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23:41:41

옥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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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3. 내용4. 창작물 속의 옥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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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FB_IMG_1551607921245.jpg
경복궁 근정전의 옥좌
옥좌(, Throne)는 군주가 앉는 의자로, 왕좌(), 보좌(), 용상(龍牀)이라고도 한다.

2. 어원

한자 옥좌는 진시황과 함께 태어났으며, 왕칭이던 타국의 군주들의 위에 서는 으뜸의 상징으로서 왕 위에 백색으로 빛나는 옥장식을 단 황()자를 만들어 사용했기에, 그 자리 또한 옥좌라고 칭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영어의 스론은 고전 그리스어의 θρόνος에서 유래한 것으로, 단순히 발걸이가 있는 특정 형태의 의자를 가리키는 단어였으나, 지도자나 신을 모시는 자리에 쓰게 되면서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3. 내용

권위의 상징인 바 호화로운 외관을 갖추었다. 서양의 경우 등 문화권에 따라 특별히 정해진 형태는 없지만, 동아시아의 경우는 시황제의 아방궁 이래 황제의 체제가 확립되면서 일정한 형식이 있다. 조선시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임금이 정무를 보는 편전 안에 계단이 있는 당집을 짓고, 계단을 오르면 옥좌가 자리하고 있으며, 뒤에는 병풍으로 일월오악도를 두른다. 일본의 경우는 당집 대신 한 단 높은 다다미 바닥에 보료와 병풍을 둘렀고 오늘날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식 시에도 관측되었다.

왕관에 비견될 정도로 옥좌의 상징적인 의미는 절대적이며, 군주 대신 실권을 완전히 장악한 신하나 왕족도 공식적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옥좌에 앉을 수 없었다. 한반도는 삼국시대 이후로 그다지 화려한 왕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인지 왕관보다 옥좌가 왕권의 상징으로 더 유명하다. 사극을 보면 섭정(수렴청정)이나 상왕 등 군주를 대신하는 이들도 옥좌에는 앉지 않고 그 근처에서 서 있거나 별도의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도 그러했다.[1] 수렴청정은 보통 왕 뒤에서 옆을 보고 앉아 을 쳐놓고 있는 것으로 사극에서 그려지는데, 편전에서 정무를 볼 때 섭정을 보는 사람은 지위에 따라 당집 위로 올라가서 옥좌의 좌측이나 우측 아래에 앉았다.

다만 사극의 제작비 특성상 편전의 옥좌에서 정무를 보는 장면이 과거에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실내 스튜디오에서 왕이 기거하던 사정전 내부를 나타낸 듯한 한옥 방 안을 세트로 지었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왕이든 신하든 모두 앉아서 정무를 본다. 현재는 제작비 여건이 좋아져서 왕이 편전에서 정무를 볼 때 가끔 등장하며 많은 작품에서 옥좌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옥좌가 있어도 당집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신하들도 그 앞에 시립해 있기 때문에 자세히 보면 건물 구조가 성당마냥 세로로 길다. 작품 중에서는 사도(영화) 첫머리에서 대조(영조)와 소조(사도세자)가 어좌의 높이를 달리하여 대리청정을 하는 것이 잘 나타나 있다.

영국을 제외한 영연방 왕국에서는 예외가 있는 듯하다. 캐나다 오타와 국회의사당 상원에 있는 옥좌는 의회 개회식 때 캐나다 국왕이 직접 오지 않는 한 그의 대리인인 총독 부부가 앉는다. 2015년 의회 개회식에서 옥좌에 앉은 존스턴 前 총독 부부 곁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모습이 이채롭다.

몇몇 나라의 경우, 옥좌에 올라가는 계단의 갯수에도 차등을 준다. 일례로,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의 옥좌로 올라가는 계단은 7단인데, 정전이 아닌 그보다 낮은 등급의 전각에 있는 옥좌는 계단의 갯수가 줄어든다. 영화 〈마지막 황제〉 마지막 장면은 실제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의 옥좌에서 촬영한 것이므로 당연히 이에 관한 가장 정확한 묘사가 나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권을 상징하는 수단이자 다수의 통치자가 사용해온 것이기도 하며, 고대 그리스근동에서 사용했을 정도로 그 역사 또한 오래되었다. 권위의 상징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사용 분야 또한 단순히 정치적인 분야에 그치지 않고 가톨릭이나 불교 등의 종교적인 분야에서도 사용된다.

국가에 따라 실제 사용된 이름이 다르며 조선시대에는 용상(龍床), 어탑(御榻)이라고 하였으며, 군주가 용상에 앉아야 어전회의 등 조정의 정무가 시작되었다. 청나라 자금성의 옥좌는 롱이(용의/龍椅), 일본 황실 교토 어소의 옥좌는 타카미쿠라(고어좌/高御座), 인도 아대륙의 국가들이나 티베트 왕국 포탈라궁의 어좌는 심하사나(सिंहासन/Simhasana/사자좌/獅子座)라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몇몇 나라의 옥좌에 대한 별칭이 있으며, 왕위에 대한 비유로도 사용되며 대부분은 실제 해당국에서 사용하던 명칭의 번역어이다. 한국은 Phoenix Throne, 일본은 Chrysanthemum Throne, 중국 / 월남은 Dragon Throne, 티베트(달라이 라마)와 시킴은 Lion Throne, 페르시아는 Sun Throne[2], 무굴 제국은 Peacock Throne, 에티오피아 제국은 Throne of David, 스웨덴은 Silver Throne[3]으로 부른다.

스코틀랜드운명의 돌은 14세기부터 1995년까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었으며, 엘리자베스 2세 대까지 영국(잉글랜드를 포함한 연합 왕국)의 왕은 이 돌 위에 놓은 옥좌에 앉아 즉위식을 올렸다. 찰스 3세의 경우도 2023년 즉위식 당시 에든버러 성에서 런던까지 운명의 돌을 옮겨와 즉위식을 치렀고, 이후 다시 에든버러 성으로 반납되었다.

세계의 여러 신화나 민담에서도 등장하며, 천국이나 지옥 등의 높으신 분들은 거의 100%의 확률로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쿠데타 등으로 한 나라의 군주를 폐위시킬 때 "옥좌(왕좌)에서 끌어내리다"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이동식 옥좌도 있다.

서브컬처에서도 종종 등장하며, 형태 또한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다. 주로 악의 조직우두머리 등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평상시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로 있지만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나면 무시무시한 능력을 한 번씩 보여주곤 한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왕국 중에는 옥좌가 높은 계단 위에 있고, 계단 옆에 왕의 대리인이 앉는 의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왕이 귀환하지 않아서 사실상 국가를 통치하고 있지만, 대리인의 신분은 어디까지나 대리인일 뿐이기 때문.

4. 창작물 속의 옥좌


[1] 종종 상왕과 금상이 있을 때 상왕이 옥좌에 앉아 있고 금상이 아래에 별도로 마련한 의자에 앉는 연출을 보이는데 이는 고증오류이다. 그러나 상왕과 금상이 보통 부자(父子) 관계인 경우가 많은지라 그저 금상의 효심과 상왕의 권위를 보여주고 이를 시청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부득이 암묵적으로 용인하곤 한다.[2] Naderi Throne이란 표현도 있다. 하지만 본래 무굴 제국의 왕좌를 가리키는 호칭인 Peacock Throne이 페르시아 옥좌명으로 훨씬 더 많이 쓰인다. 무굴 제국 옥좌명이 페르시아와 엮이는 이유는, 1739년 페르시아(이란)의 아프샤르 왕조를 개창한 나디르 샤가 무굴 제국의 델리를 함락했을 때 전리품으로 가져와서.[3] 바사 왕조 이래로 스웨덴 군주들의 대관식에 사용된 은의 옥좌[4] 일단 세계의 왕을 상징하는 옥좌긴 하지만 '단 한 명의 왕을 만들지 않는다'는 창건자들의 맹세에 따라 그 상징으로서 800년간 누구도 앉은 적이 없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