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13 11:50:46

이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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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부령 이금현 (김현)**
* 추정. ** 경순왕과 사돈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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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병부령
이금현 (김현)
李金現 (金現)
출생 <colbgcolor=#fff> ?
사망 ? (향년 불명)
본관 경주 이씨(慶州 李氏)
금현(金現) / 현(現)?
골품 진골(眞骨)
관등 ?
직위 병부령(兵部令) (900년대 초)
부모 부: 이거명(李居明)[1] - 소판(蘇判)
자녀 자: 이금서(李金書) - 삼한공신(三韓功臣)
인척 사돈: 신라 경순왕(고려 낙랑군왕 김부)
사부인: 고려 낙랑공주(신란궁부인 왕씨)[2]
1. 개요2. 상세3. 이제현 묘지명4. 여담

1. 개요

신라 말기의 병부령. 본관은 경주. 신라 소판 이거명(李居明)의 아들. 고려 삼한공신 중원태수 이금서(李金書)의 아버지. 신라 경순왕과 사돈관계이다.

2. 상세

부친 거명(居明)의 관등이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제3관등 소판(蘇判)이었고, 병부령상대등, 시중에 비견되는 재상직으로 관등이 대아찬~태대각간인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직이었다. 금현(金現)의 아들 금서(金書)가 고려 삼한공신에 책록되고 신라 경순왕의 딸이자 고려 태조의 외손녀인 신란궁부인 김씨(神鸞宮夫人 金氏)와 혼인한 것을 보면 신라 왕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경주이씨석탄공파세보에 의하면 일설에 금현(金現)이 신라 조정에서 김(金)씨 성을 받았다가 고려조에서 이(李)씨 성을 회복한 것이라는데, 이에 따르면 이금현(李金現), 이금서(李金書) 부자의 성명은 김현(金現), 김서(金書)였던 것이 된다. 국성(國姓)인 김(金)이 부자의 이름에 모두 들어있는 것이 공교로운데 성(姓)이라고 본다면 이해가 가는 점이 있다. 신라 말기 혼란한 정국 속에서 김(金)씨 성을 받고 진골로 편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3. 이제현 묘지명

1375년(우왕 1) 목은 이색(李穡)이 찬한 이제현 묘지명에 이제현(李齊賢)[3]의 가계를 언급하면서 "...신라 시조인 혁거세좌명대신이알평(李謁平)의 후손인 소판 거명(居明)이 병부령 금현(金現)을 낳고, 병부가 삼한공신인 태수 금서(金書)를 낳았다. 신라왕 김부가 국토를 바치고 고려 조정으로 귀순한 뒤 태조의 딸인 낙랑공주에게 장가들어 딸을 낳았다. 그 딸이 금서에게 출가하여 윤홍(潤弘)을 낳았다..."라고 기록하였다. 2007년, 황해북도 개성시에 위치한 이제현 무덤에서 위 묘지명을 새긴 길이 1.65m, 너비 63.2cm, 두께 20.5cm, 무게 600kg 규모의 거대한 묘지석이 발굴된 바 있다.(고려시대 사료 DB, 관련 방송, 관련 기사)

4. 여담

삼국유사 등에 나오는 김현감호(金現減虎) 설화의 김현(金現)과 이름의 한자까지 같다. 원성왕 대의 귀족 청년 김현이 호랑이 처녀[4]와 정을 통했는데, 인명을 함부로 살상한 처녀의 오빠 호랑이들이 천벌을 받게 되었을 때 호랑이 처녀가 오빠들을 대신해 죽음을 자처하고 차제에 김현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어 큰 벼슬을 얻게 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에 기반을 둔 설화이고 이금현(李金現)[5]과 김현(金現)이 동일인이라면 그가 반란을 진압하고 공을 세워 김(金)씨 성을 받고 진골에 편입되었다거나 병부령의 지위에 올랐다거나 한 사건의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겠다. 다만 시기적으로는 원성왕대보다 후대의 일일 것이다.

[1] 경주 이씨의 중시조. 시조 신라 좌명대신 알평(謁平)의 후손으로 선계가 실전되었다.[2] 고려 태조의 장녀.[3] 고려 공민왕 때의 문하시중이자 대학자. 이색의 좌주이자 스승. 중시조 17세로 이금현의 15대손이다.[4]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는 호랑이인 줄 몰랐다.[5] 이제현 묘지명에는 병부령 金現이라고만 나올 뿐이다. 시조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이니 이(李)씨 성을 붙인 것이고 금현도 임의로 붙여진 발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