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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외드(Eudes) |
출생 | 860년경 |
사망 | 898년 1월 1일 (향년 37세) |
재위기간 | 888년 ~ 898년 1월 1일 |
아버지 | '강철공'(르 포르) 로베르 4세 |
어머니 | 투르의 아델라이드 |
1. 개요
라틴어: Odo (오도)프랑스어: Eudes (외드)
서프랑크 왕국의 제6대 국왕. 처절했던 대바이킹 전쟁의 구국영웅으로 로베르 왕가의 시조였다.
서프랑크의 카롤루스 왕조가 단절된 이후 프랑스 왕국의 주인이 되는 카페 왕조의 시조 위그 카페의 큰할아버지(할아버지의 형)였다.
2. 생애
파리 백작이자 느스트리(네우스트리아)의 변경백으로서, 888년부터 승하할 때까지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이었다. 외드는 느스트리 변경백 로베르 4세와 투르의 아델라이드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로베르 4세 '강철공'이 866년 9월 15일, 브리샤트 전투에서 패배해 바이킹 수장 해스테인에게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동생인 로베르를 출산한 후 사망하자 외드는 어린 나이에 네우스트리아 변경백, 앙주의 백작이 되었다. 다만 네우스트리아 변경백 직은 브르타뉴와 바이킹을 상대하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위인데 이를 어린아이인 외드에게 맡기긴 뭣했던 터라, 샤를 2세는 네우스트리아 변경백위는 박탈해 다른 사람에게 수여하고, 앙주 백작위를 포함해 그가 아버지에게 수여받은 작위들은 이복형인 벨프 가문의 위그에게 맡겨 그를 보호하게 했다. 이후 성인이 되고 나서 위그와 파리 주교 등의 지지 덕분에 국왕을 대신해 파리를 다스리고 수호하는 직위인 파리 백작으로 임명된다. 얼마후 위그가 죽자 앙주 백작위를 포함해 원래 상속분을 모두 되찾았으며, 네우스트리아 변경백 작위도 돌려받았다.단 수백 명의 병력만으로, 조국인 서프랑크 왕국을 침략한 20,000여 명의 바이킹 군단을 물리치고, 왕국을 수호한 공로로 888년 1월, 비만왕 카를 3세가 폐위된 뒤 서프랑크의 귀족들에 의해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외드는 수차례 바이킹을 격퇴하는 업적을 이뤘지만 루이 2세의 유복자인 샤를 3세의 거센 도전을 받았다.
이에 동프랑크 왕국의 국왕인 아르눌프에게 사실상 봉신하고, 여러 차례 그의 소환을 받아 동프랑크로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샤를 3세의 도전을 받았다. 895년 보름스로 소환한 아르눌프의 명령에 따라 외드는 많은 조공품을 가져갔지만 샤를 3세는 오지 않았고, 이에 분개한 아르눌프는 외드가 보유한 서프랑크 왕위의 정통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자식이 없었던 외드는[1] 결국 정적이었던 샤를 3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고, 898년에 승하했다.
3. 매체에서
-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3에서 867년 북마크의 조연 중 하나로 등장한다. 아버지를 죽인 헤스테인과 경쟁자 관계라 암살 시도가 자주 들어오니 조심해야 한다.
[1] 외아들인 아르눌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부왕 외드보다 먼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