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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탁세스 왕조 6대 샤 Artašēs | 아르탁세스 2세 | ||
제호 | 한국어 | 아르탁세스 2세 |
아르메니아어 | Artašēs | |
그리스어 | Άρταξίας | |
고대 페르시아어 | Artaxšaθra | |
존호 | 샤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20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34년 ~ 기원전 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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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6대 샤. 파르티아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뒤 반로마 정책을 밀어붙이다가 암살당했다.2. 생애
아르타바스데스 2세의 장남으로, 남동생 티그라네스 3세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동생[1]이 있었다. 기원전 34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아르메니아를 침략하여 아르타바스데스 2세를 사로잡고 아르메니아 주민들이 모시던 여신 아나히타 신전을 약탈하는 등 전횡을 일삼자, 아르메니아 주민들이 분노하여 그를 왕위에 세우고 로마군에 맞섰다. 그러나 로마군은 아르메니아인들의 반란을 가볍게 진압했고, 그는 파르티아로 망명했다.그 후 파르티아 샤한샤 프라아테스 4세의 딸과 결혼한 그는 파르티아군의 지원을 받아 아르메니아로의 복귀를 꾀했고, 기원전 30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7세가 자살한 틈을 타 아르메니아로 전격 진격해 로마 군단을 물리치고 아르메니아를 탈환했다. 그는 아버지를 죽인 로마에 복수하기로 작정하고, 아르메니아의 모든 로마인을 학살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지난날 안토니우스와 손을 잡고 아버지의 수급을 챙기기도 했던 메디아 아트로파테네의 왕 아트타바스데스 1세와 전쟁을 벌여 대승을 거두고 아르타바스데스 1세를 사로잡았다.
그는 뒤이어 로마에 사절을 보내 지난날 부친과 함께 알렉산드리아로 끌려갔던 동생 티그라네스를 송환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를 꺾고 로마의 절대 권력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그가 로마인들을 학살시킨 일을 거론하며 요구를 거절했다. 그 후 아우구스투스는 동방 질서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느라 아르메니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기원전 20년 티베리우스에게 대군을 맡겨 아르탁세스 2세를 폐위하고 티그라네스를 새 국왕으로 세우라고 명령했다. 아르탁세스 2세의 친족들은 강대한 로마군과 싸우느니 아르탁세스 2세를 몰아내기로 작정하고, 궁중 쿠데타를 일으켜 아르탁세스 2세를 살해한 뒤 티그라네스 3세를 왕위에 올렸다.
[1] 카파도키아의 아르켈라우스 왕과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