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12:26:57

윤재호(야구선수)

윤재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6.svg파일:해태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7.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1 1993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2번}}}
백인호
(1987~1988)
윤재호
(1989~1992)
유진우
(1994~1996)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6번}}}
백인호
(1990~1992)
윤재호
(1993)
송인호
(1994~1996)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9번}}}
송인호
(1991~1993)
윤재호
(1994~1996)
김성래
(1997~1999)
}}} ||
윤재호
尹載晧 | Yoon Jae-ho
출생 1967년 3월 6일 ([age(1967-03-16)]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동대문상고 - 동국대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9년 2차 1라운드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89~1993)
쌍방울 레이더스 (1994~1996)
지도자 제주산업정보대학교 야구부 감독 (2005~2010)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 (2011~2012)
홍익대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 (2018)
강릉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9)
여주대학교 야구부 코치 (2020~)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연도별 성적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해태 타이거즈-쌍방울 레이더스 출신의 우투우타 내야수.

2. 선수 경력

데뷔 2년차인 1990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출장했고, 해태1991년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기여했던 나름 준수했던 유격수였다. 통산기록을 보면 지금도 유격수나 2루수 중 타격 성적이 부진한 선수들은 매우 많다. 그런 유격수들에 비하면 윤재호의 성적은 도루도 많고 매우 평범하다. 거기다가 볼삼비를 보면 알듯 선구안도 괜찮아서, 팀에 크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타자였다. 화려했던 멤버를 자랑하는 1991년 해태의 주전으로서는 다소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1] 나름 팀의 우승에 기여했던 선수다.

1993년 이종범이라는 초특급 신인이 등장해서 주전 자리가 밀려 백업 내야수가 되었다.[2] 결국 시즌이 끝난 후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되었으며 다음 해 쌍방울의 주전 유격수가 됐다. 하지만, 1995년 김호의 복귀로 설 자리를 잃은 채 1996년 후 은퇴했다. 이종범이 해태에 오지 않았다면 김호, 김민호, 염경엽처럼 질긴 생명력을 가진 유격수로 롱런했을지도 그리고 해태가 90년도 중반 이후에에 우승을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 그래도 염경엽보다는 타력이 준수했다. 결과론적인지 모르겠지만 해태는 이종범이 없다면 김응룡홍현우, 이호성 중심으로 다른 타선을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종합해보면 이종범의 존재가 없었거나, 앞의 김호나 박계원, 염경엽, 김민호, 지화동처럼 타력이 약한 유격수를 보유한 팀에서 뛰었으면 좀더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만,[3] 해태라는 구단과 이종범에 의해 희생된 안타까운 케이스.

3. 은퇴 후

제주정보산업대학 야구부 감독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맡았다. 모교인 동국대학교에서 감독 제안이 들어와서 2011년부터 감독을 맡았고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며 감독상을 2년 연속 수상했지만, 2013년 초에 고교, 대학 야구 지도자들이 뇌물수수로 인해 줄줄이 경찰에 잡혀가면서 당시 배재고 감독 이광은, 한양대 감독 천보성, 연세대 감독 정진호 등과 함께 소속 팀에서 줄줄이 해임되었다.

해임된 뒤로는 야인으로 지내다가, 대학교 선배이자 현역 시절 같은 팀 선배였던 장채근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8년부터 홍익대학교에서 인스트럭터를 맡았다. 2019년부터는 강릉고등학교 코치로 합류했으나 1년 후 팀을 나왔고, 2020년부터 여주대학교 야구부 코치를 맡고 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89 해태 45 .215 17 2 0 0 10 3 2 7 0 12 .276 .241 .516
1990 114 .260 84 12 2 2 33 39 13 31 4 40 .331 .328 .659
1991 113 .242 64 9 2 2 27 34 18 44 5 29 .360 .314 .674
1992 106 .232 58 10 1 1 23 30 4 39 5 38 .342 .292 .634
1993 59 .096 5 0 0 0 2 2 3 4 1 14 .175 .096 .27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94 쌍방울 93 .175 32 4 0 0 11 16 6 13 5 21 .248 .197 .444
1995 83 .211 34 5 0 0 9 15 4 8 0 29 .246 .242 .488
1996 2 .000 0 0 0 0 0 0 0 0 0 0 .000 .000 .000
KBO 통산
(8시즌)
615 .224 294 42 5 5 115 139 50 146 20 183 .309 .275 .584

5. 관련 문서


[1] 그래도 30년 후의 도루 능력이 저하된 박찬호랑 비교하면 조금 낫다.[2] 직전 3년간 유격수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종범이 입단해서 내가 이런 대접을 받게 된거 아니냐' 항의해도 김응용 감독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서정환이 출연하여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종범이 대학 졸업하고 입단할테니 너는 2루수3루수를 연습해라'고 말을 하자 충격을 받고 3일동안 훈련에 불참했으며 수비력은 좋았는데 타력이 받쳐주지 못했던 선수라고 안타까워했다.[3] 나머지 구단에는 류중일, 류지현이라는 걸출한 유격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