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1:32:43

시체닦기

1. 개요
1.1. 현실에서1.2. 절차
2. 도시전설3. 각종 매체에서

1. 개요

말 그대로 시체를 닦는 행위를 말한다. 정확히는 장례 과정의 염습(殮襲) 중 '염'과 그 전에 행해지는 수시에 해당한다.

사람이 사망하면 가장 먼저 영안실로 옮겨지는데 장례를 진행하기 위해선 시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1] 사후 괄약근이 풀리며 배출되는 용변과 각종 체액, 피 같은 오물들을 닦아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염습은 동성 간에 하는 것으로 오래도록 여겨져 왔으나 최근 들어 여성 장례지도사가 늘면서 젊은 여성의 유가족들이 남성 장례지도사보다 여성 장례지도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1.1. 현실에서

동아시아권에서는 주로 장례식 직전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을 하고 염습을 거행한다. 이 일에 인생을 걸어 보고 싶다면 전국의 많은 보건대학에 개설된 장례지도과 진학을 추천한다.

흔히 '시체닦기'하면 떠오르는 철제 염습대에 누운 시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즈로 닦아 내려가는 작업은 영안실에 들어온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고 알바생을 구해 써야할 만큼 인력이 부족한 작업도 아니다. 병원에서 고용한 인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염습이란 말 자체가 시체를 씻기는 '염' 과 수의를 입히는 '습' 을 가리킨다. 한국 사회에서 매우 중시한 예식으로 아르바이트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서구에서는 교회 관계자들이 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1.2. 절차

도시전설로서의 '시체닦기'가 아닌 현실의 절차에 대해선 '염습' 문서 참고.

전염병으로 사망하면 위의 모든 절차가 생략되고 바로 입관 후 화장터로 향하는데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24시간 이내에 화장을 해야 하고 확산 방지를 위해 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사망자가 늘어나 자세하게 설명되었다. 기사

2. 도시전설

'아르바이트 중에는 시체닦기라는 것이 있는데 시간에 비해 엄청난 보수가 나온다'는 도시전설이 존재한다. 한 구당 몇십만 원을 준다는 소문까지 돌기도 한다. 힘들기도 하거니와 워낙 겁나는 일이라서 지원자를 받아 일을 시키는데 그 대신 보수는 매우 두둑하게 치러준다는 카더라 통신이다.

이런 아르바이트는 위생 문제 때문에 존재하면 매우 위험하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에서는 시신을 보관·안치·염습·운구 등을 할 때에는 시신을 위생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위생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반드시 장례지도사가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는 않았다.[2] 즉 법적으로 아르바이트 자체가 금지되진 않았지만 염습하는 것 그 자체는 상당한 숙련이 필요한 데다 유족이 참관하여 모든 과정을 지켜본다. 단순히 시체를 닦는 것만 아니라 시체 처리와 관련된 충분한 전문 지식과 요령, 그리고 고인에 대한 예의 등을 갖추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처리하는 곳은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자신의 가족의 시신을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알바생에게 맡기지 않는다.

연고자 없는 유해나 의과 실습용 시체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더더욱 전문가가 관리해야만 한다. 시체는 해부학과를 졸업한 '의사'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시관이나 시체 유기 중인 범죄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 시체를 닦을 일은 결코 없다.

시체닦기 아르바이트를 해 봤다며 경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의 주장은 하기 전에 술을 마시게 한다, 일단 시체 닦는 방으로 들어가면 다 닦을 때까지 밖에서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다, 닦다가 어딜 잘못 건드렸더니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심장 멎는 줄 알았다 등등이다. 물론 장례식장에 한 번이라도 가 봤다면 전부 그냥 도시전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 인터넷에 떠도는 경험담들을 보면 영안실 안에 누워 있던 시신이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니, 시체 썩는 냄새에 토를 했다니 하는 묘사가 있는데 영안실의 일처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나면 전부 거짓말이다. 시신을 닦는 건 안치 전의 일로[3], 싸늘하기는커녕 생전에 흘린 땀조차 마르지 않고 끈적하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시신을 닦는 건 안치 전 단계이며 사고사 등의 경우엔 유가족이 도착하기 전에 작업을 끝내 두는 게 일반적이다.[4] 물론 사망 시점으로부터 하루가 지나서 고인에 대해 기본적인 염습을 진행하고 입관만 남겨둔 시점이라면 고인의 시신에서 온기가 상당히 떠나 차갑다.
  • 영안실 내부에서 부패가 진행된 시신을 볼 수 있는 건 고독사 정도가 전부인데 이 경우 장의업체보다 검경이 먼저 손을 대며 뿜어져나온 시취도 즉시 이루어지는 환기와 소독, 청소로 금세 사라진다.[5] 일반적으로 영안실 내부에는 강한 소독제로 인해 약간 시큼한 화학약품 냄새가 나지 고인이 감히 영안실에서 부패하고 이로 인한 냄새로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고인의 유족들에게 더 고통스럽게 하는 일은 없다.
  • 영안실을 어두침침한 공간으로 묘사하여 공포감을 조성하지만 실제로는 일반 병실이나 사무실과 다를 바 없는 환경이다. 단지 벽 한켠에 늘어선 냉동고들과 일상 생활에선 보기 드문 각종 금속재 설비들이 일반인들에게 위화감을 줄 뿐이다.
  • 염습 및 입관을 거행하는 입관실이 따로 있는 건 맞지만 문을 밖에서 잠그는 일은 없다. 염습 과정은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되며 마지막 작별을 위해 유족을 입관실에 들여보내기도 한다.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내려오는 권고사항에는 염습실 내부의 위생상태는 감정이 격해진 유가족의 돌발 행동[6]까지 감안하여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염습은 조명히 환하게 켜진 깔끔한 방 안에서 이루어지며 행동 하나 하나에 절차적 의미가 담긴 예식에 가까운 양상으로 진행된다.
  • 시체가 다시 일어나는 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죽은 시체는 절대로 저절로 움직이지 않으며 시신은 사망을 의사가 직접 확인한 뒤에야 영안실로 옮겨진다.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하면 곧장 영안실로 보내 버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장에서 이미 사망한 상태라 하더라도 우선은 응급실로 옮겨 소생술을 실시하다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의사에 의해 영안실로 보내지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119 구급차에 의해 이송될 수 있는 것이다. '배를 눌렀더니 입에서 썩은 물이 나오더라', '어딜 만졌더니 벌떡 일어났다', 같은 경험담은 루머로, 사망 후 시일이 경과하지 않은 이상 있지도 않은 부패액이 배를 누른다고 해서 뿜어져 나올 순 없다. 사후경직이 오기 전까지 시신은 축 처져 있기 때문에 신체부위가 저절로 움직이는 일도 있을 수 없다.
  • 라자로 징후(Lazarus sign)라고 해서 뇌사한 유체의 신체의 일부가 중추신경계의 억제가 사라진 후에 척수 반응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있기도 하다. 비슷한 이름의 라자로 증후군(Lazarus syndrome)라고 해서 심폐소생 실패 이후, 즉 사망선고 이후에 자발적인 소생을 하는 경우도 보고되지만 아주 드물다.[7]

이 도시전설은 일본에서 훨씬 유명하다. 빨간 마스크처럼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으로 건너온 괴담으로 추정된다. 단순히 시체를 닦는 것을 넘어 아르바이트생이 어두침침한 지하실에 상주하며 포르말린에 담가둔 해부 실습용 시체를 떠오르는 족족 막대로 찔러 밀어 넣는다는 등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지만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체가 잠길 정도로 대량의 포르말린이 있는 방이라면 그 방의 공기는 한숨 들이쉬자마자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막대기와 함께 방독면을 준다는 황보완 버전도 있다.

일본에서 이 도시전설이 퍼진 이유가 일본의 시신 손질에 대한 인식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 유교 의식 때문에 시신을 만지고 수습하는 장례 일은 학식과 사회 경험이 많은 '어른'이 한다는 인식이 강했고 현대에도 장의사란 직업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하는 것'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당연히 시신 손질도 엄숙하고 중요한 일로 대했다. 유교의 발상지인 중화권에서는 한국이 생각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전문직에 준하여 높은 연봉과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반면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이런 장례 일은 천민인 부라쿠민이 행하였기 때문에 일본에선 '장례 일=천한 것들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박혀 버렸고 아직도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 의식이 많이 남아 있어서 장례 일을 천대하는 인식도 남아 있는데 이런 천시가 시신 자체에 대한 혐오와 겹쳐서 도시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유족의 처지로 한 번이라도 장례식을 치러 본 사람은 유족이 시신의 염습과 입관 과정을 참관하는 것을 알 수 있다.[8] 절대로 알바를 못 쓴다. 심지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조차 알바로 못 쓴다. 염습이나 입관할 때 그 알바가 혹시라도 실수나 무례를 범할 경우 말 그대로 끝장나기 때문이다.[9] 하다못해 사회인으로서 장례식에 참석해 본 경험이 있다면 장례 절차상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전무한 학창시절에나 통할 법한 도시괴담인 셈이다.

간혹 장례식이 현대화한 요즘은 불가능하지만 옛날엔 또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당연히 장의사가 직접 집으로 방문해서 염습했다. 이게 도시에서는 1980년대까지, 농촌 지역에서는 1990년대까지 치러진 장례식 풍경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보면 이런 시대상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람들이 장례를 집이 아닌 외부 전문 장례시설을 이용해 치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 점진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신풍속도였다.

다만 과거에는[10] 무연고 시신은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에 음지에서는 있었을 수도 있다. 의외로 기성세대에서 비밀리에 이런 알바를 했다는 증언이 꽤 있다. 산부인과 의사가 사산아를 가지고 술을 담가 먹느니 하는 도시전설이 추적 60분에서 사실로 판명되었던 것처럼 1990년대까지는 비밀리에 쉬쉬하면서 이런 것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무연고 시신은 대학병원 실습용으로 종종 쓰였던 1970년대~1990년대의 현실을 감안하면 당시 의과대학생들의 경험담이 와전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는 사후 사체 기증을 승락하고 그 유가족이 받아들일 경우에만 가능하다. 무연고 시신을 실습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술한 것처럼 1990년대 후반 들어서 전문 장례시설을 이용해 장례를 치르기 시작하기 전까지 노숙자나 부랑자 등 무연고 시신이 경찰을 통해서 들어왔을 경우 가끔 대학병원으로 들어왔는데 그때 의대생들이나 인턴들이 꺼려서 희망자가 없는 관계로 병원측에서 수고비를 조금 쥐어준 것이 와전되면서 돈 소문으로 보인다. 공식적인 돈이 아니기 때문에 쉬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1990년대 말엽 이후 장례식장이 활성화되면서 무연고 시신은 대학병원에 들어온 장례업체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으므로 당연히 도시전설이다.

원칙적으로는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할 필요는 없다.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처리는 일반적으로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다. 다만 서류상의 공적인 사망에는 무조건 사망진단서 내지 사체검안서가 필요한데 이 절차를 소규모 의원에서 밟는 경우는 사실상 없고 응급실이 있어 의사가 매시간 상주하는 2차병원급은 되는 곳에서 하므로 무연고 사망자를 대학병원에서 처리한다는 일종의 편견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든 비록 비정규직일 수는 있어도 시신은 병원 직원, 장례식장 직원, 무연고 시신의 관할 지자체 공무원 등 전문성 있는 사람들이 처리한다. 차라리 무연고 시신이라 유가족의 감시가 없는 것, 따로 뽀찌 및 영업의 여지가 없는 것을 이유로[11] 염이고 뭐고 대충하고 화장하거나 유관 공무원들과 장례식장이 정부 보조금 가지고 유착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확률이 더 높다.

장례지도사라는 자격증은 1990년대가 지나서 나타났는데 이전에는 자격증이 없으니 관련 법도 없었다. 무연고자는 충분히 아르바이트를 써서 대충 염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연고자를 국가에서 정식 장의사 불러서 염할 정도로 정부가 돈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21세기에 의대생이나 인턴이 아닌 일반인이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식으로 표현한 말들은 전부 거짓말이다. 결론을 내자면 시체닦기 아르바이트는 20세기 무렵 음지에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21세기에는 그런 사례가 절대 없다. 물론 이런 도시전설은 20세기부터 있어 왔다.

단, 일부 응급실을 갖춘 병원에서 사고[12]를 당해 들어오는 시신의 안치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직원이 있는 경우도 있으나 아르바이트는 아니다.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직업이나 길가에 치인 동물 잔해를 치우는 일도 있는데 이런 일도 전문가 내지 동물보호단체 자원봉사자가 처리하니 아르바이트로 해 봤다는 말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동물 사체는 담당 구청 숙직 공무원이 처리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참고로 태국음주운전 처벌법이 영안실 청소 및 시체닦기 50시간 자원봉사라고 한다.

3. 각종 매체에서

  • 죽은 자의 사치(死者の奢り)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대문호 오에 겐자부로가 1957년에 발표한 출세작. 작품의 주인공시체닦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터로 설정되어 있다. 적어도 1950년대부터 이러한 도시전설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혹은 이 소설을 근거로 해당 도시전설을 진실로 믿는 사람도 있다.
  • 오쿠리비토(おくりびと, 한국 개봉명 굿바이)
    2008년작 일본 영화. 본격 시체닦기 영화. 시놉시스만 보면 엽기 영화처럼 느껴지겠지만 내용은 납관사의 모습을 다룬 상당히 진중하고 감동적인 영화다. 2009년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다만 오카마의 시체를 염습하는 등의 웃지 못할 상황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르바이트로 시체닦기를 시작해 정식 납관사가 된다. 정확히 말하면 견습생이지만 주인공은 처음에 그 일이 생업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고 아내에게도 숨긴 채 일시적 돈벌이 차원에서 시작한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납관사 일을 매우 천시한다. 이 천시하는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주인공의 감정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다.
  •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시리즈
    드라마 CD에서 를르슈 람페르지가 한 번 했다. 정확히는 시체를 닦진 않고 위에 적혀 있는 막대기로 떠오르는 시체 쿡쿡 누르는 것이다. 리발한테 알바를 소개받게 되는데 리발이 저 일이라고 하자 를르슈가 상술된 이유를 대면서 그런 게 있을 리 없다고 한다. 그러자 보완 버전이었는지 리발이 방독면과 막대기를 줘서 결국 그 일을 하게 된다. 근데 다음 장면에서 C.C가 포르말린탕에서 푸와아아앗 치솟아 오르며 를르슈 깜놀한다.[13]
  • 아이고 아이고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되는 네이버 웹툰으로 아예 주제부터가 장례 지도사를 소재로 한 웹툰이다. 주인공 한새벽은 원래 뮤지션이었으나 같이 음악하던 친구 이현수가 교통사고로[14] 응급실에 실려갔고 결국 이현수는 사망해서 응급실 앞에서 마주한 중년 남성을 통해 장례지도사를 접하게 된다.[15][16] 한새벽은 정식으로 장례지도사가 되었으나 이런 저런 고충에 시달린다.[17]
  •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번외편 에피소드에서 나온다. 소노하라 기지에서 비밀리에 전사자의 유해를 처치해 임시로 입관하는 일을 하는 부분이 있다. 포르말린탕에서 시체를 건지고, 결손된 부위를 찾아 처치하고 천으로 싸서 관에 드라이아이스 같은 냉각재와 함께 넣는 일이다.
  • 챈스 일병의 귀환 (Taking Chance)
    2004년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 해병대원 챈스 펠프스 일병의 영현봉송 임무를 다룬 영화로 의무대원들이 영현을 염습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반적으로 영화 자체가 경건하며 미국 사회에서 군인에 대한 예우를 볼 수 있다.


[1] 의료용 가위로 찢어서 벗긴다.[2] 애초에 공인자격증이란 전문 지식/기술을 공적으로 인증하는 것일 뿐 자격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면허 받은 자 외에는 행위가 금지되는 면허증과 구분되는 점이다.[3] 시신이 들어오자마자 냉장고에 넣어 버리고 염습 전에야 꺼내 눈가림하던 수준 이하의 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부분 도태되었다. 대도시의 장례 업체라면 아무리 돈만 밝히는 업자도 적어도 유족의 눈이 닿는 영역에서는 의전에 모든 걸 건다.[4] 업체간의 경쟁이 주는 순기능으로, 위생적으로나 예의상으로나 고인을 방치해 두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며 시신을 확인한 유가족들이 해당 장례식장에서 그대로 장례를 치르게끔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장례식장을 미리 알아보는 등의 준비가 가능한 고령 자연사에 비해 갑작스러운 죽음의 경우엔 고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시겠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믿음을 주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장례계약을 맺고 고인을 모실 수 있다.[5] 4급 암모늄염, 계면활성제, 염소 및 염소화합물 등이 들어간 여러 종류의 약품으로 철저하게 소독한다. 고인에 대한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시신을 만져 가면서 일하는 근무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이를 소홀히 하면 영안실 출입자들이 각종 병균에 노출된다.[6] 바닥에 주저앉는다거나 고인과 인사하는 과정에서 염습실 내부 설비에 손이 닿는 등[7] 말 그대로 아주 드물기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다.[8] 현재는 입관 과정만 참관하는 경우가 많다.[9] 이런 자세는 장례식의 시작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된다. 심지어 매장할 때도 관을 내리고 흙을 덮는 인부 아저씨들조차 관의 일부라도 절대로 밟지 않는다. 모든 문화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장례의식은 매우 경건하고 엄숙하며 유족의 심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니 당연하다.[10] 정확히는 1980년대 민주화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낸 세대들이나 노인들이다.[11] 점차 사라지고는 있으나 유가족들이 고인 의전을 담당하는 장례지도사에게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돈을 쥐어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는 과거 장의사에게 급여를 에둘러 준 것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장례지도사에게 소속이 생기고 월급을 주는 곳이 생기면서 비리가 되었는데 촌지의 시대적 변화와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장례절차는 죄다 돈이므로 영업할수록 이득이 된다.[12] 자살 포함[13] 다른 에피소드의 사건에서 잘못 엮여 거기에 있었다.[14] 음주운전 차량에 치었는데 그것도 본인이 있었던 편의점 바로 앞이었다.[15] 이후 이현수의 입관식을 치르는데 그 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16] 참고로 그 중년 남성인 장례지도사는 무려 사장 직책을 달고 있다.[17] 그가 겪는 고충은 실제 장례지도사들도 상당히 겪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