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홍의 수상 및 영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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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2018 |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정재홍 鄭在洪 | ||
출생 | 1986년 1월 26일 | |
인천광역시 | ||
사망 | 2019년 9월 3일 (향년 33세) |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8cm 체중 78kg |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
학력 | 신흥초등학교 (졸업) 송도중학교 (졸업) 송도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 학사) | |
프로입단 | 2008년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 대구 오리온스) | |
종교 | 불교 | |
소속 | 대구-고양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2008~2017)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13~2015 / 임대) 서울 SK 나이츠 (2017~2019) |
1. 개요
2019년까지 뛰었던 대한민국의 프로농구 선수였다. 생전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3점 슛 성공률이 상당히 좋았던 데다가 개인기가 좋았고 돌파력도 포인트 가드 중에서 준수한 편이었다.미국에서 스킬트레이닝을 사비로 배워왔을 만큼 농구에 대한 열정이 아주 높았고, 웃을 때 잇몸이 매력적이었으며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로도 유명했다.[1]
등번호는 오리온에서 1번[2]과 6번[3], 전자랜드에서 26번, SK에서 30번.
2. 선수 시절
2008년 대구 오리온스에 전체 6번으로 지명되었고 그해 김강선과 함께 김승현의 백업가드를 맡았다. 주전보다는 주로 2옵션으로 많은 활약을 했으며, 2012-13 시즌 종료 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이현민이 고양 오리온스로 이적할 때, 반대급부로 지목되어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이적하였으나, 두 시즌 후 오리온스로 복귀하였다. 트레이드가 아닌 2013-14, 2014-15 이 두 시즌 동안 임대를 하기로 거래가 되었던 것이다.2015-16 시즌을 앞두고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로 복귀했는데, 고양 오리온의 포인트 가드였던 조 잭슨과의 재계약이 불발되어서 실질적으로 팀내 유일한 1군급 포인트 가드로 경기를 지휘했다.
특히나 4라운드부터는 스킬트레이닝의 효과가 발휘된 것인지 간간히 발군의 돌파력을 보여주어 오리온스 팬들을 즐겁게 해 확실히 예년에 비해 기량히 상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7-18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서울 SK 나이츠가 3년 계약 (첫해 2억 2300만원)으로 영입했다. SK에 있던 송창무가 오리온으로 이적했기에 맞이적을 한 셈.
시즌 개막 후 주전 포인트가드 김선형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상당한 출전 시간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팀의 선택은 최준용에게 리딩을 맡기는 것이었고, 정재홍 본인도 3라운드 들어 DB-전자랜드전에서 2경기 연속으로 노마크 레이업을 실패한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팀이 연패한 크리스마스 S 더비와 그 뒤 KGC와의 대결에서 20득점, 17득점을 기록하고 올스타전 3x3에서 모교 동국대학교 팀으로 출전해 2점슛(정규시즌에선 3점슛) 18개를 성공시키는 등 간간히 활약했다. 백업 가드 역할을 수행해 전반적인 출전시간과 기록은 직전 시즌 오리온에서 뛰었을 때와 비슷한 정도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선 1분 내외로 출전하는 등 별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5점차로 뒤진 KCC가 파울작전을 펼치던 4차전 막판에 이현석이 부상으로 아웃되며 자유투 대타로 나섰다. 14초를 뛰며 자유투 4개를 던져 3개를 성공시키며 클러치 타임의 주인공이 되어 챔피언 결정전으로 향했다. 자유투를 1구 1구 성공시킬 때마다 르브론 제임스의 세레모니를 따라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오리온스에서는 정재홍이 없자 김강선, 김진유 등이 1번 임무를 수행했지만 답답함을 느낀 일부 오리온스 팬들이 정재홍을 그리워한다고 전해졌다.
서울 SK 나이츠에서의 첫 시즌, 개막 2경기만에 부상을 입은 김선형의 공백을 잘 채워주면서 포인트가드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김선형 복귀 이후에는 다시 벤치멤버가 되었지만 간간히 백업으로 경기를 나왔고 SK가 18년만에 우승하면서 이적 첫 시즌만에 우승반지를 하나 더 얻는 기쁨까지 누렸다.
SK 나이츠의 팬들은 크게 기대를 하지 못한 영입이었지만 경험이 많았던 포인트 가드인 정재홍이 없었을 경우 SK는 정규시즌에 김선형의 부재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SK는 FA로 선수를 영입했어도 계속 실패를 맛보았는데 정재홍은 여러모로 좋은 FA 영입 사례로 남았다. 18-19 시즌에도 기존에 있던 변기훈이 완전히 퇴물이 되며 김선형과 함께 스쿼드로 출전하기도 했다.
2019년 2월 김선형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대신 포인트 가드로 출전하여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팀 전체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서 정재홍도 비난을 받았으나 그의 부활을 믿는 팬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 시즌이 그의 마지막 시즌이 될줄은 SK 팬이나 타 팀팬들은 아무도 몰랐었다.
3. 사망
2019년 9월 3일, 손목 골절로 인해 4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손목 수술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어 이 날 오후부터 병원에 입원했었다. 이후 오후 6시에 담당의와 상담을 마치고 저녁 식사 이후 5인 병실에서 휴식을 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가 발생해 심정지 상태로 의식을 잃은 채 오후 7시쯤에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간호사에게 발견됐고 이후 3시간 가량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결국 밤 10시 40분경 사망 판정을 받았다.[4] 기사 고인의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6일 오전 6시 30분에 진행되었다. 운구는 송창무, 김우겸, 김민수를 비롯한 SK 나이츠 선수들이 맡았다.최원혁, 이현석의 입대로 인하여 다시 한 번 팀에서 기회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시즌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손목수술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5] 특히나 많은 농구팬들이 좋았던 그의 인성과 팬들을 대하는 자세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정재홍 선수 덕에 행복했습니다.", "그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세요.", "코트에서 열정적이었던 모습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등의 애도의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기사 특히나 후술할 진정한 프로다운 자세와 훌륭한 인성 덕분인지 팬들은 그의 사망 소식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며, 너무나도 안타까워하는 중이다. 특히 사비로 스킬 트레이닝을 받으러 간 스토리, 파도파도 미담만 나오는 팬서비스 등과 같이 농구 밖에 모르는 바보라는 것이 더욱 재조명되고 있다.
요절한 다음날인 2019년 9월 4일, 부검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다음날인 9월 5일에 결과가 나올 때 까지 2~3주가 걸렸다고 했으며, 10월 7일 부검결과 사인불명으로 나왔다. 사실상 심장마비로 보인다.
5개월 전에 올라온 18~19시즌 본인의 하이라이트 모음 유튜브 영상에서는 1개도 없던 댓글이 사후에 하나둘씩 추모의 댓글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그가 생전에 올린 마지막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는 "웃음이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다." 라고 하면서 농구팬들 사이에서 안타까워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질 당시 중국에 2019 FIBA 농구 월드컵 차 나가 있던 농구 대표팀은 FIBA에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검은 테이프를 달고 뛸 수 있게 요청한 결과 FIBA 측도 이를 받아들여 9월 4일 B조 예선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 전에서 검은 테이프를 착용하고 출전했다. 그러나 대표팀은 66-108로 42점차 대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사망 후 네이버 뉴스 농구 카테고리에서는 정재홍을 추모하는 기념으로 처음 영상 업로드를 시작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하이라이트 부분을 따로 모아서 올렸다.
서울 SK 나이츠가 팀 훈련을 취소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당시 문경은 감독이 아닌 전희철 코치가 몸이라도 굳지 않게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는 식으로 훈련을 진행했는데 선수들이 죄다 흐느끼며 울었던 탓에 훈련 진행이 불가능했다. 사실 동료가 죽었는데 훈련이 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수의로 그가 사랑했고 열정을 쏟았던 농구 유니폼을 입고 하늘로 떠나게 됐다.
그를 조문하기 위해 전 소속팀이었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추일승 감독 이하 선수단이 왔으며 전태풍, 애런 헤인즈, 자밀 워니, 이현민, 박상오, 김영환, 조성민, 강병현, 오세근 역시 빈소를 찾았다.
한편 SK와 오리온은 9월 5일 서로간의 연습경기 일정을 잡아놨지만 정재홍의 발인일이라 취소했다.
이후 SK의 모든 선수들이 터리픽 12에 정재홍의 번호 30번과 이니셜 JH를 새기고 경기에 임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규시즌에는 'With J. H.'라는 문구가 유니폼의 목부분에 새겨졌다.[6] 또한 SK의 홈 개막전인 10월 26일 삼성과의 경기 시작 전에도 정재홍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9-20시즌 개막전 정재홍 선수 추모영상 그리고 사망당시 등번호인 30번은 이 시즌부터 임시결번으로 지정되었다.[7] 실제로 4년이 지난 2023년에도 아무도 30번을 달지 않았으며, 2023년 12월 트레이드로 이적해온 박민우가 30번을 선택하면서 그의 임시결번은 해제되었다.
장지는 인천 승화원 가족묘지이다.
4. 플레이 스타일
스피드가 준수했고, 스킬 트레이닝은 헛으로 배운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 상당히 좋은 핸들링을 가졌다. 원래는 3점 슛이 약한 선수였지만, 16-17시즌 시작 전 문태종과 김병철 코치에게 도움을 받아 3점 슛 성공률을 끌어올려서 성공률이 46.77%에 이를 정도로 올라와 자신감 까지 성장하게 된 시즌이었다. 상대팀이 의외로 얕본 경향이 있었지만 3점슛이 상당히 뛰어났다.단점은 수비였는데 뛰어난 활동량으로 열심히 노력했으나 선천적으로 사이즈가 작았기 때문에 상대 가드들과의 매치업에서 약점을 보여주었고, 신장 때문에 공격에서 수비견제를 많이 받았다. 장점인 3점슛도 오픈 상황에서는 성공률이 높았지만, 수비를 달고 던졌을 때는 성공률이 떨어진 편이었다.
5. 여담
- 2015-16 시즌을 앞두고 LA의 기술 트레이닝 센터를 찾아 NBA 선수들과 함께 특별훈련을 받았다고 한다.[8] 본인의 연봉이 9천만원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량 발전을 위하여 사비로 2500만원을 들여 트레이닝을 받은 사실은 많은 팬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 위의 행적으로 인해 경기 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스킬갑, 스킬홍 등 스킬이 붙은 별명이 추가되었다. 못하면 스킬 트레이닝 헛으로 배웠냐면서 욕을 먹었긴 했지만.
- 전언에 의하면 가끔 농갤 눈팅을 하였단다.
- 가끔 마구마구 갤러리를 했고, 마구마구도 즐겨했다.
- 팬 서비스가 상당히 뛰어났다. 본인이 친한 동생과 같이 직접 정재홍 팬클럽 네이버 밴드를 운영했는데 팬들에게 선물도 챙겨주었고 같이 농구도 하는 등 팬들과의 꾸준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대중들의 관심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팬 서비스에 무관심한 일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반드시 본을 받아야 하는 자세였다. 그래서 사후 팬들은 정재홍보다 팬 서비스 좋은 선수는 모든 종목을 통틀어도 없을것이라거나, 언덕처럼 다가와준 친근한 선수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 과거 NBA 매니아의 회원이었으며 글도 직접 남겼다. 매니아에서도 재능기부와 자신의 농구화 나눔 등 멋진 팬서비스를 보여 주었다.
- NBA 매니아에서 본인의 2018년 챔피언결정전의 우승반지를 공개했었다. SK나이츠의 2018챔결전 우승반지는 자세한 모습이 사진으로 언론이나 구단의 SNS에서 공개된 적이 없어, 정재홍의 게시물을 통해서 현재도 유일하게 자세한 디자인을 확인 가능하다.
6. 같이 보기
[1] 팬서비스는 정말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고였던 선수로 바스켓 카운트에서 한 팬이 '정재홍 선수는 높은 산이 아니라 낮은 언덕과도 같이 팬들 옆에 다가와준 선수였다'라고 회고했을 정도.[2] 대구 오리온스 시절[3]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시절[4] 5인실이라 다른 환자들도 있었지만 이상 징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냥 숙면 중이라고 생각한듯.[5]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에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을 정도였다.[6] 판매용 유니폼에는 적히지 않았다.[7] 19-20시즌까지는 판매용 유니폼에 정재홍의 마킹도 가능했다.[8] 이 때 같이 훈련한 선수가 중국리그를 퇴단하고 NBA 드래프트를 준비중이었던, 에마뉘엘 무디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