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시하라 신타로가 한국뿐 아니라 각국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개인의 경력이나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로서 걸었던 극우 행보와 그에 따른 막말성 발언 때문이었다. 일본에서도 도를 넘은 망언 때문인지 石原不謹慎太郎(이시하라 후킨신타로), 즉 불근신 타로라는 멸칭으로 불리게 될 정도였다.특히 그가 유명해진 건 정치인이란 그의 입지 때문이기도 한데 신문에서도 '망언제조기'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극에 치우친 우익적 발언을 "도쿄도지사인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이란 식으로 심심하면 공개적으로 쏟아낸 덕에 한동안 한국 언론에 나쁜 의미로 유명세를 탔다. 도쿄도지사란 입지 덕분에 2000년대엔 언론 노출도가 여타 극우 정치인들과는 격을 달리 한 셈. 2010년대 들어서 라이벌이 오사카에서 1명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하시모토 도루는 혐한 현상에 대해선 일침을 놓기도 하는 등 그나마 신타로에 비하면 양반이며 은퇴 이후에는 위안부 문제는 다시 고려해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혐한 성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사람이라 심각하게 몰락한 것에 대해 여러 이설이 많은데 가장 유력한 가설은 역시나 온갖 망언이 너무 누적되어서 일본에서도 좌우파를 막론하고 도무지 쉴드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2010년대 기준으로 본인이 총리를 노리기에 노령이었다는 점도 감안한다 치더라도 본인이 주축이 되었던 연합정당에서도 반쯤 쫓겨나 후계구도를 아예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너무 몰락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밑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주변국들뿐만 아니라 거의 전세계 모든 지역을 대상으로 한 번씩 망언을 하였다.
그의 아들들도 정치적으론 우익 성향이긴 하지만 아버지처럼 막장 발언이나 극우하고는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다. 대표적으로 장남인 이시하라 노부테루는 자민당 소속 의원이고 담화고려를 주장하지만 헌법 9조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도 망언을 종종 하긴 해도 아버지급으로 논란이 된 적은 없다.
2. 중국에 대한 망언
세계적으로 이시하라 지사의 망언제조기 능력을 알린 가장 대표적인 발언은 2004년에 했던 민도(民度) 드립이다. 2004년 아시안컵 경기대회에서 중국 관중이 일본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낸 것과 관련해 "중국인들은 민도가 낮아 어쩔 수 없다. 곧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국가와 국민의 자질이 그런 정도라면 눈살을 찌푸릴 국가가 많을 것"이라고 말해 잡음을 일으킨 바가 있다.이에 대해 오에 겐자부로는 '민도'란 (일본 민속학의 대부인)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도 자신의 방대한 저서에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차별적인 단어인데 그걸 썼다고 깠다. 참고로 겐자부로는 신타로와 달리 좌익, 평화주의 성향이다.
그런데 이 "민도"라는 단어는 나름대로 유행어가 되어 종종 일본 인터넷 등지에서 사용되곤 하며 한국에도 퍼져 부동산 갤러리 등지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물론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니고 특정 집단을 비방하고 까내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게 보통. 일본인들이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를 낮잡아볼 때나 같은 일본에서도 도쿄인들이 오사카를 멸시할 때에도 사용되거나 한다. 그리고 중국인을 지나인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2000년 4월 9일 육상자위대 훈시 때 내뱉은 "삼국인" 발언도 유명하다. 조선인(남북한인), 중국인(대만 포함)과 그외 기타 아시아계 외국인 체류자들을 사회 암덩어리처럼 취급했던 발언으로, 요약하면 도쿄가 지금 흉악한 삼국인들에게 점거당해서 까딱하다간 큰 소동이 일어날 수 있으니 경찰 뿐만 아니라 자위대 여러분들도 진압준비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삼국인'은 일본 사전에 실려 있는 단어다.
【第三国人】第三国の人。特に、第二次大戦後、米国占領下の日本に在留していた朝鮮人・中国人をいった語。 |
2012년 12월 13일엔 도쿄 도내에서 "유색인종 중 유일하게 일본인만이 근대국가를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릴 하기도 했고 같은 달 4일에는 "이 나라는 계속 미국의 부하 노릇을 해 왔다. 자칫 잘못하면 다음에는 옆나라 중국의 부하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릴 하기도 했다.
3. 한국에 대한 망언
그의 대표적인 망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당연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인에 바란다, '우는 소리' 좀 작작 해라! 우리 일본이 패전을 당했지만 지금 부흥하고 있는 것도 일본이 미국을 향해 '우는 소리'를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일본이 우수한 지도자와 우수한 지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1965년 12월 27일의 관련 뉴스 → 그의 '망언'은 1965년 12월 27일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해당 기사의 '석원신태낭군'이 바로 이시하라 신타로. 관련 기사에 따르면 자국에 대한 망언이 되기도 하는데 일본이 패전을 하고도 오늘날과 같은 자유와 부흥을 이루게 된 이유는 바로 미국 안에 그와 같은 '지식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마치 일본이 한국을 삼키듯 우수한 미국이 그보다 못한 일본을 식민지로 삼고 폭력으로 지배했을 것이기에 6.25가 왔어도 일본은 재기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북한이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고 한국이 반대할지라도 결국은 자신들에게 이익이다. 관련 뉴스 → 역시 자국에 대한 망언과도 겹친다. 그 이유는 후술된 자국에 대한 망언 문단 참고. 이후 조선중앙통신은 "천추에 용납못할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기사
- 한일합방은 조선인이 선택한 것이다. 관련 뉴스
-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자신의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일본을 비판한다"고 주장하며 정치가로서 "3류 수법"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이시하라의 발언은 4류, 5류의 망언"이라고 말하며 그를 비판했다.#
노무현을 이명박이 옹호하게 만드는 기적의 정치인 - "한일병합은 한국이 선택한 것", "당시 한국은 청나라나 러시아의 속국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의회(결의)를 통해 일본에 귀속했다"#
- 2014년에도 일본의 자위를 위해 한국을 병합했다며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4. 미국에 대한 망언
일본의 거품경제가 최고점에 다다랐던 80년대 말에 이시하라 신타로는 소니의 회장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펴냈다. 한마디로 "일본은 이제 미국을 넘어설 수 있으며, 이제 일본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하지만 이로부터 10년도 안 가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으로선 제 코가 석자가 되어 버렸고 결국 영원히 이길 수 없게 되었다.[1]
여담으로 이후 중국에서 이시하라 신타로를 의식하고 썼는지 어쨌는지 표절임을 대놓고 드러낸 <부(不, No)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란 책을 냈는데 여기서 일본은 결코 중국의 상대가 못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이시하라는 무척 불쾌해했다고 한다.
5. 프랑스에 대한 망언
2003년 10월 19일 도쿄 U클럽 설립총회의 축사 중 프랑스어의 숫자 세는 법이 특이한 것을 가지고 프랑스어는 수를 셀 수 없는 언어라서 국제어로서 실격이란 말을 했다. 어떻게 세는 지 예를 들면 70을 'soixante-dix'(60+10), 80을 'quatre-vingts'(4*20), 90을 'quatre-vingt-dix'(4*20+10)으로 센다. 물론 그렇다고 신타로의 발언이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일본어는 달수(특히 음력)를 세는 표현이 동양에서 가장 특이하고 외국인은 물론 일부 일본인들에게도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국 정치인이 "일본어는 달수를 셀 수 없는 언어라 국제어로서 실격이다"라는 발언을 하면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특히나 프랑스는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나 강해서 UN 사무총장 중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정도이다.당연히 프랑스 정부에서 이에 항의하여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하자 뭐든 재판 건다고 다냐...면서 프랑스어 험담을 더 많이 했다.
6. 서양 전체에 대한 망언
2012년 8월 4일,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이 국기인 유도에서 서양인 선수들에 밀려 죽을 쑤자 "서양인들의 유도는 짐승들의 싸움"이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2013년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2020 올림픽 유치전 투표 당시 이 발언이 악재로 적용되는 것 아니냔 우려도 있었으나 결국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스페인의 경우 경제난으로 올림픽 유치에 무리가 있었고 터키의 경우 2013 터키 시위로 정세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어부지리로 일본이 채택된 셈이다.7. 여성에 대한 망언
"여성이 생식능력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100세 이상 살았던 '쌍둥이 할머니' 긴상 자매처럼 오래 사는 것은 지구에 큰 폐해다. 문명이 가져온 가장 유해한 것은 할망구(ババア)들이다."
여성의 존재 이유를 생식에만 한정지은 그야말로 몰상식에 무개념한 데다 패륜적인 발언이다. 하다하다 사실상 패드립까지 친 셈. 망언 제조기답게 여성을 하루하루 난자 만드는 기계쯤으로 간주한 모양이다.
나이가 든 여성들은 직접적인 생산은 마감했지만 다른 여성들이 생산한 존재를 보살펴 줌으로써 끝까지 생산과 관련된 행위를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들은 다른 세대를 보살피는 데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는 가설도 있다. 일명 할머니 가설.
또한 여성의 가치가 생식능력에만 있는가? 그렇다면 불임 여성들은 태어난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며 수많은 미혼 여성들을 모욕하는 짓이다. 문자 그대로 여성들을 그냥 하루하루 난자를 만드는 기계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다. 배란을 못하는 여자는 자식을 낳지 못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존재이므로 일찍 죽어야만 한다면 나이가 들어 생식능력을 상실했거나 선천적으로 무정자증을 가지고 태어난 남성 역시 사회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1979년에 펴낸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한 육아지침서 <아들을 남자답게 키워라>에서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혼내라, 자식 때리기를 두려워 마라, 자라나는 아들의 고추를 찬양하라 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 놨다. 참고로 그는 (후술하지만) 아들만 4명이다.
8. 육아에 관한 망언
위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이 사람은 놀랍게도 육아서도 썼다. 심지어 출간 당시에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잘 팔렸다. 극우 인사답게 괴상한 내용이 가득한데, 대표적으로 추리면 다음과 같다.자식 때리기를 겁내지 마라
꾸짖는 데 장소를 가리지 마라
저자는 체벌이 자녀와의 육체적인 접촉이므로 어릴수록 체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육아 이론을 보면 3세 이전에는 체벌은 효과가 없을 뿐더러 체벌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체벌은 아이의 공격성을 키울 뿐만 아니라 아이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혀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꾸짖는 데 장소를 가리지 마라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혼내라
부권을 강조하기 위해서 모권을 깔아뭉개라는 내용을 당당히 써넣었다. 당연하지만 부부 간의 갈등이 심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나 이러한 가부장제가 공고한 가정에서는 왜곡된 성관념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누나나 여동생 등이 있다면 그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며 집안 분위기 때문에 묵인될 가능성도 크다. 부모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이한테 좋은 표본이 된다. 어른들도 미안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관계에 대해 배우게 되는 것이다. 또 친구끼리 싸워도 사과할 건 하고 자신의 이야기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경우 사과해도 아이가 절대 기죽지 않는다. 당연하게 이렇게 키운 아이는 사과라는 것 자체를 자존심 상하는 행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이외에도 '전쟁이 나쁜 것이라고만 가르치지도 말라', '어렸을 때부터 시체를 보여줘라.', '형제 싸움은 말리지 말라',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지 말라', '절하는 법을 가르치지 마라', '물건 부수는 것을 막지 말라'는 등 고대 스파르타에서나 통할 군국주의적 내용들이 가득하다.[2]
심지어는 '비싸고 구하기 힘든 멜론은 그 '사회적 가치'를 아는 어른만 먹어야 한다.', '아이는 어른의 절반의 가치만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등등 궁색한 내용만 가득하다.
그는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가 '요절한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가 아버지가 오래 살아 있으면 아들이 그저 아버지의 인생을 닮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온갖 욕을 먹어 가면서까지 89세까지 장수했다.(...)
책의 내용이 매우 비정상적이라서 책을 쓸 때 작가인 이시하라 신타로 본인도 이건 개소리라고 생각하지만(...) 책을 공란으로 쓸 수는 없으니까 그냥 아무 말이나 마구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9. 군대에 관한 망언
이 인간은 일본에 징병제를 도입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는데 # 놀랍게도 그 이유가 완전히 이 인간의 정신이 썩었음을 증명했다. 이외에도 '전쟁이 나쁜 것이라고만 가르치지도 말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일본 황실에게 엿먹어라는 발언과 거의 동급이다. 일본 황실은 전쟁을 매우 싫어하며 이미 한 번 굴욕을 겪어 봤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일본 황실 측의 사상과 완전히 반대된다.[3]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시체를 보여줘라.', '형제 싸움은 말리지 말라',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지 말라', '절하는 법을 가르치지 마라', '물건 부수는 것을 막지 말라'는 등의 소리를 자녀 교육 방법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얼빠진 인간인지라 일본의 온 청년층을 죄다 군대로 몰아넣기 위해 발악했다. 이 때문에 당연히도 일본의 40대 이하의 연령층에서 신타로를 맹렬하게 비난하자
군복무나 경찰로서의 복무는 애국심을 함양시키는 좋은 수단입니다.
라는 말로 변명했다.
10. 일본에 대한 망언
2011년 3월 24일 수돗물을 공급하는 가나마치 정수장에서 어른들은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며 시음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찡그린 표정이 억지로 먹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에 있는 남자의 표정을 보시라. 당시 일본 뉴스[4]에서 수돗물 1킬로그램당 210베크렐의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되었다고 보도하였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정한 잠정규제치가 유아는 100베크렐, 성인은 300베크렐이라서 어른들은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며 마신 것이다. 이 수돗물을 마셔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020년 1월 췌장암이 발견되었고 2022년 2월 1일 89세로 사망했다.
Dr. 히루루크를 합성한 모습.
정치에 막 입문했을 젊은 시절에는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서 전두엽이 퇴화해있기 때문에 정치를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늙은이들은 물러나란 소리. 그래 놓고서는 정작 본인은 80대가 되도록 정치활동을 했다.
만화, 애니메이션에 대한 규제안을 낼 때는 트위터를 통해 ''만화나 애니를 보는 사람들은 전부 인생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여자 사귀는 일도 못 한다."는 망언까지 했다. 완결편 제작 전에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불법 총기소유와 마약 사건 후 절교했다곤 하지만 완결편의 각본은 절교 전에 썼다.
2011년 3월 14일, 기자가 도호쿠 대지진에 대한 의견을 묻자 뜬금없이 고령자 소재불명 문제를 언급했다. 사망한 부모를 사망신고하지 않고 노령연금을 장기간 부당 수령한 것이 잇따라 적발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일본에서 대지진 발생 전에 한동안 사회 문제로 아주 크게 언급이 되었으나 대지진이 발생하자 대중의 관심이 다 대지진에 쏠려서 묻힌 문제였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이렇게 자국민의 사심과 정치 행태를 비난한 뒤 "이번 지진을 잘 활용해서 일본인의 사리사욕을 한 번쯤 깨끗이 씻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것은 천벌이라고 본다."는 초유의 망언을 해 버렸다. 나중에 그 발언을 들은 기자들이 "천벌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하지 않느냐"고 묻자 "피해자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이겠습니다만, 이라고 한마디 덧붙여 두지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이 기사에 의하면 그는 "일본인만이 떼지어 슈퍼를 터는 바보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개소리라는 게 증명되어 버리고 말았다.
더 웃긴 건 선거가 코앞(2011년 4월 10일 실시 예정)이었던 상황에서 이런 희대의 개드립을 쳤다는 것이다. 이와테현·미야기현·후쿠시마현의 일부 선거는 지진으로 연기되었지만 도쿄도지사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당선되었다. 이 망언으로 2ch에서도 디스를 걸게 되었다 카더라.
하지만 결국 온갖 망언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던 그조차 이 망언만큼은 워낙 파급이 컸던지라 다음날인 15일에 바로 깊은 사죄를 드린다면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또 도졌는지 2011년 4월 25일에는 도민들에게 일본인이 반성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하늘이 용서치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2011년 8월 15일, 이시하라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은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8월 22일에 나온 잡지 인터뷰에도 자국인 비하 발언을 했는데 "일본인들은 금전욕구와 물욕과 성욕만 갖고 있는 한심한 종족이다."는 말을 끼워넣었다.
사실 야스쿠니 신사는 아키히토 덴노, 그러니까 신타로를 위시한 일본 극우파들이 떠받들어야 할 대상인 사람조차 참배를 안 한 곳이다. 그런 곳을 참배 안 했다고 까니... 실제로 아키히토는 평화를 지향하는 철저한 반전주의자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2012년 4월 25일에는 시즈오카현의 영화 촬영장에서 아사히 신문 기자에게 사람들 앞에서 때린다고 철권통치를 예고했다. 이유는 아사히 신문 23일 석간의 이시하라 비판 기사 때문이라는 듯. 비판은 하되 비난은 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누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정말로 한심하다고 볼 수 있다.
2012년 10월 25일에는 일본의 청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 5월 14일에는 군대와 매춘은 불가분의 관계라면서 하시모토 도루의 일본군 위안부 망언에 쉴드를 치고 나섰다.
2013년 5월 18일에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은) 침략이 아니다.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학일 뿐이다. 역사에 관해서 무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망언 문단에서 이미 나왔지만 "북한이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고, 한국이 반대할지라도 결국은 자신들에게 이익이다."라는 망언을 했는데 이 경우 일본의 안보적 부담 및 위협은 지금보다 수 배로 증가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자국의 안보적 부담이 증가하는 게 최선이라는 의미가 되어 자국에 대한 망언도 된다.
11. 성소수자에 대한 망언
2017년 7월에는 "텔레비전에 여장한 남자 탤런트가 유행인 것을 도대체 어떻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전혀 이유가 모르겠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는 호모포비아 + 트랜스포비아성 망언을 했다. 시기상 마츠코 디럭스를 저격한 발언이다. 그러나 일본은 미와 아키히로 같은 연예인들이 이미 1960년대부터 활동하고 있고 인정받는지라 철저하게 비웃음을 당했다. 미와 아키히로가 정작 신타로의 옛날 친구였던 미시마 유키오와 교제했다는 소문도 있는 인물임을 생각하면 죽은 자신의 친구도 욕보인 셈이다.[1] 말이 되는 게 저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은 미국 입장에서는 도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일본 버블경제로 욱일승천하며 자국은 물론 미국의 부동산, 기업을 사들이던 시기에 저런 책을, 그것도 유력 정치인과 거대 일본기업 총수가 냈다는 것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언제 한 번 일본을 손봐주지 않으면 또다시 기어오르겠구나 하는 여론을 조성한 셈이다.[2] 정작 그 스파르타도 군국주의적 폭력이나 힘은 겉보기에만 중시했으며 사실 아테네만큼이나 발달된 철학과 논리학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3]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에 천황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태합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물론 도요토미 태합은 그 편지를 무시해버렸다.[4] 東京都、水道水「乳児は控えて」 23区と5市 浄水場から基準超す放射性ヨウ素検出 도쿄시 수도물 유아는 삼가, 정수장으로부터 기준 초과하는 방사성 요오드 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