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20:35:27

이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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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이명우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5번
조유신
(1999~2001)
<colbgcolor=#000> 이명우
(2002~2004)
김승관
(2005~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번
김승관
(2004.7.13.~2004)
이명우
(2005)
이승화
(2006~201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1번
펠로우
(2005.4.13.~2005)
이명우
(2006~2006.7.27.)
최경환
(2006.7.28.~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0번
최경환
(2006.5.17.~2006.7.27.)
이명우
(2006.7.28.~2006)
김유신
(2007~2009)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5번
허준혁
(2009)
이명우
(2010~2018)
이인복
(2019~2024)
}}} ||
파일:이명우프로필2018.png
이명우
李明佑|Lee Myung-woo
출생 1982년 6월 3일 ([age(1982-06-03)]세)
부산직할시 동래구
(現 부산광역시 연제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연동초 - 부산개성중 - 부산공고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2002년 2차 2라운드 (전체 14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2~2018)
지도자 부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투수 인스트럭터 (2019)
부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20~)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7~2009)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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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본관 경주 이씨
등장곡 Tina More - 〈Touch Me〉 }}}}}}}}}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부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투수 코치.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이명우/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2~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아마추어 시절

3. 지도자 경력

2020년 부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 투수 코치로 부임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패스트볼 최대 구속은 140km/h 중반에 평균 130 후반대로, 빠른 공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제구력은 좋은 기교파 투수이다. 포심과 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가 주무기이고, 서클체인지업, 커브 등도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긴 이닝을 소화하기는 어려운 편.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첫 시즌인 2010년에 선발로 잠시 뛰기도 했지만 성적이 썩 좋지는 않았다. 5회가 넘으면 구위가 확연하게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었다.

대신 불펜으로 뛰게 된 후 안정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맞춰 잡는 스타일에 크로스 스텝을 1루 쪽으로 밟기 때문에 좌타자한테 강했고 2012~13년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하기도 했다. 김성배, 김사율 등과 함께 롯데 역사상 몇 없는 강력 불펜을 이루었던 멤버. 다만 탈삼진 능력이 부족한 점 때문에 주자가 많이 나가서 WHIP은 늘 뛰어나지 못했다.[1]

위에서 언급된 최대성, 김사율, 김성배[2] 등이 결국 혹사의 여파로 단명한 것과 비교해보면 꾸역꾸역 살아남아 나름 롱런한 이명우는 회복력도 좋은 선수였는듯.[3]

현역 시절 투구폼을 보면 크로스를 1루 방향으로 밟는다. 좌타자한테 강한 건 이 때문인 듯 하다.

5. 여담

  • 팬들이 부르는 별명은 거대토끼. 줄여서 거토라고 부른다. 월레스와 그로밋에 나오는 그거 맞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똥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모양이다.[4][5]
  • 성격도 유하고 언론과의 대화도 거의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성격. 그래도 어린 투수조 후배들을 귀여워하며 잘 챙기는 듯 하다. 강민호만큼 언론 노출이 안 될 뿐 이쪽도 한 친목하는 듯. 최대성은 군대에 있던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고 2011시즌 입단한 고원준을 끼고 다니거나 한다. 또 2012시즌 중간에 트레이드된 용덕한과 같이 수건을 쓰고 비를 피하는 장면이 경기 중에 잡히기도. 한국말을 못하는 쉐인 유먼과도 친한데 과연 어떻게 친해진 것인지가 의문...
  • 그런데 이런 여러가지 요인들 때문에 불펜으로 완전 전환하고는 매력 어필 요소가 거의 없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팀의 승리조로 확실히 잡은 2012시즌엔 비록 원 포인트 릴리프이긴 하지만 출장수는 처음부터 독보적인 수치를 찍었음에도 웬만한 B급 선수도 한 번은 얻어걸린다는 그 흔한 포털사이트 타이틀 기사의 주인공조차 된 적이 없으며, 롯데의 필승조를 나열해 놓은 기사에서는 역시 똑같은 좌완 원 포인트인 강영식에 밀려서 이름이 빠져있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선수들의 경기 외적인 이야기에 빠삭하다는 롯갤에서도 이명우에 대한 떡밥은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수준(…). 기어이 '무명우' 라는 별명까지 나왔다….[6]
  • 확실히 불펜 트리오로 묶이는 김성배가 2차드래프트 성공사례로 주목을 받고, 최대성이 돌아온 파이어볼러라며 시즌 초부터 관심을 받은 것에 비해서 이명우의 임팩트가 좀 떨어지긴 한다. 하지만 투수 전체 경기수 1위인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강영식이 이탈한 동안 좌완 불펜이 이명우 하나뿐이어서 혼자 큰 부담을 짊어진 것도 인정해 줘야 할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2012시즌 이명우가 없었다면 이승호가 강영식의 자리를 대신했거나 최대성과 김성배에게 더욱 부담이 가해졌을 것이다. 롯데의 숨은 마당쇠인 셈. 2013년에는 셋업맨 역할로 나오고 있지만 투명기믹은 여전하다. 새로 들어온 김승회가 마당쇠 기믹을 단숨에 꿰찬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세부성적은 그 여왕벌보다 더 좋은데도 불구하고...
  • 참고로 선발승이 2014 시즌까지 2승이었는데 다 상대편 감독이 조범현이었다. SK 와이번스 시절과 KIA 타이거즈 시절 한 번씩. 그것도 한번은 완봉승, 한번은 9회 투아웃까지. 2015 시즌에 양상문 감독의 LG 트윈스를 상대로 선발승을 거두었다.
  • 팔꿈치 부상으로 한 해 유급했던 부산공고 3학년 때부터 11년 간 사귄 여자친구가 있는 순정파.[7] 라이언 사도스키에게 프로포즈 방법을 상담했다고 하며, 2012 시즌이 끝나고 결혼했다. 2013년 6월 3일 자신의 생일과 같은 날짜에 아들을 얻었다. 근데 6월 중순이 되도록 아직도 이름을 못 지었다고.
  • 대변을 하루에 4~5번씩 본다고한다... 특히 등판전 항상 화장실에 가 있는다고 한다.
  • 늘 웃는 상이기 때문에 이명우는 표정이 하나밖에 없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이명우 본인은 웃는 게 아니라 원래 그렇게 생겼다고 대답했고, 학창 시절에도 '안타 맞아도 웃느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 나이가 먹을수록 얼굴이 점점 강영식과 닮아가고 있다. 실력도 점점 강영식과 닮아간다.... 정도가 아니라 강영식보다 못한다.

6. 관련 문서


[1] 팬들이 볼넷 수를 들이대며 이명우의 제구력이 생각만큼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2012~2013시즌 2년간 그의 볼넷은 대부분 극단적으로 굴려져서 슬슬 퍼지던 시기에 몰아서 기록되곤 했다. 특히 첫 타자 상대로 볼넷 주고 잘 막은 적이 많았다.[2] 2013 시즌 중반 갑자기 신나게 털리며 블론세이브 1위를 찍었는데, 그래도 마무리 보직을 맡고 오히려 등판 간격이 일정해지면서 회복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1시즌 신나게 구른 김사율이 2012시즌 일정하게 등판하면서 잘해주다 후반부터 퍼져버린 것을 생각하면 김성배도 2014년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2014년 그건 현실이 되었다. 김승회가 그 역할을 이어받아 2014년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지만, 그 또한 2015년 결국...[3] 은퇴 이후 평가가 올라갔는데, 롯데는 강영식과 이명우가 팀을 떠난 이후 이 둘을 대체할 좌완 불펜 투수를 단 한명도 키워내지 못했다. 결국 10년 정도가 지났음에도 1군 엔트리에 좌완 불펜 투수가 원래 선발로 쓰려던 김진욱 1명밖에 안 남는 등의 사태가 벌어지자 급하게 정현수를 2라운드에 지명하고 방출된 임준섭이나 5라운드 지명권을 태우며 데려온 진해수로 간신히 좌완 스페셜리스트를 땜빵하는 모양새.[4] 본인 발음으로는 똥재~이라고.. 본인도 본인 말로 덕아웃 화장실에서 맨날 똥싸러 간다는 말을 했다. 덤으로 굉장히 심한 동남 방언을 쓴다. 부산 사람이 들어도 어디 촌에서 왔나 생각할 정도로 구수하다. 그래서 타팀에서 온 선수들(김성배나 심수창같이)은 이명우의 말을 이해못해 난감했다는 얘기가 있다. 알고보니 어려서부터 할머니밑에 자라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5] 똥쟁이라는 별명 답게 하루 대변 배출량이 어머어마 하다고 하며, 배변이 사실상 루틴화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본인은 하루에 5~6번 대변을 보는데 장건강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고.[6] 물론 현실적으로 원 포인트 릴리프가 가장 관심을 못 받는 보직인 것은 감안해야한다. 비슷한 케이스인 이상열도 통산 출장 경기수는 역대급에 속하지만 주목받는 정도는 이명우와 비슷하다.[7] 후에 스톡킹에 출연해서 밝힌 바로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다고.[8] 비시즌엔 알바도 뛴다고 한다. 참고로 알바값은 고기 무료 제공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