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22:41:36

인광노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시도등록문화재
8호 9호 번호 지정제 폐지
독립신문 유인물(평양) 인광노 남산도서관 소장 일제강점기 잡지 3종

서울특별시 시도등록문화재 제9호
인광노
引光奴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0길 20 고은당
분류 등록문화재 / 기타
수량 / 면적 1건 3묶음
지정연도 2021년 6월 10일
시대 조선 말기
소유자
(소유단체)
정하근[1]
<colbgcolor=#ffdf00> 세계등잔박물관에서 제작한 인광노 영상

1. 개요2. 상세

[clearfix]

1. 개요

조선 시대의 점화 기구.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쉽게 말해서 전통 성냥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요즘 성냥하고는 좀 개념이 다르다. 현대적인 성냥은 마찰만으로 스스로 불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인광노는 화로에 남은 잿불 같은 작고 약한 불씨에 대어 열을 가해야 한다. 즉, 기존의 불씨를 더 큰 불로 만드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름 '인광노(引光奴)'의 뜻은 '빛(光)을 이끄는(引) 종(奴)'이다. 다른 말로 '석류황(石硫黃)[2]', '화촌(火寸)', '발촉(發燭)', '화시(火柴)'라고도 한다.

2. 상세

언제 어디서 처음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송 초기인 960년에서 980년 사이에 도곡(陶穀)이 지은 저서 《청이록(淸異錄)》에 언급된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듯 하다. 그리고 원말명초의 학자 도종의는 자신의 저서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를 통해 '중국 항주에서 만든 것이 시초'라고 언급했다.

한국에서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608년(선조 41년)에 당시 어의였던 허준이 지은 《언해태산집요》에 '석류황(石硫黃)'이란 이름으로 적힌 것을 보아#, 적어도 그 이전부터는 사용했던 듯 하다.

실학자 이익이 지은 《성호사설》과 홍만선이 펴낸 《산림경제》에는, 인광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보통 화(樺)나무 껍질로 제작한다.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는 사람이 만들었다. 부싯돌에 불이 잘 붙는 물질을 대고서 부쇠로 친 뒤에 유황에다가 불꽃을 일으키면 등불을 켜는 것이 쉽다고 한다. 화나무는 주로 북쪽 지방에서 자라는데, 껍질은 에도 붙일 만하다.
성호사설》 제4권, 〈만물문(萬物門)〉
인광노(引光奴): 광솔[松明]은 쪼개어 작은 조각을 만들되 종이처럼 얇게 만들어 유황(硫黃)을 녹여 그 끝에 발라두었다가 밤의 급한 일이 있을 적에 이것을 사용하여 불을 붙이면 즉시 붙게 된다. 어떤 때는 화피(樺皮)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너무 급히 타서 쉽게 꺼지기 때문에 오래 타는 광솔만은 못하다.
《산림경제》 제4권, 〈잡방등촉(雜方燈燭)〉[3]
여기서 언급한 화나무의 정체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벚나무라는 의견도 있고, 자작나무라는 주장도 있다.

재질은 문헌마다 다르다. 《성호사설》에서는 화나무, 《청장관전서》에서는 소나무로 적혀있다. 《산림경제》에서는 소나무와 화나무를 같이 언급하나, 소나무가 더 오래 탄다고 언급한다. 공통점은 끄트머리 발화부분에 유황을 발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조선이 개항한 후, 근대식 성냥서양에서 들어오면서 백성들이 인광노를 사용하는 횟수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져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혔고, 책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파일:인광노.jpg
<colbgcolor=#ffdf00> 독일에서 발견한 인광노[4]
그러다 2011년부터 2013년 사이에 국립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독일 작센에 있는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에서 유물조사를 하다가 발견했다. 고종의 외교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조선에 머물면서 민속용품들에 관심을 가졌고, 독일 박물관과 협의하여 물품들을 수집한 다음 독일로 가져갔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인광노였던 것.#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잠자고 있던 실물 인광노가 세상 밖으로 드러난 의미있는 발견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에 국내에도 인광노 실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 고은당의 정하근 대표가 소장하고 있었으며, 2016년에 열린[5] 인천도시역사관 기획특별전 〈화 · 생 · 방 · 전〉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현재도 고은당에서 보존 중이지만, 전시는 하지 않기 때문에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고은당의 인광노는 2021년 6월 10일에 서울특별시 시도등록문화재 제9호로 지정받았다.

[1] 출처.[2] 현재 쓰는 '성냥'의 어원이다.[3] 출처 - 역사문화라이브러리.[4] 사진 출처 - 문화재청.[5] 8월 30일부터 11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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