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11:34:25

유기(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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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전(失傳)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
번외: 현대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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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실전

1. 개요

留記

고구려역사책.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언급되었다.

2. 상세

"고구려는 초기에 ≪유기≫라는 100권으로 된 역사서를 편찬한 바 있는데 영양왕 11년(서기 600년)에 태학박사 이문진은 이것을 신집(新集)≫이라는 5권의 책으로 개수하였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즉, 신집과 함께 고구려의 역사서로 생활, 문화, 역사가 적힌 역사서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식 백제서기와 마찬가지로 역사서인지는 불명확한데 유기라는 이름 자체가 특정 역사서 제목인 고유명사가 아니라 한자 그 자체를 뜻풀이했을 때 '남은 기록, 즉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오만 잡다한 기록을 묶어 부른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백 권이라는 것도 진짜로 1권부터 100권까지 있는 구성이란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많다는 관용적 수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100권이란 분량을 사실이라고 추측해서, 유기가 고구려 초기의 기록이 맞다면 당시에는 아직 종이가 태동기 시기인지라 간독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간독 100권의 내용을 종이책 5권에 옮겼다면 100권의 내용을 5권으로 간추린 것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3. 실전

현전하지 않으며 만약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여러 가지로 사료가 부족한 고구려[1]의 역사를 재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전근대 사서에서 책 5권은 진짜 아무것도 아닌 분량이긴 하지만 삼국사기중 고구려본기의 분량이 총 10권이며, 삼국사기 자체가 삼국시대에서 500년이 지나서, 당시까지 전해져 내려오던 신라 위주의 사료였던 지금은 실전된 구 삼국사를 바탕으로 했고 사료부족으로 많은 내용을 중국의 서적에서 그대로 인용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1차 사료라는 것은 물론, 당대에 편찬된 1차 사료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다만 당개의 기록문화 양상을 고려해볼때 설화적인 내용이 많고 정작 필요한 역사 기록 부분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란 추정도 있다. 왜냐면 유기를 정리해 종이에 옮긴 것이 신집인데 신집이 유교적 사관에 입각해 쓰여졌고 이것이 삼국사기에 옮겨진 것을 고려하면 유기에 쓰여있는 신이한 부분 이외에 역사적 사실들만 신집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애초에 당시에는 그렇게 기록문화가 철저한 것도 아니어서 설령 그게 아니어도 큰 도움은 안되었을 것이다. 사료 자체가 부족한 고구려 후기에 편찬된 책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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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고구려 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국가 전부 해당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