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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탁세스 왕조 7대 샤 Տիգրան | 티그라네스 3세 | ||
제호 | 한국어 | 티그라네스 3세 |
아르메니아어 | Տիգրան | |
그리스어 | Tigránēs | |
고대 페르시아어 | Tigrāna | |
존호 | 샤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8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20년 ~ 기원전 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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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7대 샤.2. 생애
아르타바스데스 2세의 차남으로, 기원전 34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했을 때 아버지와 함께 생포되어 알렉산드리아로 끌려간 뒤 개선식에서 전리품으로 취급되었다. 기원전 30년 안토니우스를 꺾고 이집트를 장악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로마로 이송되었다. 파르티아의 지원으로 아르메니아 왕위에 복귀한 형 아르탁세스 2세가 동생을 송환하라고 요구했지만, 아우구스투스는 아르탁세스 2세가 아르메니아에 거주하는 로마인을 학살한 일을 거론하며 거부했다.기원전 20년, 아우구스투스는 티베리우스에게 대군을 맡겨 아르탁세스 2세를 몰아내고 티그라네스를 왕위에 올리라고 명령했다. 티베리우스가 로마군을 이끌고 진군하자, 아르메니아 궁정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아르탁세스 2세가 살해당했다. 그 후 로마군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티그라네스를 아르메니아의 새 군주로 옹립했다. 티베리우스는 파르티아 샤한샤 프라아테스 4세와 협상한 끝에 아르메니아를 독립국으로 두되 로마인들이 왕을 임명하고 왕관을 씌워줄 권리가 있다는 걸 인정받았다.
그는 로마군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위에 오른 후 12년간 통치했지만, 별다른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혼란스러웠던 아르메니아가 안정을 되찾고 평화를 누리는 데 힘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8년에 사망했고, 아들 티그라네스 4세와 딸 에라토가 공동으로 왕위를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