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천도룡기의 등장인물 장취산 張翠山 / Zhāng Cuìshān | ||
▲ 드라마 〈의천도룡기 2019〉의 장취산(리동쉐(李东学) 분) | ||
<colbgcolor=#4D256E,#1C082D><colcolor=#A79E8D> 성별 | 남성 | |
민족 | 한족 | |
자택 | 무당산(武當山) (원나라 하남강북행성)[1] | |
빙화도(氷火島) (북극) | ||
소속 | 무당파 (제자) | |
가족 | 은소소 (배우자) 장무기 (아들) 사손 (대형)[2] 은천정 (장인) 은야왕 (처남) 은리 (처조카) | |
등장작품 | - 소설 《의천도룡기》 (원작) - 각종 2차 창작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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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張翠山소설 《의천도룡기》의 등장인물.
아내 은소소와 아들 장무기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주인공 포지션이다.
2. 작중 행적
<rowcolor=#A79E8D> 드라마 〈의천도룡기 2019〉에서의 모습 (리동쉐(李东学) 분) |
무당파 개파조사 장삼봉의 제자로 무당칠협의 다섯째. 그 아래 은리정과 막성곡 두 제자는 송원교, 유연주 같은 선배들이 가르쳤기 때문에, 비록 다섯번째 제자였지만 실제로는 스승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받은 마지막 관문제자(關門第子)이다.
은소소와 결혼하여 장무기를 낳았다.
왼손으로 은색 호랑이 형태의 갈고리 호두구(虎頭鉤)를, 오른손으로 판관필을 무기로 사용하기 때문에 은구철획(銀鉤鐵劃)이라는 별호를 지니고 있다. 이런 별호를 얻었기 때문에 혹시 별호가 글 짓는 선비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여 서예를 연습하여 모든 서체에 일가견을 이루게 되었다.
돌아오기로 약속한 장삼봉의 90세 생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유대암을 마중하러 무당산에서 내려왔다가 도대금이 무당파 근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간다. 유대암이 무당칠협을 사칭하는 자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폐인이 된 유대암을 수습하여 무당산으로 돌아온다.
그날밤, 무아지경에 휩싸여 의천검과 도룡도에 얽힌 24자의 글씨를 허공에 손가락으로 쓰는 장삼봉의 모습을 보고, 그 무아지경의 서법을 무공으로 승화시킨 의천도룡공(義天屠龍功)을 얻게 된다.
그리고 유대암이 폐인이 된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도룡도를 쫓아 강남으로 향한다. 도중에 용문표국으로 돌아가는 도대금 일행을 만나, 그들에게 유대암을 운송하고 받은 대금을 수재민을 구제하는데 쓰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용문표국에 도착한 후, 도대금을 비롯한 이들이 모두 살해된 것을 보게 된다. 은소소가 저지른 짓이었지만 이때 은소소는 장취산의 옷을 흉내내어 입고 있었기 때문에, 겨우 살아남은 소림승 혜풍(慧風)은 장취산이 범인이라고 증언하고 은소소의 은침을 맞고 죽고 만다.
그리하여 뒤늦게 소림사의 승려 원심(圓心), 원음(圓音)과 원업(圓業)은 완전히 장취산이 그들을 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장취산과 싸움을 벌이게 된다. 게다가 셋 다 은소소의 암기에 맞아 애꾸눈이 되어 더욱 원한이 깊어진다.
도망치다가 은소소의 배에 올라 피하게 된다. 그리고 은소소에게 그 간의 사정에 대해서 듣게 되며 은소소의 중독을 내공력으로 치료해준다. 그리고 왕산반도에서 천응교가 도룡도를 차지했음을 알리는 모임에 참석한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금모사왕 사손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참하게 죽이자, 자신이 나서서 사손에게 도전하게 된다. 장취산은 의천도룡공으로 24자의 글자를 절벽에 적어넣어, 그 서법에 감탄한 사손은 패배를 인정하게 된다.[3] 승리한 장취산은 이 자리의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하지만, 사손은 죽이지는 않았으나 사자후로 그들을 모두 백치로 만든 다음 장취산과 은소소만 데리고 왕산반도를 떠나 바다로 나간다.
사손은 무인도를 찾아 도룡도의 비밀을 연구할 생각이었으나, 폭풍에 휘말려 배가 부서지고 빙산을 타게 되어 빙화도까지 흘러들어간다. 장취산은 어려움 속에서 은소소에게 사랑을 느껴, 그녀와 결혼하고 아들 장무기를 얻게 된다.
뗏목을 타고 빙화도에서 중원으로 돌아온 다음 무당칠협의 둘째 유연주와 재회하고, 천응교의 이천원 당주에게 구조된다.
무당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 장무기가 납치되고, 삼강방과 천건남의 무리와 싸우는 등 등 여러가지 곤경이 있었으나 마침내 무당산에 돌아와 사부 장삼봉과 재회하게 된다.
장삼봉의 100세 생일날, 많은 무림 문파가 몰려와 사손의 위치를 대라고 했지만 그는 의형제를 맺은 사손의 목숨의 위험하게 할 수 없었으므로 소림사와의 싸움이 벌어지는 것 까지 각오하며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은소소의 고백으로 그녀가 유대암을 구해준 것만이 아니라 본래 유대암을 해치고 도룡도를 빼앗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은소소를 죽이려 했으나 차마 죽이지 못한다. 그리고 장삼봉에게 아들 장무기를 부탁한 다음 여러 문파들 앞에서 목숨을 끊고 만다.
작중 평에 따르면 송원교나 유원주 등의 사형들보다는 실력이 떨어지지만, 오성이 뛰어나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무당칠협 가운데 따라갈 인재가 없다고 한다. 그 때문에 장삼봉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장차 무당파의 진전을 이어갈 후계자로 지목받고 있었다. 물론 친형제보다 정이 깊은 무당칠협의 다른 고수들은 여기에 대해 질투는커녕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다닌다. 아들 장무기가 보여주는 빠른 이해력과 무학에 대한 총명함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자질인 듯하다.
[1] 현대 기준으로는 '중국 후베이성 스옌시 단장커우시(丹江口市)'[2] 중국어로는 '大哥(dàgē)'. 의형제 관계[3] 당시 사손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건 나한테 이기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술 많이 마시기, 음식 빨리 먹기 같은 것도 상관 없다고 했지만 그 누구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그냥 멀거니 서서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상황에서 장취산이 절벽에 의천도룡공으로 절벽에 글자를 새겨넣은 것이다. 사손 왈 '나 또한 그냥 글을 쓰라면 이렇게 뛰어난 서법을 보일 수 있으며, 절벽에 글을 새기라면 새길 수 있으나, 장취산처럼 무공과 서법을 합쳐서 절벽에 새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