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4 21:28:27

스퀘어(게임 회사)


1. 개요2. 역사3. 닌텐도와의 분쟁과 화해4. 제작한 게임

1. 개요

파일:스퀘어(SQUARE) 로고.svg파일:스퀘어(SQUARE) 로고 화이트.svg

SQUARE / スクウェア

과거 존재했던 일본게임 제작사. 대외적으로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2003년에 같은 게임 제작사[1]에닉스와 합병하여 스퀘어 에닉스가 되었다. 합병 전의 이름은 주식회사 스퀘어 및 스퀘어 소프트. '에닉스가 스퀘어를 흡수하는 형태로' 합병이 되었기 때문에 기업으로써의 구 스퀘어는 합병과 함께 소멸하였다.

2. 역사

1983년 미야모토 마사후미(宮本雅史)[2]가 아버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아버지의 도쿠시마 지역 전기 설비 회사였던 '덴유샤(電友社)'의 소프트 개발부로 처음 설립했으며, 1986년 독립하였다. 그 후 닌텐도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패미컴용 게임을 개발하지만 이렇다할 히트작 없이 시장에서 물러나려는 순간 파이널 판타지[3]가 대박을 치게되며 이후 사가 시리즈, 성검전설 시리즈 등 많은 히트작을 내며 대기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설립 초기 채용, 인사가 특이했는데 회사 근처에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아르바이트를 모집해서 일단 일을 시킨 뒤 미야모토와 사카구치 히로노부가 이 사람은 일을 잘한다고 판단하면 정식 채용하는 방식이었다. 학력이나 경력은 그다지 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설립 초기 멤버는 대부분 20대였으며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일하는 직원이 많았다.

하지만 주식 공개 이전인 1991년 미야모토 마사후미는 「35세가 되면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고 싶다」라는 이유로 갑작스레 퇴사하였다. 이후 의류 업계로 이적하여 여성 의류 체인점인 에스 시스템(エスシステム)을 창업하였다.[4] 미야모토가 퇴사한 뒤에는 일반적인 회사처럼 학력이나 경력을 보는 채용이 되었다.

파이널 판타지 7 당시 소니플레이스테이션과 독점계약을 맺어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매. 세계적인 대히트를 기록했으며 회사의 규모도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플스1 시대에는 파판으로 번 돈으로 게임 업계에서 개발자를 잔뜩 흡수하여 엄청나게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내놓았는데, 뜻밖에 양작이 있는가 하면 거지 같은 쿠소게나 당최 뭐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괴작도 많았다. 참고자료 그리고 파판이 막강한 타이틀로 도약한 반면, SFC 시대부터 이어져온 다른 RPG 시리즈는 점차 침체기를 겪게 된다. 어찌보면 동시기 남코와 함께 가장 친 플레이스테이션 행보를 보인 서드파티 회사로도 볼 수 있다.[5]

1998년부터는 지나치게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개발에 치중하는 운영방침으로 일부 핵심 사원들이 퇴사하여 모노리스 소프트, 브라우니 브라운(1-UP 스튜디오), 알파드림 등의 제작사로 독립하였다. 이 제작사들은 스퀘어와 앙숙지간이던 닌텐도측에서 야금야금 흡수하는데 성공, 지금은 전부 닌텐도 산하로 들어와있다.[6]

1999년에는 CG제작 회사 주식회사 스퀘어 비쥬얼 워크스, 음악 제작 회사 주식회사 스퀘어 사운즈, 품질관리·사용자 써포트 회사 주식회사 스크아트, 주식회사 스퀘어 넥스트 등을 자회사로 만들었는데, 2001년~2002년에 거쳐서 이 회사들을 다시 재합병했다. 아마 자회사로 분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이익이 없어서 다시 없앤 듯. 게다가 유명한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파이널 판타지의 오리지널 영화가 완전히 물말아 먹었다.(후에 파이널 판타지 7을 기반으로 만든 어드벤트 칠드런은 꽤 선전하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라 OVA.)

1996년에는 소니와 합작한 회사인 주식회사 디지큐브를 설립. 독자적인 게임 소프트 유통망과 게임 관련 서적의 판매망을 갖추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팔리지 않은 소프트를 100% 반품 처리해주는 등 버는 돈보다 들어가는 돈이 많아 2003년 11월 6일에 부채 총 95억 엔으로 파산했다. 이로 인해 스퀘어 에닉스는 7억 6천만 엔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한다.

플레이 온라인이라는 포털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컨텐츠를 유통하려는 시도 자체는 좋았는데 남의 컨텐츠를 들여놓는데 쓰는 돈이 많아 역시 적자였다. 다행히 파이널 판타지 11은 킬러 콘텐츠였기에 리스크를 감수하며 인력을 집중하였고 이는 이후 스퀘어의 적자 회복에 큰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된다.

영화 사업 자체는 파판 영화의 흥망과는 별개로, 제2, 제3의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 스폰서가 결정되기 까지 1-2년 이상을 하와이 스튜디오의 200명 이상을 놀게 놔두는 수가 생기기 때문에라도 없앨 수밖에 없었으며 극장 비즈니스 자체도 헐리웃 마피아라 부를 정도로 필름의 프린트와 영화의 광고 비용이 너무나 들어 이후 이 두가지를 문제라 가설을 세우고 사내 제작 + DVD 배급이라는 시스템으로 다시 도전, 파이널 판타지 7 어드벤트 칠드런을 통해 성공을 거둔다.

이렇게 영화, 유통, 온라인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벌였지만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 없이 시작했던 것들이라 죄다 적자 상태였으며 2000년 들어서는 그때까지의 크리에이터 유출과 더불어 부장급의 관리직들까지 이탈이 가속화되었으며 당시 시점에(2000년 5월) 개발 중인 게임은 곧 발매될 파이널 판타지 9, 1년 뒤 발매될 FF X, 극공간 프로야구, 바운서 4 작품이 전부였을 정도로 본업인 게임 개발이 빈약해져 회사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 와다 사장의 노력으로 2003년 3월기에 창사 이래 최대 수익을 거두며 회사를 겨우 정상화시킨다.

그 다음 성장 전략으로 글로벌 전개와 더불어 M&A를 알아보던 와중, 인수합병 대상에 있지 않았던 에닉스의 혼다 사장의 제안으로 검토해 본 결과 중국 시장과 PC 온라인 시장, 휴대전화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었기에 재미있을 것 같아 서로 합병을 결정, 2002년 11월 26일 이사회에서 스퀘어 에닉스로의 합병을 결의, 발표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라이벌 구도를 가진 양사가 합병한다는 소식에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을 정도였다.

3. 닌텐도와의 분쟁과 화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당초 파이널 판타지 7닌텐도 64로 내는 조건으로 닌텐도로부터 개발 지원 & 보조금 등의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가 나중에 SCE에게 출자금을 떠맡기는 조건으로 이적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당시 스퀘어 사장 스즈키 히사시 인터뷰에 따르면, 이적 자체는 닌텐도 측에서도 기종의 선택이라는 면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해 주었으나 이후 일부 스퀘어 관계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닌텐도 64는 글러먹었다." 라고 노골적으로 비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격분했고, 앞으로 닌텐도 콘솔에 스퀘어 게임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한창 잘나갈 때, 그러니까 플레이스테이션 시대에는 개발자들을 마구 스카우트해서 소모품처럼 쓰고 프리랜서로 만들어 버린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같은 것을 보면 너무나 뚜렷하다. 확실히 이 당시의 스퀘어는 별의별 장르의 게임에 다 도전했다. 그래서 플레이스테이션 시대에는 시험적인 작품이 많았으며, 이 중에는 수작도 많았지만 쿠소게도 꽤 많았는데 그것마저도 잘 팔릴 정도로 무적모드 상태였다.

2020년 8월 스퀘어의 전 사장 와다 요이치가 note에 밝힌 글, '슬슬 얘기해 볼까' 2부[7]에서 닌텐도와 거리를 두었던 이유와 화해 과정에 대해 얘기했다.

와다 사장이 취임한 2000년 당시 스퀘어는 닌텐도로부터 거래가 거부당하는 유일한 회사였다. 그럼에도 사내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와다 사장 자신도 회사 경영을 챙기느라 바빠서 그 이상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 2001년 1월 사내 전략회의용 자료에서 'GBA용 타이틀 공급예정' 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와다가 자세히 확인해봤더니 닌텐도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고, 개발 준비도 전혀 안 되어 있음. 닌텐도 측도 자사 기기로 FF를 발매해줬으면 할 터이니 이걸 계기로 조건 교섭을 할 수 있을지도와 같은 가관인 내용이었다.

증권회사에서 법인 교섭경험이 있는 와다로서는 이게 얼마나 큰일날 짓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일의 해결에 착수한다.[8] 와다는 우선 거래거부가 된 진짜 이유를 조사했다. 와다가 들어왔던 소문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기에 직접 조사를 했고, 단순히 닌텐도를 비난했다는 것만이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9] 와다가 요약한 닌텐도가 스퀘어와의 거래를 계속 거부를 하게 된 이유인 즉슨
  •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서 목소리가 컸으며, 소니 진영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취급당했기 때문.
  • 편의점 유통 플랫폼 자회사 디지큐브의 2000년 기업 공개 당시 장점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닌텐도의 유통/비즈니스 구조를 완전 부정해버림.
    닌텐도가 완구점 도소매를 활용한 루트, 소니가 CD시장을 활용한 루트를 사용한 것에 비해 디지큐브는 보다 신문물에 가까웠던 편의점을 활용한 루트를 사용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닌텐도의 유통구조를 시대에 뒤쳐진 것이라고 선전해버려서 불에 기름을 부어버림.
  • 직접 교섭하던 상대방 (닌텐도측) 경영진에게 무례하게 대하다가 공식 교섭 루트를 잃어버림.
  • (미확인이지만) 스퀘어 창립자 미야모토 마사후미 회장과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 사이의 개인적인 애증 추정.[10]

어디까지나 와다가 이해한 내용이니 사실과는 다를 수도 있지만 이익의 문제가 아닌 배려의 문제였다고 판단하였고 와다는 현 상태를 닌텐도가 '왜 너네들 사과하러 안 와?' 중이라고 생각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기업간의 관계는 그런 문제로도 움직여질 수 있는 것이며 논리만으로 해결되면 고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퀘어의 관계 회복을 두고 누군가는 '마침 닌텐도가 거치기용 FF가 필요했던 순간 약점을 잘 잡았다' 같은 말을 했지만 닌텐도의 경영은 그렇게 무르지 않다며 부인했다.

와다는 닌텐도와의 접점이 없었기에 스퀘어의 전 회장에게 당시의 닌텐도 측 담당전무를 소개받는다. 이 사람은 단순한 임원이 아닌 정말로 거래를 재개시켜 줄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핵심인물이었다. 그리고 교섭이 진행되며 와다가 불려지는 곳 또한 점점 격이 높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밝힐 수 없는' 교란요인으로 인해 닌텐도의 교섭조건은 점점 까다로워진다. 스퀘어 또한 우여곡절을 거쳐 2001년 10월 소니에게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부탁하게 된다.

이 사이에도 대충 이런 일들이 있었다.
  • 2001년 7월 : 디지큐브 주주총회 - (닌텐도 상품을 취급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것은 어른의 사정입니다. 도게자로 어떻게 될 일이라면 얼마든지 하겠습니다.
  • 8월 : 스퀘어와의 계약은 일본 모회사가 결정할 일. 현시점에서 계약은 없다.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 10월 : 스퀘어에 관해서는 게임의 인식과 다르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협력할 일은 없을 겁니다. 다른 서드파티와 같이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닌텐도 당시 홍보실장)
  • 11월 :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기종의 선택이라는 의미라면 어쩔 수 없다' 라며 배려해주셨지만 우리들은 닌텐도 64를 글러먹었다고 공언해버렸다. (스즈키 당시 스퀘어 사장)

스퀘어는 소니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으며 자타공인 소니 산하 회사가 되어버렸기에 다음 돌파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소니의 체면에 절대 먹칠을 할 수 없었기에 당장의 일이 어렵더라도 장래의 전개가 가능한 상황이 되도록 소니와의 계약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당연히 소니로부터는 FF를 PS에 독점적으로 공급해달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이를 어떻게든 '확대해석'이 가능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던 도중 야마우치 히로시 닌텐도 사장은 2001년 12월 실험적인 게임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사재로 게임 개발 지원 '펀드 Q'를 설립했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그런데 그 공식 발표 이전의 시기에 닌텐도로부터 스퀘어의 중핵 크리에이터에게 투자 대상이 되지 않겠냐며 연락을 해왔고, 그 크리에이터는 와다 요이치 사장에게 정직하게 보고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와다 역시 교섭을 하던 닌텐도의 전무에게서 펀드의 얘기를 듣게 된다. 크리에이터에게 이야기를 먼저 흘린 것. 그리고 와다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 와다 사장은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제멋대로일지는 몰라도 이것을 닌텐도가 내려준 거미줄(교섭의 실마리)로 이해하고 즉시 교섭을 진행했다. 몇 번의 진행 끝에 마침내 와다는 닌텐도 본사 최상층 응접실까지 가게 된다.

2002년 3월, 닌텐도와의 거래가 재개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소니의 출자를 받은지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고 잘못하면 소니에게 먹칠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닌텐도의 전무 역시도 이 상황을 잘 알고 먼저 배려해주어 구체안을 내줄것을 요청했다. 소니 측에 잘 말하기 위해 타이밍과 전달방법에 신중을 기울였는데 다행히 유상증자 과정을 거치며 SCE의 경영진과 밀접한 교류를 다져두었고 그중에서 특히 말이 잘 통하는 임원에게서 '소니의 세컨드파티라도 게임보이 어드밴스에 타이틀을 공급하는 적극성을 갖는 것이 좋다. 스퀘어를 지배할 생각은 없으니 PS에 타이틀을 내주기만 하면 그걸로 된다'는 말을 듣게된다. 또한 닌텐도와의 거래재개를 임원회의에서 결의를 해야 했는데, 스퀘어의 오너는 필요하다면 소니의 감사역에게 자리를 물러달라고 부탁하라고 했지만 그 감사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힘내라고 응원만 해주었다고 한다. 닌텐도와의 거래재개를 위해 소니 측에서도 뒤에서 얼마나 움직였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며 그야말로 닌텐도, 소니의 '넉살 좋은 대응' 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발표에 있어서도 실패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외이사로부터 조언을 받아 보도자료를 내는 기관과 그 순서의 선정과 유출을 막기 위한 인쇄, 배포 등의 과정까지 고려하여 타이밍을 결정한다.

닌텐도와의 교섭은 펀드 Q의 대상을 어떻게 만드느냐부터 재개되었다. 이전안은 스퀘어가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거기로 개발진을 이동시켜 펀드 큐로 받은 자금으로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소니를 배려한 것도 된다. 와다는 여기에 더해 스퀘어 본체와의 거래 재개를 위한 교섭을 하게 된다. 본체와의 거래 조건은 'FF 넘버링을 만든다. PS판의 이식은 안됨' '게임큐브 타이틀 제작을 우선' 한다는 요구였다. 이걸 받아들이면 소니와의 계약에 모순이 생길 처지였지만 마침 개발팀으로부터 네오 FF(FF 7-8-10)와 클래식 FF (FF9 계보)의 투 트랙으로 가자는 제안이 나온다. 닌텐도 시절 FF 작품은 검과 마법의 세계관이었으니 이 논리라면 앞뒤가 맞게 되니 계약서에서 'FF 넘버링'이라는 표현을 'FF 본편' 이라는 단어로 바꾸기 위해 주력했다.

스퀘어는 펀드 Q의 투자금을 받아 99년 설립했던 자회사(사실상 개발2본부장 소유인 페이퍼컴퍼니) 스퀘어넥스트를 개조하여 게임 디자이너스 스튜디오라 개명하고 개발 의뢰를 스퀘어 제2개발사업부에 맡기는 식으로 파이널 판타지 크리스탈 크로니클을 만들어 2003년 8월 발매하게 된다. 사실 스퀘어는 2002년 12월 초코보 랜드를 시작으로 GBA에 참여하여 이듬해 2월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 어드밴스를 먼저 발매했지만, 이 게임이야말로 진짜 스퀘어-닌텐도의 화해작인 셈이다.

2020년대에 접어선 현대는 닌텐도에서 스매시브라더스 시리즈에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거나 슈퍼 마리오 RPG(2023)의 협력을 위해 다시 한번 뭉치는 등 서로 간의 앙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4. 제작한 게임

가나다 순 정렬. 합병 이후인 2003년 이후 작품은 스퀘어 에닉스 문서를 참조.


[1] 엄밀하게 따지면 에닉스는 '제작사'라고 하기는 곤란한 기업이었다. 기획은 하고 유통과 퍼블리셔도 맡지만 정작 제작은 본사에서 하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원래 게임 제작 부분보다 다른 부분이 더 컸다.[2] 1957년생.[3] 파이널 판타지에서 파이널이라는 말이 붙은 계기는 이 작품마저 제대로 안 팔리면 회사를 완전히 정리하려 했기에 끝이란 의미로 FINAL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쓴 것이라고 한다.[4] 퇴사 이후에도 투자자로서 게임 업계에 지속적으로 관여해왔으며 스퀘어의 경영에도 오너로서 관여해온 듯하다. 그 일례로 에닉스와 합병할 당시 노무라증권에서 상정한 주식 비율이 에닉스 1주 대비 스퀘어 0.81주였는데 이에 미야모토 히로후미는 합병을 반대하였으며, 결국 스퀘어측의 비율이 0.85로 늘어났다.[5] 다음 세대에는 일렉트로닉 아츠가 반 세가 친 플스 자리를 이어받았다.[6] 스퀘어와 닌텐도가 한참 대립하던 시절 닌텐도에서도 내심 스퀘어의 개발력은 인정하고 있어 비슷한 류의 작품을 만들거나 스퀘어측 인사를 영입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브라우니 브라운은 2000년 직통으로 닌텐도 밑으로 들어가 사업체를 꾸렸고, 모노리스 소프트는 1999년 남코 밑으로 들어갔다가 2007년 닌텐도에 인수합병, 알파드림은 2000년 독립 이후 2002년부터 닌텐도 세컨드파티 노릇을 하다 2019년 파산, 주요 인력은 닌텐도에 스카웃된 상태다.[7] 참고로 1부는 쿠로카와 학원 35회에 출연해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부임했던 2000년 당시 혼란스러웠던 스퀘어의 모습과 디지큐브의 전말, 스퀘어와 에닉스의 합병, 타이토에이도스 인터랙티브의 인수합병, 파이널 판타지 14의 전말 등에 대해 후미오 쿠로카와와 인터뷰한 것을 게재했다.[8] 만약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이루어졌다면 닌텐도와는 영원히 거래가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안건.[9] 당시 닌텐도를 비난하던 게임회사는 스퀘어 말고도 다수 있었고, 스퀘어의 비난 정도는 다른 회사와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10] 나이가 30 차이가 나긴 했지만 와세다대학의 선후배 사이였다.[11] 극공간 프로야구의 후속작으로 NPB팀이 안나오고 선수들만 나오는데 NPB라이센스 협상에 실패해서 궁여지책으로 일본선수협과 메이저리그 노조의 라이센스를 사서 선수들을 나오게하는 게임이 되었다. 팀은 오리지널로 승리수당으로 선수를 사서 구성하는 방식, 메이저리그와의 차이를 의식해서 인지 리그는 승강제였다.[12] とびだせ大作戦. 북미판 명칭은 "The 3D Battles of World Runner". 몇 가지 부분에서 세가의 3D 비행 슈팅게임 스페이스 해리어베낀 흔적이 역력하나 캐릭터, 아이템 디자인 등 차별점도 존재하기에 법적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속작은 "JJ ~날아라 대작전 파트 2~".[13] 스퀘어 사에서 만든 유일한 슈팅 게임.[14] 참고로 취미잡지인 하비재팬에서 연재된 동명의 소설판도 있는데 이쪽은 그냥 제목만 같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며 인지도는 소설판이 좀 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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