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9 10:06:32

요한 네포무크

체코어 : Svatý Jan Nepomucký ( 네포무츠키)
라틴어 : Sanctus Ioannes Nepomucenus
독일어: Johannes Nepomuk

1. 개요2. 순교의 전설3. 소원을 들어주는 카렐교의 동상

1. 개요

'네포무크의 성 요한' 또는 '요한 네포묵'이라고도 불리는 가톨릭성인. 고해성사의 비밀, 나아가 가톨릭 교회법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사람으로, 체코의 국민 수호성인. 또한 고해자, 비방 받은 사람, , 다리, 익사자, 홍수 피해자의 수호성인이다. 축일은 5월 16일.

네포무크 촌장의 아들로, 본래 이름은 벨플린(Jan Velflín). 하지만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가문 이름을 대는 대신 그냥 '네포무크에서 온 얀'이라고 했다고 한다. 프라하 대학교에서 기독교의 교회법을 공부하다가 이탈리아 파도바로 건너가 유학하고 돌아와 사제가 되었다. 1389년에는 프라하의 요한 젠슈타인 대주교 총대리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1393년 보헤미아 왕국 국왕 바츨라프 4세[2]에 의해 체포되어 3월 20일에는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고 순교, 시체는 카렐교에서 블타바 강에 거꾸로 던져졌다. 어떤 문헌에서는 아예 동그랗게 결박당하고 발에는 돌이 달려 강물에 던져져 생매장당했다고도 한다. 성해(聖骸)는 4월 17일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어, 체코에서 가장 큰 프라하의 성 비타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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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독일에서 기념 우표가 발행되기도 했다.

2. 순교의 전설

보헤미아 국왕 바츨라프 4세와 프라하 대주교 간의 사이가 좋지 않을 시기, 요한 네포무크는 바츨라프 4세의 2번째 부인인 바이에른의 조피 왕비의 고해신부였다. 어느 날 국왕이 왕비가 저지른 잘못을 알아내기 위해 왕비가 고해했을 요한 네포무크를 불러 그녀가 한 고해내용을 말하라고 했는데, 사제는 신이 금하는 것을 할 수 없다며 단호히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대충 이런 패턴인데 조금 더 깊숙히 들어가보자면, 왕비가 자신에게 정부가 있었음을 고해하던 것을 신하가 엿듣고 왕에게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왕이 요한 네포무크에게 정부의 이름을 대라고 캐물었지만 거절했다는 이야기였다. 왕은 그에게 자신에게 그 내용을 말할 수 없다면 누구 하나의 생명에게 말해 보라고 했고, 그는 옆에 있던 개[3]에게 뭔가 귓속말을 했다. 확실히 하나의 생명에게 뭔가 말하긴 했지만, 그 모습을 보고 왕은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대립교황을 지지하는 국왕과 로마의 교황을 지지하는 프라하 대주교 사이에서 낑겨 있던 요한 네포무크가 클라드루비(Kladruby) 베네딕토회 수도원의 원장 선거에 참석하여 상관인 프라하 대주교 쪽이 내세운 후보에 1표 던지자, 빡침이 극도에 달한 바츨라프 4세는 그 즉시 병사들로 하여금 그를 체포하게 하여 고문하고 죽였다. 프라하 대주교 요한 젠슈타인은 교황 보니파시오 9세에게 왕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는 동시에 아직 시성되지 않았던 때의 요한 네포무크를 벌써부터 '순교성인'이라 칭하는 등 극도의 존경을 표시했다.

이 사건의 연장선상으로, 폐위당한 바츨라프 4세 국왕이 로마 교황에 대항하여 얀 후스를 지지했지만 그가 처형당하자 후스 전쟁으로 발전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얀 지슈카 항목 등을 참고.

3. 소원을 들어주는 카렐교의 동상

요한 네포무크를 나타내는 상징물은 5개의 로 이루어진 후광, 소백의, 영대, 십자고상, 종려나무 잎 등. 때에 따라서는 비밀을 지키는 의미로 왼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후광의 별이 5개인 이유는 유사성인에 주의하라는 게 아니고, 그가 죽고 난 뒤 5개의 별 모양의 빛이 강 위에 떠올라 사람들이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전설에서 기인하기도 하고, '나는 침묵했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tacui의 5개의 문자에서 비롯된다고도 한다.

그러한 그를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는 게 바로 아래에 있는 카렐교의 동상. 여담이지만 바츨라프 4세는 카렐교 이름의 기원인 카렐 4세의 아들인데 그 다리에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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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교에 있는 네포무크의 동상 그 아래에 있는 신비의 부조(...)

프라하의 카렐교에 제일 먼저 세워진 동상이 바로 1683년에 제작된 요한 네포무크의 성상이며, 그 아래에는 성인의 발자취를 새긴 2개의 부조가 있다. 왼편에는 네포무크에게 고해하는 왕비를 뒤로 바츨라프 4세와 그의 개가 조각되어 있고, 오른편에는 거꾸로 매달려 강에 떨어지려 하는 네포무크와 그를 지켜보기를 강요받으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마는 왕비가 조각되어 있다. 각각 매달린 네포무크 신부 부분이 금빛으로 빤딱빤딱한데, 이 부분에 손을 대고 소원을 하나만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기 때문. 네포무크의 상 앞에는 카렐교를 건너던 관광객들이 이곳에 한 번이라도 손을 대기 위해 줄을 선다고.

카렐교 난간 어딘가에는 요한 네포무크가 강으로 떨어져 순교한 자리를 나타내는 십자가 모양의 표지가 있다.

카렐교에 세워진 다른 성인들의 목록은 이곳(영어판 위키백과)을 참고하면 된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 4회(180720)에서 할배들의 프라하 성 관광 중 언급되었다.

참고로 신비한 티비 서프라이즈 2013년 10월 27일 방송(259편 - '말할 수 없는 비밀' )로 방영했다.

[1] 당시 이름은 포무크.[2] 보헤미아 국왕으로서는 바츨라프 4세, 독일왕으로서는 벤첼.[3] 뜬금없이 왕궁에 개라니 뭔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중세 유럽 당시 영주들의 성에는 개를 기르는 경우가 흔했다. 사실 그냥 기르는 것도 아니고 식당에도 왔다갔다 하게 놔두면서 바닥에 떨어진 음식이나 잔반을 처리하게 했다. 그래서 중세 유럽을 묘사한 매체를 보면 거의 대부분 식탁 밑에 있는 개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