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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왼쪽의 인물이 안진생 | |
출생 | 1916년 1월 28일[1] 러시아 제국 하바롭스크 |
사망 | 1988년 12월 24일 (향년 72세) 서울특별시 서울보훈병원 |
1. 개요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조선공학자.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조카이자 안정근의 아들이며, 한국인 최초의 조선공학박사이다.2. 생애
1916년 1월 28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안중근의 동생 안정근과 이정서의 2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러시아 혁명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홍콩, 마카오 등지에서 생활하였고, 홍콩 화런 천주교 학교, 마카오 웨하 초등학교 및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북평 보인대학을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제노아 대학교[2]를 졸업하고 1946년 2월 박사학위까지 취득하였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재이탈리아 중국인 유학생 회장을 맡기도 하였고, 이탈리아 레시스텐자에 가담해 반 무솔리니 활동을 하기도 했다.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으로 건너가 회사원으로 근무하다가 1953년 대한민국 해군에 복무하였고, 인천공작창장 등을 지내다 1958년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예편 후 5월 15일 대한조선공사 부사장으로 부임하였고, 1962년 주 이탈리아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했다.[3] 1964년 외무공무원교육원에서 근무했고, 1965년 주 프랑스 대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였고 1966년 9월 2일 주 프랑스 공사로 승진하였다. 10월 25일에는 김활란을 수석대표로 한 유네스코 총회 교체 수석 대표로 참석하였다.
1969년 주 네덜란드 대리대사로 임명되었고, 1970년 12월에는 헤이그에 있는 이준 열사 묘소를 정비하고 기념비 및 흉상을 세웠다. 1971년 주 자이르 대사에 임명되었고, 1973년 주 콜롬비아 대사, 1975년 초대 주 버마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8년 5월 20일 대만 장징궈 총통 취임식에 대표로 참석하였다. 1979년 5월 귀국해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였고, 1980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해직되었다. 그 후 뇌경색으로 와병하다가 1988년 12월 24일 서울보훈병원에서 사망하였다.
3. 여담
주 네덜란드 대리대사로 근무할 당시 주일본 네덜란드 대사인 후지사키 마사토[4]가 이토 히로부미의 증손녀 후지사키 후사코의 남편이었다. 안진생 대사가 부임인사차 일본 대사관 방문 당시 안중근의 조카임을 밝히자 후지사키 대사 역시 자신의 처가 이토 히로부미의 증손녀임을 밝힌 후 서로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고한다. 후지사키 대사는 "과거의 쓰라린 기억을 잊고 협조해 나가자."고 했으나 하이네만 서독 대통령이 네덜란드에 방문, 나치의 침략을 사과하자 안진생 대사가 "하이네만 서독대통령의 방문이 양국의 원한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말을 하여 서먹해지기도 했다고 한다.해당기사에 따르면 안진생 대사를 안춘생 전 육군사관학교장으로 잘못 표기하였고, 정정기사가 실리기도 하였다.4. 가족관계
- 형 안원생은 해방 후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였고, 6.25 전쟁 전 한국보이스카우트 연맹 부회장, 대한축구협회 임원 등을 지내다 미국으로 이주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 여동생 안미생은 김구의 장남 김인의 아내이며, 해방 후 김구의 비서로 활동하였다. 1947년 9월 모종의 이유[5]로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국공내전의 전황이 악화되자 미국으로 건너가 2008년 그 곳에서 사망했다. 2022년 안미생의 미국 이주 이후 생애를 공개한 기사가 발표됐다. 그 후 2022년에는 안미생의 딸과 연락이 닿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2024년에 백범김구기념관에 기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