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2 16:31:30

주군

1. 主君2. 主軍3. 고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4. 백제의 왕족

1. 主君[1]

나라의 우두머리를 호칭할 때 사용되었던 말로 사극에서 주로 사용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극 등의 매체에서 쓰일 적엔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 있는 군웅에게 수하들이 쓰는 경우가 더 많다. 건국을 마치고 즉위한 군주에게는 폐하, 전하, 황상, 주상 등의 공식적인 호칭을 더 쓰곤 한다. 물론 해당 군주와 가까운 가신, 측근, 중신들은 (당연히 어전회의 같은 완전히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약간 사석인 곳에서는 여전히 주군으로 지칭하거나 심지어는 군주에게 직접 부르기도 했다.

현대 한국에서는 별로 안 쓰일 것 같지만, 정계에서 간간이 쓰인다. 거물 정치가[2] 혹은 재계 거물의 가신이나 측근들이 자신이 모셔온 해당 정치가나 회장을 가리켜 '주군'이라고 하는 식이다.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 든가 "주군을 뵐 낯이 없다"는 식으로 사극의 용법과 똑같다. 그래도 너무 제왕적인 표현이라 본인이 직접 사용하기 보다는 언론에서 상황을 묘사하는데 사용한다.

2. 主軍

주력이 되는 부대를 뜻한다.

3. 고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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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백제의 왕족

酒君(사케노키미)

백제의 왕족. 한국 측 기록이 없고 일본 측 기록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름 또한 본명이 아니라 당시 왜국에서 불렀던 칭호로 보인다.《일본서기》에 따르면 353년 일본으로 도왜했다고 한다.[3] 도착한 후에 탈출해 '이시카와노니시고리노오비토 코로시(石川錦織首 許呂斯)'라는 왜인집에 숨어있다가 천황의 사면을 받고 왜국에 체류했다. 이후 355년 기록에서 매사냥을 전파했다는 것으로 나온 후 행적은 불명이다.

《일본서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점, 기년이 이주갑인상 혹은 그와 맞지 않는 후대 일로 보이는 점 때문에 주군이 정확히 언제 활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주갑인상(+120년)을 적용해 353년→473년에 도왜했으며 개로왕 대의 인물로 보는 설이 있다. 다만 문제는 이주갑인상을 해도 시기상 온전히 들이맞지 않는데다가 개로왕 대의 인물로 보는 가설은 주군보다는 백제의 지방행정 정비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동시대에 존재한 카츠라기노 소츠히코의 활동 시점을 근거로[4] 1갑자만 인하한 413년경 도왜한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일본 매사냥 협회에서는 주군을 일본 매 사냥의 원조로 추앙하고 있다고 한다.

《신찬성씨록》에서 몇몇 백제계 성씨의 시조로 기록된 주왕(酒王)과 동일인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이,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는 인물 중 실제 왕이 아니었던 사람에게도 왕(王)의 호칭이 붙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자는 다르지만 둘 다 훈독으로는 사케노키미로 읽을 수 있다. 어쨌든 이 가문은 문주왕과 주왕(酒王)을 동시에 모셨기 때문에, 주군이 문주왕의 조상 중 한 명이 아니었나 추정된다.


[1] 드라마, 애니메이션 주군의 태양에 이 한자가 들어간다.[2] 보통은 대통령급[3] 정상적인 파견이 아니라 일본 사신한테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쇠사슬에 묶인채 일본으로 끌려갔다고 한다...고 하는데 이건 《일본서기》 특성상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전지왕, 순타태자, 아좌태자 등이 일본에 체류했던 점을 생각하면 태자 또는 그에 버금가는 지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4] 419년 또는 425년 사망한 박제상과 대면했다.