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2:48

유기(역사책)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정사(正史)
국가 공인 역사서
삼국사기고려사
실록(實錄)
제왕의 일대기를 다룬 편년체 기록물
고려실록조선왕조실록
절요(節要)
방대한 정사 기록을 요약한 기록물
고려사절요삼국사절요
통감(通鑑)
통치에 도움이 되는 기록물
동국통감
강목(綱目)
강목체를 적용한 기록물
동사강목동국통감제강본조편년강목
여사제강동사회강대동사강
휘찬려사국조정토록
사략(史略)본조사략동국사략
일기(日記)
국가 공문서
승정원일기일성록동궁일기
각사등록비변사등록
역사시(歷史詩)응제시주제왕운기
기타삼국유사개황력대사편년
대사기속무정보감국조통기
발해고해동고승전동국병감
단군세가기자지동사
해동명장전단군고기신라고기
백제고기해동고기본국고기
삼한고기고려고기연려실기술
동사보유동국역대총목동사세가
해동역사열조통기동사찬요
기타 실전(失傳)<colbgcolor=#fff,#191919>고구려유기신집
신라국사제왕연대력화랑세기
백제백제기백제신찬
백제본기서기
고려구삼국사가락국기편년통록
왕대종족기성원록금경록
위서(僞書)환단고기규원사화단기고사
부도지화랑세기 박창화 필사본격암유록
†: 실전(失傳)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음.
번외: 현대 역사서
한국사
}}}}}}}}}



1. 개요2. 상세3. 실전

1. 개요

留記

고구려역사책.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언급되었다. 학계에서는 4세기 후반 소수림왕 때 편찬된 것으로 추정한다.#

2. 상세

11년(서기 600) 봄 정월, […] 임금이 태학박사(太學博士) 이문진(李文眞)에게 옛 역사를 요약하여 다섯 권의 『신집(新集)』을 만들도록 명령하였다. 건국 초기에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했을 때 어떤 사람이 사적을 기록한 1백 권의 책을 쓰고 이것을 『유기(留記)』라 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이를 정리하고 수정하였다.
十一年 春正月 […] 詔 太學博士李文眞 約古史爲新集五卷 國初始用文字時 有人記事一百卷 名曰留記 至是刪修

위 기록에 따르면 유기는 신집과 함께 고구려의 역사서로 생활, 문화, 역사가 적힌 역사서로 생각된다. 그러나 백제서기와 마찬가지로 정식 역사서인지는 불명확한데 유기라는 이름 자체가 특정 역사서 제목인 고유명사가 아니라 한자 그 자체를 뜻풀이했을 때 '남은 기록, 즉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오만 잡다한 기록을 묶어 부른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백 권이라는 것도 진짜로 1권부터 100권까지 있는 구성이란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많다는 관용적 수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100권이란 분량을 사실이라고 추측해서, 유기가 고구려 초기의 기록이 맞다면 당시에는 아직 종이가 태동기 시기인지라 간독에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간독 100권의 내용을 종이책 5권에 옮겼다면 100권의 내용을 5권으로 간추린 것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3. 실전

현전하지 않으며 만약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여러 가지로 사료가 부족한 고구려[1]의 역사를 재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전근대 사서에서 책 5권은 진짜 아무것도 아닌 분량이긴 하지만 삼국사기중 고구려본기의 분량이 총 10권이며, 삼국사기 자체가 삼국시대에서 500년이 지나서, 당시까지 전해져 내려오던 신라 위주의 사료였던 지금은 실전된 구삼국사를 바탕으로 했고 사료부족으로 많은 내용을 중국의 서적에서 그대로 인용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1차 사료라는 것은 물론, 당대에 편찬된 1차 사료라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다만 당대의 기록문화 양상을 고려해볼때 설화적인 내용이 많고 정작 필요한 역사 기록 부분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란 추정도 있다. 왜냐면 유기를 정리해 종이에 옮긴 것이 신집인데 신집이 유교적 사관에 입각해 쓰여졌고 이것이 삼국사기에 옮겨진 것을 고려하면 유기에 쓰여있는 신이한 부분 이외에 역사적 사실들만 신집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애초에 당시에는 그렇게 기록문화가 철저한 것도 아니다보니.. 또 사료 자체가 많이 부족한 고구려 후기에 편찬된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아쉬움이 있는데, 다만 그런거 다 떠나서 최소한 연대라도 맞춰보는데는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98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98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물론 고구려 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국가 전부 해당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