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15:32:35

샤를 욍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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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énéral_Charles_Huntziger.jpg
이름 Charles Huntziger
샤를 욍치제
출생 1880년 6월 25일
프랑스 제3공화국 피니스테르 주 레스느뱅
사망 1941년 11월 11일 (향년 61세)
비시 프랑스 루비 강 인근
복무 프랑스 육군
시리아 식민군
2군단
비시 프랑스군
국방부 장관
최종계급 대장(Général d'armée)
주요참전 프랑스 전투
서훈 레지옹 도뇌르 훈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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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프랑스, 비시 프랑스의 육군 장군.

2. 생애

욍치제는 독일계 프랑스인[1]으로 1880년 피니스테르 주 레스느뱅(Lesneven)에서 태어났다. 1900년 생시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식민군에 입대하였다. 1차대전기 동안은 주로 중동 전역에서 연합군 원정군의 작전참모장으로 근무하였다. 무르도스 정전 협정을 이끌어낸 발칸 반도 일원에서의 루이 프랑셰 데스페레 장군의 바르다르 공세에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1933년 욍치제는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 지중해 연안(오스만 시리아)의 프랑스 위임통치령 시리아의 지휘관이었다. 당시 오스만 시리아 지역의 북부 지방인 하타이 지방에 대한 터키로의 할양 협상을 맡기도 하였다. 이후 1938년에는 전쟁최고회의에 소속되어 본국으로 돌아온다.

나치 독일에 의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프랑스 4집단군 예하의 아르덴에 있던 2군의 사령관으로 보임받는다. 당시 프랑스 군은 당연히 아르덴을 통과해 오리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욍치제는 독일 국방군의 움직임을 파악했음에도 전선 구축에만 주안점을 두었었다. 때문에 아르덴 숲을 돌파한 독일 클라이스트 기갑집단, 특히 욍치제는 그 중에서도 하인츠 구데리안의 19기갑군단에 무너진다. 이후 독일 국방군에 의해서 엠신공을 당하면서 완전히 무너진 프랑스는 항복하게 된다.

1940년 5월, 항복한 프랑스는 필리프 페탱을 수반으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게 되는데, 이때 욍치제가 프랑스와 프랑스 육군 대표로 나치 독일과의 정전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의 굴욕을 되돌려주기 위해서 당시 사용되었던 열차 차량을 프랑스까지 가져가서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였다. 욍치제가 열차에 들어갔을때 서로 경례를 주고받은 뒤 히틀러는 아무 말 없이 열차에 나와 돌아갔고 빌헬름 카이텔과 정전협상을 진행하였고 욍치제는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것에 대한 대가 및 독일 점령지역에 대한 치안 및 방어의 이유로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는 것에 서명하게 된다.

이후 비시 프랑스가 성립되어 비시 프랑스 전쟁국무장관[2]으로써 재임하게 된다. 재임 기간 동안 비시 프랑스에서 반유대인에 관한 법률의 입법에 대해서 수반 필리프 페탱 및 내각 일원들과 함께 서명하기도 하였다.

1941년 11월, 욍치제는 북부 아프리카의 시찰을 마치고 비행기로 돌아오는 길에 항공기 통신 문제 및 기상 악화로 르비강의 공항에서 착륙사고로 죽었다.


[1] 이름도 프랑스어 발음인 [œ̃tsiʒe\](욍치제)일 뿐 독일어 이름인 훈칭어(Huntzinger)와 같은 이름이다.[2] 국방부 장관 격. 기존의 전쟁국방부에서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비시 프랑스 초대 전쟁국방부 장관은 막심 베이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