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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파저강 야인 정벌


1. 개요2. 배경3. 파저강에서 전투가 벌어지다4. 관련 문서

1. 개요

1433년 4월 파저강에서 벌어진 전투.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2. 배경

"임금의 도리는 오직 백성을 보호하는 데 있고, 장수의 충성은 적개심(敵愾心)이 귀하다. 무지한 이 야인이 시랑(豺狼) 같은 마음으로 벌같이 쏘는 독기(毒氣)을 마음껏 행하여 우리 국경을 침략하고, 우리 백성의 생명을 살해하여, 고아(孤兒)와 과부(寡婦)가 원한을 일으켜서 화기(和氣)를 상하게 하니, 이것은 과인이 불쌍하고 슬퍼함을 마지 않는 소이이며, 또한 경들이 가슴을 치고 이를 가는 바이다. 군사를 일으켜서 그 죄를 성명(聲明)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경에게 아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기를 명하노니, 모두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주장(主將)의 방략(方略)을 듣고 적을 쳐서, 꺾는 공을 이룩하여 변경 백성들의 소망에 보답하게 하라."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1433) 3월 22일 을해 2번째기사 집현전 부제학 이선을 보내어 북정의 장졸에게 교서를 반포하다.
태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세종은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야 했다. 당시 명나라의 요동 지역은 몽골족에게 위협을 받았다. 세종 5년(1423) 요동 방면으로 이주했던 오도리의 수장 동맹가첩목아는 몽골족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명나라와 조선의 허락을 받아 무리를 거느리고 옛 거주지인 두만강 유역의 아목하(阿木河, 지금의 회령(會寧)) 지역으로 돌아왔다. 세종 6년(1424)에는 이만주(李滿住)가 이끄는 1천 호가 달단에 쫓겨 압록강 중류의 파저강(婆猪江)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조선은 두 집단 중에 명나라와 더욱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이만주가 이끄는 집단을 이주 초기부터 경계하여 입조·교역 등의 접촉을 제한했으며 따라서 양측의 관계는 순탄치 않게 전개되었다. 조선은 여진족이 부리던 노비가 도망해 오면 조선인은 원래 거주지로 보내고 중국인은 요동으로 송환했는데 이것이 여진족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다.

세종 14년(1432) 12월, 여진족 수백여 명이 여연(閭延) 경내에 쳐들어 와 사람과 물건을 약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이만주는 홀라온(忽剌溫) 올적합(兀狄哈)이 조선인 남녀 64명을 사로잡아 가던 것을 자신이 빼앗아 보호한다고 조선에 알려 왔다. 그러나 세종은 여연 습격에 이만주가 관련되었다고 확신하고 이만주 세력에 대한 정벌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1월 19일에는 평안도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로 최윤덕(崔潤德)을 보내어 사전 조치를 강구하도록 했다. 조정에서는 파저강 야인을 정벌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정벌을 감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그럼에도 세종은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정벌을 단행토록 했다.

3. 파저강에서 전투가 벌어지다

최윤덕이 이끄는 원정군 1만 5천 명은 4월 10일 강계에 모여 부대를 7로로 나누었다. 중군절제사(中軍節制使) 이순몽(李順蒙)에게 2515명, 좌군절제사(左軍節制使) 최해산(崔海山)에게 2070명, 우군절제사(右軍節制使) 이각(李恪)에게 1770명,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 이징석(李澄石)에게 3010명, 김효성(金孝誠)에게 1888명, 홍사석(洪師錫)에게 1110명을 맡기고 최윤덕이 스스로 2599명을 통솔하여 7개 단위로 편제를 마쳤다. 부대는 4월 19일 공격을 개시했다. 그 결과 여진인 267명을 죽이고 238명을 생포했으며 우마 177필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리고 귀국했다. 기습을 당한 파저강 여진족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만주의 처도 사망했고 이만주 자신도 부상을 입고 도주하는 처지에 놓였다. 반면 조선군은 4명 전사, 25명 부상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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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