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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전/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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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요 등장인물3. 후비들4. 황실
4.1. 황자4.2. 황녀4.3. 선대
5. 심복들6. 태의7. 기타

1. 개요

여의전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문서. 나무위키:편집지침/표제어대로 가능한 본명으로 작성한다.

2. 주요 등장인물

파일:ruyi3.jpg 파일:hongli.jpg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 건륭제 애신각라 홍력
파일:queenmother.jpg 파일:006muEijly1fd88tsdcdmj33uw2kmkjm.jpg
숭경황태후 뉴호록 씨 시위 릉운철

3. 후비들

파일:concubines.jpg
황후(皇后)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계황후 오라나랍 여의효의순황후 위연완
황귀비(皇貴妃)
혜현황귀비 고희월숙가황귀비 김옥연순혜황귀비 소록균경공황귀비 육목평철민황귀비 부찰 제영
귀비(貴妃)
유귀비 가리엽특 해란완귀비 진완인영귀비 파림 미약 흔귀비 대미약
비(妃)
서비 엽혁나랍 의환진비 부찰씨 예비 박이제길특 액음주용비 한향견돈비 왕부지
빈(嬪)
매빈 백예희신빈 색탁륜 아약이빈 황기운순빈 곽석특 람희각빈 배이과사씨
귀인
색귀인 색작락씨공귀인희귀인
상재
규상재 무상재백상재

* 철민황귀비 부찰 제영
품계: 격격→ 철(哲)비 → 철민황귀비(哲悯皇贵妃)
철민황귀비 부찰씨. 1황자 영황과 2황녀의 생모. 홍력이 잠저 시절에 처음 들인 격격[1][2]으로 상당한 미식가였다고 한다. 홍력이 즉위하기 전에 죽었으며 철비로 추존되었다가 철민황귀비로 다시 추존되었다. 부찰 제영의 죽음은 원작과 드라마가 다른데 원작에서는 김옥연이 자신의 시녀인 정숙을 시켜 그녀의 음식에 상극이 되는 음식을 넣어 식중독으로 죽었으며 당시 홍력은 신변에 없었고 랑화는 왕부에 있었기에 그녀가 갑작스럽게 죽은 것에 대해 랑화가 혐의자가 된다. 드라마에서는 2황녀를 낳을 때 난산으로 모녀가 다 죽었는데 랑화가 뒤에서 손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돈다.
  • 흔귀비 대미약
    품계: 흔(忻)빈 → 흔비
    거주지: 경양궁
    6황녀와 8황녀의 생모. 명문가 출신이다. 성격은 활달하고 남방형 미인이라고 한다. 여의와 친하게 지낸다. 어화원을 산책하던 중 개가 날뛰어 경시가 다친 것을 보고 6황녀를 조산했고 6황녀는 곧 죽었다. 홍력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비로 봉해준다. 이후 8황녀를 낳았다. 드라마에서는 대미약이 삭제되고 설정은 영귀비 파림씨에게 넘어갔다. 역사와 원작 소설 모두 흔귀비의 소생으로 그리고 있는 6황녀와 8황녀가 드라마에서는 영귀비 파림씨의 소생으로 그려지며, 미약이라는 이름 역시 영귀비의 것으로 나온다.
  • 진비 부찰씨
    품계: 진(晉)귀인 → 진빈 → 진귀인 → 진빈
    거주지: 경양궁
    부찰 랑화가 죽고 1년 후에 입궁했다 장정옥이 낙향하고 그의 지지를 받는 부찰씨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홍력이 빈으로 봉한다. 외모는 청순하다고 한다. 의환과 똑같은 임신약을 먹고 있어 불임이다. 육목평과 함께 여의의 딸 경시에게 붉은 옷을 선물한 것 때문에 귀인으로 강등되었다가 연완에 의해 빈으로 복위했다. 여의 사후에 연완이 황귀비로서 육궁을 다스리려고 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용비와 영비에게 분노를 표하거나 연완이 대수(50세 이상의 매 10주년 생일)를 축하하기 위해 극단을 불렀을 때 유일하게 좋아하며 참석한다. 명절을 여의의 방식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연완의 의견에 동조한다. 하지만 다른 후궁들에게 그 방식은 옛 효현황후께서 행하신 방식인데 너는 그분과 같은 부찰씨가 아니냐며 역으로 당한다.
    실제 역사에서의 진비 부찰씨는 가경 3년에 13세의 나이로 88세의 태상황 건륭제의 수녀로 뽑혔고, 1년 뒤에 건륭제가 사망하면서 줄곧 귀인으로 있다가 도광제 때 할아버지의 후궁 중 홀로 남았으며 항렬이 높으므로 품계를 2품 올려주고 난 뒤에 황고진비가 되었다.
  • 돈비 왕부지
    품계: 궁녀→ 돈(惇)상재 → 돈귀인 → 돈빈 → 돈비
    거주지: 승건궁 → 익곤궁
    어화원 궁녀였으나 여의를 닮아 홍력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되었다. 용비 한향견, 영귀비 파림 미약과 친하게 지내고 연완을 싫어한다. 귀인 시절부터 문안을 빠질 정도.

    실제 역사에서 돈비 왕씨는 건륭 말기에 최고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었으며, 처음에는 상귀인으로 책봉되었고 그 후 돈빈으로 품계가 상승하였다. 또한 돈비의 딸인 고륜화효공주는 건륭제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에 돈비는 자신의 딸을 믿고 궁녀를 때려 죽이는 중죄를 저지르는가 하면 총애를 믿고 기고만장한 상태로 자신보다 훨씬 일찍 들어온 후궁 선배들에게 오만하게 행동하고 멋대로 굴었던 탓에 평가가 좋지 않았다. 이때는 숭경황태후도 붕어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녀를 야단칠 사람도 없었던 터라 돈비와 다른 후궁들의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건륭제 사후 어지간한 후궁은 모두 2등급 이상의 품계를 올려주었던 가경제조차 그녀를 그냥 돈태비로 놔두었을 정도다. 결국 건륭제가 죽고 난 뒤 그녀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되어, 황궁 내 태비들 사이에서도 왕따 신세가 되고 기고만장하던 과거와는 달리 초라한 말년을 보냈다.
  • 순빈 곽석특 람희
    거주지: 경인궁
    몽골 곽석특 친왕의 딸. 총애를 다투지 않는다. 옛 연인인 아낙과 밀회를 하다 여의와 12황자에게 들킨다. 이후 아낙과 도망가려다 실패하고 오체분시된다.
  • 각빈 배이과사씨
    거주지: 함복궁
    몽골에서 온 몽골 비빈. 처음부터 위연완을 멸시하는 티를 팍팍 낸다. 여의를 따르며 연완과 경빈을 적대시한다. 소설에서도 황귀비가 된 연완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정도로 무시한다.[3]
  • 공귀인 강씨
    거주지: ?
    수녀선발 때 처음 등장한다. 강씨이지만 만군기인 것으로 보아 만주족 강씨인 듯 하다.[4]. 드라마에선 비중은 거의 없지만 소설에서는 여타 몽골 비빈들이 모두 그러듯 여의를 따르고 연완을 무시한다.
  • 희귀인
    거주지 : ?
    수녀선발 때 처음으로 등장. 배이과사씨와 공귀인과 함께 입궐한다. 만주족 전통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만군기 후궁으로 보인다. 비중은 거의 없다. 배이과사씨와 함께 입궐하여 여의파의 무수리 역할.
  • 백상재,무상재,규상재
    거주지 : ?
    여의가 익곤궁에 유폐되고 연완이 황귀비가 되었을 때 찾아와 여의를 욕하고 연완에게 잘보일려고 한다. 그 후로는 별다른 등장이 없다. 이들은 자신들이 청나라 초기에 살지 않음에 감사해야 한다. 순장 제도가 남아있었던 청 초기였다면 열 받을대로 받은 해란이나 홍력에 의해 여의나 연완 둘 중 하나와 함께 순장당했을 것이다.

아이를 가졌던 후궁들 중 소록균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경험이 있다. 랑화는 아들 둘을, 여의는 아들과 딸, 연완 역시 아들을 둘 잃었으며, 제영은 딸과 함께 죽었고 혼자 남은 아들마저 요절한다. 미약은 임신한 공주를, 해란은 영기를, 예희와 황기운 역시 아이를 잃었고, 김옥연도 9황자를 유산했다. 의환 역시 영모를 잃었다. 경빈과 용비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

여타 후궁암투물들을 비추어 보았을 때 다른 드라마의 후궁들보다 여의전의 후궁들이 강력하다.
아래의 일들은 모두 여의전의 후비들이 꾸민 짓이다.
1. 회임하면 유산하게 만들고 약의 재료를 몰래 바꿔 난산으로 죽게 만든 후궁.(김옥연)
2. 유산은 기본, 용종을 기형아로 만들고 후궁의 처소에 뱀을 풀어버린 후궁.(고희월)
3. 자매의 우정의 증표라며 불임약재가 한가득 든 팔찌를 선물해 두 여자를 불임으로 만든 황후.(부찰 랑화)
4. 친모가 없는 황자는 방치하고 학대하며 친모가 있는 황자는 오냐오냐 키워 발달장애로 만든 황후.(부찰 랑화)
5. 천연두 환자의 옷을 처소에 몰래 넣어 황후 소생 적자와 그 유모를 죽게 만든 후궁.(백예희)
6. 임신한 상태로 자신의 약에 독을 넣어 쇼를 벌인 후궁.(가리엽특 해란)
7. 황제앞에서 자신과 대등하고 훨 높은 후궁에게 뺨을 때리고 채찍을 휘두른 후궁.(백예희)
8. 아이가 다섯이나 있는 귀비를 자신의 처소에 끌고와 사형시켜 버리려고 한 황후.(오라나랍 여의)
9. 황후의 용종을 탯줄로 감아 죽이고 개가 달려들게 만들어 둘이나 죽인 후궁.(위연완)
10. 가장 총애받는 황자의 첩을 자신의 사람을 보내 병으로 요절하게 만든 후궁.(위연완)
11. 황제의 밥에 최음제를 타 총애받은 후궁.(박이제길특 액음주)
12. 황제를 암살하려 한 후궁.(한향견)
13. 황자에게 독버섯을 먹여 중독 증상을 일으키게 한 후궁.(위연완)

4. 황실

4.1. 황자

황자(皇子)
<rowcolor=#000>1황자 애신각라 영황 단혜황태자 애신각라 영련 3황자 애신각라 영장
<rowcolor=#000> 4황자 애신각라 영성5황자 애신각라 영기 6황자 애신각라 영용
<rowcolor=#000> 7황자 애신각라 영종 8황자 애신각라 영선 9황자 애신각라 영유
<rowcolor=#000>10황자 애신각라 영모 11황자 애신각라 영성 12황자 애신각라 영기
<rowcolor=#000> 13황자 애신각라 영경 14황자 애신각라 영로 15황자 애신각라 영염
<rowcolor=#000> 16황자 애신각라 영권 17황자 애신각라 영린
  • 1황자 애신각라 영황
    철민황귀비 부찰 제영의 아들. 생모인 제영은 건륭제가 즉위하기 전 왕부 시절에 김옥연의 손에 독살되었으며 생모를 잃고 아가소에서 유모에게 학대받는다는 것[5]을 알게 된 건륭제는 영황을 오라나랍 여의에게 맡겼고, 여의가 냉궁으로 쫓겨난 후 소록균에 의해 양육되었다. 처음엔 온순한 성격이었으나 점점 야심을 키우게 된다.[6] 여의가 냉궁에 간 후, 순귀비에게 키워지게 되는데 순귀비가 자신의 친자식인 영장과 양자인 영황을 대놓고 차별하여 눈치보며 자라게 되었다. 영황은 어머니의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 여의이기 때문에 냉궁에서 돌아온 여의에게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여의는 냉궁에서 막 돌아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서 영황까지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고 영황과는 문안 인사를 받고 선물을 주는 관계로 끝나게 된다. 황자임에도 생모가 일찍 죽어 구박과 멸시를 받고 자라 황위에 대한 욕심을 내게 된다. 랑화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장자라는 이유로 장례식을 이끄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으며, 자신의 부인의 가문이 너무 쳐진다며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여의가 만주족이고 가문이 좋은 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뒷배경으로 삼기위해 여의를 자주 찾아가지만, 복진과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여의를 이용하려는걸 여의와 해란이 다 듣게 된다. 여의는 이에 실망하고 해란은 황궁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무정하다고 한다. 영황이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걸 김옥연이 엿듣게 되고 미리 가 영황에게 부찰 제영을 죽인 것이 랑화라 말한다. 그 말을 믿은 영황은 랑화의 장례식에서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아 홍력의 노여움을 사게 되며 황위 계승권을 잃고 병을 앓게 된다. 영황이 시름시름 앓는데 건륭은 볼 생각도 안하고 여의는 의환과 꽃꽃이를 하다가 오늘내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뒤늦게 영황을 보러 간다.[7] 영황은 여의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자신의 생모를 랑화가 죽였다고 말한다. 여의가 누가 그런 말을 전했냐고 하자 가비가 전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사망한다. 사후 정안친왕으로 추존. 그후 홍력은 제영과 영황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 단혜황태자 애신각라 영련
    건륭제의 2황자.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의 장남.[8] 모후의 지나친 공부열[9]로 몸이 약하다.[10] 천식에 걸려 시름시름 앓게 되고 랑화는 천식 때문에 말을 타기가 힘든데 황자가 이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대통을 이어받냐며 한탄해한다. 상태가 좀 나아지자 상서방으로 가서 글공부를 했는데 여의는 이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여의가 냉궁으로 간 후, 영련의 상태도 점점 심각해지고 궁 전체가 영련을 위해 기도하는 분위기가 된다. 눈치 없는 해란은 여의에게 소식을 보낸다며 연을 날리다가 랑화, 희월, 아약에게 혼나게 되고 무릎을 꿇는 벌을 받게 된다. 냉궁으로 가서 여의를 보고 돌아온 해란이 흑화하여 소록균, 여의가 랑화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영련을 죽게 만들었다.[11] 해란도 아무런 죄없는 영련의 명줄을 앞당긴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는지 영련을 위해 지전을 태우면서, "나를 원망하지말라. 다 네 엄마의 업보다."라고 말했다. 사후 단혜황태자로 추존된다.
  • 3황자 애신각라 영장
    순혜황귀비 소록균의 장남. 어렸을 때 랑화의 견제로 힐방전에서 자라게 되는데 유모들이 오냐오냐 키워서 지식이 다른 황자들에 비해서 부족하게 되면서 건륭의 눈밖에 났다.[12] 야심이 강해 영황과 황태자 자리를 놓고 다툰다. 해란의 계략에 빠져 부찰 랑화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고 홍력에게 슬퍼하지 말라며 큰 형은 슬픔을 억누르고 있지 않냐고 말해 홍력의 노여움을 산다. 결국 영황과 함께 황위 계승권을 잃었다. 이후 형제들 중에서 제일 나이는 많지만 생각하는 게 다른 황자들에 비해 딸리고 문무가 4황자 영성에게 밀려서 건륭에게 구박만 받는 신세가 된다. 건륭이 한향견에게 미치고 자신의 생모는 아픈데 보러오지 않자 화가 나서 민간에서 한향견을 요녀라고 부른다고 말했다가 발차기를 당하고 쫓겨난다. 충격 먹은 영장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생모가 죽은 후 얼마 안 되어 사망한다.
  • 4황자 애신각라 영성
    숙가황귀비 김옥연의 장남. 홍력의 등극 후 태어난 첫 황자. 랑화의 총애를 받았다. 랑화 사후 김옥연은 자신의 아들을 태자로 만들기 위해서 엄청 밀어주기 시작했다. 목란사냥터에서 건륭이 야생마를 쫓다가 자객에게 화살을 맞게 되는데 영성이 달려와 건륭을 구했다. 건륭은 자신의 목숨을 구한 영성을 각별히 총애하고 패륵이란 작위를 내린다. 영성과 김옥연은 점점 거만해져서 무리수를 두게 되는데 김옥연이 영성을 위해 고국에서 온 진귀한 선물을 복진들에게 선물로 나눠준 것. 건륭은 복진들이 황후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지 않고 가귀비를 먼저 찾으러 가는 걸 보고서 기분이 상했고, 함친왕 복진이 들어와 가귀비가 옥씨 일족의 특산품인 황옥을 선물로 주었는데 부담스럽다며 찾아왔다. 영장의 복진이 회임하여 건륭이 순귀비를 보러 오는데 순귀비가 걸은 목걸이가 휘황찬란했으며 황후만이 쓸 수 있는 모란이 있었다. 이를 보고 건륭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순귀비는 가귀비가 양광총독에게 받은 선물을 황후에게 주었다고 한다. 궁궐에서 야생마 한 마리를 길들이는 걸 건륭과 비빈들이 보게 되는데 영성이 자신이 시범을 보이겠다며 야생마를 길들이고, 능운철이 4황자가 매년 목란사냥터로 와서 야생마를 길들였다고 말하면서 의심을 사게 된다. 결국 지나친 욕심으로 영성은 궁 밖 저택에서 살게 되었고, 어머니를 보러 오려면 건륭의 허락이 필요한 신세가 된다. 김옥연은 영성을 부찰 랑화의 양자로 들여 적자의 명분을 만들어주려고 하는데, 여러 죄가 들통이 나서 서인으로 강등되고 영성은 강희제의 12남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 5황자 애신각라 영기
    유귀비 가리엽특 해란의 아들. 여의의 양자. 총명하고 성품이 착해 홍력에게 총애를 많이 받는다. 영기는 황위 욕심이 있었지만 해란이 적자인 12황자와 적모인 여의에게 충성하라고 해서 서운한 기색을 보인다. 4황자 영성이 양자로 나가게 되자 5황자 영기가 건륭의 총애를 듬뿍 받게 된다. 패륵에 봉해진 후 건륭이 정해준 악이태의 손녀를 복진으로 맞이했지만 금슬이 좋진 않다. 성인이 된 후 허벅지가 아픈 부골저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이에 강여빈은 부골저를 앓은지 오래 되었는데 피로와 한기가 들면 위험하니 건강관리에 유의할 것을 당부하였다.
    한편 연완은 전산파의 딸 전운아에게 해란과 여의에게는 복수할 수 없지만 그 아들에게는 복수할 수 있다고 하여 호운각이라는 이름을 주고 패륵부로 보냈다. 계획대로 호운각에게 반한 영기가 그녀를 애첩으로 두자, 운각은 영기의 다리를 찬물로 씻겨주어 통증을 악화시켰다. 또 여의가 적모이나 곁에 적자가 있다며 결국 팔은 안으로 굽을 거라는 말로 이간질하였다. 이에 영기는 점점 호운각의 말에 흔들리고, 목란사냥터에서 여의가 적자 12황자에 대해 말하는 걸 듣고 여의와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 건륭이 한향견에 미치자 한향견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한제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라는 조언을 하였고, 후궁의 일에 간섭했다는 이유로 해란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궁궐에 여의와 능운철의 불륜설이 나돌게 되자 영기는 여의를 위해 능운철에게 스스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며 여의에게 접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매화꽃 아래에서 능운철과 여의가 만나고, 운철이 여의에게 매화꽃가지를 꺾어서 주는 장면을 12황자가 목격하게 되면서 결국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여의를 지키기 위해 해란은 여의의 명을 가장하여 운철을 죽인다. 건륭은 운철의 시신을 공동묘지에다가 버리라고 하지만 여의는 풍수가 좋은 곳에 능운철을 묻어주라 했고, 결국 영기는 능운철을 좋은 묫자리에다 묻어주고 묘비까지 세워주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변함없이 총애받던 호운각은 죄책감을 느끼고 상처를 강여빈에게 보여주라고 하지만, 영기는 여의와 엮이고 싶지 않다며 거절한다.[13] 위연완은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영기를 죽일 약을 호운각에게 건네지만, 호운각은 그 약을 차마 쓰지 못하고 결국 버렸다. 결국 상처가 만성이 되었고 그간 받은 스트레스가 겹쳐 요절하고 만다.
    호운각은 영기가 사망한 후 능운철을 처리한 것이 해란의 단독 행동이었음을 건륭에게 고발하고 독약을 마셔 자진한다. 이러한 고변은 과장된 것이지만, 불화하는 부모로 인해 영기가 상심하고 괴로워 한 것은 사실이다. 호운각은 위연완이 준 분을 버렸으나 분갑은 그대로 두었고, 적복진이 이를 발견하여 해란에게 줌으로써 해란은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영기가 죽는 해는 계황후와 같다. 드라마에서 영기를 영친왕에 봉한 후 밀건법으로 영기를 후계에 지목하나, 사실이 아니다. 건륭제가 5황자를 태자로 고려한 것은 맞지만 밀건법으로 지명하지는 않았다.
  • 6황자 애신각라 영용
    순혜황귀비 소록균의 차남. 태후의 총애를 받는다. 실제 역사에선 효현순황후의 남동생인 부찰 부겸의 딸을 적복진으로 맞이하였다.
  • 7황자 애신각라 영종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의 차남. 조산으로 태어났다. 김옥연이 랑화를 모함해서 매빈의 아이를 랑화가 죽였다며 말심에게 데려갔고, 매빈이 복수하기 위해 말심의 천연두를 영종의 유모에게 옮게 한다. 결국 영종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천연두가 옮아 죽는다.
  • 8황자 애신각라 영선
    숙가황귀비 김옥연의 차남. 영종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태어난 황자라 홍력에게 주목을 받지 못해 옥연이 앙심을 품게 된다. 위연완에 의해 낙마하여 걷지 못하게 된다.
    실제로는 황자들 중에서 가장 장수한 황자다. 88세의 나이로 가경제를 넘어 도광 연간까지 생존했고, 막내동생인 영린보다도 오래 살았다.
  • 9황자 애신각라 영유
    숙가황귀비 김옥연의 3남. 소설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 옥연이 애지중지했는데 김옥연이 귀인으로 강등되고 소록균이 양육하게 되었을 때 풍한에 걸려 앓게 되었다.[14] 그 와중에 소록균이 준 병에 위연완이 병에 굶주린 쥐를 숨겨놓았고, 유모의 젖내음을 맡고 쥐가 병을 깨뜨리고 뛰쳐나와 영유가 보고 놀라서 경기를 일으켜 죽었다. 드라마에서는 옥연이 임신했을 때 몸이 좋지 않았고[15] 여의를 안길대사와의 사통으로 엮으려는 시도가 물거품이 되면서 아이들은 힐방전으로 가게 되고 자신은 빈으로 강등되면서 충격을 받아 더 상태가 안 좋아졌다. 그 와중에 위연완이 일부러 옥씨 왕야가 왕비를 자살하게 만든 탓에 청에 와서 건륭의 꾸지람[16]을 듣게 되었다는 소식을 옥연에게 전하고, 이에 옥씨 왕야를 구하기 위해 양심전 앞에 무릎 꿇고 머리까지 찧어가며 애걸복걸하다가 결국 사산하게 되었다.
  • 10황자 애신각라 영모
    서비 엽혁나랍 의환의 아들. 의환이 가짜 임신약을 먹지 않아서 생길 수 있었지만 그동안 먹은 가짜 임신약의 부작용이 축적된 탓에 몸이 약했다. 흠천감의 예언 때문에 궁밖에서 자라게 되고 가까스로 죽기 전에 궁으로 들어오나 결국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다.
  • 11황자 애신각라 영성
    숙가황귀비 김옥연의 4남.
    드라마에서는 김옥연의 다른 황자들이 부각되지만 실제 역사에서 11황자 영성은 유력한 황태자 후보 중 하나였으며 적복진의 출신 가문이 건륭제의 황자들 중 가장 좋았다. 11황자 영성의 적복진은 효현순황후의 동생인 부찰 부항의 적녀였으며 부찰 부항의 누나인 효현순황후의 친조카였다. 그러나 명문가 출신 적복진을 들였다고 해서 태자 후보로 점쳐진 것은 아니다.[17] 또한 문무가 뛰어나고 지혜로웠다고 한다. 다만 구두쇠 같은 면모와 무예를 그닥 좋아하지 않고 결단력이 약한 것이 흠이 되어 가경제에게 제위가 넘어간다. 그렇다고 영성과 가경제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으며, 영성은 가경제보다 오래 살았다.
  • 12황자 애신각라 영기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의 장남.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효현황후의 자식과는 차원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18] 여의는 12황자가 태자가 아닌 친왕의 작위를 받아서 편안하게 살면 된다며 황위 욕심이 없다고 한다. 여의는 5황자 영기를 양자로 삼아서 해란과 같이 키웠고 5황자가 똑똑해서 5황자를 태자로 밀어준다. 12황자는 능력이 5황자보다 못해서 건륭에게 학업을 비교당했고 궁에서는 여의의 입지가 좁아져서 찬밥 신세가 된다. 건륭에 의해 여의가 12황자의 양육권을 박탈당하면서부터는 연희궁[19]에서 해란의 손에 크게 된다.
    후반부에서는 여러 고생을 하는데, 예비 액음주의 계략으로 한부 사람을 가장한 자객에게 인질로 잡히게 되고 크게 놀라는 일이 있었다. 이 일로 부모인 건륭과 여의가 자신 앞에서 싸우자 울면서 자기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울기도. 이 당시 운철이 여의와 영기를 구했다가 둘 사이에 추문이 돌게 되고, 위연완은 12황자를 이용해 둘을 궁지로 몰아 넣는다. 영기의 음식에 환각을 유발하는 버섯을 넣은 것. 이를 먹은 영기는 태감이 된 능운철과 여의가 만나 매화를 주는 장면을 목격하고, 능운철이 매화를 꺾어 용패에게 건네는 것을 여의에게 직접 준 것으로 착각하여 충격을 입는다.
    드라마에서는 여의가 유폐된 후 건륭이 여의를 놓아주기 위해서 황귀비의 예로 장례를 치르라고 하는데, 12황자는 챙기지 않는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인데 역사적으로 12황자가 아무런 시호도 작위도 받지 못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건륭이 영기를 꺼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나, 작중 설정을 고려하면 여의가 작위에 집착하지 않았으니 따로 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역사에서 가경제와의 관계는 좋은 편이어서 건륭이 죽은 후 다라패륵으로 추존해주었다.
    그래도 드라마 후반부에서는 여의의 유일한 자식이기 때문에 소생이 없는 여의피 후궁들이 돌본다.[20]
  • 13황자 애신각라 영경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의 차남. 태어나자마자 산파 전씨에게 질식사당한다. 드라마에서는 산파 전씨가 여의의 아이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며 임신 당시 이상한 마사지를 가해 난산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아이가 태어날 때 일부러 시간을 끌어 사산시켰다. 건륭은 흠천감에서 상사로운 적자가 날 것이라고 했기에 크게 기대했다가, 사산아가 나오자 크게 상심한다. 흠천감 관리와 전씨는 위연완의 사주를 받고 영경이 죽은 것은 어머니인 여의의 액운 때문이라고 모함했다. 이후 도서황자로 추봉되어 단혜황태자의 능침에 합장된다. 그러나 역사에서 13황자 영경은 태어나자마자 죽은 게 아니며 죽고 나서 건륭은 어떠한 시호도 내려주지 않았다.
  • 14황자 애신각라 영로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장남. 몸이 허약하다. 병에 걸려 요절했다.
  • 15황자 애신각라 영염[21]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차남. 훗날의 가경제가 된다. 황자들 대부분이 죽거나 병약하고 황위계승권을 박탈당하는[22] 등 멀쩡한 황자가 없기에 후계자가 되었다. 아가소에서 힐방전으로 처소를 옮긴 후 어머니와 1년에 한 번꼴로 만난다. 위연완이 죽은 후에는 진완인이 양육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멀쩡한 황자들은 물론이고, 가경제보다 오래 산 황자들도 많았다. 건륭 대에는 강희제 때처럼 황자들의 권력 다툼이 심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한 역사에서 가경제를 효의순황후와 함께 양육한 후궁은 진완인이 아닌, 경공황귀비로 추존되는 육목평이다.[23] 그리고 효의순황후 사후에도 궁에서 양육되었다는 드라마의 내용과 다르게 효의순황후 사망 1년 전, 14세의 가경제는 훗날 효숙예황후가 되는 희탑랍씨를 적복진으로 맞고 출가한 상태였다.
  • 16황자 애신각라 영권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3남으로 요절했다.
  • 17황자 애신각라 영린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4남. 드라마에서는 영비 파림씨가 양육하게 된다.

4.2. 황녀

장공주(長公主)
단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착유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제
공주(公主)
3황녀 고륜화경공주 애신각라 경슬4황녀 화석화가공주 애신각라 경연5황녀 고륜화의공주 애신각라 경시
  • 단숙장공주
    본명은 애신각라 항착. 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의 장녀. 몽고로 화친을 갔다. 준가르와 청의 전쟁이 끝난 후엔 태후의 곁으로 돌아와 살고 있다. 달와제가 쿠데타를 일으켜 남편을 죽였는데 건륭이 재가하라고 했다. 건륭이 선조의 예를 들며 원래 만주에 재가의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태후는 입관한지 100년이 흘러서 풍습이 바뀌었는데 언제적 얘기를 하는 거냐며 실망한다. 달와제와 혼인한 후 임신해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건륭이 여동생을 보러 오는데 항착은 군신의 예로만 대한다. 이에 건륭은 항착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한다.
홍력과의 남매 사이가 멀어진 것과는 별개로 여의가 경시와 영경을 연달아 잃었을 때 그녀를 걱정해서 어머니인 태후를 통해 연락한다.[24]
전작의 롱월공주에 해당하는 캐릭터. 원작에서도 롱월은 화친갔다. 여의에게 예전에 옷을 만졌다가 쳐낸 일에 대해 말하자 여의는 태후와 자신의 고모의 사이가 좋지 않기에 거리를 두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 유숙장공주
    애신각라 항제. 숭경황태후 뉴호록씨의 차녀이며 장친왕이 태후를 대신하여 그녀를 양육하게 된다.[25] 원래 몽고로 시집을 가야 했으나 또다시 딸을 먼 곳으로 시집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태후의 개입과 여의의 도움으로 화경공주가 대신 갔다. 다만, 건륭 대에는 몽고 왕족과 공주가 혼인을 해도 북경에서 살았으므로 이는 잘못된 고증이다.
전작의 령서공주에 해당한다.그렇게 따지면 이분은 과군왕 딸 여담으로 유숙장공주 역 배우 왕학윤은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 위영락의 딸인 소화공주(고륜화정공주)로 나온다.
  • 3황녀 고륜화경공주 애신각라 경슬
    효현순황후 부찰 랑화의 차녀. 홍력의 유일한 적녀라 오만하며, 후궁들을 무시한다.[26][27] 그러나 부모에게는 효성스럽다. 처음에 랑화는 딸이라는 이유로 경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28] 이후 영종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숙장공주 대신 몽고에 시집갔다.[29] 랑화는 하나 남은 딸마저 자신을 떠나게 되자 그제서야 자책한다.[30]
화의공주 경시의 사망 이후, 건륭의 부름으로 자금성으로 귀환한다. 아들 경우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을 뻔했고, 그래서 아이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부마가 축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슬이 과이심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하자, 건륭은 과이심 친왕이 반란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데다 경슬에게도 잘 대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금성에 머무는 걸 허락한다.
한편 경슬은 여의가 자신을 몽골로 시집 보내도록 황제와 태후를 움직이는 바람에 상심한 어머니가 죽었다고 여겨 복수심에 불타고 있었다. 또한 여의는 후궁 출신의 계후이고 자신은 원배[31] 황후 소생 적출 공주이니 여의가 자신에게 모후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후 경슬은 복수를 위해서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몽골 출신 후궁 및 위연완[32]과 어울리며 여의를 적대한다. 드라마판에서는 5황자 영기의 장례식에 참석한 영비 파림씨로부터 위연완의 야심을 언질 받게 된다.[33] 이에 사실 확인을 위해 환관을 잠복시켰고, 15황자 영염에게 "아바마마에 대한 효심도 중요하지만, 어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위연완의 말을 전해 듣는다. 영비의 언질이 틀리지 않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건륭에게 이를 알려 위연완이 자식들의 양육권을 모두 박탈당하게 만든다.
부황의 후궁들을 싫어하지만 자신의 이복남매/자매들인 후궁 소생의 황자 및 황녀들과는 친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여의와 해란의 아들인 5황자 영기가 죽었을 때도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여의와의 관계도 마냥 증오하기만한 게 아니었다. 막상 여의가 홍력과의 갈등 끝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익곤궁에 연금되면서, 거의 폐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34]어머니 랑화의 복수를 했다고 통쾌해할만도 하지만 아버지와 서모(여의)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것을 보면서, 연완의 행패로 내명부의 분란이 갈수록 커지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여의를 안쓰럽게 쳐다본다. 오히려 상재들이 황귀비가 된 연완에게 아첨을 떨러 온 것을 궁 밖에서 보면서, 저리 체면을 지킬 줄 모르는 것을 황귀비에 앉히면 안 됐다며 여의보다 연완을 더 혐오한다. 이후의 등장은 없으며 여의의 사후에도 그녀의 장례식장에는 모습을 비추지 않는다.[35][36]
실제 역사에서 고륜화경공주효현순황후의 성인까지 장성한 유일한 자식이었고[37] 몽골 과이심 왕에게 시집을 간 것은 맞지만 몽고로 간 것은 잘못된 고증이다. 화경공주는 효현순황후 사후에도 북경에 거주했다. 유일한 적녀여서 건륭제가 엄청나게 총애했기 때문. 또한 영종 사망 → 효현순황후 사망 → 화경공주 하가 순서인 드라마와는 다르게 실제 역사는 화경공주 하가(건륭 12년 3월) → 영종 사망(건륭 12년 12월) → 효현순황후 사망(건륭 13년 3월) 순서이다. 드라마에서는 부마가 축첩하여 사이가 안 좋은 것으로 나오나 실제 액부와 화경공주는 금슬이 좋았으며 1남 4녀를 낳았다.* 4황녀 화석화가공주 애신각라 경연순혜황귀비 소록균의 딸. 몇 안되는 공주라 홍력의 총애를 받는다. 부찰 랑화의 동생인 부찰 부항의 차남 복륭안과 결혼한다.
  • 5황녀 고륜화의공주 애신각라 경시
    계황후 오라나랍 여의의 딸. 실제 역사에선 봉호를 받기 전에 죽었다. 이름인 경시는 당태종과 장손황후의 요절한 딸 진양공주의 아명인 시자에서 따왔다. 원작에선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려죽는다. 드라마에선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어화원에서 오빠인 12황자 영기와 놀다 김옥연[38] 풀어놓은 개가 달려들어 발작을 일으키다 이내 사망한다.
  • 6황녀
    영비 파림 미약의 장녀. 소설에서는 흔귀비 대미약의 소생인데, 드라마에서는 영비 파림씨와 대미약을 하나로 합치는 바람에 영비의 딸이 되었다. 5황녀 경시가 개에 당해 쓰러졌을 때 영비도 크게 놀라는 바람에 결국 임신 6개월째에 유산되었다.
  • 7황녀 고륜화정공주 애신각라 경완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장녀. 태어나자마자 위연완이 아닌 영(穎)비 파림 미약에게 키워졌다. 나중에 위연완이 되찾으려 하자 자신의 어머니는 파림씨라며 거부하고 위연완이 여의를 해쳤다고 생각한다.[39]
  • 9황녀 화석화각공주 애신각라 경운
    효의순황후 위연완의 차녀. 위연완의 실언 후 힐방전에서 유모들 손에서 자라며 위연완과는 1년에 한 번 꼴로 만난다. 성장한 후에는 아들, 특히 15황자 영염에게만 신경 쓰는 생모에게 냉담하게 대한다. 한향견을 바친 장군 오아 조혜의 아들 오아 찰란태에게 시집간다.
  • 10황녀 고륜화효공주
    돈비 왕부지의 딸. 화의공주를 닮았다하여 홍력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
실제 역사에서의 고륜화효공주는 오히려 아버지인 건륭제의 외모며 성격, 재능을 유난히 닮아 여러 면에서 출중했던지라 엄청난 총애를 받았고, 그녀의 친모인 돈비도 덩달아 대우받았다. 딸을 각별히 사랑한 건륭제는 고륜화효공주가 후궁 소생의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고륜공주로 봉해주었을 정도.[40]
이후 건륭제의 총신 뉴호록 화신의 아들과 결혼했다. 하지만 건륭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가경제가 화신의 전 재산을 몰수하는 바람에 돈을 아끼며 살아야 했고, 시댁이 고륜화효공주에게 의지하였다고 한다.

4.3. 선대

선대(先代)
옹정제경인궁 황후 오라나랍 의수숭경황태후 뉴호록 씨

5. 심복들

  • 소배성
    옹정제의 태감. 여기에서도 옹정제의 중요한 심복으로 등장하나 큰 비중은 없다. 전작의 심복들 중에서 유일하게 여의전에서도 등장한 인물이다.[41] 여담으로 배우 심보평은 전작에서 견원도를 연기하기도 했다.
  • 육호
    건륭제 홍력의 직속 상궁. 홍력의 생모 이금계의 사람이었기에 홍력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자신의 직속으로 임명한다. 후궁에 무슴 일이 생길 때 마다 육호가 나서서 조사했으며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다. 이옥처럼 왼전히 여의파는 아니지만 여의의 사통이 아님이 드러나자 안심하며 웃고 위연완의 머리를 내치며 절을 하게 하는 등 여의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 복가
    태후 뉴호록씨의 직속 상궁. 전작의 근석.
  • 태감 왕흠[42][43]
    건륭제의 태감. 부찰 랑화가 지속적으로 총애를 받기위해선 황제의 심복에게 환심을 사야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시녀 연심을 왕흠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왕흠은 변태였던지라 연심을 학대하고, 랑화는 이를 알고도 무시했다.[44] 2권에서 고희월을 범하려 했다는 죄로 사사되었다. 사실은 그 모든게 학대에서 벗어나기 위한 연심의 계획으로, 연심에 의해 춘약을 과다복용한 왕흠이 환각을 보고 고희월에게 달려든 것이다.
  • 이옥[45]
    건륭제의 태감. 영민하여 건륭제의 신임을 받지만 왕흠의 시기를 받았다. 왕흠이 죽은 후 수령태감이 된다. 왕흠 밑에서 고생할 때 여의가 잘 대해주었기에 여의에게 호의적이다.[46] 뿐만 아니라 여의의 시녀인 쇄심을 좋아해서 여의를 지지한다. 그 때문에 여의를 모함하기 위해 쇄심을 고문한 김옥연을 싫어하게 되고, 건륭의 명으로 그녀를 빈으로 강등하고 그녀의 친아들의 양육권을 빼앗으면서 제대로 복수한다.
    이후 김옥연 소생의 8황자 영선이 낙마하여 다리를 다치게 되자 여의가 건륭에게 조사를 부탁한다. 능운철과 이옥이 각각 조사를 했는데 능운철이 말의 안장에 침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으나, 이걸 그대로 고하면 5황자가 혐의를 받게 되고[47] 황후인 여의가 피해를 받는 게 싫었던 이옥이 은침이 발견된 것을 숨기자고 한다.[48] 위연완이 사사될 때 강여빈과 짜고 독약에 고통을 증대시키는 약을 넣어 위연완을 고통스럽게 죽게 하였다.
  • 수하
    오라나랍 의수의 시녀. 옹정황제의 여인의 원작 소설에서 등장했었으나 정작 드라마판에서는 삭제되었던 인물.
  • 소심[49]
    부찰 랑화의 시녀. 랑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나 연심의 일로 랑화를 믿지 못하게 되었고, 노모의 병을 고치기 위한 산삼을 얻기 위해 옥연의 첩자가 되어 옥연이 저지른 악행을 여의와 랑화의 짓으로 조작하였다. 랑화가 죽은 후 옥연이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자살을 종용해 기둥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드라마에서는 소련이 부찰 황후를 위해서 악행을 김옥연, 고희월과 함께 벌인 것으로 나온다. 랑화가 물에 빠졌을 때 김옥연이 주운 비녀[50]를 떨어트리게 되는데, 김옥연이 이를 주웠고 최종적으로는 랑화의 시녀 소심이 비녀를 손에 쥔 채[51] 살해당한다.
  • 쇄심
    건륭제의 잠저 시절부터 여의를 보필해 온 시녀로서 비록 아약이 더 오랜 세월 여의의 곁에 있었지만 여의는 쇄심에 대한 신뢰가 더 깊었다. 넌씨눈급의 눈치와 분수를 모르는 아약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주인을 둘이나 모시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이 상황을 참고 또 참는다.[52]
    결국 아약이 여의에게 초특급 통수를 날리자 여의와 같이 냉궁으로 쫓겨나서 원귀들로 가득 찬 냉궁에서 여의와 서로 의지하면서 3년간의 시간을 보낸다. 랑화의 사후 황후 자리를 노리는 가귀비가 안길대사와 여의가 사통했다고 모함하여, 익곤궁 사람들이 신형사로 끌려가면서 모함을 받게 된다. 가귀비가 후궁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연회에서 태후가 쇄심의 형벌을 약하게 하라고 했음에도 일부러 강하게 하여 왼쪽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다. 그래도 강여빈이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면서 재활을 통해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된다.
    태의 강여빈과 같은 고향사람이자 서로 좋아하는 사이. 나중엔 둘이 혼인했기 때문에 쇄심 대신 용패가 여의의 심복이 된다. 혼인 이후에는 용패가 더 자주 나오는 편.
  • 용패
    쇄심이 혼인한 후에 들어온 여의의 시녀. 황제의 딸 용상궁이 모티브인 듯하다. 여의가 황귀비가 되어 육궁을 통솔할 때 용패가 불의에 참지 못하고 태감에게 따져서 여의에게 호감을 사게 되었다. 익곤궁으로 와 여의의 수발을 들게 되는데 황후 책봉식에 신경을 많이 써서 여의의 오른팔이 된다. 여의가 황후가 된 다음 날, 비빈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자리에서 가귀비에게 일부러 침이 굵은 귀걸이를 나눠준다. 가귀비가 끼기 싫어하자 용패가 나서서 황후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라며 더러운 눈물을 흘리지 말라며 제대로 보복한다. 나중에 가귀비가 부귀를 산책시키다가 여의와 마주치게되고 여의의 딸 경시를 두고 여의에게 그렇게 약한 애를 키워서 뭐하냐며 불경한 말을 한다. 이때 용패는 자신이 황상과 황후를 대신해서 가귀비를 벌해야겠다며 싸대기를 때린다.[53] 귀비에 불과한 옥연이 황후와 고륜공주[54]를 모함한 것은 큰 불경죄지만, 여의의 명이 있지도 않았는데 옥연의 뺨을 친건 너무 난폭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용패를 싫어하는 팬들에게서는 초웅(XYY)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드라마 마지막 화에서 유폐에서 풀려난 여의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자신을 심복으로 삼아준 여의에 대해 고마워하며 끝까지 충성한다. 이후 여의의 임종을 지킨 마지막 사람이며, 결국 여의의 사후 그녀를 따라 자살했다고 한다.[55]
  • 말심
    고희월의 시녀. 희월이 죽고 출궁한 후 혼인했지만 남편이 천연두에 걸려 죽고 자신도 전염되자 몰래 궁에 들어와 주인의 복수를 위해 장춘궁에 천연두를 퍼트리려 하나 들어가지 못하고 장춘궁 쪽을 바라보며 죽었다.
드라마에서는 고희월이 죽은 후 말심은 내명부 창고에서 일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천연두에 걸려서 옮게 되었다. 부찰 랑화에게 고희월의 복수를 해주고 싶어, 처음에는 해란에게 연락했다가 여의가 거절하자 정숙에 의해 매빈을 만나게 된다.[56]부찰 랑화의 임신으로 여의가 육궁을 통솔하게 되었는데 궁에 천연두 환자가 있음에도 내보내지 않아 영종이 천연두에 걸려 죽게 되었다.[57]
  • 상선
    고희월의 심복 중 하나. 말심과 쌍희와는 다르게 악행에 동참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말심보다는 직급이 아래이다. 옴에 걸려 죽는다.[58][59][60]
  • 정숙
    김옥연의 시녀. 조선 출신. 의녀였기 때문에 약에 통달하다. 옥연이 여의를 사통 혐의로 모함할 때 필적을 모방해 여의를 곤경에 빠트렸다. 조사하면서 자긴 한자는 모르고 훈민정음 밖에 못 쓴다고 했지만 들통났다. 결국 여의를 모함하는데 실패하고 고문을 받다가 조선으로 돌려보내진다.[61] 옥연이 죽고 조선에서 옥연의 가족들을 유배보냈으니 정숙도 아마 유배갔거나 조용히 처리됐을 가능성이 있다.[62]

6. 태의

  • 제여
    홍력이 회임시키고 싶지 않은 후궁들의 약을 담당한다. 사실은 태후의 사람이다.
  • 강여빈
    쇄심과는 동향 사람으로, 서로 좋아하다가 결혼했다. 그 이후로도 여의를 돕는다.

7. 기타

  • 길태빈
    선제의 길빈으로 26세에 숭경황태후에 의해 냉궁으로 쫓겨나 태후를 마귀할멈이라 부르며 매우 증오한다. 냉궁에서 고생이 많았는지 35세인데 노인으로 보인다고 한다. 태후를 찔러 죽이려하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숭경황태후에 의해 냉궁에 간 것 때문에 중국에선 농담으로 여빈이라는 말이 나온다.
  • 위부인
    위연완의 어머니. 무식하고 욕심이 많으며 아들밖에 모른다. 연완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들만 편애하여 공부시키고 자신에게 그러지 않았다고 불만을 품었다. 연완이 후궁이 된 후에도 돈이 부족하다가 조르고 황손을 낳아야 한다고 부담을 주었다. 연완이 회임한 후에 입궁하였는데 딸에 의해 여의를 저주하고 어화원에 개를 풀어놓고 해란의 조카를 매수하고 연완에게 임신환약을 먹였다는 누명을 쓴다. 연완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생의 안전을 언급해 위부인이 그대로 죄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연완에게 황후가 되라는 말을 남기고 사사당했다.
  • 함친왕 복진
    함친왕의 대복진으로, 홍력의 숙모. 황실 원로이며 성격이 어질고 현명하기에 홍력에게 존중을 받는다. 가귀비가 외명부 복진들에게 뇌물을 주고 영성에 대해 좋은 말을 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고발한 유일한 여성이다. 어찌 보면 옥연의 몰락에 일조한 셈. 서비 의환의 아들 영모를 맡게 되고, 곱고 착하여 정성껏 기르지만 영모는 요절한다.

[1] 그러나 랑화가 제영이 철비로 추존된다는 말을 왕흠에게 듣고 한 말에 따르면 자신이 처음 복진으로 시집왔을 때 홍력이 여의와 희월의 처소에만 가서 부찰가에서 랑화가 자식이 없을까봐 들인 사람이라고 한다. 친정에서 제영이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가 곧 랑화의 아이라 했고 그게 랑화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2] 다만 철민황귀비 부찰씨는 건륭제가 처음으로 들인 만주 정황기 소속의 격격으로, 만주 양황기 소속의 효현순황후 부찰씨를 복진으로 맞이하기 1년 전에 들인 사람이다. 팔기가 다르니 같은 성씨라도 직계일족은 아니며 성만 같은 수준. 본관이 다른 거라 이해하면 된다.[3] 태후와 복가의 말에 따르면 후궁들의 암투에 신물이 난 홍력이 심혈을 기울여 뽑은 후궁들로 부찰씨나 뉴호록씨처럼 강력한 공신 가문은 탈락시키고 암투에 희생될 만한 약한 가문도 탈락시켜 어느 정도 몸을 사릴 줄 알지만 자신은 보호할 수 있는 후궁들을 뽑았다고 한다.[4] 만주족에도 한족처럼 이씨, 최씨, 강씨 등의 성이 있었다. 홍력이 중간 계층의 후궁들로 뽑았다고 했으니 만군기 강씨로 추측된다. 실제 역사에서의 인물은 건륭제의 후궁 공빈 임씨.[5] 이 부분은 드라마와 원작이 다르다. 원작에서는 옥연의 부추김을 받아들인 랑화가 직접 한 일이며 드라마에서는 옥연의 사주를 받은 랑화의 시녀 소련이 몰래 손을 쓴다.[6] 드라마에서는 착하지만 자신이 장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런 면을 적모인 랑화가 거슬려 한다. "서장자가 감히 적자의 머리 위에 서려고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7] 영황이 살아있을 때는 죽어도 보러 가지 않다가 곧 사망할 것 같다는 말에 건륭 역시 영황의 잠저로 향했으나 결국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고 비통해하는 홍력의 모습이 참 가관이다.[8] 황제와 황후 사이의 아들이기 때문에 적자이다.[9] 원작에서는 여의가 6살밖에 안 됐는데 상서방에서 공부시키냐며 놀랐다.[10] 그러나 모후인 랑화의 말에 따르면 태어났을 때는 울음소리가 우렁찼다고 한다.[11] 드라마에서는 해란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다. 영련의 직접적인 사인은 처소로 날아든 갈대였는데, 직전에 해란이 갈대를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안 그래도 천식으로 오늘내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여의에게 씌워진 혐의가 고희월을 위시한 황후파의 모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해란이 손을 써서 명을 앞당겨버린 것.[12] 드라마에서는 힐방전으로 가는 장면은 삭제되었다. 랑화가 죽고난 후 영장과 소록균의 대화에서 이 내용이 나온다.[13] 그 뒤에도 소뢰자가 강여빈에게 진료받을 것을 권하나 역시 거절한다.[14] 9황자가 풍한에 걸렸을 때 강여빈이 쇄심의 다리에 대한 복수로 약에 쓴 약재를 추가해 9황자가 못 마시게 만들어 병을 악화시켰다. 심지어 김옥연이 유난을 떨어 시달리던 유모들도 약이 너무 쓰자 마시지 않아서 병이 더 낫지 않았다.[15] 임신한 몸으로 랑화의 장례를 치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이는 자업자득인데 랑화의 죽음에 옥연이 가담했기 때문이다.[16] 이 일을 처음 이옥에게 들었을 때 건륭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결발처(처음 맞이한 정실)에게 잘 대해 주지 않다니. 정도 의리도 없고 결발처를 자살하게 하다니 사람도 아니다."라고 한다.[17] 강희제의 8황자 윤사가 친왕의 외손녀이자 명문가 출신 곽락라 씨와 혼인했다고 해서 강희제가 태자로 생각한 게 아니었다.[18] 김옥연이 4황자를 효현황후의 양자로 들이려고 할 때, 계후의 아들은 정처의 아들과는 다르고 효현황후 소생들은 태어나자마자 후계자로 인정했는데 12황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19] 유비 해란의 처소[20] 여의가 죽었을 때는 용비가 영기를 데리러 직접 간다.[21] 이후에는 이름을 옹염이라고 개명한다.[22] 김옥연의 아들들이 그러하다. 처음부터 건륭은 이들을 공녀의 자식이라 하여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았다.[23] 드라마에서는 수강궁 태비들이 양육한다. 육목평은 경운을 양육한다.[24] 그도 그럴 것이 항착에게도 경시와 영경은 황실에서 얼마 안되는 황후 소생의 적출들이며 친조카이기도 하기 때문.[25] 드라마에서는 의환의 아들 10황자를 함친왕부에 보내면서 함친왕 부부가 유숙장공주를 양육했다고 한다. 그런데 함친왕 윤비는 건륭제보다 5살이나 어리다[26] 드라마에서는 어느 정도냐 하면, 7황자 영종 사망+랑화의 급격한 건강 악화 직후 진행된 동순(東巡)에서 건륭, 랑화, 여의, 록균이 랑화의 건강을 주제로 얘기 중인데, 록균의 "황후마마가 건강하셔야 신첩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어마마마는 국모이시니 당연히 부처의 보호를 받으실 것이며, 너희는 그래봤자 첩실일 뿐이니 어마마마를 잘 모시기나 하면 된다"고 한다. 다만 랑화와 홍력이 있는 곳에서도 대놓고 저런 말을 한 이유는 고륜공주인 경슬이 황귀비보다 높은 위치이기 때문이다.[27] 이 성격은 태후마저 잘 알고 있는데, 태후의 심복 복가의 대사에서 "(유일한 적녀라는 이유로) 화경공주의 성격이 몹시 오만하니 몽고로 화친을 보내는 것이 그 성격을 죽여놓기엔 딱 좋다"며 대놓고 언급된다. 본인이 말하며 본인이 고소해하는 표정은 덤[28] 7황자가 죽고 난 직후 아파서 누워있는 랑화에게 경슬이 "동생이 (먼저) 갔어도 어마마마께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어마마마의 의지할 곳이 되고 어마마마를 위해 힘낼게요"라고 위로하지만, 돌아온 랑화의 대답은 "딸이 무슨 쓸모가 있니, 아들이 있어야만 금상첨화의 구실을 하는 거잖니."라는 한탄 뿐이였다. 이 말에 경슬이 울먹이자 이내 랑화도 딸을 다독이며 네가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고 했다.[29] 원래는 유숙장공주가 시집갈 듯했지만 남은 딸마저 몽고로 시집보내고 싶지 않던 태후가 매빈에게 경슬을 시집보내게 만들라며 종용했고, 매빈은 "유숙장공주마저 몽고로 시집가면 태후의 세력이 더 커지게 된다"며 건륭에게 유숙장공주 대신 경슬을 시집보낼 것을 권유한다. 여의 역시 경슬을 치워버리고자 같은 말을 하고, 결국 건륭은 유숙장공주가 아닌 경슬을 시집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경슬에게 차마 직접 말하기는 두려운지 여의와 록균을 통해 경슬을 설득할 것을 지시한다. 이때 록균은 경슬을 좋은 말로 달래려고 하지만 그러면 네 딸을 시집보내지 그러냐는 경슬의 말에 찍소리도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의는 경슬에게 "사람은 자리에 맞는 책임감이 있고, 이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대놓고 말한다. 록균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하자 여의는 경슬이 부모의 고심을 모르니 명확히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경슬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 건 덤 결국은 나라와 부찰 가문을 위해 네가 가야만 한다는 랑화의 설득에 시집가게 된다.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으며 "황가에서 태어났지만 처지는 촌부보다 못하다"는 한탄에서 경슬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난다.[30] 경슬은 랑화의 사망 이후 예정대로 몽고로 화친을 가고, 2년 후 여의의 황후 책봉식에 참석한다. 경슬은 여의의 황후 책봉식 책사로 자신의 외삼촌인 부항(랑화의 남동생)을 쓴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게 되지만 건륭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며 일축한다. 건륭이 돌아간 이후 경슬은 죽은 랑화의 초상화 앞에 절을 하며 총애는 있다가도 사라지는 것이니 자신이 꼭 돌아와서 복수를 해주겠다고 다짐하며 여의의 책봉식이 끝나고 다시 몽골로 돌아간다.[31] 원배는 죽거나 이별한 첫 아내를 말한다. 랑화는 선제가 맺어준 건륭의 첫 아내로, 같은 황후라도 첩이었던 적이 있는 여의보다 격이 높았다. 소설에서는 건륭조차 여의는 계후라 귀하지 않다고 할 정도.[32] 7공주 출산 이후 답응으로 강등된 위연완이 자신의 외아들 경우가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준 것을 계기로 위연완과 결탁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건륭의 총애를 되찾고자 했던 위연완이 경우를 이용하여 벌인 자작극.[33] 파림씨: "황후의 자리만을 탐하는 사람이 자식 교육은 어떻게 하겠습니까?"[34] 이는 아버지인 홍력을 염려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35] 여의의 장례가 황귀비만도 못한 예로 치러졌고 경슬은 원배 황후 소생이기 때문에 입효하지 않은 듯하다. 랑화의 장례식에서는 모든 황자녀들이 나온 것과는 대조된다. 여의의 유일한 친아들인 12황자 영기 또한 상복을 입지 않았다.[36] 태후가 홍력에게 “애가가 친히 황후의 장례식에 다녀왔소. 그러나 대우가 너무 처참하오!”라며 따질 정도. 다만 여의는 죽어서나마 지긋지긋한 황실과 자금성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이러한 소망을 유언장에도 남겼으며 홍력 역시 이를 보고 여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37] 건륭제보다는 일찍 죽었다. 건륭의 27명의 자녀들 중 건륭보다 오래 산 아이들은 5명에 불과하다.[38] 사실 위연완이 몰래 김옥연의 개를 빼돌려 풀어놓은 것이었다.[39] 드라마에서는 경완의 이런 말을 듣고 눈이 뒤집힌 위연완이 그 입 다물라며 경완의 볼을 꼬집고 그 모습에 당연히 양모인 파림 미약은 분노한다. 급기야 연완은 지나가다 등판한 태후 앞에서까지 아이에게 양어머니는 친어머니보다 친밀하지 못한데 양어머니가 어떻게 진심으로 아이를 아끼겠냐는 말까지 해버린다. 안 그래도 건륭과 양아들-양어머니 관계인 태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로 들렸는지 아이는 누가 키우고, 또 누구를 따르고 싶어하느냐에 따라 누구의 아이인지 결정된다며 경완이 원하는 대로 영비가 계속 키우게 해준다.[40] 일반적으로 청나라에서 황제의 적녀는 고륜공주로 봉해졌고 서녀는 화석공주로 봉해졌다. 조선으로 치면 고륜공주는 '공주' 에, 화석공주는 '옹주'에 해당하는 셈. 물론 조선의 공주, 옹주와는 달리 모친의 지위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예외도 있었다.[41] 의수의 심복인 수하는 옹정황제의 여인의 원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소설판은 가공의 역사라 여의전의 전작으로 쳐줄 수 없고,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판에서는 삭제되었다.[42] 랑화파[43] 참고로 왕흠을 연기한 배우는 신 황제의 딸에서 제비자미의 처소인 수방재의 시위로 사대제자 중 소충자역을 맡았다.[44] 드라마에서는 소련이 연심이 말하려는 것을 가로 막는다.[45] 여의파[46] 쇄심에 대한 마음은 찐이라서 쇄심이 강여빈과 결혼할 때도 전혀 질투하지않고 불구인 자신이 쇄심의 신세를 망쳐서는 안되다며 순순히 받아들였다.[47] 8황자 영선은 5황자 영기에게 기마를 배우고 있었다. 이미 가귀비의 4황자가 건륭의 눈밖에 나 사면초가에 빠진 가귀비는 이 사고가 5황자가 영선을 견제했기 때문에 일으킨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8황자 낙마사고의 범인으로 5황자로 몰아갔다.[48] 영선이 불구가 되어 아프다고 우는데도 가귀비에 대한 악감정과 여의를 위한답시고 그대로 숨겨버린다. 이로 인해 낙마 사건의 진범이 누군지 가귀비도 건륭도 알 수가 없었다.[49] 드라마에선 소련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친정시녀라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원작에서는 연심이 친정시녀이다.[50] 소록균의 것인데, 홍력이 각 비빈들에게 어울리는 꽃비녀를 만들어서 보내줬던 것.[51] 랑화의 장례식 준비로 분주할 때 옥연의 시녀 정숙과 몰래 만나서 전해받는다.[52] 원래는 200냥에 팔려와 주방에서 장작을 패는 노비였다고 하며 이 부분에 대하여 아약이 나는 팔기 출신이고 너는 200냥에 팔려왔다며 그녀의 면전에서 대놓고 비웃는다. 사실 아약이 아무리 포의 출신이라곤 하나 기인과 민인의 차이는 엄청나다.[53] 경시가 가귀비가 키우는 개에 놀라서 쓰러지자 건륭이 부귀만을 냅두고 다 치우게 되었다.[54] 황귀비보다 지위가 높다.[55] 드라마에서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여의가 사용하던 은가위로 목을 그어 자결한다.[56] 여의가 거절하자 안타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는 해란은 덤[57] 고희월이 그래도 자기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잘 대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희월은 말심에게 자기가 남편감들을 골라 추천해놨으니 시집을 가 자신을 떠나도 좋다고 말했지만, 말심은 마지막까지 희월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녀에게만 충성했다. 결국 말심은 희월의 임종을 바로 옆에서 직접 지켰고, 울면서 "마마! 마마! 제가 마마의 복수를 해드리겠습니다! 꼭이요!"라고 다짐했다.[58] 희월이 잠에서 깨어나 말심에게 “상선은 어디있어?”라고 묻자 말심이 “상선은 옴에 걸려 죽었습니다. 다른 궁녀들도 마마에게 병을 옮길까 하여 모두 내보냈습니다.”라고 답한다. 희월은 “상선도 죽었구나..상선도 죽었구나…”라며 슬퍼한다. 여의와 더불어 자기 심복들을 잘 챙기고 끔찍이 생각한다.[59] 말심이 친정시녀로 보이지만 친정에서 함께 온 것은 상선이다. 보친왕부에 들어갈때 함께 왔고 말심은 희월의 수석시녀로 보친왕부에서 맞은 나인이다.[60] 그러니 희월이 죽기 직전 말심에게 내무부의 좋은자리로 보내주겠다고 한 것. 친정시녀라면 희월이 죽고 고가부로 돌아가면 되지만 말심은 궁인으로 선발되어 들어왔기에 희월 마음대로 자신의 친정으로 보낼 수 없다.[61] 옥연은 정숙이 끌려갔다는 걸 듣고나서부터 만삭인 상태에서 약조차 제대로 못 먹고 건강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멘붕에 빠졌고, 결국 고문을 받아 처참한 꼴로 나타난 정숙과 간신히 재회했을 때 서로 부둥켜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고향에서부터 함께 먼 타국으로 끌려와 고된 생활을 함께했기에, 옥연과의 정은 다른 후궁과 시녀들보다도 끈끈했을 것이다.[62] 대다수의 충복들이 그러하듯 정숙도 옥연의 소식을 듣고 자결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