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2:47

아스날 FC/그레이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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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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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 현재
초대
미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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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엘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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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대행)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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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브래드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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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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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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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나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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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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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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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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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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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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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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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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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스윈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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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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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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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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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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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대행)
버텐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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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그레이엄
(그레이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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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대(대행)
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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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리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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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대행)
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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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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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벵거
(벵거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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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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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리
(에메리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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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대행)
융베리
(에메리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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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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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타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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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리그 / FA컵 / EFL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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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
그레이엄 체제
[[조지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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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대 감독
조지 그레이엄
<colbgcolor=#e50007><colcolor=#ffffff> 감독
[[스코틀랜드|]][[틀:국기|]][[틀:국기|]] 조지 그레이엄 / 제20대
주장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케니 샌섬 / 제50대 (1986~1988)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토니 애덤스 / 제51대 (1988~2002)
계약 기간 1986년 ~ 1995년
계약 종료 (뇌물수수로 인한 경질)
성적 풋볼 리그 디비전 1 (우승) : 1988-89, 1990-91
풋볼 리그 컵 (우승) : 1986-87, 1992-93
FA컵 (우승) : 1992-93
UEFA 위너스컵 (우승) : 1994

1. 개요2. 감독 선임 과정3. 활동4. 몰락5. 평가

[clearfix]

1. 개요

아스날 FC조지 그레이엄 체제를 정리한 문서.

2. 감독 선임 과정

그레이엄이 밀월에서 보여준 대활약은 빅클럽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스날은 1986년 3월에 돈 하워를 경질한 후 그를 차기 감독 후보로 삼고 물밑작업을 벌였다. 사실 아스날은 처음에는 에버딘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던 알렉스 퍼거슨을 선임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퍼거슨은 당시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을 맡아 월드컵에 참여하고 있었고 그는 월드컵이 끝난 뒤에 그의 미래를 결정하기로 정했다. 이에 아스날은 퍼거슨 대신 그레이엄을 선임했다.

3. 활동

당시 아스날은 1978-79 시즌 FA컵 우승 이래 트로피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었고 리그 우승은 오래전부터 못하고 있었다. 이에 그레이엄은 나이가 많은 선수들을 모조리 방출하고 유스들을 대거 1군에 올려서 포텐을 터트리는 데 집중했으며 양질의 선수들을 영입하여 전력을 보강했다. 또한 그는 당시 느슨했던 라커룸 분위기를 장악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을 실시했다. 이때 그는 통금 시간을 정해놓고 이를 준수하지 않는 이들에게 막대한 벌금을 물렸다.

아스날은 그의 탁월한 통솔력으로 기강을 바로잡고 전력 또한 즉각적으로 강화되어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1986년 크리스마스 때 아스날은 1위를 거두었는데, 이는 아스날이 1980년대 들어 처음으로 도달한 1위였다고 한다. (그전에는 시즌 중에도 최대 2위까지밖에 올라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성적이 떨어져 그레이엄의 아스날 부임 이래 첫 시즌인 1986-87 시즌은 4위에 그쳤다. 그래도 아스날은 이 시즌 때 리그컵 우승을 달성하여 트로피를 오랜만에 획득했다.

아스날은 다음 시즌에선 리그컵에서 절대 열세로 평가받았던 루튼 타운에게 3:2로 패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지만 곧 패배의 상처를 씻어버리고 리그를 순항했다. 그레이엄은 이 시기 팀의 주장 토니 아담스, 리 딕슨, 스티브 볼드, 그리고 나이젤 윈터번으로 이른바 '철의 포백'을 구축하고 압도적인 수비력으로서 상대의 공격을 모조리 차단했다. 한편으로, 그는 공격진에서도 보강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들필더 미카엘 토마스과 폴 마슨, 스트라이커 앨런 스미스가 이 시기 아스날에 합류했다. 아스날은 이 적절한 보강에 힘입어 리그 2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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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89 시즌, 아스날은 나이가 젊고 재능이 뛰어난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를 순항했고 마지막 경기에서 리버풀과의 마지막 경기를 갖게 되었다. 당시 리버풀은 아스날보다 승점이 3점 앞섰고 골득실은 1골 더 많았다. 아스날이 우승을 차지하려면 리버풀을 적어도 2골 이상의 차이로 이겨야 했다. 그러나 이 경기는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에서 치러야 했기에 여러모로 아스날이 불리했다.

경기 시작 후 앨런 스미스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아스날이 1: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이후 골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고 90분이 다 되어갔을 때에도 점수는 여전히 1:0이었다. 이제 리버풀이 아스날을 골득실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듯했다. 그런데 경기 종료 1분전, 미카엘 토마스가 리버풀 수비진을 뚫고 앨런 스미스에게 패스를 찔러줬다. 앨런 스미스는 공을 곧바로 브루스 그롭벨러에게 전달했고, 그롭벨러는 강력한 슈팅을 날려 리버풀의 골망을 갈랐다. 이로서 아스날은 리버풀을 2:0으로 꺾고 안필드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아스날은 1989-90시즌에서는 골 가뭄에 시달려 4위에 그쳤다. 이에 그레이엄은 골키퍼 데이비드 시먼과 윙어 안드레스 림퍼를 전격 영입했다. 두 선수들은 각각 아스날의 골문과 공격을 책임져줬고 아스날은 1990-91 시즌에 리그를 우승했고 FA컵에선 4강에 진출했으나 토트넘에게 패하고 말았다. 이 시기 아스날은 리버풀과 우승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1년 2월, 리버풀의 감독 케니 달글리시가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자 언론은 그레이엄이 달글리시의 뒤를 이어 리버풀 감독이 될 거라는 추측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아스날을 떠나 리버풀로 갈 생각이 없다고 밝혔고 리버풀은 그 대신 그레이엄 수네스를 선임했다.

1991년 여름, 그레이엄은 크리스탈 팰리스로부터 공격수 이안 라이트를 영입했다. 이 영입은 아스날에게 실로 대박이었다. 이안 라이트는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나 리그를 지배하며 아스날의 호성적을 이끌었다. 그렇게 아스날이 라이트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에서 순항하는 동안, 그레이엄은 헤이젤 참사 이후 6년 만에 유러피언 컵에 출전하여 국제 대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게 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아스날은 벤피카에게 일방적으로 농락당하고 예선 2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 패배로 아스날의 기세는 꺾였고 그 여파로 FA컵 3라운드에서 5부 리그 팀인 렉섬 FC에게 패하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고 리그에선 4위에 그치고 말았다.

실망스러웠던 1991-92 시즌이 끝난 후, 그레이엄은 전술을 바꿨다. 그는 덜 공격적이고 더욱 수비적인 전술을 택했다. 안 그래도 강력했던 수비진은 훨씬 견고해진 반면, 공격은 오로지 이안 라이트에게 맡겨졌다. 1986년에서 1992년까지 6년간, 아스날은 평균 66골을 기록했고 1991-92 시즌엔 81골을 거두었다. 그러나 1992년에서 1995년까지 3년간, 아스날은 평균 48골을 기록했고 1992-93 시즌엔 고작 40골을 기록했다.(이는 1992-93 시즌의 팀들 중 가장 적은 골 기록이다.) 아스날은 리그 최강의 수비진으로서 상대의 공격을 원천 봉쇄했지만 이안 라이트를 향해 롱볼 패스를 보내서 라이트가 알아서 공격하는, 이른바 '롱볼 전술'을 채택했다. 그 결과 실점은 극도로 줄어들었지만 골은 잘 터지지 않았고 관중들은 경기 내내 지루해했다. 안티팬들은 아스날이 너무 지루한 축구를 한다며 '보링 보링 아스날'이라고 비웃었다. 또 선수들은 그의 엄격한 선수단 관리에 반발하며 '카다피'란 별명을 붙여줬다.

그래도 이 전술은 아스날이 컵 대회에서 호성적을 거두는 데 기여했다. 아스날은 1992-93 시즌에 셰필드 웬즈데이를 꺾고 리그컵 우승을 달성했고 뒤이어 FA컵에서도 역시 셰필드 웬즈데이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94년, 아스날은 UEFA 위너스 컵에서 파르마를 1:0으로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리그에서는 골이 잘 나오지 않는 바람에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전술은 확실히 컵 대회 같은 단기전에서는 위력을 발휘했지만 장기전인 리그에서는 우승컵을 들어올리기엔 부족했다. 그래도 아스날 팬들은 그에게 만족했고 그의 아스날 감독 인생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4.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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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그레이엄의 몰락을 이끌어낸 루네 하우겐 에이전트

1994-95 시즌이 한창이던 1995년 2월, 그레이엄은 충격적인 진실에 직면했다. 그는 1992년에 폴 뤼데르센과 욘 옌센을 영입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에이전트인 루네 하우게가 그레이엄에게 42만 5천 파운드의 뇌물을 전달했다. 그런데 1995년 2월에 이 에이전트가 갑자기 이 일이 있었다고 폭로해버린 것이다. 그레이엄은 처음에는 이를 부인했지만 명백한 증거 앞에 결국 "원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결국 그는 FA로부터 1년 감독 정지라는 처벌을 받았고 아스날은 곧바로 그를 경질했다. 근데 정작 그레이엄에게 뇌물을 건넨 에이전트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얼마 후 피터 슈마이켈과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5. 평가

조지 그레이엄 부임 시기, 아스날은 트로피를 획득하지 못하는 평범한 팀에서 벗어나 리그 최강의 수비진을 구축하고 여러 우승컵들을 획득했다. 그가 유스들을 잘 키우고 양질의 선수들을 영입하여 리빌딩을 완성하지 않았다면, 벵거의 아스날은 결코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확실히 아스날 팬들의 추앙을 받을 만한 명장이었다. 그러나 한 순간의 그릇된 선택이 이 모든 업적을 말아먹고 말았다. 오늘날 아스날 팬들은 뇌물을 받아 챙긴 그의 행위를 비판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아스날을 잘 이끌었던 명장의 몰락에 가슴 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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