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철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김병철의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 |
2002 (선수) | 2016 (수석코치)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역대 국내선수 MVP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1997 시즌 | 1997-98 시즌 | 1998-99 시즌 | 1999-2000 시즌 | 2000-01 시즌 |
강동희 기아 / 가드 | 이상민 현대 / 가드 | 이상민 현대 / 가드 | 서장훈 SK / 센터 | 조성원 LG / 포워드 | |
<rowcolor=#ffffff> 2001-02 시즌 | 2002-03 시즌 | 2003-04 시즌 | 2004-05 시즌 | 2005-06 시즌 | |
김승현 동양 / 가드 | 김병철 동양 / 가드 | 김주성 TG삼보 / 포워드 | 신기성 TG삼보 / 가드 | 서장훈, 양동근 삼성 / 센터, 모비스 / 가드 | |
<rowcolor=#ffffff> 2006-07 시즌 | 2007-08 시즌 | 2008-09 시즌 | 2009-10 시즌 | 2010-11 시즌 | |
양동근 모비스 / 가드 | 김주성 동부 / 포워드 | 주희정 KT&G / 가드 | 함지훈 모비스 / 포워드 | 박상오 kt / 포워드 | |
<rowcolor=#ffffff> 2011-12 시즌 | 2012-13 시즌 | 2013-14 시즌 | 2014-15 시즌 | 2015-16 시즌 | |
윤호영 동부 / 포워드 | 김선형 SK / 가드 | 문태종 LG / 포워드 | 양동근 모비스 / 가드 | 양동근 모비스 / 가드 | |
<rowcolor=#ffffff> 2016-17 시즌 | 2017-18 시즌 | 2018-19 시즌 | 2019-20 시즌 | 2020-21 시즌 | |
오세근 KGC / 센터 | 두경민 DB / 가드 | 이정현 KCC / 가드 | 허훈 kt / 가드 | 송교창 KCC / 포워드 | |
<rowcolor=#ffffff> 2021-22 시즌 | 2022-23 시즌 | 2023-24 시즌 | 2024-25 시즌 | 2025-26 시즌 | |
최준용 SK / 포워드 | 김선형 SK / 가드 | 이선 알바노 DB / 가드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역대 모범선수상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1997 시즌 | 1997-98 시즌 | 1998-99 시즌 | 1999-2000 시즌 | 2000-01 시즌 |
김병철 동양 / 가드 | 조성원 현대 / 포워드 | 김훈 대우 / 포워드 | 강동희 기아 / 가드 | 추승균 현대 / 포워드 | |
<rowcolor=#fff> 2001-02 시즌 | 2002-03 시즌 | 2003-04 시즌 | 2004-05 시즌 | 2005-06 시즌 | |
임재현 SK / 가드 | 허재 TG / 가드 | 황진원 SK / 가드 | 강혁 삼성 / 가드 | 현주엽, 크리스 윌리엄스 LG / 포워드, 모비스 / 포워드 | |
<rowcolor=#fff> 2006-07 시즌 | 2007-08 시즌 | 2008-09 시즌 | 2009-10 시즌 | 2010-11 시즌 | |
양동근, 자밀 왓킨스 모비스 / 가드, 동부 / 센터 | 강대협, 키나 영 동부 / 가드, 모비스 / 포워드 | 주희정, 브라이언 던스톤 KT&G / 가드, 모비스 / 센터 | 윤호영, 브라이언 던스톤 동부 / 포워드, 모비스 / 센터 | 강병현, 허버트 힐 KCC / 가드, 전자랜드 / 센터 | |
<rowcolor=#fff> 2011-12 시즌 | 2012-13 시즌 | 2013-14 시즌 | 2014-15 시즌 | 2015-16 시즌 | |
김선형 SK / 가드 | 임재현 KCC / 가드 | 조성민 kt / 가드 | 오용준 kt / 포워드 | 주희정 삼성 / 가드 | |
<rowcolor=#fff> 2016-17 시즌 | 2017-18 시즌 | 2018-19 시즌 | 2019-20 시즌 | 2020-21 시즌 | |
김영환 LG → kt / 포워드 | 최부경 SK / 포워드 | 양동근 현대모비스 / 가드 | 함지훈 현대모비스 / 포워드 | 정영삼 전자랜드 / 가드 | |
<rowcolor=#fff> 2021-22 시즌 | 2022-23 시즌 | 2023-24 시즌 | 2024-25 시즌 | 2025-26 시즌 | |
허훈 kt / 가드 | 정창영 KCC / 가드 | 정성우 kt / 가드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1997~2000 월간 MVP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1월 | 2월 | ||
1997 시즌 | ||||
강동희 기아 | 정재근 SBS | |||
<rowcolor=#fff> 11월 | 12월 | 1월 | 2월 | |
1997-1998 시즌 | ||||
문경은 삼성 | 제이슨 윌리포드 나래 | 김영만 기아 | 김병철 동양 | |
1998-1999 시즌 | ||||
주희정 삼성 | 허재 나래 | 김영만 기아 | 이상민 현대 | |
1999-2000 시즌 | ||||
주희정 삼성 | 허재 나래 | 김영만 기아 | 이상민 현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2000~2005 월간 MVP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11월 | 12월 | 1월 | 2월 |
2000-2001 시즌 | ||||
조성원 LG | 이상민 현대 | 조상현 SK | 서장훈 SK | |
2001-2002 시즌 | ||||
김승현 동양 | 서장훈 SK | 김병철 동양 | 추승균 KCC | |
2002-2003 시즌 | ||||
서장훈 삼성 | 김병철 동양 | 마르커스 힉스 동양 | 김주성 TG | |
2003-2004 시즌 | ||||
김주성 TG삼보 | 찰스 민렌드 KCC | 추승균 KCC | 앨버트 화이트 전자랜드 | |
2004-2005 시즌 | ||||
현주엽 KTF | 양동근 모비스 | 양희승 SBS | 단테 존스 SBS | |
{{{#!wiki style="margin: -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1658><tablebgcolor=#001658> | KBL 2000~2005 베스트 5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f2023,#ddd | <rowcolor=#fff> 가드 | 가드 | 포워드 | 포워드 | 센터 |
2000-2001 시즌 | |||||
주희정 삼성 | 강동희 기아 | 조성원 LG | 아티머스 맥클래리 삼성 | 재키 존스 SK | |
2001-2002 시즌 | |||||
김승현 동양 | 이상민 KCC | 문경은 빅스 | 마르커스 힉스 동양 | 서장훈 SK | |
2002-2003 시즌 | |||||
강동희 LG | 김병철 동양 | 김주성 TG | 마르커스 힉스 동양 | 서장훈 삼성 | |
2003-2004 시즌 | |||||
김승현 오리온스 | 이상민 KCC | 김주성 TG삼보 | 찰스 민렌드 KCC | 서장훈 삼성 | |
2004-2005 시즌 | |||||
김승현 오리온스 | 신기성 TG삼보 | 현주엽 KTF | 김주성 TG삼보 | 서장훈 삼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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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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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의 기타 정보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영구 결번 | |||||||||||||||||||||||||||||||||||||||||||||||||||||||||||||||||||
No. 10 김병철 |
한국프로농구 영구 결번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
양희종 11 | 문경은 10 전희철 13 | - | 양동근 6 우지원 10 김유택 14 | - | ||||||
추승균 4 이상민 11 | 허재 9 김주성 32 | - | - | 김현준 10 | ||||||
미승계 결번 | ||||||||||
김병철 10 |
}}} ||
}}} ||
<colbgcolor=#e60012>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No. 10 | ||
GOYANG ORION Orions Basketball Team | ||
김병철 金昞徹 | ||
출생 | 1973년 3월 6일 ([age(1973-03-06)]세) |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신장 185cm|체중 85kg | |
가족 | 아내, 아들 김승연[1], 딸 김가연 | |
직업 | 농구 선수 (슈팅 가드 / 은퇴) 농구 감독 | |
종교 | 개신교 | |
학력 | 서울대방초등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졸업) 용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 |
프로 입단 | 1996년 동양제과 농구단 | |
현역 시절 등번호 | 10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 영구 결번) | |
병역 | 상무 농구단 (1998~2000) | |
소속 | <colbgcolor=#E60012> 선수 | 동양제과 농구단-대구 동양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 (1996~2011) |
코치 | 고양 오리온스-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13~2022 / 수석 코치) | |
감독 |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2020 / 감독 대행)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농구인. 포지션은 슈팅 가드. 대구 동양 오리온스-대구 오리온스의 원클럽맨이다.오리온스에서 15년을 선수 생활을 보냈고 그중 11년을 주장을 맡았다. 2013-14 시즌부터 2021-22 시즌까지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수석 코치를 맡았다.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유일한 영구 결번 선수였고 선수와 코치로 모두 우승을 이끌었다.
2. 선수 경력
고려대 1학년 때 포인트 가드 포지션을 맡아 같은 학번의 전희철과 함께 팀을 이끌었으나 공격력은 출중했지만 포인트가드 치고는 부족한 리딩과 패스 능력 때문에 비판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 신기성이 입학한 이후 슈팅 가드 자리에서 제대로 자신의 공격력을 발휘하며 맹활약, 새로운 고려대 전성 시대의 주축이 되었다. 하지만 허재나
현주엽이 가세한 1994년에 그 유명한 MBC대회 결승전에서 연세대에 19-37로 뒤지다 대역전극을 펼칠 당시 폭풍 3점을 시전하며 팀의 원톱으로서 미디어에 처음 노출되었다. 문경은/우지원을 최희암이 슛머신 스타일로 키웠다면 김병철은 슛 능력과 더불어 페네트레이션과 점프력까지 겸비한 가드로, 볼 배급은 신기성이 전담하고 김병철은 경기 흐름을 좌우하는 리딩 가드로서 자리 잡았다. 연속선상인 94-95년 농구대잔치에서 고려대는 마지막 경기까지 연세대와 우승을 다툰 끝에 2위로 리그를 마감한다.[2] 고려대 성적은 전체적으로 전희철-현주엽의 포스트가 받쳐주고 백코트는 컨디션 따라 어떤날은 김병철이 터지고, 어떤날은 양희승/신기성이 터지고 하는 식으로 균형이 맞춰졌지만, 기아 혹은 연세대전같은 큰 경기에서는 김병철이 터지고 안 터지고에 따라 승부가 갈린 경우가 많았다.
고려대학교와 함께 김병철은 이 대회부터 마침내 전국구 스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는데, 속공 상황에서 일부러 바깥으로 나가 3점포를 시전하기, 신장 대비 좋은 러닝점프를 활용한 폭풍 드라이브인 등 과감하면서도 우아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연세대가 떨어져나간 상황에서 모든 농구팬이 집중한 기아와의 4강전 2차전에서는 3점슛 4개 포함 26점 원맨쇼를 펼치며 당당히 인터뷰의 주인공이 되었고 언론들은 기아의 시대는 끝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결과는 모두 아시다시피 기아우승) 3차전에서는 김병철의 야투 성공률이 떨어지는 와중에 허동택이 다시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며 아직은 아우들이 안 된다는 걸 재확인했지만 허재,
1995-1996 농구대잔치에서는 고려대학교가 최강 전력을 자랑하며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13연승을 기록했다. 이 시즌 김병철은 13경기에서 104개의 3점슛을 시도해서 52개를 성공시키고 평균 20득점을 넘기는 무시무시한 슈팅 능력을 과시하는 한편 속공, 돌파, 어시스트, 리바운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코트 위를 날아다니면서 종횡무진 대활약을 펼쳤...지만 다시한번 플레이오프에서 기아한테 1승 2패로 패퇴했다. 본격적으로 피어오를 시기였지만 그의 용산고 선배 허재는 아직 '농구대통령' 별명 소리를 듣는 전성기였고 피터팬이 뛰어넘기에는 너무 높은 산이었다.
대학시절 김병철의 플레이에 대해 고대 팬들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병철이가 미치면 나머지는 왔다갔다만 해도 된다"
졸업 후 전희철과 함께 오리온스의 전신이 되는 동양제과 실업팀에 입단해 슈팅 가드로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KBL 출범 후에도 팀의 슈팅 가드로서 KBL 전체 슈팅 가드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공격력을 보였다. 상무에 입대했을 때는 팀 속공의 선봉장이 되어 팀을 이끌었다.
김병철과 전희철의 부재기간 32연패를 기록하며 막장 성적을 찍고 있던 오리온스에 복귀하여 다른 괜찮은 포인트가드가 없는 팀 상황상 포인트가드를 맡았는데, 포인트가드로서는 김병철이 여러 모로 안 맞다는 걸 다시금 보여주며 팀을 두 자릿수 승수도 못 올리게 하고 만다.
그러다가 2000-2001 시즌 후 당시 창단 코치였던 김진 감독의 내부승격과 신인 가드 김승현이 입단하고 김승현과 당시 팀의 1옵션이던 마르커스 힉스를 지원사격하며 팀 우승의 공신 중 한 명이 되었고, 전희철이 팀을 떠난 다음 시즌에는 전희철의 빈 자리만큼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창단 시절부터 코치로 함께하면서 내부승진을 했던 김진 감독은 그에게 주장직을 주면서 수비와 속공부터 책임감을 가지도록 유도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열게했고 2002-2003 시즌 정규리그 MVP와 함께 대구 동양의 6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공헌하게 된다. 이후 우승전력에서는 멀어졌으나 2003-2004 시즌부터 2006-2007 시즌까지도 플레이오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그러나, 동양의 신화를 이끌었던 스승이자 명장인 김진 감독이 11년 정들었던 팀을 떠난 이후 대구 오리온스는 극심한 부진과 함께 양궁순위(10-9-10-10)이라는 시련을 겪게 된다.
후임 감독이었던 이충희 감독과 김상식 수석코치 겸 감독이 왔지만 전성기에서 멀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는 김승현이 멀쩡한 동안에는 슈팅 가드로서 조금씩 하락세 속에서도 평 균 두 자릿수의 득점을 올리며 팀의 주축이 되었으나, 김진 감독이 떠난 이후와 김승현의 부상결장이 잦아지면서 07-08 시즌부터는 한 자릿수로 평균 득점이 추락하며 팀에서 밀려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0 - 2011 시즌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했다. 오리온스의 창단 때부터 해서 데뷔와 은퇴까지 오리온스와 함께 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구단의 삽질로 인해 은퇴식은 대구가 아닌, 본인은 한 번도 뛴 적이 없는 고양에서 치르게 되었다. 그저 지못미! 영구 결번도 이 때 지정되었으나 2022년 캐롯이 오리온 지우기에 나서면서 배너도 내려갔고, 영구 결번도 해제되었다.[3]
3. 플레이 스타일
김병철의 플레이 스타일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한국 최고의 퓨어 슈팅 가드이라고 할 수 있다.[4] 한국 농구 역사에서 그보다 훌륭한 슈팅 가드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롤 플레이어로서 슈팅가드의 역할을 그만큼 잘 소화한 선수는 없었다는 평.[5]대학 시절부터 프로 초창기까지는 플라잉 피터팬이란 별명에 걸맞게 스피드와 운동능력, 그것들을 이용한 돌파와 속공 가담, 좋은 3점 슛 등 매우 다양한 공격 옵션을 갖춘 리그 최정상의 슈팅가드였으며 경기 중에 덩크를 넣은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김승현과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의 입단으로 베스트5 라인업이 갖춰지면서부터는 외곽슛에 집중하며 외국인 용병을 보조해주는 방식으로 슈팅가드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가게 된다.[6] 그런 한편 감각적인 플레이도 곧잘 했고 용병과의 2 대 2 플레이에도 능했다. 용병의 스크린을 타고 던지는 미들 점프슛 역시 당시 그의 특기.
다만 수비의 경우 커리어 내내 지적받던 약점 중 하나였고, 작은 신장 때문에 국제 대회에서는 한계를 노출했다.[7]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을 해주는 에이스라는 이미지는 그다지 없는 편. 대학 시절이나 프로 시절이나 1인자로서 팀을 이끌기보다는 2인자로서 에이스를 지원사격해 주는 역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8] 물론 한국 농구사에서도 손꼽힐만한 훌륭한 슈팅 가드임에는 분명한 선수. 김병철 이후로 퓨어 슈팅 가드의 계보는 사실상 끊겨버린지 오래다. 오랜 대학 후배인 김지후가 2016-17 시즌에 약간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2017-18 시즌 두경민이 커리어 하이를 찍으면서 슈팅 가드의 계보를 이어가나 싶었지만[9] 군입대 크리로 다시 중단..... 여하튼 김병철처럼 수 시즌간 꾸준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슈팅 가드는 현재 나타나지 않고 있다.
4. 시즌별 성적
역대 성적 |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2점슛 | 3점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슛 | |
1997 | 동양/오리온스 | 21 | 66/100 (66.00%) | 61/150 (40.67%) | 50/60 (83.33%) | 365 | 66 | 37 | 47 | 2 | |
1997-98 | 43 | 150/260 (57.69%) | 106/283 (37.46%) | 125/165 (75.76%) | 793 | 220 | 88 | 33 | 18 | ||
1998-99 | 군 복무 (상무 농구단) | ||||||||||
1999-00 | |||||||||||
2000-01 | 45 | 133/252 (52.78%) | 124/300 (41.33%) | 92/137 (69.70%) | 738 | 119 | 220 | 68 | 9 | ||
2001-02 | 52 | 155/270 (57.41%) | 117/282 (41.49%) | 62/80 (77.50%) | 723 | 102 | 137 | 64 | 16 | ||
2002-03 | 54 | 184/317 (58.04%) | 136/340 (40.00%) | 135/156 (86.54%) | 911 | 143 | 145 | 85 | 13 | ||
2003-04 | 51 | 157/305 (51.48%) | 105/265 (39.62%) | 144/174 (82.76%) | 773 | 123 | 186 | 48 | 5 | ||
2004-05 | 52 | 139/274 (50.73%) | 113/292 (38.70%) | 144/170 (84.71%) | 761 | 120 | 175 | 59 | 8 | ||
2005-06 | 49 | 91/212 (42.92%) | 103/252 (40.87%) | 129/160 (80.63%) | 620 | 126 | 111 | 42 |
2006-07 | 52 | 136/261 (52.11%) | 80/208 (38.46%) | 129/154 (83.77%) | 641 | 134 | 160 | 56 |
2007-08 | 51 | 91/195 (46.67%) | 53/164 (32.32%) | 133/161 (82.61%) | 474 | 79 | 184 | 32 | 9 | |
2008-09 | 51 | 86/176 (48.86%) | 34/100 (34.00%) | 87/110 (79.09%) | 361 | 60 | 103 | 28 | 4 | |
2009-10 | 28 | 23/50 (46.00%) | 12/28 (42.86%) | 18/25 (72.00%) | 100 | 22 | 37 | 10 | 2 | |
2010-11 | 7 | 6/10 (50.00%) | 2/6 (33.33%) | 8/16 (50.00%) | 21 | 3 | 8 | 3 | 1 | |
KBL 통산 (13시즌) | 556 | 1417/2682 (52.83%) | 1043/2665 (39.14%) | 1266/1568 (80.74%) | 7,229 | 1,254 | 1,728 | 627 | 94 |
5.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유소년팀 코치로 있다가 2013년 2월 18일 팀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서동철 수석코치가 KB 스타즈 감독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른 인사로, 지도자 데뷔가 예상보다 빨리 왔다. 자리 역시 서동철 수석코치가 맡았던 수석코치직이다.
2012-2013 시즌 은퇴한 조상현 코치와 함께 오리온 빅 포워드 농구의 높은 야투율을 끌어올렸다.
수석코치로 선임된 이래 현역시절 본인의 장점이었던 3점슛을 포지션을 불문하고 선수들에게 장착시켜 엄청난 효과를 보고 있다. 그 중 백미는 2014-15 시즌으로, 3점 성공률이 무려 39.38%로 거의 40%대에 육박하는 성공률을 보여주며, 2위인 인천 전자랜드와 거의 5%P 정도 차이나는 압도적인 3점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가드진들의 3점슛이 몰라볼 정도로 안정되어서, 슛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호빈, 정재홍, 김강선 등의 선수들도 오픈 찬스에서는 성공률이 월등하게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5-16시즌에는 플레이는 화려하지만 외곽 공격옵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조 잭슨을 전담지도하여 3점 성공률을 엄청나게 끌어올려 상대편의 새깅 디펜스를 무력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리온스의 우승이었고, 김병철 코치는 선수와 코치로 모두 우승을 경험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2017-2018 시즌에는 추일승 감독이 요로결석으로 인해 결장할 때 사실상 감독대행으로서 침착한 운영을 보였고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2018-2019 시즌부터 추일승 감독은 사실상 차기 감독으로 수석코치인 김병철에게 감독으로서의 전권을 양보하게 되었다.
그해 10연패 이후 극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많은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9-20 시즌에는 팀이 최하위로 처지게 된다. 그러면서 추일승 감독이 김병철 코치에게 작전타임 때마다 작전 지시를 대신 시키는 횟수가 늘어났었는데, 이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후임 감독으로 김병철이 확정적이라는 평이 많았다.
이후 2020년 2월 19일에 국가대표팀 아시안컵 경기로 인한 리그 휴식기인 상황에서 추일승 감독이 성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를 하자 눈물을 흘렸으며 결국 남은 시즌은 김병철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승격되어 맡게 되었다.
2월 26일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홈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는 승리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 사태로 인한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기 때문에 홈팬들과 기쁨을 나누지는 못했다. 2번째 경기인 2월 29일 KGC전에서는 사보비치의 이탈 속에서도 분전했지만, 종료 직전에 일어난 결정적인 오심 하나 때문에 1점차로 석패, 시즌 첫 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2020년 3월 24일, 연맹이 코로나 19 때문에 시즌 종료를 선언하면서 감독대행으로서의 2경기는 1승 1패, 오리온의 최종 성적은 13승 30패 10위가 되었다.
추일승 감독이 2019-2020 시즌을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수석코치로서 활동했던 김병철 코치의 내부승격이 점쳐졌으나, 뜬금없이 야인 생활을 하던 강을준 전 명지대-LG 감독이 KBL 감독으로 떠난지 무려 9년만에 감독 자리에 부임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감독 선임에는 모기업 그룹 최고위층인 허인철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2021-22시즌 종료 이후 오리온이 매각되고 고양 캐롯 점퍼스로 창단되면서 정들었던 팀을 떠나게되면서 25년 오리온 맨 생활도 안타깝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오리온의 차기 감독 유력 후보였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 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용산고 선배이자 전창진 사단의 멤버인 김승기 감독과 손규완 수석코치에게 지휘봉을 내주면서 쓸쓸히 물러나게 되었다.
그래도, 수석코치로서 훌륭한 성과를 냈다. 추일승호의 오리온에서 대구 시절의 영광과 아픔을 뒤로하고 이미 추일승 감독은 부임 전 오리온스라는 이름을 제외하고 모두를 바꾸기로 했는데 팀의 유니폼 색깔과 충격적인 대구에서 고양으로의 연고이전 속에 팀컬러도 가드 농구에서 빅 포워드 농구로 개편까지 하면서 어려운 오리온을 9년간 이끌었다.
추일승 감독의 수석코치 시절 서동철 전 수석코치의 스타일 그대로 런앤건을 유지하면서 슈터 코치로서 팀의 외곽슈팅을 끌어올렸다.
추일승 감독의 재임 시절에는 오리온의 또 다른 레전드인 허일영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에 공헌했고 이승현에게 캐치앤샷을 장착하게 하면서 공격력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최진수 또한 그 영향을 받았다.
강을준 감독의 재임 시절에는 이대성과 이정현의 외곽슈팅을 지도하면서 2년간 20 KBL 컵 우승과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힘을 보탰다.
오리온 코치를 그만둔 이후 세종시에서 유소년을 가르치고 있다.#
6. 기타
- 농구계의 대표적인 야덕이다. 키움 히어로즈 홍원기 감독과 고려대 동기동문으로 30년 가까이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프시즌 때는 자주 KBO 리그 경기장에서 볼 수 있다. 대구 오리온스 선수 시절에도 비시즌이면 대구까지 와서 삼성 라이온즈 경기를 관전했다.
-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집안의 연고지는 전주시라고. 전라북도 진안군이라는 설도 있었다. 2023년 먹보스 쭈엽이 채널에서 95 농구대잔치 고려대 5인방이 모두 모였을 때 밝혔다. 김병철이 글라스 소주를 살짝 남기자 전희철이 KCC냐 장판을 '깔개'라며 핀잔을 주고 현주엽은 안그래도 KCC에 내정될거라는 말이 있다[10]라고 드립을 쳤는데, 이 때 시골이 전주라며 재치있게 받아쳤다.
- 뭉쳐야 쏜다에서 김유택의 방쫄 출신이라고 밝혔다.[11] 그리고, 심판과 선수한테도 삐지는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의 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12] 특유의 솔직담백한 성격이 2020년대 현 예능의 트렌드에 잘 맞아 예능감도 뛰어난 편이다.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전희철과 김승현[13]과 더불어 오리온즈에서 우승도 하고 좋은 기량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대표팀 명단에 뽑히지 않아서 의아해했던 농구팬들이 많았었는데, 당시 아내가 아시안 게임 기간 중에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이 때문에 오리온스에서 대표팀 감독으로 옮겨간 김진 감독과의 상의 하에 합류를 포기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7. 역대 프로필 사진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 |
2020-21 시즌 (코치) | 2021-22 시즌 (코치) |
8. 관련 문서
[1] 아들 역시 아버지의 자취를 따라 용산고등학교 농구부에 진학했으나 건강 문제로 탈퇴했다.[2] 75대 75 동점 상황에서 연대의 마지막 공격 중 슛이 빗나간 후 리바운드 과정에서 터치아웃 후 연대 볼 선언. 석주일의 손을 맞고 나갔다는 고대의 격렬한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종료 4초 전 시작된 공격에서 서장훈이 3점라인 밟고 던진 결승골로 연대가 77-75로 승리한 경기. 이 경기에서 김병철의 슛감은 대회 최악 수준이었으며 막판 돌파 과정에서 김병철을 막던 이상민은 착지 문제로 종료 1분 남기고 실려 나간다.[3] 다만 이 시기에 10번을 쓰는 선수는 없어서 암묵적으로는 결번을 유지하기는 했다. 이후 소노가 농구단을 인수하고 안정욱이 김병철에 대한 언급은 피하면서 "좋은 기회"라는 발언과 함께 덥석 이 번호를 가져가면서 눈총을 샀다.[4] NBA 매니아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과 커리어 역사, 전체적인 포지셔닝이 NBA의 레이 앨런이나 데빈 부커와 유사하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5] 명실상부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슈팅 가드였던 허재의 경우 경기 운영 능력과 포스트업 공격, 신장까지 갖춘 올라운더 느낌이었고, 그 이전 세대에 농구 대잔치를 지배했던 이충희는 스몰 포워드로 분류될 때가 더 많다. 김병철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조성원은 슛에서만큼은 김병철을 압도할 정도였으나 상대적으로 신장이 작았으며(오히려 포인트가드였던 이상민의 키가 더 컸다.) 김병철처럼 리딩 가드의 역할까지 소화할 수는 없어 사실상 스몰 포워드의 역할이었다. 후배들 중에서 정영삼이나 김효범 같은 경우도 슬래셔로서 돌파력은 김병철 이상이었지만 팀플레이에서 상대적으로 미숙함을 보였으며, 조성민이나 이정현은 반대로 다재다능함에 비해 슈팅가드로서 김병철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주진 않았다.[6] 이 당시 김병철의 3점 성공률은 41.5%에 달한다.[7] 185cm면 당시 한국 슈팅가드로서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NBA에서는 포인트가드 치고도 약간 작은 키이며, 국제적인 기준에서도 그랬다. 그래서 국가대표에서는 문경은과 같이 본래 스몰 포워드를 보던 몸집 있는 선수들이 슈팅 가드를 많이 봤다.[8]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KBL에서 살아남은 것이기도 하다. 당시 서장훈과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용병과 직접적으로 붙어 위력을 발휘했던 선수는 없었고, 용병과 붙는 선수들보다는 용병을 받혀줄 수 있는 선수들이 각광받았다. 실제로 농구대잔치의 스타들 중에서 이상민 정도를 제외하면 프로에서 김병철보다 잘 살아남았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9] 단 두경민은 퓨어 슈팅 가드라기보단 듀얼 가드 성향이고 무엇보다 저 시즌에는 4쿼터 막바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번 포지션으로 뛰었다.[10] 고대 5인방 술먹방 방송이 나올 즈음에, 이상민이 KCC에 코치로 복귀했다.[11] 대만에서 김유택이 호텔 비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갈궈서 늦은 야밤에 호텔 밖으로 나가 겨우겨우 새로 비누를 사 온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김유택이 비누냄새 난다고 다른 거로 사오라고 했다고..[12] 김병철은 본래 성격 그대로 한 것인데, 현주엽이 바람잡고 양희승, 신기성이 의도치 않은 리액션놀리기을 잘 하여 웃기게 보였던 것도 있다.[13] 심지어 이 둘은 결승전 중국전을 포함, 대회 내내 맹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