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루리아 왕국 Regno di Etruria | |||
국기 | 국장 | ||
1801년 ~ 1807년 | |||
위치 | 이탈리아 반도 토스카나 | ||
수도 | 피렌체 | ||
정치체제 | 군주제 | ||
국가원수 | 국왕 | ||
언어 | 이탈리아어 | ||
주요사건 | 1801년 아란후에스 조약 건국 1807년 프랑스 합병으로 해체 | ||
통화 | 토스카나 리라 | ||
성립 이전 | 토스카나 대공국 | ||
멸망 이후 | 프랑스 제1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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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이탈리아 원정 당시인 1801년에 나폴레옹 1세가 토스카나 대공국을 멸망시키고 세운 프랑스의 괴뢰국이다.국왕은 파르마 공국의 후계자였던 부르봉 왕조 출신의 루도비코 1세가 되었다.
2. 역사
제2차 이탈리아 원정 당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탈리아로 남진하면서 당시 이탈리아에 존재했던 여러 국가들을 멸망시켰는데 토스카나 대공국과 파르마 공국도 그 중 하나였다.당시 토스카나 대공국을 통치중이였던 페르디난도 3세는 본국에서 벌어진 공화주의 운동으로 인해 빈으로 도피한 상태였는데 마침 이탈리아를 침공하던 나폴레옹이 스페인과 아란후에스 조약을 맺으면서 페르디난도 3세에게 토스카나 대공직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넣었고 애초에 당시 본국에 있지도 않았던(...) 페르디난도 3세는 토스카나 대공국을 포기했다. 이후 페르디난도 3세는 나폴레옹에게 보상으로 잘츠부르크 선제후국을 받았으며 대공이 사라진 토스카나 대공국은 페르디난도 3세와 같은 신세로 파르마 공국을 나폴레옹의 압박으로 잃게 된 루도비코 1세에게 주어졌다.
다만 나폴레옹은 토스카나 대공국을 루도비코 1세에게 주면서 나라 자체를 뜯어 고치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국가가 에트루리아 왕국이었다.
에트루리아 왕국의 왕이 된 루도비코 1세는 별 다른 행적을 남기지 못한채 1803년에 간질 발작으로 사망하게 되고 왕위는 그의 아들 루도비코 2세가 물려받았다. 하지만 카를로 2세는 왕위를 이어받았을 당시 갓난아기였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 루이사가 섭정을 맡았다.
섭정이 된 마리아 루이사는 왕국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왕국에 발전에 힘썼으나 정작 그녀의 아들이 성인이 체 되기 전에 나폴레옹은 괴뢰국을 관리하기 어렵다면서 에트루리아 왕국을 프랑스 본토로 합병시켰다.
이렇게 에트루리아 왕국은 토스카나 지역이 프랑스 제1제국의 직할령이 되면서 멸망했으나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이후 페르디난도 3세가 토스카나로 돌아오면서 토스카나 대공국이 재건되었다. 하지만 보르보네파르마 가문의 본래 영토였던 파르마 공국은 페르디난도 3세의 조카 마리 루이즈의 소유가 되면서 원 주인이였던 보르보네파르마 가문은 그대로 영지를 모두 잃게 될 위기에 처했지만 복위된 페르디난도 3세가 루카 지역을 때어 루카 공국을 건국해 구 에트루리아 왕국의 왕이였던 카를로 2세에게 주었고 1847년 마리 루이즈가 사망하자 파르마 공국 역시 다시 보르보네파르마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