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과 러시아의 원자력 잠수함 계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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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로젝트 659형은 소련 해군 최초의 순항 미사일 잠수함으로, NATO 코드명은 에코급(Echo-class)이다. 최후의 25척은 프로젝트 675형 (에코-II급)으로 명명됐다.2. 제원
이전 함급 | 위스키급 | |
다음 함급 | 줄리엣급 | |
운용 기간 | 1960년 11월 19일 ~ 1994년 7월 15일 | |
구분 | 에코 I급 | 에코 II급 |
건조 | 5척 | 29척 |
수상배수량 | 3,828t | 4,999t |
수중배수량 | 4,486t | 5,852t |
전장 | 111.2m | 115.4m |
전폭 | 9.2m | 9.3m |
흘수 | 7.1m | 7.4m |
원자로 | 수랭식 가압형 2기 (총 44,500HP) | 수랭식 가압형 2기 (총 70,000HP) |
증기 터빈 | 2기 | |
프로펠러 | 2축 | |
수상 최고 속력 | 15.1kn (약 28km/h) | 14kn (약 26km/h) |
수중 최고 속력 | 24.2kn (약 44.8km/h) | 22kn (약 41km/h) |
작전 수행 | 최대 50일 | |
잠항 심도 | 300m | |
승조원 | 104 ~ 109명 | |
순항 미사일 | SS-N-3c 6발 | SS-N-3a 섀독 8발 SS-N-12 바잘트 혹은 P-1000 불칸 8발[1] |
함수 어뢰 발사관 | 533mm급 4문 400mm급 2문 | 533mm급 4문 |
함미 어뢰 발사관 | 400mm급 2문 |
3. 에코 I급
1956년부터 설계 작업이 시작된 에코 I급, 즉 프로젝트 659형 잠수함은 미 해군의 레굴루스 순항미사일 잠수함들과 마찬가지로 지상공격용 핵탄두 탑재형 P-5(NATO 분류 SS-N-3c Shaddock) 순항미사일 6기를 싣고 전략공격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원자로는 노벰버급 잠수함의 VM-A 2기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함형은 노벰버급의 어뢰형 함수 대신 전통적인 형상을 선택했는데, P-5 순항미사일 발사에 필요한 수상항해시의 안정성 때문이었다. 물론 그 결과 수중속도는 크게 저하되었다.P-5 순항미사일은 사거리 570km에 순항속도 마하 1.2, 공산오차 4km의 말 그대로 핵공격 전용 유도탄이었다. 게다가 발사를 준비하려면 최소 20분 이상 부상한 채 수면 위에 머물러야 했으며, 속도 역시 8노트를 넘어서는 안 됐다. 그나마 부상하고 나서도 미사일을 격납고에서 꺼낸 다음 발사대에 얹는 절차가 필요한 레굴루스와는 달리 캐니스터에서 바로 발사할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처럼 운용상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에코 I급 잠수함들은 초도함 K-45이 취역(1961년)한지 몇년 지나지도 않은 1965년부터 그 효용성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전략공격 임무는 지상발사형 전략탄도탄을 총괄하는 전략로켓군과 SLBM을 탑재한 전략원잠들에게로 넘어갔다. 32척을 배치하기로 했던 건조 계획 역시 겨우 다섯 척에서 중단되었다.
1969년에서 1974년 사이 소련 해군은 에코 I급 잠수함 다섯 척 모두에서 더이상 잔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된 미사일 발사대를 철거한 뒤 공격원잠으로 개수하여 운용했다. 개수 사항에는 발사관 덮개 및 선체 유선형화를 통한 소음 감소와 노벰버급에 준하는 소나 체계 설치가 포함돼 있었다. 이 개조형 잠수함들은 프로젝트 659T로 재분류되었다. 프로젝트 659T형 잠수함은 태평양 함대에서 1980년대 말까지 운용되었고, 1985년 현역에서 물러나기 시작해 1989년 전 함정이 퇴역했다. 예비역 치장물자로 보관되어 있던 마지막 두 척이 1990년대 초 해체되면서 에코 I급 잠수함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3.1. 동형함[2]
함번 | 기공 | 진수 | 취역 | 퇴역 |
K-45 | 1958년 12월 20일 | 1960년 5월 12일 | 1961년 6월 28일 | 1989년 ?월 ?일 |
K-59 | 1959년 9월 30일 | 1960년 9월 25일 | 1961년 12월 16일 | |
K-66 | 1960년 3월 26일 | 1961년 7월 30일 | 1961년 12월 28일 | 1985년 ?월 ?일 |
K-122 | 1961년 1월 21일 | 1961년 9월 17일 | 1962년 7월 6일 | |
K-151 | 1962년 4월 21일 | 1962년 9월 30일 | 1963년 7월 28일 | 1989년 ?월 ?일 |
4. 에코 II급
에코 II급, 즉 프로젝트 675형 잠수함은 P-5 순항미사일의 파생형인 P-6(NATO 분류 SS-N-3a Shaddock) 대함미사일을 탑재하고 미 해군 항모전단을 공격할 목적으로 건조됐다. 핵무기를 가득 싣고 소련 연안에 불쑥 나타나 주요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미 항공모함은 전략폭격기 못지 않은 위협이었기 때문이다.항공모함은 도시에 비해서 훨씬 작은 이동표적이었기 때문에 P-6 대함미사일에는 상당한 개량이 가해졌다. 우선 종말유도용 레이더 시커가 탑재되었고, 중간유도용 VDL(Video Data Link)을 통해 발사모함이 P-6에서 탐지한 레이더 신호를 전달받아 미사일의 표적을 지정할 수 있었다. 잠수함 단독으로는 450km에 달하는 사거리를 다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표적획득용 Tu-95(NATO 분류 Bear-D) 초계기가 운용됐으며, 이 초계기들은 VDL의 데이터 중계 역할 역시 맡았다. 전략공격용 미사일이 아닌만큼 탄두 역시 1,000kg 고폭탄두와 핵탄두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중발사가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그대로였다. 어떻게 보면 더 악화된 측면도 있었는데, 부상 후 전탄 발사와 미사일 침로 설정까지 30분이 걸렸고 이후로도 VDL을 통한 중간유도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계속 수면 위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잠수함 자체에도 큰 폭의 설계변경이 있었다. 미사일 발사대가 8기로 늘어났으며, 미사일 유도용 레이더와 통신장비 세트를 수용하기 위해 세일이 대형화되었다. 특히 레이더의 경우 세일 전방이 수평으로 180도 회전하면서 레이더 안테나가 드러나는 특이한 구조라 "접이식 침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별로 쓸모가 없다고 판단된 함수 400mm 어뢰발사관 2문은 제거되었다. 이처럼 각종 장비가 증설된 결과 수중배수량이 5,800톤으로, 길이가 115.4m로 증가했다. 대신 수중 최고속도는 22노트로 저하되었다.
에코 II급은 빠르게 본래 임무에서 도태된 에코 I급에 비해 훨씬 성공적인 잠수함이었다. 소련 해군이 에코 I급과 달리 1963년 1번함 K-1의 취역을 시작으로 총 29척의 에코 II급을 배치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에코 II급은 이후로도 14척이 P-500 바잘트(NATO 분류 SS-N-12 Sandbox) 대함미사일을 운용하는 프로젝트 675MK 개량을 받았고, 그중 4척은 다시 P-1000 탑재 개량(프로젝트 675MKV)을 받으면서 1980년대 중반까지 소련 해군 순항미사일 원잠세력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이때쯤 되면 함정 자체가 현대전에 부적합할 정도로 진부화, 노후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기에 1989년부터 퇴역이 시작돼 1994년 모든 에코 II급이 일선에서 물러났다.
4.1. 동형함
함번 | 기공 | 진수 | 취역 | 퇴역 | 소속 |
K-166 | 1961년 5월 30일 | 1962년 9월 6일 | 1963년 10월 31일 | 1989년 ?월 ?일 | 북방함대 |
K-104 | 1962년 1월 11일 | 1963년 6월 16일 | 1963년 12월 15일 | 1990년 ?월 ?일 | |
K-170 | 1962년 5월 16일 | 1963년 8월 4일 | 1963년 12월 26일 | 1991년 ?월 ?일 | |
K-175 | 1962년 3월 17일 | 1962년 9월 30일 | 1963년 12월 30일 | 1990년 ?월 ?일 | 태평양함대 |
K-184 | 1963년 2월 2일 | 1963년 8월 25일 | 1964년 3월 31일 | ||
K-172 | 1962년 8월 8일 | 1963년 12월 25일 | 1964년 7월 30일 | 북방함대 | |
K-47 | 1962년 8월 7일 | 1964년 2월 10일 | 1964년 8월 31일 | 1994년 ?월 ?일 | |
K-1 | 1963년 1월 11일 | 1964년 4월 30일 | 1964년 9월 30일 | 1992년 ?월 ?일 | |
K-28 | 1963년 4월 26일 | 1964년 6월 30일 | 1964년 12월 16일 | 1990년 ?월 ?일 | |
K-35 | 1964년 1월 6일 | 1965년 1월 27일 | 1965년 6월 30일 | 1993년 ?월 ?일 | |
K-189 | 1963년 4월 6일 | 1964년 5월 9일 | 1965년 7월 24일 | 1991년 ?월 ?일 | 태평양함대 |
K-74 | 1963년 7월 23일 | 1964년 9월 30일 | 1965년 7월 30일 | 1992년 ?월 ?일 | 북방함대 |
K-22 | 1963년 10월 14일 | 1964년 11월 29일 | 1965년 8월 7일 | 1995년 ?월 ?일 | |
K-90 | 1964년 2월 29일 | 1965년 4월 17일 | 1965년 9월 25일 | 1989년 ?월 ?일 | |
K-31 | 1964년 1월 11일 | 1964년 9월 8일 | 1965년 9월 30일 | 1987년 ?월 ?일 | 태평양함대 |
K-116 | 1964년 6월 8일 | 1965년 6월 19일 | 1965년 10월 29일 | 1985년 ?월 ?일 | |
K-57 | 1963년 10월 19일 | 1964년 9월 26일 | 1965년 10월 31일 | 1992년 ?월 ?일 | |
K-125 | 1964년 9월 1일 | 1965년 9월 11일 | 1965년 12월 18일 | 1991년 ?월 ?일 | 북방함대 |
K-48 | 1964년 4월 11일 | 1965년 6월 16일 | 1965년 12월 31일 | 1990년 ?월 ?일 | 태평양함대 |
K-128 | 1964년 10월 29일 | 1965년 12월 30일 | 1966년 8월 25일 | 북방함대 | |
K-56 | 1964년 5월 30일 | 1965년 8월 10일 | 1966년 8월 26일 | 1992년 ?월 ?일 | 태평양함대 |
K-131 | 1964년 12월 31일 | 1966년 6월 6일 | 1966년 9월 30일 | 1994년 ?월 ?일 | 북방함대 |
K-10 | 1964년 10월 24일 | 1965년 9월 29일 | 1966년 10월 15일 | 1989년 ?월 ?일 | 태평양함대 |
K-135 | 1965년 2월 27일 | 1967년 7월 27일 | 1966년 11월 25일 | 1988년 ?월 ?일 | 북방함대 |
K-94 | 1965년 3월 20일 | 1966년 5월 20일 | 1966년 12월 27일 | 1992년 ?월 ?일 | 태평양함대 |
K-108 | 1965년 7월 24일 | 1966년 8월 26일 | 1967년 3월 31일 | 1990년 ?월 ?일 | |
K-7 | 1965년 11월 6일 | 1966년 9월 25일 | 1967년 9월 30일 | ||
K-23 | 1966년 2월 23일 | 1967년 6월 18일 | 1967년 12월 30일 | 1992년 ?월 ?일 | |
K-34 | 1966년 6월 18일 | 1967년 9월 23일 | 1968년 12월 30일 | 1994년 ?월 ?일 |
5. 사고
노벰버급 잠수함이나 K-19로 유명한 호텔급 잠수함과 마찬가지로 VM-A 원자로를 탑재한 에코급, 특히 에코 II급은 원자로 사고가 다발하는 위험천만한 물건이었다. 에코 II급은 운용 중 다섯 척이 사고로 완전손실됐으며, 그 중 원자로 사고가 원인인 사례가 넷이었다(남은 하나는 해상 화재). 완전손실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러 동급함에서 크고 작은 원자로 관련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에코 II급이 "성공적"이라는 건 권위주의 국가라는 특성상 이런 열악한 신뢰성과 승조원의 희생을 무시하고 배를 써먹을 수 있었던 소련 입장에서나 가능한 평가였던 것이다.1979년 7월 수상항해중이던 에코 II급 K-116에서 원자로 주냉각펌프 가동이 중단돼 방사능 누출이 일어났다. K-116은 시간당 6000라드에 달하는 방사선 통제를 위해 원자로 구획을 침수시킨 뒤 블라디보스톡 인근으로 예인됐지만 오염이 너무 심해 그대로 퇴역됐다.
1985년 8월에는 에코 II급 K-431의 핵연료 교체작업 도중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잘못된 제어봉 위치 때문에 우현 원자로가 임계상태에 도달해버린 탓이었다. 강력한 폭발로 압력선체와 원자로 구획 후부 벌크헤드가 파괴되고 핵연료 교체시설 천장이 70m 바깥으로 날아가면서 K-431의 원자로 주변 50-100m 이내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천지가 되었다. 뒤이은 화재는 4시간만에 진압됐지만 승조원 10명이 폭발로 사망했고 49명이 방사능에 피폭됐으며, 그중 10명은 정도가 심해 급성방사선증후군을 진단받았다. 제염작업에 투입된 2,000명 중 290여명도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됐다. K-431은 1987년까지 태평양함대의 파블롭스크 만 잠수함 기지에 묶여있다가 퇴역했고, 선체는 스크랩 처리 되었다.
1년밖에 지나지 않은 1986년 11월에는 베트남 깜라인만 해군기지에 정박중이던 K-175에서 사고가 터졌다. 어김없이 에코 II급, 원자로 사고였다. K-175는 플로팅 도크에 실려 소련으로 돌아왔지만 수리 작업 도중인 1989년 10월 포기가 결정되어 버려졌다. 1989년 6월에도 북방함대의 K-192가 방사능 누출 사고를 겪고 수리 불가 판정을 받은 뒤 퇴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