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6:25:03

아시카가 요시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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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마치 막부 제14대 정이대장군
아시카가 요시히데
足利義栄
파일:아시카가 효시히데.png
생몰년도 1538년 ~ 1568년
재임기간 제14대 정이대장군
1568년 3월 6일 ~ 1568년
1. 개요2. 생애
2.1. 초창기2.2. 쇼군 시절2.3. 최후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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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로마치 막부의 제14대 쇼군. 미요시 모토나가에 의해 사카이 막부(堺幕府)의 쇼군으로 추대되었던 아시카가 요시츠나의 장남.

자신이 태어날 때는 이미 사카이 막부는 괴멸된 지 오래라 아와에서 일생을 보내고 있었으나 요시츠구에이로쿠의 변 이후 쇼군이 공석이 되자 아와 미요시 가문의 나가후사에게 옹립되어 셋츠로 상륙하여 쇼군이 된 인물이다.

2. 생애

2.1. 초창기

요시츠나가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사카이 막부 칸레이 호소카와 하루모토에게 잡혀 아와로 쫓겨난 뒤로 그는 아와 쿠보(阿波公方), 히라지마 쿠보(平島公方) 등으로 불리며 아시카가 일족의 일원으로 취급되며 일생을 보내고 있었다. 이시야마 혼간지에서는 그를 시코쿠 무로마치 토노(四国室町殿)라고 불렀을 정도였으나 자체적인 키나이의 진출에 실패하였고 미요시 나가요시아시카가 요시테루 추방 이후에도 나가요시에게 옹립되지 않았을 정도로 아시카가 일족으로서의 영향력은 전무한 상태였다.

요시히데는 이런 요시츠나의 장남으로서 태어났다. 그랬기에 본래는 키나이의 정치와는 관계가 없는 일생을 보내고 있었으나 1565년쇼군 요시테루가 요시츠구의 군사행동으로 인해 사망하자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쇼군 없이 중앙정권의 운영에 착수하던 미요시 가문에 미요시 산닌슈와 마츠나가 부자의 권력투쟁이 발생하여 아와에 채류하는 미요시 가문에 산닌슈의 세력에 붙었던 것이다. 아와의 당주 미요시 나가하루를 보좌하는 시노하라 나가후사는 이를 기회로 인식하여 요시히데를 대동해 셋츠로 상륙, 무서운 기세로 마츠나가 세력을 무너뜨려가며 산닌슈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2.2. 쇼군 시절

마츠나가 세력의 배제에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나가후사는 곧바로 요시히데를 쇼군으로 만드는 준비에 착수했다. 요시히데는 쇼군 후보들이 대대로 받아온 관도인 사마노카미(左馬頭)에 임명되었으며, 곧 정식으로 쇼군에 추대되어 무로마치 막부 14대 쇼군을 역임하게 되었다.

요시히데는 칸레이를 다시 임명시키는 등 요시츠구로 인해 파괴된 막부질서를 되돌리기에 주력했으며, 이요 코노씨 등에게 회유의 고나이쇼(御内書)를 발급하여 요시테루의 동생인 아시카가 요시아키와 그의 최대 후원자인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방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3. 최후

그러나 1568년의 요시아키와 오다의 공세는 요시히데와 미요시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무너뜨렸다. 이와나리 토모미치의 군대는 패전을 면치 못했으며, 미요시 나가야스와 시노하라 나가후사는 변변한 싸움을 해보지도 못하고 아와로 물러났다.[1]

요시히데 또한 이런 위기 속에서 아와로 철퇴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후퇴는 부질없다는 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요시히데는 병마에 휩쓸리게 되었고, 동년 10월 20일에 아와 무야(撫養)에서 사망하게 되었다.[2]

3. 여담

파일:足利義栄.pn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선 천상기에만 등장한다. 능력치는 안 좋다.

NHK 대하드라마 기린이 온다에서는 이치노세 하야테가 맡았다.

역대 무로마치 쇼군들 중 유일하게 교토에 거처하지 않았던 쇼군이다. 아니, 흔적을 보면 발을 들인 적도 없다. 심지어 미요시씨의 2대 거성인 아쿠타가와야마성과 이이모리야마성에도 거처하지 않았다. 상당히 이례적인 부분.

요시히데 사망 이후에도 요시츠나 계통의 아시카가씨는 에도 막부 시기에도 히라지마로 성을 바꾸어 계속 살아남았지만 똑같은 아시카가씨의 혈족인 키츠레카와씨[3]에 비해 찬밥취급을 받았다. 19세기에 후손이 아와번에서 탈번하여 교토로 건너가 아시카가 성을 다시 쓰게 되고, 메이지 유신 때 후손들이 귀족 편입을 요구했다. 그러나 자작 지위를 얻은 키츠레가와 쪽과는 달리 히라시마계는 재정 문제와 탈번 전력 때문에 화족과 사족 어느 쪽의 편입도 다 실패하여 그냥 평민으로 살게 되었다.


[1]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5만 명 이상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다이묘였으므로 미요시 3인중의 힘으로는 사실 어림도 없었다.[2] 公卿補任 - 戦国三好氏と篠原長房 p.62[3] 요시아키의 직계가 다이묘가 아니었던건 둘째 치고 적통이 끊겨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아시카가의 피를 이었던(오유미 쿠보의 후예) 다이묘인 키츠레카와씨가 이전 막부 혈통의 예우를 받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