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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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제주시
2.1. 제주시
3. 서귀포시2.1.1. 관덕정2.1.2. 조일구락부 옛터2.1.3. 연미마을2.1.4. 박진경 추도비2.1.5. 주정공장(동척회사) 옛터
2.2. 구좌읍2.3. 애월읍2.4. 조천읍2.1.5.1.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2.1.6. 4.3 해원방사탑2.1.7. 제주 4.3 평화공원2.1.8. 곤흘동(곤을동) 마을터2.1.9. 제주농업학교 옛터2.1.10. 관음사 군 주둔지 옛터2.1.11. 제주국제공항(정뜨르비행장)2.1.12. 도령마루(도령모루)2.1.13. 박성내2.1.14. 산지항 옛터2.1.15. 오등동 죽성마을 터2.4.1. 목시물굴2.4.2. 조천중학원 옛터2.4.3. 불카분낭2.4.4. 북촌국민학교2.4.5. 너븐숭이 4.3 기념관2.4.6. 낙선동 4.3 성2.4.7. 선흘곶2.4.8. 이덕구 산전2.4.9. 종남마을2.4.10. 함덕백사장2.4.11. 서우봉
2.5. 한림읍2.6. 한경면1. 개요
제주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제주도 내의 4.3 관련 유적지는 596곳에 달한다고 한다. # 또한 제주4.3 70주년기념사업회가 배포한 '4.3 길을 걷다' 지도에는 43곳의 유적지가 수록되었다. 본 문서는 이중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대표적인 역사적 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분류는 제주도의 행정구역별로 하였다.[1]2. 제주시
2.1. 제주시
2.1.1. 관덕정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1051-1번지 일대
관덕정은 조선 시절인 1448년에 건축된 이래로 제주도의 근현대사 중심에 위치한 장소이다. 특히 4.3의 시작으로 알려진 1947년 3월 1일 발포사건의 현장이었다. 이날 오전 11시경 '제28주년 3.1기념 제주도대회'가 관덕정 근처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열렸다. 이날 제주 각지에서 학생과 시민을 비롯하여 3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에 경찰은 150여 명을 투입하여 시위대를 막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시위대는 3.1운동 계승과 자주독립을 외치며 오후 2시부터 가두시위를 감행했다. 그러다 2시 45분경 기마경찰(임영관)의 말에 어린이가 채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과 하나 없이 경찰이 사고현장을 뜨려고 하자 분노한 군중이 몰려들었다. 이에 2시 50분경 경찰이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자행하여 6명이 사망했다.
이후 이곳은 4.3의 와중에 사살된 무장대원들의 시신을 전시하는 곳으로 사용되었고, 1949년 무장대장 이덕구도 죽은 후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이곳에 전시됐다.
2.1.2. 조일구락부 옛터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2동 1255번지조일구락부 옛터는 4.3 당시 제주도 유일의 극장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단체의 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곤 했다. 1947년 2월 23일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의 제주도지부가 이곳에서 결성됐다. 이 자리에서는 초대 제주도지사 박경훈도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한편 1947년 11월 2일에는 악명높은 서북청년회 제주도지부가 결성됐다. 4.3 이후에는 여러번 변화를 거치며 극장시설로 여전히 활용되다가 지금은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이 들어서 있다.
2.1.3. 연미마을
2.1.4. 박진경 추도비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 산 19-22022년에 국립묘지가 될 예정이다.
2.1.5. 주정공장(동척회사) 옛터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건입동 940-13번지 일대주정공장 옛터는 제주주정공장이 위치한 곳이었다. 이 주정공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동양척식주식회사 산하 공장으로 세워졌다가 해방 이후에는 조선인을 중심으로 하여 제주도의 주요한 산업시설로 자리잡았다. 4.3 당시 이곳은 하산자들의 수용소로 만들어져 주정공장 창고에 수백, 수천여 명의 제주도민들이 수용되었다. 열악한 시설과 수용관리로 인하여 많은 수의 제주도민들이 수용 당시 희생되었으며, 군경토벌대는 이곳에마저 나타나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사상검증을 벌여 일부는 처형당하기도 했다. 수용자들은 석방 이후에도 보도연맹에 가입하는 등 감시를 받다가 대다수가 6.25 전쟁 직후의 보도연맹 학살사건으로 인해 희생됐다.
현재는 현대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며, 2001년부터 매년 4월마다 '제주도4.3사건희생자유족회'에서 '제주4.3 행방불명인 진혼제'를 개최하고 있다.
2.1.5.1.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위치: 제주 제주시 임항로 98[2]관람시간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장마감시간 오후 5시)
휴관일 : 둘째 넷째 월요일, 1월 1일 그리고 설/추석 연휴 3일
입장료 : 무료
2023년 3월 13일, 주정공장 옛터에 세워진 전시관이다. 전시관은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람동선은 지상 1층의 추모의 방을 시작으로 지하 1층의 메인 전시실을 거쳐 야외 추모공원으로 이어진다. 주변에 전용 주차장이 있으나 차량 5대만 수용가능한 협소한 공간이라 맞은편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 주차장을 이용하길 바란다.
2.1.6. 4.3 해원방사탑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산로 822.1.7. 제주 4.3 평화공원
제주시 봉개동[3]에 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면 아마 가 보았을 것이다.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 제주국제공항 부근에서 43번 버스(배차간격 30~40분)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서 갈 수 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제주 4.3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는 4.3의 원인, 전개 과정, 결과, 진상규명 과정 등을 상세히 전시하고 있으며, 4.3 관련 자료들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일본군38식 기관총도 전시되어 있다.
- 위령탑과 각명비
위령탑은 4.3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여 도민들의 화합과 남북통일을 갈망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위령탑을 '각명비'라는 비석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 비석에는 각각 4.3 희생자 13903명의 성명, 성별, 나이, 사망일시, 사망장소 등을 상세하게 적어놓았다.
- 위령제단
오석의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 제단으로 영원성, 도민화합, 민주, 인권, 안락 등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위패봉안소에는 13903기의 위패가 있다. 매년 4월 3일만 되면 이곳에서 4.3희생자추념식이 거행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여하여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 행방불명인 표석
희생자 중에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들의 개인표석을 설치한 곳이다. 이곳에는 3806기의 표석이 설치되어 있는데 제주지역 1956기, 경인지역 538기, 영남지역 438기, 호남지역 386기, 대전지역 269기, 예비검속 219기 등이다.
- 봉안관
2006년부터 2011년까지 8군데의 암매장지에서 발굴된 396구의 유해를 봉안한 곳이다.
- 조형물
귀천 | 비설 |
2.1.8. 곤흘동(곤을동) 마을터
2.1.9. 제주농업학교 옛터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 305-4번지 일대2.1.10. 관음사 군 주둔지 옛터
2.1.11. 제주국제공항(정뜨르비행장)
이 곳에서는 곳곳에서 잡은 무고한 민중을 잡아 총살한 현장이다. 그렇기에 활주로 공사를 하다가 유해가 많이 발굴되는 곳이기도 하다.
2.1.12. 도령마루(도령모루)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1805번지 일대2.1.13. 박성내
2.1.14. 산지항 옛터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무정길 28 (건입동)일대2.1.15. 오등동 죽성마을 터
2.2. 구좌읍
2.2.1. 다랑쉬굴
2.2.2. 다랑쉬마을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로 406-252.2.3. 동복리 (굴왓)
2.2.4. 금붕사
2.3. 애월읍
2.3.1. 영모원
2.3.2. 자리왓
2.3.3. 원동마을 터
2.3.4. 육시우영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육시우영'은 1948년 11월 13일 새벽, 원동마을로 향하던 제9연대 군인들(중대장: 전순기 중위)이 하가리를 지나다 제사집에 있던 사람들과 그 근처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내어 27명을 공개적으로 집단학살한 장소이다. 하가리 마을 회관 서쪽 100미터 지점에 '육시우영'이라 불리는 밭이 있다. 이곳이 희생터이다.
11월 13일은 정순아 씨 댁 제사였다. 이 날 제사집에 사람들이 모여 있자 군인들은 정순아 씨 댁을 중심으로 근처의 집들을 불지르면서 주민들을 끌어냈다. 그리고는 정순아 씨 댁 앞밭, 속칭 '육시우영'에서 27명을 공개 총살했다. 이날 정순아 씨는 가족 중에서 5명이 희생당했다. 주택 피해도 심해 정순아 씨 주변 주택 16채가 전소되었다.
군인들은 아이들과 여자들을 꿇어 앉혀놓고 총살 장면을 구경하게 했다. 군인들은 총을 난사한 후에 목숨이 붙어 있는 주민들은 대검으로 재차 학살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는 자신의 남편이 총살당하는 것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켜봐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한다.
이날 총살 현장에서 고원룡과 오창기 씨는 기적적으로 살아 나왔다. 그러나 고원룡 씨는 이틀만에 죽고 말았다. 오창기 씨는 한국전쟁 때 해병 3기로 참전해서 살다가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
희생자는 김두천, 정기봉, 이정화, 양공명, 장순호, 임군선, 임영언, 윤창국, 장언순, 정순아, 임치완, 고태식, 송유생, 임인원, 장기휴, 박청량, 고원룡, 박군화, 정신아, 강기환, 양공언, 임화봉, 고두철, 고순화, 정도아 등이다.
출처 : 제주4.3연구소, 4.3유적 Ⅰ
2.3.5. 빌레못굴
2.4. 조천읍
2.4.1. 목시물굴
2.4.2. 조천중학원 옛터
2.4.3. 불카분낭
2.4.4. 북촌국민학교
2.4.5. 너븐숭이 4.3 기념관
2.4.6. 낙선동 4.3 성
2.4.7. 선흘곶
2.4.8. 이덕구 산전
2.4.9. 종남마을
2.4.10. 함덕백사장
2.4.11. 서우봉
2.5. 한림읍
2.5.1. 만벵듸 공동장지
2.5.2. 진아영 할머니 삶터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380
제주 4.3 사건 당시 군경토벌대의 총탄에 의해 턱을 잃었던 무명천 할머니(본명 진아영)의 생가이다. 그녀는 원래 한경면 판포리에 거주하고 있던 중 턱을 잃고 한림읍 월령리로 거주지를 옮겨 이 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2004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를 추모하기 위하여 생가는 현재 기념관이 되었다. 집의 관리는 '진아영 할머니 삶터 보존위원회'라는 단체가 맡고 있다.
집은 무명천 할머니가 생존할 당시에는 방문마다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공개되어 있다. 내부는 주방 겸 겨실 한 칸과 방 한 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할머니의 유품과 추모기념품이 안에 비치되어 있다. 또한 TV가 비치되어 있어서 무명천 할머니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관람할 수 있다.
한편 집 앞에는 방문객들을 위한 매뉴얼이 붙어져 있다.
첫 번째, '똑똑' 노크하시구요~ '할머니 저 왔수다~'하고 인사하세요~ 두 번째, 집안으로 들어가서 할머니께 절 하시구요~ 세 번째, 방명록에 자기가 왔다갔다는 흔적을 남겨야겠죠?? 네 번째,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무명천 할머니 영상을 봅니다~ TV와 DVD의 전원을 켜서 재생버튼을 눌러주면 되겠죠?? 약 20분 정도의 다큐입니다. 다 보신 후에는 전원 끄시는 거 잊지 마세요!! 다섯 번째, 이제는 마당으로 나가서 잡초 몇 가닥 뽑아보구요~ 예쁜 꽃에도 물을 주세요~ 여섯 번째, 할머니 삶터에서 편히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요~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작별인사 하는 것 잊지 마세요~ 일곱 번째, 나가면서 확인해주세요!!!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또 오세요~ 언제든 반겨주실 거예요 |
2.6. 한경면
3. 서귀포시
3.1. 서귀포시
3.1.1. 영남리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영남동 224번지 일대
19세기 중반에 형성된 영남리는 50여 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큰 마을로서 마을 주민들은 제주도의 근현대 시절 발생한 여러 농민봉기와 항일운동에 참여한 전력이 있었다. 4.3 이전에는 약 20여 가구가 살고 있었고, 소개작전 직전에는 16가구가 남아 있었다. 1948년 10월 18일(음력), 군경토벌대는 영남리에 소개작전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50여 명의 주민들의 희생되었다. 4.3 이후에는 마을이 복귀되지 못하여 결국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버렸다. 이전에는 '영남리'라는 행정구역이 따로 배정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서귀포시 용흥동'에 속해 있다.
3.1.2. 천제연폭포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2232번지 일대천제연폭포 주차장은 1949년 1월 4일 중문면 관내 주민 36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또한 천제연폭포 입구 부근의 소나무 밭에서는 1948년 12월부터 1949년 1월까지 상예리 주민 7명, 하예리 주민 13명, 색달리 주민 3명, 대포리 주민 5명, 하원리 주민 1명, 월평리 주민 8명, 회수리 주민 3명 등 40명이 학살당해 그 장소가 '도살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날짜별로는 1948년 12월 4일에 6명, 12월 17일에 1명, 1949년 1월 4일에 31명, 1월 8일에 2명이 각각 학살당했다.
이러한 전적으로 인해 4.3희생자 중문유족회는 천제연폭포 입구에 위령비를 세워 그 당시 학살당한 넋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