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6 22:45:51

장검(요나라)

요사(遼史)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f6e8e1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2권 「태조기(太祖紀)」 3·4권 「태종기(太宗紀)」 5권 「세종기(世宗紀)」
야율아보기 야율요골 야율올욕
6·7권 「목종기(穆宗紀)」 8·9권 「경종기(景宗紀)」 10·11·12·13·14·15·16·17권 「성종기(成宗紀)」
야율술률 야율명의 야율문수노
18·19·20권 「흥종기(興宗紀)」 21·22·23·24·25·26권 「도종기(道宗紀)」 27·28·29·30권 「천조제기(天祚帝紀)」
야율지골 야율사랄 야율아과 · 야율순 · 야율아리 · 야율대석
※ 31권 ~ 62권은 志에 해당. 63권 ~ 70권은 表에 해당. 요사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2><tablewidth=100%><tablebgcolor=#a0522d> 71권 「후비전(后妃傳)」 ||
소탁진 · 소아리신 · 소월리타 · 소암모근 · 술률평 · 소온 · 소철갈지 · 견비 · 소황후 · 소작 · 소보살가 · 소누근 · 소달리 · 소삼천 · 소관음
소탄사 · 소탈리라 · 소사고 · 소비비 · 소귀가
72권 「종실전(宗室傳)」 73권 「야율갈로등전(耶律曷魯等傳)」
야율배 · 야율이호 · 야율준 · 야율오로알 야율갈로 · 소적로 소아고지 · 야율사열적 야율로고 야율파덕 · 야율욕온 · 야율해리(海里)
74권 「야율적랄등전(耶律敵剌等傳)」 75권 「야율적렬등전(耶律覿烈等傳)」
야율적랄 · 소흔독 · 강묵기 · 한연휘 · 한지고 야율적렬 야율우지 · 야율탁진 야율고 야율돌려불 · 왕욱 · 야율도로군
76권 「야율해리등전(耶律解里等傳)」
야율해리(解里) · 야율발리득 · 야율삭고 · 야율노불고 · 조연수 · 고모한 · 조사온 · 야율구리사 · 장려
77권 「야율옥질등전(耶律屋質等傳)」 78권 「야율이랍갈등전(耶律夷臘葛等傳)」
야율옥질 · 야율후 · 야율안단 · 야율와 · 야율퇴욱 · 야율달열 야율이랍갈 · 소해리 · 소호사 · 소사온 · 소계선
79권 「실방등전(室昉等傳)」 80권 「장검등전(張儉等傳)」
실방 · 야율현적 · 여리 · 곽습 · 야율아몰리 장검 · 형포박 · 마득신 · 소박 · 야율팔가
81권 「야율실로등전(耶律室魯等傳)」 82권 「야율융운등전(耶律隆運等傳)」
야율실로 · 왕계충 · 소효충 · 진소곤 · 소합탁 야율융운 · 야율발고철 · 소양아 · 무백 · 소상가 · 야율호고
83권 「야율휴가등전(耶律休哥等傳)」 84권 「야율사등전(耶律沙等傳)」
야율휴가 · 야율사진 · 야율해저 · 야율학고 야율사 · 야율말지 · 소간 · 야율선보 · 야율해리
85권 「소달름등전(蕭撻凜等傳)」
소달름 · 소관음노 · 야율제자 · 야율해리(諧理) · 야율노과 · 소류 · 고훈 · 해화삭노 · 소탑열갈 · 야율살합
86권 「야율합주등전(耶律合住等傳)」
야율합주 · 유경 · 유육부 · 야율요리 · 우온서 · 두방 · 소화상 · 야율합리지 · 야율파적
87권 「소효목등전(蕭孝穆等傳)」
소효목 · 소포노 · 야율포고 · 하행미
88권 「소적렬등전(蕭敵烈等傳)」
소적렬(蕭敵烈) · 야율분노 · 소배압 소항덕 · 야율자충 · 야율요질 · 야율홍고 · 고정 · 야율적록(的琭) · 대강예
89권 「야율서성등전(耶律庶成等傳)」 90권 「소아랄등전(蕭阿剌等傳)」
야율서성 · 양석 · 야율한류 · 양길 · 야율화상 소아랄 · 야율의선 · 소도외 · 소탑랄갈 · 야율적록(敵祿)
91권 「야율한팔등전(耶律韓八等傳)」 92권 「소탈랄등전(蕭奪剌等傳)」
야율한팔 · 야율당고 · 소출철 · 야율결 · 야율복리독 소탈랄 · 소보달 · 야율후신 · 야율고욱 · 야율독매 · 소한가 · 소오야
93권 「소혜등전(蕭惠等傳)」
소혜 · 소우로 · 소도옥 · 야율탁진
94권 「야율화가등전(耶律化哥等傳)」
야율화가 · 야율알랍 · 야율속살 · 소아노대 · 야율나야 · 야율하로소고 · 야율세량
95권 「야율홍고등전(耶律弘古等傳)」
야율홍고 · 야율마륙 · 소적렬(蕭滴冽) · 야율적록 · 야율진가노 · 야율특마 · 야율선동 · 소소삽 · 야율대비노
96권 「야율인선등전(耶律仁先等傳)」
야율인선 · 야율량 · 소한가노 · 소덕 · 소유신 · 소악음노 · 야율적렬 · 요경행 · 야율아사
97권 「야율알특랄등전(耶律斡特剌等傳)」
야율알특랄 · 해리 · 두경용 · 야율인길 · 양적 · 조휘 · 왕관 · 야율희손
98권 「소올납등전(蕭兀納等傳)」
소올납 · 야율엄 · 요신 · 야율호려
99권 「소암수등전(蕭巖壽等傳)」 100권 「야율당고전(耶律棠古等傳)」
소암수 · 야율살랄 · 소속살 · 야율달불야 · 소달불야 · 소홀고 · 야율석류 야율당고 · 소득리저 · 소수알 · 야율장노 · 야율출자
101권 「야율적랄등전(耶律敵剌等傳)」 102권 「소봉선등전(蕭奉先等傳)」
야율적랄 · 야율아식보 · 소을설 · 소호독 소봉선 · 이처온 · 장림 · 야율여도
103·104권 「문학전(文學傳)」 105권 「능리전(能吏傳)」
소한가노 · 이한 · 왕정 · 야율소 · 요휘 · 야율맹간 · 야율곡욕 대공정 · 소문 · 마인망 · 야율탁로알 · 양준욱 · 왕당
106권 「탁행전(卓行傳)」 107권 「열녀전(列女傳)」
소차랄 · 야율관노 · 소포리불 야율상가 · 소의신 · 소와리본 · 소뇌란
108권 「방기전(方技傳)」 109권 「영관·환관전(伶官宦官傳)」
직로고 · 왕백 · 위린 · 야율적로 · 야율을불가 나의경 · 왕계은 · 조안은
110·111권 「간신전(奸臣傳)」
야율을신 · 장효걸 · 야율연가 · 소십삼 · 소여리야 · 야율합로 · 소득리특 · 소와도알 · 소달로고 · 야율탑불야 · 소도고사
112·113·114권 「역신전(逆臣傳)」
야율할저 · 야율찰할 · 야율누국 · 야율중원 · 야율활가 · 소한 · 야율첩랍 · 야율랑 · 야율유가 · 야율해사 · 야율적랍 · 소혁 · 소호도 · 소첩리득 · 고첩 · 야율살랄죽 · 회리보 · 소특열
115권 「이국외기(二國外記)」
고려 · 서하
※ 116권은 國語解에 해당. 요사 문서 참고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a0522d><tablebgcolor=#a0522d> ||
}}}}}} ||


1. 개요2. 생애
2.1. 성종 시기2.2. 흥종 시기

1. 개요

張儉
(962 ~ 1053)

요나라의 인물. 완평 사람으로 사치를 좋아하지 않는 청빈한 성품이다.

2. 생애

2.1. 성종 시기

996년에 진사 제1위로 급제해 순주종사, 서극시승, 범양령을 지내다가 운주의 막관이 되었다.

성종이 꿈을 꾸어 네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들에게 두 입의 음식을 주었는데, 운중으로 사냥을 갔을 때 장검의 이름을 듣고 꿈에 대해 깨달았다. 장검이 부름을 받았을 때 장검은 30여가지 사항을 성종에게 상주해 중용되었다.

1009년에는 아버지의 상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예부낭중에 임명되었다가 추밀원으로 옮겨 금자를 하사받고 주국, 개국남의 칭호를 얻으면서 식부 300실을 받았다. 1011년 12월에는 태상소경을 지내고 있다가 송나라로 사신을 가는 야율한녕을 수행하기 위해 부사로 임명되어 송나라로 갔으며, 1012년에 정사사인, 지추밀직학사가 되었고 1013년에는 추밀직학사동수국사가 되었으며, 1014년에는 공부시랑, 지제련을 더했다.

1015년 봄에는 추밀원사로 옮겼다가 여름 6월에는 선정전학사, 수형부시랑, 참지정사, 동지추밀원사가 되었고 겨울 10월에는 추밀사, 숭록대부상서좌복야 겸 문하시랑평장사 겸 수국사, 익성좌리공신이 되었다. 1016년 가을에는 개부의동삼사, 수사공에 임명되고 갈절공신을 더했으며, 1017년 겨울에는 정사령을 더했다. 1021년에는 죄승상, 중서령이 되었고 노국공, 추충광시수절공신에 올랐다.

1025년 봄에는 무정군절도사, 좌시전절공신이 되었고 여름 6월에 창국군절도사가 되었다가 12월에는 대동군절도사가 되었다.

1026년 3월에는 남원추밀사, 좌승상 겸 정사령, 수국사가 되었고 오숙달이 장검과 협조하지 못해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참지정사에서 강주자사로 좌천되었다.

2.2. 흥종 시기

1031년 흥종이 즉위하자 태부가 되어 동덕공신의 칭호를 받았으며, 1032년에는 태사가 되었고 1035년에는 상부의 자리를 더해 진국공에 봉하면서 장량홍정기덕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1036년에는 흥종이 예부에 행차했고 장검이 진사에 대한 심사를 봤는데 모두 검소한 사람이었다. 장검은 녹봉을 친한 사람에게 나눠주면서 검소한 생활을 했는데, 흥종이 이에 대해 묻자 자신은 이 옷을 30년 동안 입었다고 했다. 흥종은 장검의 검소함을 불쌍히 여겨 궁중에 있는 소지품을 가져가도록 했는데, 오로지 베 3단만 가져가서 이를 하사했다. 흥종이 장검의 동생 5명에서 진사의 신분을 내리려 했으나, 장검이 사양했다.

1037년에 한왕에 봉해졌고 1042년에는 진왕에 봉해졌다.

어떤 때에는 관리가 8명의 사람을 도적으로 붙잡아 처형했다가 뒤늦게 진범이 붙잡혔는데, 8명의 집안 사람들이 누명으로 고소했기에 장검은 다시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흥종이 다시 조사하는 것을 꺼렸다가 장검의 간언을 받아들여 8명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며, 장검은 재상 자리에 있은지 20여 년이 되어 물러나고 저택에서 은거했다.

송나라에서 보낸 편지에 무례한 말이 있어서 흥종이 친정을 하려고 장검을 찾아가 의견을 물었는데, 장검은 한 사람의 사자를 파견해 힐문하면 될 것을 먼 곳까지 수레를 보낼 수 있겠냐고 하면서 간했기에 친정은 취소했다.

1053년에 사망했고 완평현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