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1 13:07:19

쥐스탱 트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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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댓수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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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연방의 제23대 총리
The Right Honourable[1]
Justin Trudeau
PC 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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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Justin Pierre James Trudeau
쥐스탱 피에르 제임스 트뤼도
국적캐나다 파일:캐나다 국기.png
출생1971년 12월 25일
온타리오오타와[2]
학력장 드 브레뷰 칼리지[3] (전문학사) (1989-1991년)
맥길 대학교 (문학 / B.A.) (1991-1994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교육학 / B.Ed.) (1996-1998년)
정당'''[[캐나다 자유당|
자유당
]]'''
지역구파피노[4]
의원선수4 (하원)
직업정치가, 교사
배우자소피 그레구아르 (2005년 결혼)
신체188cm
종교가톨릭[5]
재임기간2015년 11월 4일
봉금350,000 CA$
서명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Signature_Justin_Trudeau.svg.png

1. 소개2. 생애
2.1. 총리 이전의 삶
3. 2015년 캐나다 총선
3.1. 2006-2011년 스티븐 하퍼 총리 기간3.2. 2011년 신민주당 잭 레이튼 돌풍3.3. 2013년 캐나다 자유당 전당대회3.4. 2015년 캐나다 총선
4. 2019년 총선
4.1. 2기 내각
5. 정책6. 비판
6.1. bill c-16
6.1.1. 반론
6.2. 그 외6.3. 직권남용6.4. 교사시절의 분장
7. 논란
7.1. 성추행 의혹
8. 여담9. 가족

1. 소개

캐나다의 정치인. 하원 의원(4선, 파피노 지역구)이자 제 23대 총리이다. 자유당 소속.

2018년 기준 만 46세로, 캐나다 역사상 두 번째로 젊은 총리[6] 이자 미남 총리로도 유명하다. 캐나다의 거물 정치인 중 한 명이었던 피에르 트뤼도[7] 전 총리의 장남이기도 하다.

2010년대 현대 들어와 독자적으로 총리라는 캐나다 정치의 정점을 차지한[8] 쥐스탱 트뤼도의 삶을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설명하는 건 본인에겐 매우 억울한 일이겠지만, 어쨋든 현 트뤼도 총리의 인생과 부상에서 캐나다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엄청난 거인인 그 아버지의 영향력을 빼놓을 순 없다.

젊은 나이와 진보적인 정치 성향 때문인지 쥐스탱 트뤼도는 캐나다의 오바마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9]

2. 생애

2.1. 총리 이전의 삶

오타와 출신으로, 1971년 12월 25일 (토요일)에 태어났다.

파일:external/www.theloop.ca/trudeaubaby-1024x831.jpg

아버지는 캐나다의 총리를 지낸 거물 정치인 피에르 트뤼도(1919-2000)[10], 어머니는 마가렛 트뤼도[11]로, 한창 재임 중이던 현직 총리의 장남으로 태어나 성장기 내내 캐나다 국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랐다.

파일:external/www.macleans.ca/MAC22_AMERICAN-DYNASTY_CANADA_CAROUSEL-1024x576.jpg

캐나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

사진은 공식 행사 중 아들 쥐스탱 트뤼도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옆구리에 안고 행사장을 벗어나는 장면이다. 왕립캐나다기마경찰(RCMP) 경호장교가 아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경례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장난으로 총리에게 경례를 했고 총리는 이에 겸연쩍게 웃고 있다. 총리로서의 본분과는 별개로 여러가지 사적인 스캔들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도 총리의 자리를 떠나 결국 한 아들의 아버지라는 걸 보여준 인간미 넘치는 사진이라 캐나다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총선 직전,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가 총리 재임 당시 경호원의 아들인 현직 경찰이 그 사진을 건네주는 장면.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 기자단에게 사진을 설명한 후 자신이 그 경호원의 아들이라고 밝혀 현장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는 총리 재임 중 여러 가지 기록을 남겼는데, 재임 중 결혼, 재임 중 아이 3명, 재임 중 이혼, 거기에 혼외정사+사생아까지.[12] 아버지 트뤼도가 워낙 야심이 컸던 양반이었던지라, 미국의 케네디 가문처럼 자신도 캐나다에 정치 가문 비슷한 것을 남기길 희망하여 지저분한 법정공방까지 불사하며 결국 세 아들의 양육권을 받아낸다.

여담으로 어머니 마가렛은 여배우 출신으로 당시 정치가였던 피에르 트뤼도와는 무려 나이가 29살차였는데, 이를 극복하고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쥐스탱 트뤼도는 외모는 어머니로부터, 말빨과 카리스마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이는데,좋은 것만 뽑아먹었다 10월 위기(October Crisis)로 캐나다가 계엄령을 선포했을 당시 피에르 트뤼도가 기자들을 말빨로 데꿀멍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한때 영부인이었던 마가렛은 다시 재혼했으나 1999년 다시 이혼한다. 이혼 사유는 1998년 피에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 중 셋째가 사망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일:external/d0e57a9001f96f60d2efcdebb281c55be6b4295a2a28f4746cd5bc4ffe71758f.jpg
쥐스탱 트뤼도의 어머니 마가렛의 젊은 시절.

크게 주목받은 것과 아버지의 야심과는 다르게 처음에는 정치에 미련을 두지 않았는지, 맥길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제대로 된 직장 없이 중학교 임시 교사, 스키 강사 등으로 어떻게 보면 겉도는 청년기를 보냈다. 추측컨대 부모님의 이혼, 1998년 샛째 동생이던 미셸 트뤼도(Michel Trudeau)가 브리티쉬 콜롬비아의 한 리조트에서 산사태로 사망/실종된 사건 등이 겹치면서 심적 스트레스가 컸던 듯하다.

그랬던 그가 어른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이며 캐나다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정치인으로써의 자질을 보인 계기는, 29살 때인 2000년도에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의 장례식 추모사를 낭독할 때였다. 이때 차분하면서 슬프기보다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추모사가 캐나다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는지 이후 계속하여 정계 진출 권유를 받게 된다.


추모사 낭독 영상.


정치에 막 투신할 때 살짝 흑역사가 있는데, 캐나다 CBC 불어방송 인터뷰 때 파티 트릭이라며 선보인 게 계단에서 술취한 척 굴러떨어지기...

2008년 자유당의 텃밭 중 하나였던 퀘벡주 몬트리올의 파피뉴 지역구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공식적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2013년 캐나다 자유당의 당수로 선출되었다. 후술하겠지만 총리로 확정된 다음 날에 파피뉴 지역구 지하철역에 가서 출근하는 시민들과 악수를 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3. 2015년 캐나다 총선

2015년 캐나다 총선의 대략적인 배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3.1. 2006-2011년 스티븐 하퍼 총리 기간

2006년, 보수당과 보수당 당수 스티븐 하퍼는 1993년부터 13년째 장기 집권 중이던 자유당을 제치고 각각 원내 여당과 제22대 캐나다 총리로 집권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상승세를 유지하던 유가 덕에 한창 셰일 가스를 개발하고 있던 캐나다의 달러는 강세를 보였고[13], 덕분에 경제가 순항하자 스티븐 하퍼 총리는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3.2. 2011년 신민주당 잭 레이튼 돌풍

하지만 2011년, 캐나다 정계가 크게 재편되기 시작한다. 보수당 집권의 피로감+하락세를 보이는 유가+슬슬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권력 누수 및 비리 사건 파장 등으로 2011년 캐나다 총선을 앞두고 잭 레이튼이 이끌던 사민주의 성향의 좌파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Nouveau Parti démocratique)이 선거에서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킨 것이었다. 여담으로 신민주당 돌풍의 주역 잭 레이튼은 예전에 암 투병을 하다 완치선고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선거기간 중에 암이 또다시 재발했다. 하지만 선거 유세를 계속하면 목숨이 위험하니 일정을 접고 치료에 열중하라는 의사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세 뽕에 취해 기세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선거 유세에 나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신민주당이 100석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며 제1야당이 되었지만, 엉뚱하게도 보수당이 어부지리를 얻어 다시 집권하게 된다(...). 자유당과 신민주당의 지지층이 상당히 겹치는데, 잭 레이튼의 카리스마에 상당수의 자유당 표가 이탈했고[14][15], 거기에 캐나다 많은 지역은 성향이 비슷한 지지층들이 나뉘어질 경우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소선거구제[16]를 투표제도로 삼고 있어 결과적으로 야권 분열 덕을 본 보수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총리를 배출하는 결과를 낳은 것.

결국 2011년, 보수당은 집권 연장에 성공했고, 신민주당은 의석수를 기존 36석에서 103석으로 크게 늘리며 원내 공식 야당(제1야당)으로 약진했으나 문제는 기존 공식 야당이던 자유당이 그야말로 지리멸렬한 것. 쥐스탱 트뤼도를 포함해서 일부 인사만 재선되고, 당은 원내 제3당으로 추락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신민주당에 악재가 터지는데, 바로 앞서 말했던 신민주당 돌풍의 주역 잭 레이튼이 선거 종료 후 약 3개월만에 암 재발로 결국 사망한 것이었다.

잭 레이튼의 부인 중국계 캐나다인 올리비아 차우가 그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녀는 남편에 비해 언변이 딸렸고 이민으로 시민권을 딴 경우라 야당 당수까지면 모를까 여당 당수 겸 총리로는 아무래도 모자람이 있었고 결국 이후 토론토 시장 선거에서도 패하는 등 하락세를 타다 중앙정치무대에서 밀려나게 된다. 여러 당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신민주당 역시 뛰어난 우두머리가 나타나자 갑자기 세상을 다 집어삼킬 것처럼 세력을 불리다가도 우두머리가 후계자 없이 갑자기 사망하자 당세가 위태로워진 것. 이후 신민주당과 자유당은 새로운 리더를 선출하며 각각 재건에 나선다.

그런데 쥐스탱 트뤼도 총리 문서에 왜 신민주당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가... 오히려 신민주당 문서가 부실하다!!

3.3. 2013년 캐나다 자유당 전당대회

2011년 총선에서 34석으로 쪼그라든 캐나다 자유당은 말 그대로 충격에 빠진다. 결국 2011년 총선 당시 당수였던 마이클 이그나티프(Michael Ignatieff)가 사임하고, 온타리오 주 총리를 지냈던 밥 레이(Bob Rae)가 2013년까지 임시 당수를 맡아 자유당을 이끌어나간다. 이후 2012년 11월 14일부터 2013년 4월 14일까지 공식적인 자유당 당수 선거전이 진행되었는데, 이 선거에서 쥐스탱 트뤼도 당시 파피뉴 지역구 의원이 총 78.76%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받아 자유당 당수로 당선된다.

40대 초반의 트뤼도가 자유당 당수로 취임하자, 언론에서는 만신창이가 된 자유당을 2015년 총선 전까지 재건하려는 자유당 내부의 꼼수, 즉 아버지 트뤼도의 후광을 노린 얼굴마담 아니냐는 조롱도 당연히 많이 나왔다. 트뤼도는 나이도 어린 데다 당시 겨우 초짜를 면한 재선 국회의원이었던지라, 이후 2015년 총선 때 캐나다 보수당에서 이 경력을 가지고 선거기간 내내 네거티브를 했을 정도였다.

3.4. 2015년 캐나다 총선

처음에는 진보층의 지지를 많이 받는 신민주당과 보수층의 지지를 많이 받은 보수당에 밀려 지지율 3위로 선거를 시작했으나, 2011년 총선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보수당이 더이상 집권하기를 바라지 않는 신민주당 지지층들이 트뤼도의 신선함을 믿고 선거 몇 주 전부터 자유당으로 다시 많이들 넘어왔고, 결국 총선에서 자유당은 과반을 넘어 184석을 획득하며 대승, 트뤼도는 캐나다 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여기도 결국 아버지의 후광을 더해 집권한 것이지만, 보수당의 장기집권에 질린 캐나다 사람들의 지지에, 이듬해 남쪽 나라의 정권교체까지 더해지며 북미 지역의 기대감을 한몸에 받게 된다.캐나다가 G7의 일원이라지만, 영토(러시아에 이은 세계 2위)에 비해 인구가 너무 적은데다 사실상 자원(석유가 대부분) 수출 말고는 독자적인 산업이랄 것도 없어 미국에 끌려다니게 되지만

4. 2019년 총선

파일:2019 Canadian federal election Map.png
빨강: 자유당 (157석), 파랑: 보수당 (121석), 주황: 신민주당 (24석), 청록: 퀘벡당 (32석), 녹색: 녹색당 (3석)

2019년 9월 10일에 제42대 의회가 해산됨에 따라 11일부터 선거전에 들어갔다.#

트뤼도의 권력 남용 스캔들과 교사 시절 인도인 분장 논란 등 잇단 악재가 터졌지면서 자유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이 아닌가란 전망이 높아졌지만, 상대인 보수당의 앤드루 쉬어 대표 또한 낙태 반대, 동성결혼 반대 논란 등을 연거푸 일으키며 선거 기간 내내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고, 최종 여론조사에서도 양 당이 0.4% 차이로 근접하여 승부를 알기 어렵게 되었다.

선거 결과, 지난번 선거 결과인 184석보다 27석 적은 157석을 얻어 과반 유지에 실패했으나 1당 유지에 성공하여 소수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트뤼도 총리 부자의 고향이기도 한 퀘벡 주에서 분리주의 지역정당 퀘벡 블록이 의석을 32석으로 불리며 자유당 표를 많이 깎아먹었지만, 연방총선 최대의 승부처인 GTA[17]를 필두로 한 온타리오 주에서 의외로 매우 선전하며 이 곳에서 2015년 선거보다 고작 1석 줄은 79석을 건진 게 승리의 비결. 다만, 총 득표수 자체는 서스캐처원이나 앨버타 몰표 버프를 받는 캐나다 보수당에 밀리기는 했다. 한국 20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이 득표수는 TK와 서부경남 몰표로 1위를 했으나 정작 지역구 당선자수는 더불어민주당에 5석 차이로 밀리는 식으로 3년 앞서 구현되었던 시나리오이기도.[18]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이 승부처인 수도권의 선전을 바탕으로 적은 득표수에도 불구하고 제1당에 오른 것을 보면 완전히 판박이다. 대한민국과 캐나다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완전히 동일[19]하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20]

4.1. 2기 내각

10월 24일. 최종적으로 연정 구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캐나다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여타 국가들과는 다르게 중앙정부 레벨[21]에서 연립정부가 구성된 적이 없어, 제1당 의석수가 과반에 미달하더라도 일단 소수정부(minority government) 형태로 내각이 출범해 왔다.[22] 쥐스탱 트뤼도의 경우 2015년 총선에서 소속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음에 따라 총리로 일단 임명은 되었고, 2019년 총선으로 새로 구성된 의회가 불신임결의안을 통과시키거나, 본인이 먼저 사직하지 않는 한 총리직을 지킬 수 있다. 현재 의회 구성 상 자유당보다 더 좌측에 있는 신민주당 의석 24석을 합하면 181석으로 재적 과반인 170석을 상회하므로 트뤼도가 불신임결의를 맞을 확률은 높지 않다. 제1당이 의회 재적 과반에 미달하더라도 불신임결의를 최대한 자제하며 1당의 정부 운영을 용인해 주는 캐나다 의회정치의 불문율도 있고.

5. 정책

이전 집권당이었던 보수당이 시민들의 표심을 잃어 2015 선거에서 트뤼도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된 계기가 되었던 F-35 도입을 취소했다. 정확하게는 F-35 수의 계약을 취소하고, 기존의 F-35에 더하여 F/A-18E/F 슈퍼호넷과 프랑스제 라팔 등이 참여한 경쟁입찰로 바꾼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향후 5년 동안 적자를 내서라도 돈을 많이 써서 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스티븐 하퍼의 지도 아래 셰일 가스로 위시되는 에너지 산업에 치중했던 캐나다의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인 듯. 또한 중산층에게 부과하던 세금을 줄이고, 1%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거두겠다고 밝혔다.

다문화주의를 중요시하여 우주비행사에서 버스운전사, 장애인, 시크교도,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캐나다 역사상 가장 다양한 출신성분을 가진 내각을 구성했다. 게다가 국방부 장관이 인도계이며 무려 시크교 신자. 취임식 당일에는 여러 장관들이 성경, 꾸란, 캐나다 원주민 사머니즘 용품을 사용해서 선서를 하는 등 다채로운 모습도 보여줬다.

파일:external/i.cbc.ca/harjit-sajjan-2014.jpg

왼쪽이 캐나다 국방부 장관 할지트 사잔(Harjit Sajjan), 오른쪽은 28대 캐나다 총독 데이비드 존스턴(David Johnston).

성평등도 중요시해서, 내각의 남녀 비율이 1:1이다. 왜 남녀 성비를 1:1로 구성하였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온 대답이 "지금은 2015년이니까요.".

기호용까지 마리화나 전면 합법화를 시행했다.경향 이후 토론토에서는 합법적으로 의료용 마리화나가 판매되고 있는데,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경찰의 수사를 받는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유는 불법적 판매가 있었는지에 대한 첩보에 의한 단속 때문이라고.

외국 여행객 사전 입국허가 신청서의 성별 표기란에 성 중립 항목을 추가, 시행에 들어간다. #

다만 자신의 아버지이자 전 총리인 피에르 트뤼도의 입장을 이어받아 퀘벡의 독립운동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사실 경제권 자체를 영어권 캐나다에 다 뺏긴 상황이라 애시당초 독립이 불가능한 상황이기도 하다.

2030년까지 석탄을 사용하는 화력 발전소를 조기 퇴출시키기로 했다. # 이로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기 전임자의 정책으로 인한 셰일 가스태양광 발전의 대규모 가격 인하에 이어 본인의 에너지 정책에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남에서 캐나다 가톨릭 교회가 과거 원주민 아동을 강제 수용한 기숙학교를 운영한 데 대한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 그리고 파파는 시원하게 무시했지... 모든 사람이 자네같은 사과머신일 순 없다네 [23]

6. 비판



그러나 지나치게 이념 위주로 과몰입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우선 내각을 성별을 기준으로 완전히 50:50으로 구성한 것부터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캐나다에서 선거를 통해 당선된 여성은 22%를 웃도는 수준이었기에 남녀평등을 실천하겠답시고 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남녀 성비를 50:50으로 맞춘 내각을 구성한 것이다. 거기다 그에 대해 기자가 질문을 하자 내놓은 답변이란 게 '지금은 2015년이다'였다. 실용적인 면보단 쇼맨쉽적인 성격이 훨씬 강한 문장이다. 정말로 남녀평등을 원했고 굳이 내각의 성비를 평등하게 맞추려고 했다면[24] 남자 75: 여자 25의 성비로 구성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투표로 뽑힌 의원들의 성비가 정확히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위 영상에 등장하는 조던 피터슨 교수는 "저러한 트뤼도의 답변은 총리로써의 책임감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내각을 구성하는 게 너무나도 머리가 아팠기에 아무 생각없이 내각을 대충 구성하기 위해 내놓은 변명이다"라고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사실 트뤼도가 하는 대다수의 발언들은 이러한 성격을 띈다. 위 영상의 초반부에서 보여주는 트뤼도의 발언 역시 그러한 유다. 여성이 'mankind'라고 무심코 발언하자 이에 대해 굳이 'peoplekind'라고 교정을 하는 건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거기다 당장 'humankind'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마당에 뭐하러 신조어를 만드셨는지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트뤼도의 관점에서는 매우 정당하고도 합당한 발언알 것이다. 바로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매몰한 점이 크게 비판받고 있다.

6.1. bill c-16



트뤼도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이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한 건 트뤼도가 bill c-16을 통과시키려고 한 후였다. bill c-16은 트랜스젠더가 불려지기를 원하는 대명사들로 이들을 부르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법안이다. 이러한 대명사에는 전통적인 대명사들인 he, she뿐만이 아니라 ze와 같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10가지가 넘는 성중립적인 대명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조던 피터슨 교수가 강하게 비판했는데, 주 요지는 위 영상에서 알 수 있듯 "언어의 사용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유례에 없었던 일이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터무니없고 구시대적인 법안이다." 였다. 조던 피터슨이 위와 같은 영상을 올리고 자신이 근무하던 토론토 대학교에서 연설을 하며 점점 방송을 타면서 공론화되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법안에 찬성하던 보수당 인사들도 조던 피터슨과 개인적으로 만나본 후 법안에 반대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트뤼도에 대한 병폐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임기 초에 트뤼도에 큰 지지를 보낸 캐나다인들도 조금씩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6.1.1. 반론

Bill c-16은 트랜스젠더가 불려지기를 원하는 대명사들로 이들을 부르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법안이라는 근거 자체가 매우 부실하다. 정치색이 없는 캐나다 법률전문가들에 따르면 선호되는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은 행위 자체는 적개심이나 증오심 표현을 위한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므로 절대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25]

성 표현과 성 정체성을 캐나다 인권법의 보호 근거로 추가하고, 증오 선전, 대량학살 선동, 형량 악화 요인을 다루는 형법 조항에도 추가했다는 사실을 곧바로 성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 처벌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성 표현에는 남성과 여성도 있는데 당연히 남성을 여성이라고 부르고 여성을 남성이라고 불렀다는 이유, 혹은 남성을 남성이라 안 불렀다고 처벌되지 않는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그것을 차별행위라고 보기도 힘들다. Bill C-16 법은 딱 그정도 수준의 법률이다. 캐나다 인권법에 추가했다는 부분도 트랜스젠더들이 성중립적 표현을 사용했다고 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취직에 불이익이 있다거나 이런 것을 막기 위한 법적 조치이지 그 어디에도 ze/sie/zie/ey/per 같은 트랜스젠더들이 선호하는 성중립적 대명사를 트랜스젠더에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은 명시도 안 되어있고 전문가들도 단순히 그런 사유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26]

캐나다 인권법과 형법 전문까지 인용하자면 엄청나게 길어지기 때문에 짧게 핵심만 요약하자면 Bill C-16이 성중립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되려면 우선 캐나다의 형법을 개정하여 "집단학살"과 "증오의 대중적 선동"이 아닌 논쟁적인 언행들을 싸그리 다 범죄화해야만 가능하다.[27] 왜냐하면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말하는 혐오발언과 실제 캐나다에서 적용되는 증오발언의 범주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토론토대 교수인 Brenda Cossman마저도 "성중립 대명사 사용 실패가 캐나다에서 혐오발언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명사의 사용 거부는 심각한 증오조장이나 대량학살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6.2. 그 외

또다른 비판으로 오사마 빈 라덴의 최측근 부하의 아들이자 관타나모 수감자에다 미군 의무병을 살해한 소년병이었던 오마르가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낸 피해 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오마르에게 한화로 100억이 넘는 합의금을 지급했던 사례도 있다. 물론 이는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됨으로 인해 캐나다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키배를 불러왔으며 이에 대한 번복을 요구한 시민들이 많았지만 정부와 트뤼도 측에서 결국 밀어붙여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발동한 이후 위협을 느낀 미국 내 아이티 난민 등의 캐나다행을 원활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우방국인 미국을 지금까지 믿고 있어 멕시코랑 국경이 접한 미국이랑 상황이 달라 국경 통제가 미국만큼 안 된 측면도 있다. 캐나다는 다 받아준다?···트뤼도의 난민 포용책 시험대 캐나다와 미국 국경에는 그냥 들판에 도로 하나 있는 곳도 부지기수이니...

또한 트뤼도의 내수정책이 대외정책에 비해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부동산 값 폭등(특히 밴쿠버), 낮은 취업률, 인상되는 물가, 잇따른 기업의 파산/파산 위기(석유, 봉바르디에), 가계부채... 부동산 값 폭등 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해결한 바가 없기는 하고 석유같은 경우는 사실 국제 경제가 다 얽혀있는 경우라 캐나다 혼자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리고 국회 회의 때 보수당이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총리는 항상 같은 답변으로 대답해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 #.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다음 총선에는 재신임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18년 들어 이전보다도 훨씬 더 자주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행보를 자주 보이는데 앞서 언급한 'mankind'라는 단어를 'peoplekind'라 굳이 교정한 사건 역시 이에 해당한다. 위에서 언급한 오마르 배상 건에 대해 시민들의 질의를 받는 시간에 한 여성 시민이 자신에게 해당 사건을 성토 하는 와중에 그녀의 말을 끊고 발언자가 사용한 mankind 라는 단어를 peoplekind 라고 교정하는 행동을 보였다. [28] 현장에서는 환호를 받았으나 이후 언론에 이 사실이 알려진 뒤로는 웃음거리가 되었고, peoplekind 밈으로도 만들어졌으며 좌파 진영 내에서도 멍청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라고 맹비난을 받았다. 이후 바보같은 농담이었다며 인정하고 사과했다.

6.3. 직권남용

하지만 2017년에 나온 다른 조사에 의하면 여전히 48%의 제법 괜찮은 지지율이 나오고 있고, 이는 과거 총리들의 취임 15개월 이후 지지율과 비교해도 특별히 나쁜 수치는 아니다.

2019년에도 보수당 대표인 더그 포드의 연이은 삽질이 동반되면서 정작 총선 선거 때 오히려 이득을 볼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6월 들어서서 자유당 지지도 소폭 올라간 상태이다.#

2019년 7월에도 지지율은 44%로 전혀 나쁘지 않으며, 소속 자유당의 지지율 역시 보수당의 삽질에 힘입어 1위를 차지했다. # 비판 단락의 서술이 자세해서 그렇지 지지세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 캐나다의 정치지형은 보수당, 강한 리버럴의 자유당, 좌파 사민주의 신민주당으로 3분되어 있어서 오히려 진보세가 강한 편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2019년 8월, 대형악재가 등장했다. 캐나다 공직윤리위원회에서 트뤼도의 직권 남용 결과를 확인했다. 마리오 디온 윤리위원장은 "트뤼도 총리가 조디 윌슨-레이볼드 전 검찰총장 겸 법무장관에게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이는 검찰의 기소 독립권이라는 헌법상 원칙에 어긋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직권남용 스캔들을 2019년 초에 폭로한 조디 윌슨-레이불드 법무장관[29]은 트뤼도 총리에 의해 집권 자유당에서 출당당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으니, 윌슨-레이불드 전 장관은 2019년 총선에서 기어이 무소속으로 본인 지역구인 Vancouver Granville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다.[30]

6.4. 교사시절의 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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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18년 전 교사 시절 코스튬 파티에서 얼굴을 새까맣게 칠한 ‘아랍인 분장’ 사진이 공개돼 현지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실제로 구글에 트뤼도의 이름을 검색만 해도 연관 검색어로 이 사건만 줄줄이 뜰 정도로, 엄청난 논란이 되고 있다. 인종의 다양성과 사회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둔 ‘진보정치의 아이콘’이 인종차별적 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계 입문 전 교사로 일하던 사립학교 웨스트포인트그레이 아카데미의 2001년 ‘아라비안나이트’ 파티에서 찍힌 문제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해 졸업 앨범에 담긴 사진 속에서 트뤼도는 얼굴은 물론 목과 손 등 외부에 노출된 부위는 모두 짙은 갈색으로 칠한 채 터번을 쓰고 있었다. 트뤼도가 당대표인 자유당의 캐머런 아마드 대변인은 “사진 속 인물은 트뤼도가 맞다”면서 “당시 그는 알라딘으로 분장했던 것”이라고 확인했다.

일종의 연극적인 행위이긴 했지만 북미나 서구에서는 백인이 흑인·아랍인 등으로 분장하는 행위 자체가 인종차별적 모욕 행위로 간주된다. 우리나라로 비유하자면, 토종 한국인이 조선족이나 동남아시아 사람 등을 흉내내는 셈.[31]

문제의 사진 주인공이 다양성과 사회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둔 진보정치의 아이콘 트뤼도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논란은 더 커졌다. 선거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있다는 점도 트뤼도에게는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뤼도 총리는 논란이 확산되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어리석은 짓을 했다. 그 일에 대해 사과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유세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면서 “그때 (그런 분장이 인종차별적 행위였음을) 더 잘 알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7. 논란

반대파인 보수당에서는 트뤼도 총리가 경험이 없고 준비도 되지 않았다며 열심히 까고 있다. 심지어 보수당 광고에서 쥐스탱 트뤼도의 이름을 이용해 그가 준비가 안 됐다는 드립을 날리기도 한다.(Justin Trudeau? Just not ready)(...) 관련 영상. 그런데 댓글을 보면 오히려 광고를 까는 내용이 대다수(...).

비슷한 시기 이웃나라에서 날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깽판짓 때문인지, 반대급부로 미국에서 트뤼도 총리의 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데[32] 이런 면을 꼬집어 보수당은 총리 자신의 이미지 관리만 하지 말고 나라 관리도 좀 잘하라고 아우성이다. 저유가 때문에 당분간 경제 전망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로 갈 것 같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중. 이에 편승하여 경험도 없는 총리가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한다고 캐나다의 보수적인(주로 백인층) 사람들은 그를 매우 싫어한다. 이와 관련해 아버지와 비교하며 까는 사람들도 있다.

우파로부터 정책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데, 특히 다문화주의와 관련해 일부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해 별 반감을 보이지 않는 등의 태도로 말이 많다고 한다. 다만 이는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들을 급진파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결부시켜 제노포비아적 성향을 나타내는 부류의 의견이라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시리아 난민을 받기로 결정했는데, 이때도 일부에서는 테러리스트를 무차별적으로 들여온다고 선동했지만 실상을 보면 캐나다에 연고가 있는 사람 우선이고, 부인과 자식들이 있는 가족 단위 난민들만 받는(즉, 1인 남성 및 여성은 제외) 등 나름의 방비는 하고 있다. 물론 제노포비아 성향의 사람들은 닥치고 국경 폐쇄(...)같은 정책 아니면 만족을 못하겠지만 말이다.

2016년, 안락사법 관련 투표가 고의로 지연되고 있는 행태에 화가 나 야당인 보수당 원내대표를 완력으로 끌어냈는데, 그 와중에 신민주당 여성 정치인의 가슴을 팔꿈치로 건드려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재미있는 것은, 이와 관련해 총 4번에 걸쳐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식 사과장에서 팔꿈치 사건(Elbow Gate)에 대해 사과했는데, 이것 때문에 1914년 일어났던 코마가타 마루(Komagata Maru) 사건[33] 공식 사과가 묻힐 것 같다고 또 사과했다.

2016년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며 그를 칭찬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 피델 카스트로가 잘한 것도 있을 테고 쿠바가 당시 서방권과도 다소 훈훈해지던 분위기이긴 했지만(오바마 대통령 때 미국과 국교 정상화), 아무리 그래도 인권을 짓밟은 독재자 평가를 받는 카스트로에 대해 너무 과한 칭찬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총리도 이후 표현을 수정했다.

2016년 말, 유료 입장권이 있는 정치 후원 행사에 참석해 후원자들에게 '면담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휘말려 야당이 제소해 연방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됐다. # 다만 후속보도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별일없는 듯.

2018년, 인도 델리에서 열리는 영국연방 대사관 축하파티에 칼리스티나주의자 [34] 자스팔 앳월을 초대해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특히 이 사람은 법원으로 부터 유죄 [35] 를 받은 인물이라서 캐나다와 인도 양국에서 문제가 터졌다.

2019년, 검찰의 사법수사에 압력을 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무아마르 카다피한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 재판을 받게된 SNC-라발랑[36]재판에 트뤼도가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조이 윌슨-레이불[37]을 이용해 검사들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윌슨-레이불은 1월 퇴역군인장관으로 담당이 바뀌었는데 2월 사임했다. 야당은 트뤼도가 윌슨-레이불의 비밀유지특권을 해지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대정부 질의 응답 시간에 트뤼도는 물론 장관들까지 앵무새처럼 같은 답변을 내고 있어 보수당 의원들이 엄청 까고 있다. 뉴욕 타임즈 기사. 이어 재무장관 제인 필포트도 3월 4일,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며 “더이상 트뤼도 내각의 편을 들어줄 수 없다”라고 언급하며 재무장관직에서 사임했다.# 윗문단에서 상기된 논란들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주관적 견해 차이도 다소 섞여 있기에 논란은 됐을지언정 대대적인 정치적 스캔들로는 발전하지 않았으나, 이번 사건은 집권후 최대 위기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비난과 의혹이 뒤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평민원 해산 후 치른 9월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사수하며, 신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살아남았다.

7.1. 성추행 의혹

때는 2018년 여름. 당시에 페미니스트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던 트루도에게 성추행 의혹이 일었다. 내용은 18년 전, 트루도가 교사일 때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있는 크레스턴이란 곳에서 어떤 여자를 성추행하고, 그 여자가 기자라는 걸 알았을때 사과하고 꼬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8. 여담

  • 딱 봐도 장신인데, 키가 188cm라고 알려져있다. 평소 복싱을 비롯한 운동도 꾸준히 해서 몸매도 좋은 편. 때문에 여덕들이 많다. 별명이 MILF의 변형인 PILF(Prime minister I’d Like to F**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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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external/www.theloop.ca/trudeau-movie.jpg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캐나다 장군 중 한 명을 연기한 적도 있다. 콧수염이 인상적이다. 히틀러?
    그리고 여기서 자신이 캐나다 총리가 된다는걸 예언(?) 했다
  • 캐나다의 버락 오바마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SNS를 굉장히 잘 활용하는 정치인 중 하나. 정치는 높으신 분들이 하는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위아래의 사진들처럼 친근한 중산층 코스프레(?)를 굉장히 주기적으로 해서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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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몸에 문신이 있다. 다만 패션이나 일종의 허세로 한 문신은 아니고, 1976년 아버지가 총리로 있던 시절 연을 맺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원주민 중 하나인 하이다 족을 방문했을 때, 그 곳의 한 할머니로부터 입양 의식을 치르고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뜻으로 새긴 것이라고 한다.
  • 페리미터 이론 물리연구소의 양자 컴퓨터 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가 문돌이[38]인 트뤼도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했는지 "양자 컴퓨팅에 대해 좀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는데... (모르실 테니) ISIS나 한 번 여쭤 볼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는데, 트뤼도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뇨. 양자 컴퓨터는요... 보통의 컴퓨터는 0 또는 1의 비트로 작동합니다. 꺼지고 켜지고. 그러나 양자 상태는 훨씬 더 복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물질은 파동이면서 동시에 입자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그러한 양자를 둘러싼 비결정성이 더 작은 컴퓨터에 더욱 많을 정보를 담을 수 있게끔 해 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양자 컴퓨팅이 놀라운 이유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라고 짧은 문장 안에 양자컴퓨팅의 핵심을 모두 담아 멋지게 대답하는 폭풍간지를 선보여 주위의 물리학자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핵심만 정말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지만, 총리가 국가 경쟁력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심지어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 공부까지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과학자들로서는 감개무량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모르는 분야도 알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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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워즈: 에피소드 7 - 깨어난 포스 첫 상영회(이스턴 온타리오 어린이 병원 어린이 환자들과 함께 관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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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로윈한 솔로 코스튬이 총리, 레이아는 총리 영부인(두 의상 다 호스 행성에서 입었던 코스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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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19일 선거 결과를 기다릴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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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 몬트리올 코믹콘 당시 # 동네 형
  • 마블 코믹스의 '시빌 워 2 - 추징 사이즈(Choosing Sides)'의 특별호 표지에 등장했다.#
  • 드라마 프렌즈챈들러 빙 역으로 잘 알려진 미국 배우 매튜 페리와 Rockcliffe Park Public School 동창이다.[39] 매튜 쪽이 트뤼도보다 2살 연상. 2017년 3월 지미 키멀 쇼에서 매튜는 5학년 때 친구와 작당하고 트뤼도를 때린 적이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유는 트뤼도가 운동을 너무 잘해서 질투났기 때문이라고. 사실은 엄마 대신 분풀이한 거 아닐까? 이에 트뤼도 총리는 "이제라도 다시 한 판 뜨는 건 어떠냐?"고 농담하는 트윗을 매튜에게 보내기도 했다. #
  • 심슨 가족 시즌 30 21화에서 등장했다. 리사 심슨이 정치적 망명을 인해 캐나다에 머물 동안 스카이프로 친구가 된다.

9. 가족

  • 조제프 루이 트뤼도(증조부)
    • 샤를 트뤼도 (조부)
      • 피에르 트뤼도 (아버지)
        • 알렉상드르 트뤼도(2제)
          • 피에르 에마뉘엘 트뤼도(조카)
          • 갈라 시몬느 트뤼도(조카딸)
          • 아리안느 레아 트뤼도(조카딸)
        • 미셸 트뤼도(3제) - 1975년생으로, 1998년 사고로 죽었다.
  • 그레이스 엘리엇(조모)
  • 제임스 싱클레어 (외조부)
    • 마가렛 싱클레어(母)
  • 조에 베도스 (계수)
  • 장 그레구아르 (장인)
    • 소피 그레구아르 (2005년 결혼)
      • 자비에르 제임스 트뤼도 (장남)
      • 엘라 그레이스 마가렛 트뤼도 (장녀)
      • 아드리앙 트뤼도 (차남)
  • 에스텔라 블레 (장모)


[1] 총리 본인에 대한 경칭[2] 아버지가 현직 총리일 때 태어나 오타와에서 나고 자랐으나, 정치는 아버지의 고향인 퀘벡몬트리올에서 해 왔다.[3] 고등학교 졸업 후에 들어가는 대학 입학 과정 학교다. 여기서 2년을 수료한 뒤 종합대학에 들어가 2년을 더 수료하면 학사 학위를 취득할수있다. 만약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퀘벡 및 여러주에 대학교에 진학하고싶으면 이 과정을 필수적으로 해야한다.[4] 퀘벡 주 몬트리올 시 위치[5] 장성한 이후에는 냉담자가 되었다가, 동생의 요절 이후 다시 가톨릭 신앙을 시작했다.[6] 취임 당시 만 43세 10개월. 가장 젊은 총리는 취임 당시 만 39세 364일 나이였던 조 클라크(Joe Clark). 캐나다 보수당의 전신인 진보보수당 소속이었으며, 쥐스탱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를 9달 동안 총리직에서 잠깐 몰아냈던 사람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쫓아낸 조 클라크를 다시 몰아내고 그 후에도 4년 동안 총리를 했다. 클라크에게 쫓겨나기 전의 임기 11년을 합쳐 도합 15년 동안 총리직을 해먹은 무서운 양반.[7] 캐나다인들이 뽑은 캐나다 10대 영웅 중 1위를 차지한 인물. 도합 15년 동안 장기집권한 인물이기도 하다.[8] 아버지는 2000년에 서거했고, 쥐스탱은 2008년부터 하원의원 일을 시작했다. 하원의원 지역구(Papineau)도 아버지의 지역구(Mount Royal)와는 다르다. 같은 몬트리올이고, 아버지 지역구와 바로 경계를 접하기는 한다[9] 오바마에겐 사실 상당히 억울한 비교인 게, 상술한 배경이란 면에선 부모님은 세 살 때 이혼하고, 외가에서 자란 자수성가 정치인인 오바마에 비해 쥐스탱 트뤼도는 총리 아버지를 둔 다이아수저급 배경이다. 쥐스탱의 부모님도 이혼했지만, 오바마는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한 데 반해, 쥐스탱은 아버지 손에 자랐기는 하지만 지금도 (생존해 있는) 어머니와 자주 교류한다.[10] 아버지와 무려 52살 차[11] 원래 성은 싱클레어, 1948년생.[12]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는 한때 결혼을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사이이긴 했다. 게다가 혼외정사와 사생아는 총리 재임 말기 약 한 달을 남겨두고 알려졌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13] 한때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의 가치를 넘어가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14] 잭 레이튼의 카리스마 때문도 있었지만, 자유당에 대한 심판 성격도 있었다. 2011년 총선은 여당이었던 보수당 내각 관료들의 의회 자료 제출 거부를 핑계로 자유당+퀘벡당이 중심이 되어 좀 무리하게 의회 해산을 했기 때문에 조기 총선이 된 것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자유당은 역풍을 맞아 보수당 재집권과 자유당 지지세력의 NDP로의 이동이 있었던 것이다.[15] 참고로 당연히 퀘백당도 이 선거에서 처참히 몰락했는데, 기존 의석 중 무려 43석을 뺏기며 4석밖에 못건지는 대패를 당한다. 그리고 퀘벡 지역의 표는 고스란히 신민주당이 흡수한다.[16] First past the post system. 예를 들어 투표결과 사표 포함 보수당 34%, 자유당 28%, 신민주당 25%가 나왔다고 가정했을 때, 소선거구제를 투표제로 가지고 있는 지역은 선거 특성상 보수당이 과반수 없이 34%의 득표만으로 당선되고, 나머지 66%의 표는 모두 사장된다. 사실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랑 똑같다.[17] Greater Toronto Area. 토론토 광역권을 말한다.[18] 비례대표까지 포함하여야 새누리 122석 vs 민주당 123석으로 우리가 잘 알듯이 1석 차이로 제1당이 갈리게 된 것이다. 지역구는 민주당 110석 vs 새누리 105석.[19] 지역구 당 과반득표 여부와 상관없이 최다득표자 1인을 당선인으로 결정[20] 캐나다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없다. 영국, 미국도 동일.[21]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정부의 경우 신민주당녹색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자유당 내각을 몰아내고 집권한 사례는 있다. 참고로, 현직 내각이다.[22] 다만 야당들이 연합하여 내각불신임결의를 통과시킬 경우 총리는 내각총사퇴를 단행하거나, 의회해산을 단행하고 조기총선을 해야 하는 것은 동일하다. 쥐스탱 트뤼도의 전임자 스티븐 하퍼도 2005년부터 2011년까지 6년 간 이러한 소수정부 형태로 정부를 이끌었던 전적이 있으며, 2011년 선거의 경우 실제로 야당 연합의 불신임결의안 가결에 대항한 하퍼 총리의 의회해산 시전으로 인해 원래보다 1년 일찍 시행되었다.[23] 교황청이 사과할 이유는 정말이지 없다. 애초에 종교적 선도를 원한 캐나다 정부의 책임일 뿐이다.[24] 물론 이조차도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내각은 단순히 남녀평등을 위해 특정 성에게 특정 수만큼의 자리를 보장할 정도로 간단하게 구성할 수 없다. 사실 나라를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내각이나 다름없다.[25] “No, the Trans Rights Bill Doesn’t Criminalize Free Speech (en-ca)”, 24 October 2016 작성.
“The professor versus gender-neutral pronouns”
[26] 애초에 Bill C-16을 크게 문제 삼고 정치적 이슈로 만들어서 북미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위에서 언급한 조던 피터슨인데 이 사람 자체가 해당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비전문적인 분야에서 전문가 행세를 해서 비난받은 사례가 종종 있었다. bill c-16도 이러한 선동에 불과하다. 피터슨은 임상심리학을 전공했지 법률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정치색이 딱히 없는 법률전문가들의 말과 정치적 견해를 종종 밝히며, 법쪽으로는 비전문가인 피터슨의 말 중 누구의 말이 더 신뢰성이 있는지에는 위키러들의 판단에 맡기겠다.[27] 캐나다는 영미법을 적용하는 서양 선진국이라서 독일, 프랑스 같은 대륙법을 적용하는 서양 선진국보다 처벌하는 증오발언의 범위가 의외로 적은 편이다. 애초에 북미는 웬만한 차별, 혐오발언은 대중적 증오조장이 아니면 법률이 아닌 (기업, 사회, 서비스 제공처 등)민간에서 통제할 수 있게 한다.[28] Man이라는 단어는 남성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인간을 대변하는 단어로 쓰지 말라는 취지로 서양 페미니즘정치적 올바름 진영에서 대표적으로 걸고 넘어지는 사례 중 하나.[29] Attorney General. 미국과 캐나다 법무부의 장관은 Secretary(미국)나 Minister(캐나다)로 불리지 않고 Attorney General이라 불리며, 이를 직역하면 검찰총장이다. 즉, 이 두 나라에서는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이 동일 인물.[30] 해당 선거 유일의 무소속 당선자이다. 참고로, 캐나다와 한국과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방식은 완전히 동일하나, 캐나다는 한국과는 달리 무소속 당선자가 배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31] 특히 북미권은 노예제에다 인종청소까지 자행한 흑역사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공식적/법적으로 인종차별을 강하게 금지하고 있다.[32] 이상하지 않은 게, 미국 독립 당시부터 미국의 현 상황이 싫으면 캐나다로 이주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기에도 부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미국인 상당수가 캐나다 이주를 실행에 옮겼을 정도.[33] 1917년에 일본 선박인 코마가타 마루 호를 통해 인도 출신 대영제국 식민지인들이 캐나다로 이주하려다 총 376명 중 24명만 받고 나머지 352명은 인도로 되돌려보내버린 캐나다 이민사의 흑역사 중 하나. 피해자의 대부분이 시크교도로, 아마 국방부 장관이 시크교도인 것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다.[34]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시크교도들이 인도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국가의 건설이 목표[35] 1985년에 캐나다 BC 주지사를 구타한 사건과 1986년에 인도정부 각료를 살인미수한 사건[36] 퀘벡 기업이라 프랑스어 발음으로 라발랑이라고 한다[37] 윌슨-레이불이 성이다. 영문 표기는 Wilson-Raybould인데 퀘벡인이라 역시 프랑스어 발음으로 읽는다[38] ...라고들 하지만 공대에 잠깐 다닌적도 있다.[39] 매튜 페리는 미국인 아버지와 캐나다인 어머니를 뒀는데,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에는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에서 자랐다고 한다. 미국, 캐나다 이중국적이다. 매튜 페리의 어머니는 피에르 트뤼도 전 총리의 공보 비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