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22 19:06:10

티그라네스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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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탁세스 왕조 13대 샤
Տիգրան | 티그라네스 5세
파일:티그라네스 5세.jpg
제호 한국어 티그라네스 4세
아르메니아어 Տիգրան
그리스어 Tigránēs
고대 페르시아어 Tigrāna
존호
생몰 년도 기원전 16년 ~ 36년
재위 기간 6년 ~ 12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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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13대이자 마지막 .

2. 생애

기원전 16년 헤로데 대왕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와 카파도키아의 왕 아르켈라오스의 딸 글라피라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모계가 아르탁세스 왕조의 혈통인 점을 기리기 위해 '티그라네스'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헤로데 궁정에서 자랐지만, 기원전 7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헤로데 대왕이 어머니를 카파도키아로 돌려보내면서 헤로데의 단독 양육을 받았다.

헤로데가 기원전 4년 예리코에서 사망한 뒤, 그는 어머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뒤 유대교를 버리고 그리스 다신교로 개종했다. 아르켈라오스는 그를 로마로 유학보내 그곳에서 교육받게 했다. 서기 6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선임되었지만,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그를 단독으로 섬기기 거부하고 전왕 티그라네스 4세의 아내 겸 공동 왕이었던 에라토를 궁정으로 불려들어 그와 함께 통치하게 했다.

12년 아르타바노스 2세와 내전을 벌이고 있던 파르티아 샤한샤 보노네스 1세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르메니아로 이동하여 티그라네스 5세와 에라토를 몰아내고 아르메니아 왕을 칭했다. 그 후 로마에 머물던 그는 18년 보노네스 1세가 파르티아군에 의해 아르메니아에서 축출되자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자신을 복위시켜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는 이런 일로 파르티아와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묵살했고, 폰토스 왕자 제논을 '아르탁세스 3세'로서 왕위에 올렸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그는 36년경 고발을 받고 티베리우스의 말년을 특정짓는 공포 통치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고발된 혐의는 기록이 미비해 분명하지 않다. 다만 아르메니아의 새 왕이 된 이베리아 왕자 미트리다테스가 파르티아의 아르타바노스 2세와 한창 전쟁을 벌이던 때였으니, 파르티아와 내통했다는 혐의가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