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01:32:29

오카야마 카즈나리

<colbgcolor=#073190><colcolor=#fff> 오이타 트리니타
Oita Trinita
파일:8039_12980_4808.jpg
이름 오카야마 카즈나리
岡山 一成 | Okayama Kazunari
K리그 등록명 오까야마
한국명 강일성(康一成)
출생 1978년 4월 24일 ([age(1978-04-24)]세)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 미나미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포지션 센터백, 스트라이커
소속 <colbgcolor=#073190><colcolor=#fff> 선수 요코하마 F. 마리노스 (1997~2000)
오미야 아르디자 (1999, 임대)
세레소 오사카 (2001)
가와사키 프론탈레 (2002~2004)
아비스파 후쿠오카 (2005)
가시와 레이솔 (2006~2007)
베갈타 센다이 (2007~2008)
포항 스틸러스 (2009~2010)
콘사도레 삿포로 (2011~2012)
나라 클럽 (2013~2017)
감독 VONDS 이치하라 (2020~2021 )
오이타 트리니타 (2022~ / 코치)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클럽 경력
2.1. K리그 이전2.2. 포항 스틸러스2.3. K리그 이후2.4. 지도자 경력
3. 여담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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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계 일본인 축구선수이자 감독. 재일교포 3세 축구선수로 한국명은 강일성(康一成).

2. 클럽 경력

2.1. K리그 이전

여러 구단을 전전한 저니맨으로 J2리그에서 팀을 승격시키고 J리그에서는 벤치멤버로 대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선수가 유명한 이유가 따로 있으니 바로 오카야마 타임이다. 자신이 경기 엔트리에 없으면 관중석으로 들어가 서포터들을 독려해 응원을 지휘하기도 하고 경기가 없을때는 손수 구단 홍보물과 경기 홍보물을 돌린다. 이처럼 팬들에 대한 책임감이 높고, 쇼맨십이 투철하다.

2.2. 포항 스틸러스

2009 시즌,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그는 K리그 2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특히나 챔피언스 리그 결승은 도쿄에서 치러졌던지라 굉장히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1] 2009 시즌 동안 출전수는 많지 않았으나 리그와 리그컵, 클럽월드컵까지 출전하면서 출전 시간 대비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2010 시즌 초에는 반짝 활약을 하면서 회춘하는가 싶더니 결국 주전 경쟁에서 밀려버렸다. 시즌 종료 후 이뤄질 선수 정리에서 설기현과 함께 1순위로 꼽혔고 2010년 12월 1일부로 계약 만료.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했다.

2.3. K리그 이후

콘사도레 삿포로에서 2011 시즌에 리그 5경기, 천황배 1경기, 2012 시즌에 리그 5경기, 천황배 1경기, 리그 컵경기 2경기를 뛰었다.

2013 시즌에는 일본 풋볼 리그의 나라 클럽으로 이적했고 2017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2.4. 지도자 경력

2020년부터 관동 축구 리그 소속의 VONDS 이치하라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시즌 동안 지휘했다.

2022년, 오이타 트리니타의 코치에 취임햇다.

3. 여담

  • 팀을 떠난 후에도 포항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는지 2013년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히로시마 원정을 직관했다. 이를 본 포항빠들은 오카야마의 의리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기사 본인의 커리어 하이가 포항 시절이란 걸 감안해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이후에도 포항과 J리그팀의 경기가 있으면 홈,원정 가리지 않고 직관을 한다. 포항이란 팀을 어지간히 사랑하는 듯.
  • K리그 데뷔전에서 엉뚱하게도 본래 포지션인 센터백이 아닌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어찌된 사연이냐면 에이전트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활약상을 담은 비디오를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이 친구가 엉뚱하게도 헤딩골, 공중볼 경합 장면을 주로 편집해서 담아버렸다. 이를 눈여겨 본 파리아스 감독이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써먹어도 좋겠구나 라고 판단했던 것. 그래서 가끔씩 제공권 장악이 필요할때면 스트라이커로 써먹기도 했고, 실제로 2009 리그컵 4강 FC 서울 전에서는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쓰겠다고 교체했는데 교체하자마자 수비수인 김형일이 퇴장.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지만 그런 이유로 이후 포항이 앞서나가자 오카야마 카즈나리는 본연의 업무인 수비자리로 내려가서 경기를 마무리 했다. 이 날 경기를 본 해설진과 포항 관계자들은 파리아스 감독을 보고 "정말로 돗자리 하나 깔고 점쟁이해도 될것 같은데"이라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2]
  • 일본 축구 협회 A급 라이센스를 소지중이다.

4. 관련 문서



[1] 다만, 아쉽게도 경기는 뛰지 못했다. 팬들은 모두 마지막 교체 카드로 오카야마를 예상했지만...[2] 사실 김형일의 퇴장이 아니었더라도 오카야마의 투입이 신의 한 수 였던 점이 서울은 포항의 기존 공격패턴에 대한 대비를 잘 준비해 왔기에 공격에 어려움이 있었고, 오카야마의 투입으로 롱볼이 섞이기 시작하니 서울의 수비가 헐거워 지기 시작했다. 이 틈을 김재성, 노병준, 조찬호가 털어먹었고 덤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서울선수들의 멘탈이 터져버려 경기는 포항쪽으로 기울어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