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3:32:27

여의도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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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순복음교회
Yoido[1]
Yeouido이다.] Full Gospel Church | 汝矣島純福音教會
파일:여의도순복음교회 로고.svg
파일:여의도순복음교회 본당전경.jpg
<colbgcolor=#2C67AE><colcolor=#fff> 설립일 1958년 5월 18일 ([age(1958-05-18)]주년)
소속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소속교단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초대목사 조용기 (1958~2008)
담임목사 이영훈 (2008~)
연도표어 오직 은혜로
교인 수 약 580,000명 (누적 100만명 이상)[2]
위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6길 15 (여의도동)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예배3. 역사4. 특징5. 이슈6. 여담7.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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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jtntv.kr/%EC%97%AC%EC%9D%98%EB%8F%8401.jpg
천막교회에서 시작해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
532개 교회 개척과 63개국 673명 선교사 파송
신뢰로 잡음 없는 성공적인 사역 승계도 이뤄내
1958년 고 조용기 목사와 장모 최자실 전도사가 당시 서대문구 대조동에서 시작한 천막교회. 볼 품 없이 초라하게 시작한 교회는 58만 명의 교인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교회 중 하나가 됐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 소속 교회.

등록 교인 기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개신교 교회이다. 한때는 예배당 건물 크기도 국내 최대였다. 그러다가 사랑의교회, 연세중앙교회 등 더 큰 예배당 건물을 가진 교회들이 생겨나서 지금은 교회 건물이 최대 규모는 아니다. 오순절교회방언과 신유를 강조한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 교회의 핵심 교리이다. 1958년 조용기 초대목사가 개척하였다. 2008년부터 이영훈 목사가 당회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한세대학교를 설립한 바 있다. 순복음선교회 등 다수의 부설기관을 운영한다. 국민일보, 신앙계의 모기관이다. #

2. 예배

정기 예배
<rowcolor=#fff> 예배 시간 장소 비고
주일예배 1부 7:00 대성전, 온라인 생중계
2부 9:00
3부 11:00
4부 13:00
5부 14:35 청년 연합예배
주일 저녁 17:00
수요 1부 예배 수요일 10:30 대성전, 온라인 생중계 수요말씀강해
수요 2부 예배 수요일 14:00 바울성전, 온라인 생중계 녹화 중계 (매월 마지막 주 제외)
수요 3부 예배 수요일 19:30 바울성전, 온라인 생중계
토요예배 토요일 10:30 바울성전, 온라인 생중계
금요성령대망회 금요일 20:30 대성전, 온라인 생중계
새벽 1부 예배 5:00 대성전, 온라인 생중계 토요일은 2, 3부만 진행
새벽 2부 예배 6:00 베들레헴성전 토요일은 예루살렘성전
새벽 3부 예배 7:00 예루살렘성전

3. 역사

1958년서울 은평구(당시 서대문구) 대조동 공동묘지 근처에서 천막 교회로 시작했다. 순복음신학교 동기였던 조용기 전도사최자실 전도사가 합심하여 교회를 운영하였다. 조용기 전도사는 순복음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갈 예정이었는데 최자실 전도사의 부탁으로 잠시만 교회 설립을 도울 생각이었다고 한다. 조용기 전도사가 주로 설교를 맡고 이외 일은 최자실 전도사가 맡았다. 1959년 천막 교회를 확장했다. 1961년 지금의 서대문구 충정로우체국 맞은편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1962년 '순복음중앙부흥회관' 건물을 준공하여 입당했다. 이름을 '순복음중앙교회'라고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서대문교회 시대'라고 칭한다.[3] 기사

교인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자 1968년 모래벌판이던 여의도에 새 예배당 건물을 짓기로 하였다. 계획 당시 건물 이름은 '여의도 민족제단'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 시장과 만나 기존 교회 건물이 있던 서대문-마포 일대 교통문제를 해결하고 여의도 개발에 참여하는 차원에서 시로부터 부지를 구입하기로 했다. 김 시장은 당초에는 100,000평을 제시했으나, 조 목사는 30,000평, 다시 3,000평으로 겨우 깎아 구입하고 대금은 할부로 갚기로 한다. 평수를 깎은 것은 당시 교인이 1만 명을 바라보는 규모이긴 했으나 가난한 계층의 교인들이 많아 헌금으로 부지 비용, 건축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바로 뒤에 초원아파트를 건축한 후 이것을 분양하여 자금을 마련해 예배당 건축에 보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용했다. 아쉽게도 예배당 건물에 바로 붙어 있는 초원아파트는 후에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건물을 확장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기사

2020년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당시 순복음중앙교회가 여의도로 교회 건물을 이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서울특별시 행정부시장이었던 차일석 씨가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 중 한 회고에서는 차일석 부시장의 모친 김사라 권사의 지인인 노 아무개 장로를 통해 그러한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고 밝힌다. #

4. 특징

  • 교회란 건물이 아닌 신자 공동체를 가리킨다. 순복음교회는 단일 개신교 교회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조용기 목사 퇴임 직전에 등록 교인이 무려 83만여 명이었다. 여의도 교회 건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계속 지교회를 독립시키고 있다. 현재 등록 교인 48만 명, 출석 교인 14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지교회를 독립시키지 않았다면 등록 교인이 100만 명을 넘었을 것이다.[4] 교회 내부 좌석 수는 12,000석이다. 교인 수에 비해 좌석이 적어 여의도순복음교회 본당은 매우 과밀하다. 500개 제자교회 개척 및 지역별 분리에 적극적인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하나의 교회라기보다 '순복음 교단' 중심 교회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기네스북 등재 기사
  • 1979년부터 헌금 받은 것에 대해 세금을 납부해 왔다. 순복음교단 소속 목회자들은 3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5] 2008년 처음 세금 납부 사실을 밝혔는데 그간 이 문제에서 선두 주자로 까이고 교회 앞에서 세금 내라는 시위가 벌어져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세금을 내기 어려운 미자립교회나 다른 교회에 영향을 미칠까 염려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
  • 교회 예산의 1/3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한다는 규칙이 있다. 2020년대 기준으로 구제선교에 사용하는 금액이 1년에 대략 400억원 가량이라고 이영훈 담임목사가 밝혔다. 기사
  • 대한민국 개신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회이다. 교회사학자 배덕만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많은 대한민국 목사들의 목표는 '내가 제2의 조용기가 되겠다.'였다. 우스갯소리로 '한국 교회는 간판은 전부 장로교회인데, 문 열고 들어가면 전부 순복음교회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 개신교인 중 숫자로는 자신이 칼뱅 신학을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신앙 생활을 들여다보면 성령, 방언, 신유, 은사 같은 이야기가 보편적이다." #
  • 가톨릭에 대해 우호적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교회일치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설교 중 신부나 수녀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가톨릭 신자의 간증 사례도 기독교인의 사례라고 하면서 설교 중 이야기한다. 조용기 초대목사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후 조문하여 "우리 대한민국의 정신적 영적 지도자이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천국에 간 소식을 듣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몸을 바쳐 사랑하신 모범이자 위대한 사도셨는데 떠나셔서 허무하다. 평소 교파는 달랐지만 늘 존경했다. 우리를 대신해 목소리를 내주시고 시원하게 뜻을 불사하신 어른의 그 자리를 누가 대신할지 답답하고 마음이 슬플 따름이다."라고 위로하였다. #
  •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23년 기준 정전협정 70주년 기념 유엔참전용사 21개국 참전용사 64명을 포함한 가족 등 200여 명 초청 등 애국 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

5. 이슈

  • 조용기 초대목사는 공개적으로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1990년 이래로 매년 6월 25일, 국방부가 주관하는 "기독장병 구국성회"에 기도원 시설 대여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지원 중이다.기사 2010년 6월에 미국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여의도순복음교회로 초청하여 간증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는데, 장소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이었다. 덕분에 NCCK등 진보 개신교 진영에서는 반대 시위도 강력히 벌였지만 보수진영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조용기 목사를 옹호해주는 과정에서 엄청난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햇볕정책과 같은 대북 민간지원과 평화 통일운동에도 매우 적극적인 편이다. 2007년, 북한 평양조용기 목사의 이름을 딴 심장병원을 건립하려 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 2018년사업 재개를 시도했었다. 현재 대북제재 상태에서 얼마나 진행이 가능할지는 두고봐야 할 듯하다. 그 외에 사랑과 행복나눔 재단을 설립해 국내외의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있다.
  •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영훈 담임목사는 5월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통일당 당사에서 열린 중앙당 개소식에 참석해 '공산주의 빨갱이 박멸'을 위해 전 목사를 지지하자고 참석자들에게 호소했다.#[6] 이영훈 목사는 이 일이 기사화되자 잘못한 일이라고 사과했다. 이영훈(목사) 항목의 변호 내용에 해명이 나오는데, 요약하면 '내가 반공은 맞는데 전광훈 건은 떠밀려 그런 거었으니 정치화 말라, 중립 노력하겠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6. 여담

  • 보수적인 개신교 교회들이 으레 그렇듯이 성소수자부정적이기에 탈동성애이성애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2015년에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반동성애, 반일루미나티, 반이슬람 설교를 하기도 했다. #
  • '보혈을 지나'를 작사, 작곡한 김도훈 목사가 이 교회 소속이다. #
  •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현재 출산장려금을 첫째, 둘째, 셋째, 넷째 아이 출산가정에 각각 200만 원, 300만 원, 500만 원, 1000만 원을 지급한다.[7] #

7. 대중교통

교회의 건물이 본당과, 교육관 등을 합쳐서 굉장히 크므로[8] 여러 군데 버스정류장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 참조.#

[1] 정식 로마자 표기는[2]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관리하던 지교회를 꾸준히 개별 교회로 독립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도수가 100만명이 넘는다.[3] 서대문역 3번 출구 앞쪽에 있었으며, 돈의문 3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으로 2017년 철거되었다. 조용기 목사는 서대문 교회가 영락교회만큼 커지길 바라는 마음에 건물의 가로세로길이를 영락교회와 같게 지었다고 했다. 영락교회가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회였는데 출석 교인이 6천명이었다. 순복음교회는 출석 교인 3천명에서 잠시 정체되었다가 이후 빠르게 교인이 늘면서 서대문교회 3년만에 출석 교인이 6천명을 넘었다.[4] 지교회를 독립시킬 때 순복음강남교회처럼 아주 큰 교회 몇 곳을 제외하고는 그냥 갑자기 독립을 발표하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목사들도 언제 어느 지교회가 독립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각 지교회 교인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지교회에 발령받아 와 있던 부목사를 그대로 독립교회의 담임목사로 초빙했다. 때문에 부목사 입장에서 로또 맞는 경우가 생겼다. "현실에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목사인 내가 이세계에서는 교인 1만명 교회의 담임목사?" 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5] 4대가 아닌 3대인 이유는 산재 보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6] 이영훈 목사 집안은 기독교 신앙 때문에 월남한 집안이다.[7] 성도 및 직원[8] 대성전, 제1교육관, 제2교육관, 세계선교센터, 비전센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