내의 이름은 에브라임{창성,혹은 번영}였다.[78] 당연하게도 이집트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을 한 요셉을 알아봤을리도 없거니와 요셉이 팔렸던 당시 나이는 17세였다. 즉 시간도 오래 지났으니 더 구분될 리 없다.[79] 요셉이 막내인 베냐민을 다음 방문에 참여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야곱이 완강하게 반대하는 탓에 지체되었고 결국 유다의 설득으로 베냐민이 동행하면서 다시 한번 식량을 구할 수가 있게 되었고 성대한 대접까지 받으면서 귀환하려는 찰나, 요셉의 꼼수로 베냐민이 이집트에 남아야 할 위기에 처하자 유다가 다시 한번 진심어린 설득과 아버지 야곱과 막내 베냐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베냐민 대신 남아있겠노라고 베냐민을 무사히 형제들과 함께 가기를 간청한다. 이에 요셉이 감동해 더 이상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를 형들에게 밝히게 된다.[80] 이 과정에서 요셉은 둘째 형이었던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가둬놓는다. 한 해석에 따르면 시므온이 형제들 가운데 가장 과격하고 포학한 성격의 소유자인데다 요셉을 죽이자는 계획의 주동자 역시 시므온이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81] 베냐민이 동행한 요셉의 형들의 2차 방문 당시, 동생을 알아보고 난 후 성대한 만찬을 치르고 돌려보내면서 베냐민의 봇짐에 자기가 아끼는 은잔을 넣게 한 후에 이를 빌미로 동생 베냐민만을 잔류시키려는 계략을 세웠는데(원래 형들은 자신들 전원이 구류되는 것을 제안했다) 유다가 형들을 대신해 요셉에게 인정을 통한 호소로 탄원하여 요셉의 마음을 감동케 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만든 것이었다.[82] 요셉의 사망 이후에도 몇 백 년을 풍족히 살았다. 그러던 중, 요셉을 모르는 새 파라오들이 즉위하면서 암흑기가 시작되는데, 이제 여기서부터는 출애굽기의 내용이다.[83] 다른 성경 역시 영감은 성령이 줬으나 쓰는 건 인간의 손이다.[84] 그래도 전통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요즘 말로 하자면 일종의 저작인격권을 모세에게 돌리기는 한다.[85] 일반적으로 야훼라고 읽지만 추정이며, 원래 읽는 법은 실전됨[86] 4출전 모델의 문제점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ㄱ. 고고학과 어긋난다는 점 ㄴ. 고대의 전승 문학을 근대의 저자 문학처럼 파악했다는 점 ㄷ. 창세기와 출애굽기 전반부를 설명할 때는 유용하지만 오경의 절반 이상을 4출전 모델로는 작업할 수 없다는 점 등이 있다.[87] 정태현, 《성서 입문 하권》, 109쪽[88] Erich Zenger u.a, 이종한 옮김, 《구약성경 개론》 163쪽[89] Erich Zenger u.a, 이종한 옮김, 《구약성경 개론》 163쪽[90] 혹자는 아직 씨앗이라 말그대로 신이 식물을 창조했는데 아직 자라지 않은 상태나 뭐라나[91] 요한계시록 22장 16절의 샛별은 이 루시퍼와는 다른 의미[92] 더 나아가 전체 히브리 성경 본문에는 의외로 악마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욥기 정도가 악마에 대한 신학적 고찰이 탄생할랑 말랑 하는 과도기지만 욥기의 "사탄은 아직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적수인 마귀를 가리키지 않고, ‘고발자, 고소자, 적대자, 반대자, 원수, 적수’ 등의 뜻을 지닌 보통 명사로 쓰인다."(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석성경, 욥 1장 6절 주석) 물론 책을 읽을 때 후대의 책을 통해서 소급적으로 파악하는건 그리스도교 관점에서든 문학 기호론의 관점에서든 틀렸다 하기 힘들지만, 본문 자체가 1차적으로 동시대인에게 말하는 것과 후대의 소급적 독서는 구분해야 한다.[93] 그런데 이 주장은 좀 생각해 봐야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사탄은 이 세상의 왕이며 다른 종교의 신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비록 전지전능한 창조주 야훼에게는 한없이 작디작은 존재인 다신교의 신이긴 하나 적어도 우주의 그 어떤 존재보다 강대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즉, 야훼가 전지전능한 유일신이라면 사탄은 호루스, 제우스, 오딘같은 다신교 신들의 왕인 셈. 그럼에도 이 주장이 오묘한 이유는 기독교 측은 두번의 창조를 부정한다. 즉, 사탄이 세상을 없애버릴 힘은 가지고 있으나 써먹지는 못했다는 것. 우주멸망의 힘을 갖고 있는데 왜 쓰지를 못하니[94] 실제로 뱀은 흙을 먹지 않지만(물론 말도 할 수 없다.) 하와에게 선악과를 권해준 뱀에게 종신토록 땅을 기며 흙을 먹으라고 저주하는 부분에서 뱀은 사탄을 상징하는 것이고 흙은 타락한 인간들을 의미한 것이라고 본다면 사탄이 타락한 인간들을 먹이로 삼는다고 재배열할 수 있다.[a] 개신교 정경 기준.[a] [a] [98] 다만 대중적인 논쟁을 벗어나서 성서주석학 쪽으로 가자면 창세기의 학술적 논쟁은 진화론 같은 게 아니라, 텍스트의 편집사 등에 더 집중되어 있으며, 딱히 성경에서 가장 학술적 논쟁이 뜨거운 책도 아니다.[99] 바빌로니아의 신화인 '에누마 엘리쉬'를 보면 마르두크가 인간을 창조한 목적은 신들로 하여금 온갖 고된 부역에서 해방시키고 자유와 안식을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즉 인간을 노예로 부려먹을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한 것. 또한 이집트의 파라오는 태양신 '라'의 아들로 여겨졌으며 수많은 인간 위에 군림하여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견고한 피라미드 체제의 절대권력은 신화를 통해서 정당화했다.[100] 해와 달과 별 등, 고대 근동에서 신으로 떠받들던 대상들[101] 창세기에서는 의도적으로 해와 달을 '광명체'(lights)로 격하시킨다.[102] 창세기 인물들은 대부분 (극초반부 노아 홍수 이전) 900살 정도는 그냥 넘긴다.[103] 창세기 3~4장에 나오는 이야기에 농경과 목축이 등장하는데 이는 신석기 시대에 등장했다. 또한 카인의 후손 중 구리와 쇠로 여러 기구를 만드는 투발카인이 등장하며 이는 청동기 시대 및 철기 시대를 암시케 한다.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해보면 정확한 연도를 설명할 수 없다.[104] 대표적으로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판에서 이런 묘사가 나온다.[105] 호세 12장 4절~5절, 13절[106] 기원전 2000년대 말
2장의 에덴 동산과 아담과 하와와 관련된 서술을 1장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보기도 한다. 1장을 개괄적인 설명으로, 그리고 2장에서는 개괄적으로 바라본 사건을 인류(아담과 하와)를 중심으로 보는 방식이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이루어진 성서비평학적인 성과로 인해, 현대 신학계에서는 창세기 1장의 창조와 2장의 창조를 다른 전통의 창조 설화라고 보고 있다. 즉, 창세기 1:1부터 2:3까지는 P자료, 2장 4절 이후로는 J 자료의 일부로 본다. 아담 항목 참조.[8] 4QGenh에서는 א가 빠져 있다.[9] Jos. Cont. Ap. I, 38f.[10] Vgl. Phil., Vit. Mos., 84.[11] Baba Batra 14b.[12] 예. 켈수스, 포르피리우스, 히위 알-발키, 이븐 하짐, 이사크 벤 예수, 이븐 에즈라, 마르틴 루터,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 토머스 홉스, 이사크 드 라 페레레, 바뤼흐 스피노자, 리하르트 시몬.[13] H. B. Witter: Jura Israelitarum, Hildesheim 1711.[14] J. Astruc, «Conjectures sur les mémoires originaux dont il paroit que Moyse s’est servi pour composer le livre de la Genèse : avec des remarques, qui appuient ou qui.», Brüssel 1753, vgl. S. 113f.[15] J. G. Eichhorn: Einleitung ins Alte Testament, Bd. 1/2/3/4–5, Aufl. 1/2/3, Leipzig/Reutlingen/Göttingen 1780–83/87 u. 90/1803/23–24.[16] K. D. Ilgen: Die Urkunden des ersten Buchs von Moses in ihrer Urgestalt. zum bessern Verständnis und richtigern Gebrauch derselben, Halle 1798.[17] 야훼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소수설로 창세기 본문에 無로부터의 창조가 나오지 않는다는 관점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無로부터의 창조는 마카베오기 하권에 나오고, 히브리 성경 및 신약에는 나오지 않는다. 無로부터의 창조라는 후대 관점을 전제하고 창세기를 읽어도 틀린 건 아니지만, 일단 본문이 원래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18] [19] 성경을 해석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파는 이 구절 그대로 지구가 7일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한국 개신교에서 대세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지구 창조설에 따르면 지구는 6천 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지질학, 생명공학의 연구 결과를 인정하는 종파에서는 야훼의 창조 진리를 묘사하는 비유적인 내용으로 생각한다.[20] 이 때문에 유대교는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를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21] 처음부터 하와라고 불린 것은 아니다. 탄생 당시엔 그냥 여자라고 불렸고, 나중에 에덴에서 쫓겨나기 직전에 아담이 이름을 붙여주었다.[22] 하와는 동산 안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했느냐는 뱀의 처음 질문에 야훼가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어기면 죽는다며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야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만 했을 뿐 만지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는데 하와는 야훼의 명령을 잘못 이해하는 모습으로 허점을 보이자 뱀은 다시 하와를 위의 서술과 같이 유혹했다.[23] 서양 전설에 아담이 열매를 먹다가 목에 걸린 탓에 남자에게 울대뼈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있다.[24] 아담과 하와 가족 말고 '다른 사람들'이 누구를 얘기하는 것인지는 여러 의견이 있다. 카인 항목 참조.[25] 창세기의 이 구절은 옛날 백인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흑인은 조상인 함이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차별받고 있다'며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이들은 셈이 황인, 함이 흑인, 야벳이 백인의 시조라고 주장했다.[26] 바벨탑의 모티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마르두크에게 바쳐진 바빌론의 지구라트 에테멘앙키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우르의 지구라트라는 설도 있다.[27] 아브라함이 살았다는 우르(우르케시딤)는 이라크에 위치한 수메르의 우르가 아니라 시리아에 위치한 우르케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브라함' 문서 참고.[28] 사라는 아브람이 야훼에게서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다시 받을 때 같이 받은 이름이다.[29] 유목민이라 따로 고정된 집이 없이 천막을 치고 이동 생활을 했다.[30] 당시에는 이복 오누이 간에 결혼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나중에 가서 이런 관행이 금지되었다. 이는 그 당시 서아시아 지방에서 장자권과 관련되는 사항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대 시기에 지배층에서는, 친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타 집단에서 온 여성이 낳은 아이보다 우선권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통 속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친족이 살던 곳에서 먼저 찾으려고 하였으며, 이삭과 리브가가 장자 에서가 가나안 여인을 취한 것에 근심하였으며, 야곱이 외사촌들과 혼인하였다. (특히나 외사촌의 여종까지 첩으로 삼았는데, 태어난 순서에서 요셉과 베냐민은 막내들이지만, 여종들이 낳은 아들들보다 우선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위기 18장 9, 11절, 20장 17절)[31] 의인 50명은 야훼가 제안한 숫자였지만 아브람이 "그것보다 모자라면요?", "거기서 또 모자라면요?", "죄송합니다만 조금만 더 줄이면요?", "거기서 더 모자라면요?"라고 연거푸 물었고 그때마다 야훼가 "그 정도로도 안 멸한다."라고 대답하였다.[32] 왜 하필 한두 명이 아니라 열 명이었냐면, 당시 사람들의 생각엔 '한 무리'의 가장 작은 단위가 10명이었기 때문이다.[33] 이 사건은 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중요한 근거이다. 다만 근래에는 거꾸로 이 일이 동성 간의 성폭행을 의도한 것일 뿐이지 상호간의 사랑을 전제하는 동성'애'와 관련 없다고 해석하는 신학자도 적지 않다. 보수적인 한국 기독교 신자 입장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해석이지만, 미국 성공회에서 동성애자 신부를 주교로 임명하는 등의 일이 있었는데 이런 해석이 뒷받침되고 있다. 이 사건의 성범죄자들은 '강간'이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할 뿐, 대상의 동성/이성 여부는 상관없다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동성간의 성범죄를 범죄학 용어로 '소도마이{Sodomy}'라고 명칭하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34]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롯이 딸을 물건 취급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고대 근동에서 여성 인권이 낮았다 해도 가장이 집안 여성을 지키는 것은 중대한 의무였고 모욕을 당한 여성을 위해 가족이 사적으로 복수하는 것도 어느 정도 변호되었다.(창세 34장) 즉 본문이 동시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1차적인 문학적 의미로 보자면 롯은 딸을 지켜야 한다는, 고대이기에 오히려 강력한 가장의 의무와 명예가 걸린 손님 접대의 관습 사이에서 양자택일로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둘째, 이 당시에는 자식을 부모에게 소유된 소유물로 생각하였다. 창세기와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욥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욥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사탄이 욥의 자식들과 하인들을 죽이고, 재산을 모두 없애고, 욥에게 병을 내리는 것을 허락하신다. 그럼에도 욥의 믿음이 굳건하자 욥이 잃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시고 죽은 자식들도 원래 숫자만큼 다시 낳게 하신다. 현대의 인권 관점으로는 죽은 자식을 도로 되살려 주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기준에서 자식은 부모에게 소유된 재산에 가까웠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자식의 수에 주목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석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절대적인 신인 하느님이 절대적인 선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고 시대에 따라 바뀌는 인간의, 다시 말해 피조물의 정서를 따라 주어야 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35] 한다는 말이 "더부살이 하는 주제에 재판장 노릇하려 드네, 네놈부터 손봐 줘야겠다!"라고 적반하장식으로 나왔다.[36] 이슬람교에서는 이스마엘이 먼저 태어난 점을 들어 정통 후계자로 생각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이사악이 유대인의 선조고, 이스마엘이 아랍인의 선조라고 생각한다.[37] 이슬람교는 이브라힘(아브라함)이 바치려고 한 아들이 이사악이 아닌 이스마엘이었고, 장소가 모리아산(예루살렘)이 아니라 메카였다고 이야기한다.[38] 사실 원주인이었던 헤브론이 그냥 무상으로 주겠다고 한 것을 아브라함이 정가를 받고 구매하겠다고 관철시켜서 산 곳이다. 헤브론은 물론 정가는 불렀지만 굳이 값을 받으려 하지는 않았다.[39] 막벨라 동굴은 현재까지 남아있어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성지로 추앙받고 있다.[40] 이 때문에 리브가가 야훼한테 문의하자 야훼는 리브가에게 두 민족의 시조가 그녀의 배 속에 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나뉠 텐데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41] 에사오가 하란에 있는 자신의 종족이 아닌 헷 사람을 아내로 2명이나 만든 것이 눈에 거슬리게 했다. 에사오는 이후 헷 출신 아내들이 부모를 거슬리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엉뚱하게 이사악의 이복형인 이스마엘의 딸과 또 결혼했다.[42] 당시 장자권은 소위 '꿀혜택'이나 같아서 부모가 가진 재산을 남은 다른 자녀들과 반분할때 배나 더 많이 받게 되어 있었다.[43] 이때 야곱은 형인 에사오와 나는 외형부터 달라서 형은 털북숭이인데 자신은 털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를 가진 마당에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냐며 반대했지만 리브가가 강권해서 결국은 받아들였다.[44] 다만 원문을 보면 이삭은 이미 자기 앞의 아들이 에사오가 아닌 야곱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 증거로 이삭이 야곱을 불러 정말 에사오인지 확인하기 위해 만지는 중에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린데 만지는 느낌은 분명 에사오가 맞는데.."라며 "정말 장남 에사오가 맞느냐?"고 재차 묻는 장면이 나온다.[45] 이 과정에서 에사오는 "그놈 이름이 야곱{거짓말장이, 뒷꿈치를 잡은 자}이란 이름 그대로잖아요. 전엔 제 장자권 뺏더니 이젠 제가 받을 축복까지 가로챘다고요!"라고 불평한다. 그러나 정작 "별것 아닌것 가지고 유별떤다"며 장자권을 아무렇지 않게 판 것은 에사오 본인이었다.[46] 다만 아버지 이삭이 생존하는 지금 당장이 아닌 아버지가 별세한 이후로 계획을 잡는다.[47] 원래 리브가는 에사오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잠시만 보낼 예정이었으나 이것은 리브가와 야곱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48] 이를 성경에서는 재밌는 표현으로 묘사했는데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정도로 여겼다'라고.[49] 야곱이 라헬에게 장가가겠다고 했을 당시 라반은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느니 너한테 주는 게 낫겠다"고 해놓고 엉뚱한 짓을 하였다. 이는 훗날 야곱과 라반의 관계가 서먹해진 이후 레아와 라헬을 통해 확인사살로 증명된다.[50] 레아는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짓는 것에 까지 야곱의 사랑을 갈구할 정도였다. 4남인 유다{찬송}을 제외하면 르우벤이나 시메온과 레위는 모두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고 원하는 의미의 이름이다.[51] 사연이 복잡한데 레아가 4남 1녀를 두게되자 투기를 한 라헬이 야곱에게 투정을 부렸다가 혼나서 고육지책으로 자신의 몸종이었던 빌하를 첩으로 준 것이었다(그 빌하의 둘째 아들 이름이 납달리인데 이름의 뜻이 '내가 언니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다(...)). 그걸 본 레아가 자기도 "질뚜없뜸!"하고 자신의 몸종인 실바를 역시 야곱에게 첩으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