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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헬 디 마리아/국가대표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앙헬 디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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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소년 대표팀

2006년 8월 31일 부산컵 국제청소년대회 U-19 매치에서가 아르헨티나 U-19 대표팀으로 출전하였고, 한국 U-19 대표팀에게[1] 1-2[2]로 패하였다.[3]

그리고 2007년 디 마리아는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파라과이에서 열린 2007년 CONMEBOL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 해 캐나다에서 열린 2007 FIFA U-20 월드컵에도 출전하였고, 그 대회에서 그는 3골을 득점하여 아르헨티나의 우승에 공헌했다.

1.1. 2008 베이징 올림픽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올림픽 대표팀 엔트리 명단에 포함되었다.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그는 연장 전반 15분 리오넬 메시의 패스를 골로 성공시켰고, 팀이 2-1로 승리하는데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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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이지리아와의 결승전에서 후반 12분 메시의 패스를 받아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칩샷으로 결승골을 성공시켰고, 1-0으로 승리하여 아르헨티나 올림픽 대표팀의 2연속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하였다.

2. 성인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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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활약으로 2008년 9월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 공식 데뷔하였다.

2.1. 2010 FIFA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마라도나 감독 부임 이후 지역 예선 초반에 퇴장당하는 불운으로 눈물을 삼켜야했다. 디 마리아의 부재 역시 아르헨티나의 막장 경기력에 크게 일조했는데 이후 지역 예선이 거진 다 끝나갈 무렵에서야 간신히 출장 정지가 풀렸다. 그때는 이미 이과인이 팀에 합류한 이후. 32개국 본선에선 조별리그 B조 나이지리아와의 첫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 카를로스 테베스, 곤살로 이과인 등에 밀려 중앙에 자리잡았지만[4] 그래도 대회 기간 내내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측면과 중앙에서 전방에 볼을 배급하고 압박에 대응하며 메시를 받쳐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막시 로드리게스와 동선이 너무 많이 겹치는 바람에 겹친 만큼 공백이 생겨버렸고 이걸 요아힘 뢰프가 칼같이 잡아내 8강 독일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2. 2011 코파 아메리카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벤치 멤버였다. 그래서 콜롬비아전에서는 아예 결장했고 볼리비아전에서는 후반전만 출전했다. 하지만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이과인과 같이 선발 출장했는데 본격 2008 베이징 올림픽 모드가 발동하면서 전광석화 같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코스타리카 진영을 마구 유린하며 돌아다녔고 후반전에는 기어이 쐐기 골을 때려 넣어 아르헨티나가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3-0으로 승리하여 8강 진출을 하는 데에 일조했다. 하지만 8강에서는 테베스의 트롤로 우루과이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한다.

2.3. 2014 FIFA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 남미 예선에선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소속되어 모든 경기를 개근했다. 리오넬 메시는 건강 문제로,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부상으로, 곤살로 이과인은 카드 문제로 엔트리에 올라가지 못했을 때에도 디 마리아는 끝까지 남아서 팀을 지켰다. 월드컵 32개국 본선에 진출한 아르헨티나 대표팀 16강전에선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메시의 어시스트를 받아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스위스를 무너뜨리고 자국이 8강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공헌[5]을 했다.[6] 그 와중에 조별리그에서 이란을 상대로 역 침대축구를 시전하며 축구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파일:external/www.cbc.ca/angel-di-maria-world-cup.jpg

8강에서도 이과인의 골을 도우며 드디어 밥값하나 싶었으나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지며 잔여 경기에 출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4강전 이후론 부상때문에 출전 못했고, 메시에게 가는 과부하를 줄여 줄 공격수가 사라진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패한다.[7]

2.4. 2015 코파 아메리카

201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8강전까지 4-3-3의 3톱의 왼쪽 윙어로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자메이카전을 제외한 경기에서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먹으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파라과이와의 4강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맹활약을 펼쳤고,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를 6-1로 이기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 중반 무리한 단독 돌파 도중 햄스트링이 갑자기 올라오른 바람에 에세키엘 라베시와 교체 아웃되며 1년 전의 불운을 또다시 이어갔다. 팀은 칠레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아르헨으로서는 디 마리아의 아웃이 뼈아픈게, 디 마리아가 나가리 될때마다 팀내 드리블 비중이 메시에게 쏠려지고 상대팀은 메시만 막으면 되는 전술로 일관을 하다 보니 결승에서 경기 자체가 안 풀리게 되는게 연속이었다. 만약 디 마리아가 결승전에서 제대로 뛸 수만 있었어도 메시는 플레이메이킹 부담을 덜고 훨씬 공격임무를 많이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2.5.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

16개국 본선 조별리그 칠레전에서 선발 1골 1도움을 해내며 승리의 1등공신이 되었고 조별리그 파나마전에서 교체로 들어와 1도움을 해냈다.그러나 허벅지 부상을 크게 입어 8강전까지 명단제외되었고 4강전에서도 벤치 신세였다.

결승 칠레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후반 12분 마티아스 크라네비테르와 교체되었다. 경기는 연장 무득점으로 2015년과 같이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는데 컨디션 때문인지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결과도 4:2로 아르헨티나가 준우승했다.

2.6. 2018 FIFA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경기마다 힘을 쓰지 못하며 메시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부담만 늘여버렸다.[8] 그래도 최종 엔트리에는 선발되었는데 그동안 성인 국대에서 달고 있던 7번을 에베르 바네가에게 넘겨주고 본인은 베이징 올림픽때 달았던 11번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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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전에서 나온 엄청난 동점골
토너먼트 16강 프랑스전에서는 1대 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엄청난 왼발 중거리 동점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프랑스와 엄청난 난타전을 벌이다가 4대 3으로 패배하며 그대로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이 골에 가려져서 그렇지, 디 마리아의 경기력은 굉장히 좋지 못해서 아르헨티나의 부진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

2.7. 2019 코파 아메리카

2019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한 골도 넣지 못하는 등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보다도 더 부진했다. 친구 메시와 함께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 이후 19-20 시즌에는 소속팀 파리를 챔스 결승전에 올려놓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였고 당연히 2022 카타르 월드컵 남미 예선 명단에 들 것으로 보였는데...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은 대표팀 명단에 디 마리아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그렇게 디 마리아는 현재 대표팀 승선에 실패했다. 본인은 이에 크게 격분한 상태다.# 후배 파울로 디발라는 2019-20 시즌 챔스 16강에서 올랭피크 리옹에게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2-2 패배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차출된 것을 보면 화낼 만도 하다.

2.8. 2021 코파 아메리카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선 주로 조커로 출전하는 중인데, 메시와 함께 재작년 코파 아메리카보다 더 좋은 폼을 선보이는 중이다. 조별리그 3차전 파라과이전에서 기막힌 스루패스로 파푸 고메스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8강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는 강한 전방압박을 통해 상대 수비진의 빌드업 미스를 유발해 스코어를 2:0으로 만드는 쐐기골에 기여했고,[9] 후반 추가시간 골문과 가까운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내며 메시의 프리킥 골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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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에서 칩슛으로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넣은 디 마리아
그리고 대망의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로드리고 데 파울이 브라질 파이널 서드로 길게 붙여준 공을 잡고 헤낭 로지의 미스를 틈타 1:1 찬스를 맞았고 침착하게 장거리 칩슛으로 골키퍼 에데르송의 키를 넘기고 팀의 결승골을 득점, 1993년 코파 우승을 마지막으로 28년간 쭉 이어져온 아르헨티나의 국대 무관을 깬 주역이 됐다.[10] 경기 직후 공식 MOM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11]

2.9. 2022 FIFA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는 18경기 중 15경기 출장 3골 1도움을 기록했다. 촉발되는 세대교체로 인해 선발보다는 교체자원으로 쓰이는 모습이다. 소집횟수에 비하여 활약이 적어 노쇠화 이슈와 함께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국대를 은퇴하는 편이 좋겠다는 말도 나온다.

3월 A매치를 마치고 디 마리아 본인이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조별리그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부정확한 크로스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충격적인 패배에 일조했다. 돌파 등의 개인기량 면에서는 팀의 에이스인 메시가 공을 여러번 뺏기며 턴오버로 실점에 기여하던 반면 상대의 압박에도 볼키핑을 잘해내는 등 볼운반을 잘해냈지만 라우타로 등의 아르헨티나 공격진이 침묵하고 아무도 침투를 안하자 그냥 측면에서 공격수에게 전달하지 않고 냅다 공간에 크로스를 갈겨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디 마리아의 부진이라기엔 아르헨티나 공격진들의 작업이 정확하지 못했고 단조로운 공격에 전부 오프사이드가 걸렸다.

2, 3차전인 멕시코전과 폴란드전에서는 라우타로 마르티네즈가 빠지고 훌리안 알바레즈와 메시를 위주로 공격진을 세우자 디 마리아도 윙어로서 하던대로 1인분 했고 메시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도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토너먼트에서는 8강전에서 연장전 후반에 교체투입된 것을 제외하고는 출전이 전무하다. 그래도 팀은 호주, 네덜란드, 크로아티아를 차례로 격파하며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이렇게 벤치에서 결승전을 그냥 바라보나 싶었으나...

결승 프랑스전에는 조커 카드로 선발 출장했다. 전반 초반 오픈 중거리 찬스에서 오른발로 홈런을 날렸지만,[12] 이후 21분쯤에 멋진 드리블로 우스만 뎀벨레에게 걸려 넘어져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왜 본인이 빅 게임 플레이어인지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를 리오넬 메시가 성공시켰다. 이후 절묘한 역습 상황에서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가 적절하게 찔러준 컷백을 다이렉트로 잘 밀어 넣으면서 스코어를 2:0으로 만들었다. 하트 세리머니를 펼친 이후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13] 디 마리아가 끊임없이 프랑스의 오른쪽을 휘젓고 다니며 전반전은 아르헨티나가 완벽하게 압도했다. 이렇듯 스칼로니 감독의 승부수로서 만점짜리 활약을 펼친 이후 후반 19분 마르코스 아쿠냐와 교체 아웃되었다.[14] 팀은 전후반 2:2로 종료 후 연장전에서도 한 골씩 득점하는 매우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동점골이 나올 때마다 혹여라도 우승에 실패할까 초조해하면서 벤치에서 울먹이는 장면이 은근히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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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에서 훌리안 알바레스, 엔소 페르난데스 등 메시를 우상으로 삼고 메시의 우승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 젊은 선수들의 투지에 디 마리아가 다소 묻혔지만, 결승전에서 빅게임 플레이어의 면모를 발휘해 대활약을 하면서 결국 메시의 대표팀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자신임을 저번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 동안 메시의 공격 파트너하면 곤살로 이과인,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주목을 받았지 디 마리아는 저들에 비해서 주목도가 낮았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황금세대 중 거듭된 준우승 속에서도 떠나지 않고 메시와 함께 마지막까지 대표팀에 남은 선수는 디 마리아였고, 결승전에서 맹활약하며 제 역할을 다하고 마침내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함께한 선수도 디 마리아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명제를 멋지게 입증했다.

메시에게 임팩트가 몰려서 그렇지 디 마리아도 마지막 월드컵이었는데, 결승전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며 라스트 댄스를 멋지게 장식했다. 2014년에는 맹활약하다 부상으로 빠지며 결승전에 뛰지 못했는데, 2022년에는 그 반대로 부상으로 신음하다 결승전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2.10. 2024 코파 아메리카, 은퇴

SNS를 통해 이번 코파 아메리카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며 이번이 디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참가하는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예선 2차전 지옥이라는 볼리비아 원정에서 2어시를 기록하며 3-0 대승을 이끌었다.

조별리그 3차전 페루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파일:angel-di-maria-argentina-national-team-2024-copa-america-trophy.jpg
결승전에서 콜롬비아를 꺾고 POTM을 받았으며, 이로써 본인은 메이저 3연패와 코파 결승 백투백 MVP를 기록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국가대표 경력의 화려한 피날레를 맞이하였다.


이후 2024년 9월 6일 칠레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에서 공식적으로 은퇴식 행사를 치르며 가족들, 경기장을 찾아온 수많은 아르헨티나 국민들과 그동안 함께했던 국가대표 동료 선수들, 코칭 스태프진들과[15]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 관계자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받으면서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주며 공식적으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를 은퇴하게 되었다.

[1] 기성용, 이청용, 박주호가 뛰었다.[2] 0:22초에 16번 앙헬 디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3] 대한축구협회 아카이브 아르헨티나 항목에 U-20 대표팀에서 2006년 8월 31일 라인업에서 디 마리아의 이름을 볼 수 있다.#[4] 그나마 디 마리아는 다행이도 주전이기라도 했으나 아구에로는 아예 서브였다.[5] 하지만 사실 이 월드컵 전반적으로 수비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역할이 가장 컸다. 스위스전에서도 결정적인 수비가 많았고, 준결승까지 계속 미친 지구력으로 엄청난 수비를 보여주었다.[6] 골을 못 넣었으면 역적이 되었을 게 분명한데, 박스 근처에서 공을 잡았다 하면 앞뒤 생각 않고 무조건 슛을 날려대는 미친 탐욕을 보였기 때문이다.[7] 패배 뒤 디 마리아가 눈물을 흘리는데 8강전의 부상 때문에 결승전에서 힘이 못 되어줘서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다.[8] 특히 우루과이, 페루 전에서의 활약은 진짜 끔찍했다.[9] 당시 경기가 1:0으로 아르헨이 불안한 리드를 가져가고 있었고 에콰도르 측의 코너킥 세트피스가 후반 들어 자주 나오는 상황이였기에 정말 천금같은 쐐기골이였다.[10] 디 마리아는 결승전의 사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결승전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해주는 선수인데, 정작 국대로 나선 결승전은 불운이 겹쳤던 편이었다. 특히 결승까지 갔던 2014 월드컵은 8강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제외, 2015 코파 아메리카는 이른시간 부상으로 인한 교체로 결승전을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고, 2016 코파는 센터백 마르코스 로호가 퇴장당하며 힘겹게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메시와 동시대에 같이 뛰는 선수답게 디 마리아도 국대 커리어가 불운한 편. 그러나 기어이 메시와 함께 커리어 말년에 이 불운을 깨부수는데 성공했다.[11] 디 마리아는 2013-14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MOTM에 이어 2021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MOTM을 차지하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과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모두 MOTM을 차지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12] 오른발을 못 쓰는 편이다. 국내 선수로 생각하면 염기훈을 생각해도 쉬울 듯.[13]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패배 후 본인이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뛰지 못해 메시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했다고 오열했었는데 그때 당시 상황을 떠올린 듯 하다.[14] 만약 경기가 아르헨티나의 일방적인 경기내용을 유지하며 정규 시간 내 승리로 끝냈다면 본인이 POTM을 가져갔을 수도 있었다.[15] 이 때 동료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진들은 디 마리아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주로 배정받은 등번호인 11번 유니폼을 입으면서 그동안 아르헨티나를 위해 헌신한 그의 경력을 존중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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